“가해자 의지에 기대는 건 한계”…스토킹 안전조치 대안은?

입력 2022.02.17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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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킹 피해자가 보복 범죄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나자, 가해자의 접근을 실효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해자의 의지'에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대안으로 ①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위치를 추적하거나 ②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심사할 때 피해자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③ '보복 우려'를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형사소송법에 추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미국은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있고, 독일은 구속영장 심사 시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 대안ⓛ '무력한' 접근 금지 명령…미국은 위반 시 '위치 추적'

지난 14일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40대 여성이 50대 남성 조 모 씨가 살해당했습니다. 당시 조 씨에게는 스토킹처벌법의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접근 금지 명령을 실제 준수하는지 관리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대안으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가해자가 접근 금지 구역에 들어가거나, 피해자와의 거리가 일정 기준 이상 좁혀지면 피해자나 경찰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는 경보가 울리게 하자는 겁니다.

적어도 가해자가 갑자기 나타나 흉기를 휘두르는 강력 사건은 막을 수 있습니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뿐입니다.

헌법상 기본권인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 중입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의 '가정폭력 접근금지명령 이행 강화 방안 : 가해자 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을 보면, 23개 주 정부에서 관련 법률이 시행 중입니다. 1994년 워싱턴주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부착 요건은 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해자를 재판 이전에 석방할 때, 가해자가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했을 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등입니다. 위치 추적 장치의 설치와 운영에 드는 비용은 가해자가 내야 합니다.

실제 보복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코네티컷주에서 2010년 고위험군 가정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한 결과, 2013년까지 진행된 연구에서 가해자 168명 중 피해자를 다시 공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 "사생활 침해" VS "일거수일투족 감시 아냐"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인권과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전자 발찌의 경우에도 성폭력이나 강도, 살인 등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한해 채우고 있는데,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이유로 전자 발찌를 채우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위치 추적 도입은 여론에 편승한,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허민숙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접근 금지 명령 위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기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접근 금지 구역에 진입하였을 시 그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보장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현장 CCTV 화면지난 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현장 CCTV 화면

■ 대안② "구속 심사 때 '피해자 의견' 반영 절차 있어야"

형사소송법상의 '구속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스토킹 범죄 수사 단계에서 가해자의 구속 여부는 피해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해 실질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속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 피해자가 검찰이나 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는 현재 없습니다.

구속 영장 신청서에는 피의자의 범죄 사실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 사유에 관한 내용만 들어갑니다. 형사소송법의 구속 사유는 3가지로, 피의자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입니다.

피해자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구속 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영장 신청서에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은 서류만 보고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서울 구로구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 이웃 주민들은 가해자 조 씨가 매일 같이 피해자의 가게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고 말합니다. 목격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조 씨의 구속 영장을 기각했고, 풀려난 조 씨는 이틀 뒤 가게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조 씨 구속 여부를 심사할 때, 피해 여성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다면 검찰의 판단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경찰이 운영 중인 '범죄피해평가제도' 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피해평가는 피해자의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구속 심사와 재판 등 형사 절차에 반영하는 제도로,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전문가들이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경찰은 이 보고서를 구속 영장 신청서에 첨부해 검찰에 제출합니다. 2016년 도입됐지만, 2020년 기준 실시 건수가 988건에 그쳤습니다.

■ 대안③ "'재범 위험성'도 구속 사유로"…현재는 '고려 사항'

학계에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독립된 구속 사유로 형사소송법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재범 우려는 구속의 3가지 사유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 그 자체로 독자적인 구속 사유는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재범 우려를 별도의 구속 사유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김혁 부경대 법학과 교수가 한국피해자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보복범죄의 방지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속제도의 재설계'를 보면, 영국은 '재범 방지를 위해 구금이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독일은 '재범의 위험'을 각각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독일의 경우 구속은 새로운 범죄에 대한 '예방적 조치'로 기능한다고 설명합니다.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하는 구속은 특정 범죄를 저질렀다는 현저한 혐의가 있고, 확정 판결 전에 동종의 범행을 저지르거나 지속할 위험이 있으며, 그 급박한 위험을 방지하는 데 필요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구속 제도와 관련해 그동안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의자 인권'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만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정작 피해자는 소외됐다고 강조합니다.

스토킹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문 대통령은 어제 "스토킹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찰과 경찰이 조속히 강구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는 근본적인 대안이 나오기 힘듭니다. 검찰과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가장 우선에 두고 제도 개선에 머리를 맞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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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해자 의지에 기대는 건 한계”…스토킹 안전조치 대안은?
    • 입력 2022-02-17 10:19:23
    취재K

스토킹 피해자가 보복 범죄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또 일어나자, 가해자의 접근을 실효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가해자의 의지'에 기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대안으로 ①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해 피해자에게 접근하면 위치를 추적하거나 ② 피의자의 구속 여부를 심사할 때 피해자가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는 방안 ③ '보복 우려'를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형사소송법에 추가하는 방안 등이 거론됩니다.

미국은 가정폭력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고 있고, 독일은 구속영장 심사 시 재범을 저지를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 대안ⓛ '무력한' 접근 금지 명령…미국은 위반 시 '위치 추적'

지난 14일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40대 여성이 50대 남성 조 모 씨가 살해당했습니다. 당시 조 씨에게는 스토킹처벌법의 '100미터 이내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진 상태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접근 금지 명령을 실제 준수하는지 관리하는 제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의 '선의'에 기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대안으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됩니다. 가해자가 접근 금지 구역에 들어가거나, 피해자와의 거리가 일정 기준 이상 좁혀지면 피해자나 경찰에게 그 위치를 알려주는 경보가 울리게 하자는 겁니다.

적어도 가해자가 갑자기 나타나 흉기를 휘두르는 강력 사건은 막을 수 있습니다. 현행 스토킹 처벌법은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해도 과태료를 부과할 뿐입니다.

헌법상 기본권인 '사생활 침해'라는 논란이 있지만 미국에서는 오래전부터 시행 중입니다. 허민숙 국회 입법조사관의 '가정폭력 접근금지명령 이행 강화 방안 : 가해자 GPS 추적제도 도입을 위한 시론'을 보면, 23개 주 정부에서 관련 법률이 시행 중입니다. 1994년 워싱턴주에 처음 도입됐습니다.

부착 요건은 주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가해자를 재판 이전에 석방할 때, 가해자가 접근 금지 명령을 위반했을 때,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등입니다. 위치 추적 장치의 설치와 운영에 드는 비용은 가해자가 내야 합니다.

실제 보복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합니다. 코네티컷주에서 2010년 고위험군 가정폭력 가해자를 대상으로 효과를 확인한 결과, 2013년까지 진행된 연구에서 가해자 168명 중 피해자를 다시 공격한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 "사생활 침해" VS "일거수일투족 감시 아냐"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되지 않은 가해자에게 위치 추적 장치를 부착하는 것은 인권과 사생활 침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전자 발찌의 경우에도 성폭력이나 강도, 살인 등 중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 한해 채우고 있는데, '범죄를 저지를 것 같다'는 이유로 전자 발찌를 채우기는 어렵다"고 말했습니다. 위치 추적 도입은 여론에 편승한, 무책임한 주장이라는 겁니다.

이에 대해 허민숙 조사관은 보고서에서 "접근 금지 명령 위반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며 기록하는 방식이 아니라, 접근 금지 구역에 진입하였을 시 그 위치를 알려주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헌법이 보장하는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보장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지난 14일 서울 구로구의 한 술집에서 발생한 스토킹 살인 사건 현장 CCTV 화면
■ 대안② "구속 심사 때 '피해자 의견' 반영 절차 있어야"

형사소송법상의 '구속 제도'를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스토킹 범죄 수사 단계에서 가해자의 구속 여부는 피해자에게 매우 중요합니다. 가해자를 피해자로부터 분리해 실질적으로 격리할 수 있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구속 여부를 심사하는 단계에서 피해자가 검찰이나 법원에 의견을 제출할 수 있는 절차는 현재 없습니다.

구속 영장 신청서에는 피의자의 범죄 사실과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구속 사유에 관한 내용만 들어갑니다. 형사소송법의 구속 사유는 3가지로, 피의자 주거가 일정하지 않거나 증거 인멸이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입니다.

피해자의 정신적 경제적 피해는 구속 사유와 직접 관련이 없어서 영장 신청서에 반영하기 어렵습니다. 피해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는 검찰과 법원은 서류만 보고 구속 여부를 판단해야 합니다.

서울 구로구 스토킹 살인 사건의 경우, 이웃 주민들은 가해자 조 씨가 매일 같이 피해자의 가게에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고 말합니다. 목격자가 여럿 있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조 씨의 구속 영장을 기각했고, 풀려난 조 씨는 이틀 뒤 가게를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조 씨 구속 여부를 심사할 때, 피해 여성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절차가 있었다면 검찰의 판단이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우선 경찰이 운영 중인 '범죄피해평가제도' 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범죄피해평가는 피해자의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피해를 종합적으로 진단해 구속 심사와 재판 등 형사 절차에 반영하는 제도로, 평가위원으로 위촉된 전문가들이 보고서를 작성합니다. 경찰은 이 보고서를 구속 영장 신청서에 첨부해 검찰에 제출합니다. 2016년 도입됐지만, 2020년 기준 실시 건수가 988건에 그쳤습니다.

■ 대안③ "'재범 위험성'도 구속 사유로"…현재는 '고려 사항'

학계에서는 '재범의 위험성'을 독립된 구속 사유로 형사소송법에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현행법에서 재범 우려는 구속의 3가지 사유를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일 뿐, 그 자체로 독자적인 구속 사유는 아닙니다.

해외에서는 재범 우려를 별도의 구속 사유로 인정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김혁 부경대 법학과 교수가 한국피해자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 '보복범죄의 방지와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구속제도의 재설계'를 보면, 영국은 '재범 방지를 위해 구금이 필요하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경우', 독일은 '재범의 위험'을 각각 독자적인 구속 사유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는 독일의 경우 구속은 새로운 범죄에 대한 '예방적 조치'로 기능한다고 설명합니다. "재범의 위험성을 이유로 하는 구속은 특정 범죄를 저질렀다는 현저한 혐의가 있고, 확정 판결 전에 동종의 범행을 저지르거나 지속할 위험이 있으며, 그 급박한 위험을 방지하는 데 필요해야 한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구속 제도와 관련해 그동안 '실체적 진실 발견'과 '피의자 인권' 중 무엇이 우선인지에만 논의의 초점이 맞춰져 왔다며, 정작 피해자는 소외됐다고 강조합니다.

스토킹 살인 사건이 잇따르자, 문 대통령은 어제 "스토킹 피해자 안전 조치의 실효성을 높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검찰과 경찰이 조속히 강구해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행 제도의 '틀' 안에서는 근본적인 대안이 나오기 힘듭니다. 검찰과 경찰이 피해자 보호를 가장 우선에 두고 제도 개선에 머리를 맞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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