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투·개표는 누가 할 일?… 한번 따져봤습니다
입력 2022.02.17 (14:27)
수정 2022.02.17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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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보 간 승패가 초미의 관심이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건 한톨의 차질도 없는 선거관리다. 이렇게 한 번 상상해보자.
… 김 아무개 씨가 신분증을 들고 투표장에 갔다. 웬걸, 이미 투표를 한 걸로 표기돼 있다. 추적해보니, 실제로는 박 아무개 씨가 투표를 했다. 투표사무원의 실수였다. <투표인 명부>의 바로 위·아래칸에 있던 두 사람을 혼동했던 거다. … |
잠시 방심하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착오다.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당한, 어쩌면 엄청난 시비가 일 수 있다. 선거관리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부정선거 논란은 필연적이다.
부정선거 논란은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시궁창으로 몰고갈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지난해 초의 혼란상을 생각해 보자.
1. 선거일이 '빨간 날'이 아니라고?
박중배 씨는 부산 사상구청에서 26년간 일해왔다. 재직 기간 동안 거의 모든 선거의 투표나 개표에 참여했다. 지금은 전국공무원노조 부산본부장을 맡고 있다.
박중배 씨는 26년차 지방공무원인다. 26년 동안 전국 단위 선거일에 투표나 개표 업무를 10번 넘게 맡았다고 한다. 그 일을 투·개표 사무원 이라고 부른다.
투·개표 사무원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 보통 투표나 개표 둘 중 하나를 맡게 된다. 각각 아래의 그림처럼 하루를 보낸다.
노동시간은 보통 14시간 안팎이다. 그 자체도 짧지 않지만, 작은 착오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계속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법정공휴일인 선거일이 이들에겐 고된 하루인 셈이다.
2. 투·개표 업무 누가 해왔냐면
투표와 개표 업무는 지금까지 누가 해왔을까. 최근 치러진 두 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 현황을 봤다. 20대 총선(2016년 4월), 19대 대선(2017년 5월) 통계를 종합했다.
투표사무원 : 지방공무원(65%)-일반인(29%)-교직원(6%)- 국가공무원(0.1%) 개표사무원 : 일반인(43%)-지방공무원(38%)-교직원(9%)-국가공무원(3%) |
주축은 지방공무원이다. 시청과 구청,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투표와 개표 업무의 핵심을 맡는 셈이다. 일반인들도 상당수 참여하지만,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보조적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이런 비중은 선거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과거에도 큰 틀은 계속 비슷했다.
3. 규정이 어떻게 돼있길래
왜 공무원이 하지? 중요한 나랏일이니까, 공무원이 해야지! 선거가 얼마나 큰 국가적 대사인가… 그럴 듯한 설명처럼 들린다.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도 않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근데 왜 '지방'공무원이지? 국가공무원도 있고, 경찰, 소방, 교육 등 공무원도 여러 분야와 직역이 있는데? 이쯤부터는 답하기 쉽지 않다.
당연히 규정이 있지 않을까. '공정성과 중립성을 위해 행정 경험이 풍부한 지방공무원이 선거사무를 맡는다' 와 같이 명확하게 정해놓지 않았을까.
그랬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투표와 개표 등 선거사무에 대한 현행 법 체계는 이렇다.
요약하면, 여러 기관의 추천을 받아 선관위가 위촉하라는 얘기다. 이것만으로는 왜 지방공무원이 주축인지가 잘 설명이 안된다.
4. "주민과 밀접한 현장 행정의 경험과 전문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봤다. 법에서 지방공무원을 콕 집어놓은 것도 아닌데, 왜 특정 직역에 편중돼있냐고.
선관위는 일종의 관행이라고 답했다. 선거가 각 시·군·구 단위로 치러지는 만큼 주민과 밀접한 현장 행정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지방공무원이 딱 거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혹시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사실, 선거사무의 법적 성격에 대해 따져본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법원 판례는 커녕 하급심 판결도 거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전국공무원노조가 소송을 냈다.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 행정3부는 "선거사무는 선관위와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의사가 합치해 성립하는 일종의 근로계약" 이라고 판단했다.
1심 판결이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법원 판단이다. 이 판결 취지대로라면, 공무원이든 아니든 원하는 사람만 투표나 개표 업무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전국공무원노조는 이번 대선부터 지방공무원 개개인의 동의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에서 11만여 명의 부동의서를 모았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처음 있는 일이다.
[연관 기사] 공무원 11만 명 "대선 투·개표 안하겠다"…무슨 일이?
5. 최저임금도 안 된다고?
논란을 접어 두고, 당연히 공무원이 할 일이라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투·개표 사무원이 본업이 아닌 '가욋일'을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대가는 적정해야 한다.
실제로 선거사무 수당이라는 게 있다. 법이 정한 이번 대선의 선거사무 수당은 60,000원이다. 선관위조차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례금과 식비 등을 별도로 책정했다.
이번 대선에 투표나 개표 업무를 맡은 이가 받게 되는 총액은 121,000원이다. 앞선 선거보다는 인상됐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여전히 적정한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평균 노동시간인 14시간을 기준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8,600원 정도라는 얘기다. 올해 최저임금은 9,120원이다.
공무원은 최저임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자에게만 해당한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예외다. 선거사무 수당이 최저임금보다 적어도 위법은 아니다.
합법이라고 해도 과연 적정한 수준일까. 선관위도 수당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배정한 예산이 부족해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6.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선거는 국가 최대의 중대사일 것이다. 해외는 이 고민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특히, 우리보다 역사가 긴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 산하의 전문 연구기관인 선거연수원, 주요 대학의 정치학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해외 문헌을 뒤졌지만, 명쾌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다만, 미국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정부의 책임 하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volunteer)를 모집해 선거에 필요한 사무를 처리한다는 정도만 확인했다. 보상 수준은 확인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연구 자료가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취재에 응한 전문가에게 물었다. 답은 이랬다.
왜 모르냐고요? 지금까지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공무원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공무원들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여 왔으니까요. 새로운 문제의식이 싹튼 셈이니, 앞으로 본격적으로 확인해볼 예정입니다. |
대문사진 : 서혜영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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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2-17 14:2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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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후보 간 승패가 초미의 관심이지만, 못지 않게 중요한 건 한톨의 차질도 없는 선거관리다. 이렇게 한 번 상상해보자.
… 김 아무개 씨가 신분증을 들고 투표장에 갔다. 웬걸, 이미 투표를 한 걸로 표기돼 있다. 추적해보니, 실제로는 박 아무개 씨가 투표를 했다. 투표사무원의 실수였다. <투표인 명부>의 바로 위·아래칸에 있던 두 사람을 혼동했던 거다. … |
잠시 방심하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의 착오다. 당사자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상당한, 어쩌면 엄청난 시비가 일 수 있다. 선거관리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면 부정선거 논란은 필연적이다.
부정선거 논란은 민주주의 꽃이라는 선거를 시궁창으로 몰고갈 수 있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지난해 초의 혼란상을 생각해 보자.
1. 선거일이 '빨간 날'이 아니라고?
박중배 씨는 26년차 지방공무원인다. 26년 동안 전국 단위 선거일에 투표나 개표 업무를 10번 넘게 맡았다고 한다. 그 일을 투·개표 사무원 이라고 부른다.
투·개표 사무원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할까. 보통 투표나 개표 둘 중 하나를 맡게 된다. 각각 아래의 그림처럼 하루를 보낸다.
노동시간은 보통 14시간 안팎이다. 그 자체도 짧지 않지만, 작은 착오가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에 계속 긴장하고 집중해야 한다. 법정공휴일인 선거일이 이들에겐 고된 하루인 셈이다.
2. 투·개표 업무 누가 해왔냐면
투표와 개표 업무는 지금까지 누가 해왔을까. 최근 치러진 두 차례의 전국 단위 선거 현황을 봤다. 20대 총선(2016년 4월), 19대 대선(2017년 5월) 통계를 종합했다.
투표사무원 : 지방공무원(65%)-일반인(29%)-교직원(6%)- 국가공무원(0.1%) 개표사무원 : 일반인(43%)-지방공무원(38%)-교직원(9%)-국가공무원(3%) |
주축은 지방공무원이다. 시청과 구청, 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투표와 개표 업무의 핵심을 맡는 셈이다. 일반인들도 상당수 참여하지만, 비교적 난이도가 낮은 보조적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이런 비중은 선거에 따라 약간의 변동은 있지만, 과거에도 큰 틀은 계속 비슷했다.
3. 규정이 어떻게 돼있길래
왜 공무원이 하지? 중요한 나랏일이니까, 공무원이 해야지! 선거가 얼마나 큰 국가적 대사인가… 그럴 듯한 설명처럼 들린다. 상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도 않다.
조금 더 들어가보자. 근데 왜 '지방'공무원이지? 국가공무원도 있고, 경찰, 소방, 교육 등 공무원도 여러 분야와 직역이 있는데? 이쯤부터는 답하기 쉽지 않다.
당연히 규정이 있지 않을까. '공정성과 중립성을 위해 행정 경험이 풍부한 지방공무원이 선거사무를 맡는다' 와 같이 명확하게 정해놓지 않았을까.
그랬어야 할 것 같은데, 그렇지는 않다. 투표와 개표 등 선거사무에 대한 현행 법 체계는 이렇다.
요약하면, 여러 기관의 추천을 받아 선관위가 위촉하라는 얘기다. 이것만으로는 왜 지방공무원이 주축인지가 잘 설명이 안된다.
4. "주민과 밀접한 현장 행정의 경험과 전문성"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물어봤다. 법에서 지방공무원을 콕 집어놓은 것도 아닌데, 왜 특정 직역에 편중돼있냐고.
선관위는 일종의 관행이라고 답했다. 선거가 각 시·군·구 단위로 치러지는 만큼 주민과 밀접한 현장 행정의 경험과 전문성이 필요한데, 지방공무원이 딱 거기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혹시 법원은 어떻게 판단할까. 사실, 선거사무의 법적 성격에 대해 따져본 일 자체가 거의 없었다. 대법원 판례는 커녕 하급심 판결도 거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전국공무원노조가 소송을 냈다. 지난해 5월 수원지방법원 행정3부는 "선거사무는 선관위와 당사자가 대등한 지위에서 의사가 합치해 성립하는 일종의 근로계약" 이라고 판단했다.
1심 판결이지만, 현재로서는 유일한 법원 판단이다. 이 판결 취지대로라면, 공무원이든 아니든 원하는 사람만 투표나 개표 업무에 종사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근거로 전국공무원노조는 이번 대선부터 지방공무원 개개인의 동의를 받으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전국에서 11만여 명의 부동의서를 모았다. 전국 단위 선거를 앞두고 처음 있는 일이다.
[연관 기사] 공무원 11만 명 "대선 투·개표 안하겠다"…무슨 일이?
5. 최저임금도 안 된다고?
논란을 접어 두고, 당연히 공무원이 할 일이라고 치자.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투·개표 사무원이 본업이 아닌 '가욋일'을 하는 것임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국가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리고 대가는 적정해야 한다.
실제로 선거사무 수당이라는 게 있다. 법이 정한 이번 대선의 선거사무 수당은 60,000원이다. 선관위조차 너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사례금과 식비 등을 별도로 책정했다.
이번 대선에 투표나 개표 업무를 맡은 이가 받게 되는 총액은 121,000원이다. 앞선 선거보다는 인상됐다.
전국공무원노조는 여전히 적정한 수준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평균 노동시간인 14시간을 기준으로 시급으로 환산하면 시간당 8,600원 정도라는 얘기다. 올해 최저임금은 9,120원이다.
공무원은 최저임금 지급 대상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자에게만 해당한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의 예외다. 선거사무 수당이 최저임금보다 적어도 위법은 아니다.
합법이라고 해도 과연 적정한 수준일까. 선관위도 수당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데 공감한다고 밝혔다. 다만, 기획재정부가 배정한 예산이 부족해 당장은 어쩔 수 없다고 했다.
6. 다른 나라는 어떻게 할까
민주주의 국가라면 어느 나라나 선거는 국가 최대의 중대사일 것이다. 해외는 이 고민을 어떻게 풀고 있을까. 특히, 우리보다 역사가 긴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확히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 산하의 전문 연구기관인 선거연수원, 주요 대학의 정치학 교수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해외 문헌을 뒤졌지만, 명쾌한 설명을 찾지 못했다.
다만, 미국은 (연방정부가 아니라) 각 주정부의 책임 하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자원봉사자(volunteer)를 모집해 선거에 필요한 사무를 처리한다는 정도만 확인했다. 보상 수준은 확인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연구 자료가 없을까. 답답한 마음에 취재에 응한 전문가에게 물었다. 답은 이랬다.
왜 모르냐고요? 지금까지 이런 문제제기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당연히 공무원이 할 일이라고 생각했던 거죠. 공무원들 스스로도 그렇게 받아들여 왔으니까요. 새로운 문제의식이 싹튼 셈이니, 앞으로 본격적으로 확인해볼 예정입니다. |
대문사진 : 서혜영
인포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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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범 기자 jbki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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