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전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무죄’ 판결

입력 2022.02.17 (16:44)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23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의 피고인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오늘(17일) 살인과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모 씨(56)에게 협박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김 씨는 1999년 11월 5일 제주에서 후배 조직원과 공모해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김 씨는 202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조직 윗선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후배 조직원 B 씨(2014년 사망)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이 변호사가 B 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한 진술이 ‘소설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재판 내내 진술을 수차례 번복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B 씨와 범행을 공모했고, 피해자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한 점, 범행 역할과 도구 등에 비춰봤을 때 공모 공동정범에 해당한다며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 무기징역과 30년간 전자발찌 부착, 보호관찰 명령 등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 상당 부분은 가능성에 관한 추론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을 봤을 때 피고인이 범행했다고 볼만큼 충분하고 압도적인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겁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PD에게 협박한 행위는 유죄로 보고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선고를 마친 뒤 김 씨를 향해 “법률적인 판단에 따른 무죄다”라는 말을 남긴 채 재판을 종료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고 이승용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었던 고경송 씨도 참석했습니다. 고 씨는 선고 이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피고인은 악을 저질렀고, 그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함에도 법률적인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아 너무 통한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검찰이 항소해 유죄를 입증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주지방검찰청은 곧장 항소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주지검은 “피고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임의성 있는 진술을 했고, 그 밖에 여러 관련자의 증언과 물증 등 제반 증거와 법리에 비춰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1심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고,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999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현장1999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현장

■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1999년 당시 44살이던 이승용 변호사가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삼거리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에서 운전대에 고개를 숙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차량과 도로 곳곳에서는 많은 혈흔이 발견됐는데, 이 씨의 가슴과 배는 예리한 흉기에 수차례 찔렸고, 왼쪽 팔꿈치도 관통됐습니다. 하지만 돈과 소지품은 차에 그대로 남아있어 계획 살인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도 큰 이목이 쏠렸습니다.

경찰은 인근 지구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만 장의 전단지를 배포한 데 이어 현상금까지 내걸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용의 선상에 오른 인원만 60여 명에 달했지만,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며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승용 변호사 살인 사건은 지난 2014년 11월 5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됩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이전의 살인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됐고, 경찰은 김 씨가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수십 차례 해외를 드나든 점 등을 근거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형사소송법 253조는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있는데, 김 씨의 출입국 여부 등을 확인해 이 같이 판단한 겁니다.

재판부도 이날 선고에서 김 씨가 공소시효를 인식해 국외에 체류한 것으로 보고 김 씨의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8월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김 모 씨지난해 8월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김 모 씨

경찰은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 이후 지난해 6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불법 체류 혐의로 검거된 김 씨를 국내로 송환해 수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김 씨는 해당 방송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직접 그렸고, 이동 동선과 골목길에 가로등이 꺼진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김 씨가 인터뷰에 나선 배경에 대해 ‘당시 다른 인물들이 이 변호사 사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에 대한 미안함, 누명을 풀어주면 유족으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23년 전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피고인 ‘무죄’ 판결
    • 입력 2022-02-17 16:44:09
    취재K

23년 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의 피고인이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제주지방법원 제2형사부(장찬수 부장판사)는 오늘(17일) 살인과 협박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 모 씨(56)에게 협박 혐의만 인정해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습니다.

제주지역 조직폭력배로 활동하던 김 씨는 1999년 11월 5일 제주에서 후배 조직원과 공모해 이승용 변호사를 살해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김 씨는 2020년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와 조직 윗선으로부터 청탁을 받아 후배 조직원 B 씨(2014년 사망)에게 범행을 지시했고, 이 과정에서 이 변호사가 B 씨에 의해 살해당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김 씨는 수사 과정에서 자신이 한 진술이 ‘소설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재판 내내 진술을 수차례 번복했습니다.

검찰은 김 씨가 B 씨와 범행을 공모했고, 피해자를 미행해 동선을 파악한 점, 범행 역할과 도구 등에 비춰봤을 때 공모 공동정범에 해당한다며 살인죄를 적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에 무기징역과 30년간 전자발찌 부착, 보호관찰 명령 등을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재판부는 수사기관이 제출한 증거 상당 부분은 가능성에 관한 추론으로 이를 인정할 수 없고,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범행 동기, 범행수단의 선택, 범행에 이르는 과정, 범행 전후 피고인의 태도 등 여러 간접사실을 봤을 때 피고인이 범행했다고 볼만큼 충분하고 압도적인 증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한 겁니다.

다만 재판부는 김씨가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PD에게 협박한 행위는 유죄로 보고 실형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선고를 마친 뒤 김 씨를 향해 “법률적인 판단에 따른 무죄다”라는 말을 남긴 채 재판을 종료했습니다.

이날 재판에는 고 이승용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었던 고경송 씨도 참석했습니다. 고 씨는 선고 이후 한없이 눈물을 흘리며 “피고인은 악을 저질렀고, 그 벌을 받아야 함이 마땅함에도 법률적인 판단이라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아 너무 통한스럽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검찰이 항소해 유죄를 입증해주길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습니다.

제주지방검찰청은 곧장 항소 입장을 밝혔습니다.

제주지검은 “피고인이 언론 인터뷰를 자청해 범행을 자백하는 임의성 있는 진술을 했고, 그 밖에 여러 관련자의 증언과 물증 등 제반 증거와 법리에 비춰 범죄사실이 충분히 입증되는 것으로 판단해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1심 판결문 전문을 면밀히 검토한 후, 항소심을 통해 범죄사실을 충분히 입증하고, 범죄에 상응하는 형사처벌이 이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1999년 제주에서 발생한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 현장
■ 이승용 변호사 살인사건은…

1999년 당시 44살이던 이승용 변호사가 제주시 제주북초등학교 인근 삼거리에 세워진 자신의 승용차에서 운전대에 고개를 숙인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당시 차량과 도로 곳곳에서는 많은 혈흔이 발견됐는데, 이 씨의 가슴과 배는 예리한 흉기에 수차례 찔렸고, 왼쪽 팔꿈치도 관통됐습니다. 하지만 돈과 소지품은 차에 그대로 남아있어 계획 살인에 무게가 실렸습니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살해당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전국적으로도 큰 이목이 쏠렸습니다.

경찰은 인근 지구대에 수사본부를 설치하고 1만 장의 전단지를 배포한 데 이어 현상금까지 내걸어 대대적인 수사에 나섰습니다.


용의 선상에 오른 인원만 60여 명에 달했지만, 경찰은 끝내 범인을 잡지 못했습니다. 사건이 미궁으로 빠지며 수사본부는 해체됐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이승용 변호사 살인 사건은 지난 2014년 11월 5일 자정을 기해 공소시효가 만료됩니다.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으로 늘어났지만, 이전의 살인사건에는 소급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2015년 7월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완전히 폐지됐고, 경찰은 김 씨가 공소시효 만료 이전에 수십 차례 해외를 드나든 점 등을 근거로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했습니다.

형사소송법 253조는 범인이 형사처분을 면할 목적으로 국외에 있는 경우 그 기간 동안 공소시효를 정지하고 있는데, 김 씨의 출입국 여부 등을 확인해 이 같이 판단한 겁니다.

재판부도 이날 선고에서 김 씨가 공소시효를 인식해 국외에 체류한 것으로 보고 김 씨의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난해 8월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해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김 모 씨
경찰은 ‘그것이 알고싶다’ 인터뷰 이후 지난해 6월 캄보디아 현지에서 불법 체류 혐의로 검거된 김 씨를 국내로 송환해 수사를 진행해왔습니다.

김 씨는 해당 방송에서 범행에 사용된 흉기를 직접 그렸고, 이동 동선과 골목길에 가로등이 꺼진 정황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경찰은 김 씨가 인터뷰에 나선 배경에 대해 ‘당시 다른 인물들이 이 변호사 사건 수사 대상에 오른 것에 대한 미안함, 누명을 풀어주면 유족으로부터 사례비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해 인터뷰를 진행한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