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금속노조 ‘선동 세력’ 분류해 불이익…능력주의 훼손”

입력 2022.02.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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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세력 축소 방안

·금속 대 비금속 간 유무형의 차별 처우…전방위 압박

·2년 연속 하위 고과 부여로 경제적 타격 제공 및 심리적 압박

·개별탈퇴→조합원 축소→교섭권 유지(기업노조)

방위산업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 한화테크윈에서 만든 문건 내용입니다. 회사 기밀처럼 꽁꽁 감춰줬던 문건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마치 1980년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이 문건의 작성 시기는 놀랍게도 2015년입니다.

문건이 만들어진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삼성그룹에 속해 있던 삼성테크윈이 한화그룹으로 매각되면서 '한화테크윈'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노사의 교섭 창구는 단일화됐고, 복수노조인 '기업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운데 기업노조가 대표 교섭노조가 됐습니다.

한화테크윈 관리자들의 걱정이 커졌습니다. 회사에 우호적인 성향의 기업노조원 수가 점점 줄고 있었고, 2년 뒤면 회사에 비협조적인 금속노조가 대표 교섭노조가 될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한화테크윈은 전담반(T/F)을 꾸려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금속노조원을 탈퇴시켜 '소수화'시키는 방안이었습니다. 회사가 작성한 '금속노조원 분류 및 관리계획'에는 이러한 방안이 상세하게 담겼습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한화테크윈의 '노사관계 안정화 T/F 1차 보고' 문서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한화테크윈의 '노사관계 안정화 T/F 1차 보고' 문서

한화테크윈은 기업노조를 회사와의 협력관계, 금속노조를 비협조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먼저 금속노조원 전체에 대한 성향을 A(선동세력), B(추종세력), C(단순가담) 등으로 나누고, 불이익을 줘 기업노조원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집행부와 대의원 등을 강성, 중도, 온건파로 나눠 대화가 가능한 사람 등으로도 구분했습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나온 한화테크윈의 '금속지회 현황 분석' 자료/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나온 한화테크윈의 '금속지회 현황 분석' 자료/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
특히 금속노조원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혀 조합을 탈퇴하게 하는 내용도 문건에 나열됐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을 요약했습니다.

1. 금속노조원들에게 2년 연속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줘 승격을 막는다.

2. 승격이 안 되면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다.

3. 잔업 특근도 축소 시켜 소득을 감소시킨다.

4. 결국 경제적, 심리적 타격을 입고, 노조를 탈퇴하게 된다.

한화테크윈의 인사 평가는 업적평가와 역량평가로 이뤄집니다. '매우 뛰어남'부터 '매우 부족' 등 모두 다섯 단계로 등급을 매긴 뒤 승격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하위 등급인 '부족'과 '매우 부족'을 받으면 승격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채우지 못합니다. 승격이 안 되면 상여금과 성과급,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한화테크윈의 '금속(노조) 축소방안'이 논의된 이후 금속노조원과 기업노조원의 하위 고과 비율은 눈에 띄게 차이 났습니다. 2015년 하위 고과를 받은 기업노조원과 일반직원 비율은 15%인 반면, 금속노조원 비율은 29%로 2배 가까이 차이 났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격차를 살펴보면 금속노조원들의 하위 고과 비율이 꾸준히 높게 나왔습니다.

하위 고과를 받은 금속노조원들은 회사에 이의신청했지만, 고과가 변경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화테크윈은 금속노조원을 경제적으로 옥죄는 방안 외에도 '사내 육성 프로그램'에서 제외하는 방안, 동기들과 확연한 격차를 유도해 갈등을 유발하는 방안 등도 문건에 담았습니다.

법원은 "유지방안에 경영지원실의 협조사항까지 기재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금속노동조합 소수화 등 전략과 실행방안이 회사 차원에서 수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 신청 '기각'


2019년 8월 금속노조원들은 이 같은 증거자료를 갖고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인사점수를 낮게 주고, 승격을 막은 것은 노동조합 지배·개입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노위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였습니다. 구제 신청 전 부당행위가 이뤄진 인사고과 통보일은 2019년 1월과 3월인데, 노조원들이 같은 해 8월에 구제신청을 했으니 법에서 정한 '3개월 이내'라는 기간을 벗어났다는 취지였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도 청구했지만, 같은 이유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법원 "능력주의 평가 원칙 훼손…중노위, 다시 판정해야"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제3-2행정부는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노조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린 재심판정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쟁점은 중노위가 판단한 '제척기간'이 지났는지 여부였습니다.


중노위는 인사고과 통보일과 승격일이 구제신청을 한 2019년 8월로부터 3개월 이상 흘렀다고 봤습니다. 노동조합법 82조를 따른 것입니다. 사 측의 부당행위가 구제신청을 한 시점에는 이미 끝이 났다고 판단해 구제 신청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2조(구제신청) …구제의 신청은 부당노동행위가 있은 날(계속하는 행위는 그 종료일)부터 3월 이내에 이를 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사 측의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금속노조원들이 2019년 8월 구제신청을 할 당시, 사 측이 '금속노조 소수화 전략 실행방안'을 철회하거나 종료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계속되는 행위'라고 봤습니다.

한화테크윈은 2017년 7월 회사를 분할해 한화지상방산과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를 설립하고 이후 상호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바꿨습니다. 이듬해 또다시 회사 일부를 분할하는 등 복잡한 분할 과정을 거쳤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분할된 뒤에도 대체로 동일한 인사고과 평가 방법이 적용됐고, 여전히 기업노조원과 금속노조원의 하위 고과·승격 비율에서 유의미한 격차가 존재해 부당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뤄진 부당노동행위는 회사가 분할됐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계속되는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금속노조원에게만 하위 인사고과를 부여하고 승격을 누락시켜 임금의 차액이 발생한 것과 이후 회사가 정당한 평가에 따른 임금 차액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시간적 연속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금속노조 소수화 실행방안에 대해 " 능력주의 평가원칙을 스스로 훼손한 행위의 결과라는 점에서 부당하고, 기업노조원과 비조합원 집단에 비해 불이익하게 취급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재판부는 중앙노동위원회가 금속노조원들에 대한 하위 인사고과 부여와 승격 누락, 임금지급 행위, 부작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심리·판정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판결 이후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는 "형사사건에 증거로 제출된 압수수색 문건까지 노동위원회에 제시했음에도 노동자의 절규를 외면했다"며 "이는 노동위원회의 존재 목적인 피해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의무마저 저버린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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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금속노조 ‘선동 세력’ 분류해 불이익…능력주의 훼손”
    • 입력 2022-02-18 11:28:22
    취재K
금속(노조)세력 축소 방안

·금속 대 비금속 간 유무형의 차별 처우…전방위 압박

·2년 연속 하위 고과 부여로 경제적 타격 제공 및 심리적 압박

·개별탈퇴→조합원 축소→교섭권 유지(기업노조)

방위산업 기업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전신 한화테크윈에서 만든 문건 내용입니다. 회사 기밀처럼 꽁꽁 감춰줬던 문건은 검찰의 압수수색을 통해 공개됐습니다. 마치 1980년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이 문건의 작성 시기는 놀랍게도 2015년입니다.

문건이 만들어진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삼성그룹에 속해 있던 삼성테크윈이 한화그룹으로 매각되면서 '한화테크윈'으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노사의 교섭 창구는 단일화됐고, 복수노조인 '기업노조'와 '민주노총 금속노조' 가운데 기업노조가 대표 교섭노조가 됐습니다.

한화테크윈 관리자들의 걱정이 커졌습니다. 회사에 우호적인 성향의 기업노조원 수가 점점 줄고 있었고, 2년 뒤면 회사에 비협조적인 금속노조가 대표 교섭노조가 될 가능성 때문이었습니다.

한화테크윈은 전담반(T/F)을 꾸려 대책을 논의했습니다. 금속노조원을 탈퇴시켜 '소수화'시키는 방안이었습니다. 회사가 작성한 '금속노조원 분류 및 관리계획'에는 이러한 방안이 상세하게 담겼습니다.

법원이 판결문에서 제시한 한화테크윈의 '노사관계 안정화 T/F 1차 보고' 문서
한화테크윈은 기업노조를 회사와의 협력관계, 금속노조를 비협조 관계로 규정했습니다.

먼저 금속노조원 전체에 대한 성향을 A(선동세력), B(추종세력), C(단순가담) 등으로 나누고, 불이익을 줘 기업노조원으로 전환하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집행부와 대의원 등을 강성, 중도, 온건파로 나눠 대화가 가능한 사람 등으로도 구분했습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서 나온 한화테크윈의 '금속지회 현황 분석' 자료/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특히 금속노조원에게 '경제적 타격'을 입혀 조합을 탈퇴하게 하는 내용도 문건에 나열됐습니다.

구체적인 과정을 요약했습니다.

1. 금속노조원들에게 2년 연속 낮은 인사고과 점수를 줘 승격을 막는다.

2. 승격이 안 되면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을 받는다.

3. 잔업 특근도 축소 시켜 소득을 감소시킨다.

4. 결국 경제적, 심리적 타격을 입고, 노조를 탈퇴하게 된다.

한화테크윈의 인사 평가는 업적평가와 역량평가로 이뤄집니다. '매우 뛰어남'부터 '매우 부족' 등 모두 다섯 단계로 등급을 매긴 뒤 승격 대상자를 선정합니다.

하위 등급인 '부족'과 '매우 부족'을 받으면 승격에 필요한 최소 점수를 채우지 못합니다. 승격이 안 되면 상여금과 성과급,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고, 임금에서 불이익을 받습니다.

한화테크윈의 '금속(노조) 축소방안'이 논의된 이후 금속노조원과 기업노조원의 하위 고과 비율은 눈에 띄게 차이 났습니다. 2015년 하위 고과를 받은 기업노조원과 일반직원 비율은 15%인 반면, 금속노조원 비율은 29%로 2배 가까이 차이 났습니다.


2015년부터 2019년까지 격차를 살펴보면 금속노조원들의 하위 고과 비율이 꾸준히 높게 나왔습니다.

하위 고과를 받은 금속노조원들은 회사에 이의신청했지만, 고과가 변경된 경우는 없었습니다. 한화테크윈은 금속노조원을 경제적으로 옥죄는 방안 외에도 '사내 육성 프로그램'에서 제외하는 방안, 동기들과 확연한 격차를 유도해 갈등을 유발하는 방안 등도 문건에 담았습니다.

법원은 "유지방안에 경영지원실의 협조사항까지 기재되어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금속노동조합 소수화 등 전략과 실행방안이 회사 차원에서 수립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습니다.

■지방·중앙노동위원회, 부당해고 구제 신청 '기각'


2019년 8월 금속노조원들은 이 같은 증거자료를 갖고 경남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했습니다.
의도적으로 인사점수를 낮게 주고, 승격을 막은 것은 노동조합 지배·개입에 해당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노위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제척기간이 지났다는 이유였습니다. 구제 신청 전 부당행위가 이뤄진 인사고과 통보일은 2019년 1월과 3월인데, 노조원들이 같은 해 8월에 구제신청을 했으니 법에서 정한 '3개월 이내'라는 기간을 벗어났다는 취지였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도 청구했지만, 같은 이유로 받아들여 지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했습니다.

■ 법원 "능력주의 평가 원칙 훼손…중노위, 다시 판정해야"


법원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대전지방법원 제3-2행정부는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가 중앙노동위원회를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구제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노조의 청구를 인용했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가 내린 재심판정이 취소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쟁점은 중노위가 판단한 '제척기간'이 지났는지 여부였습니다.


중노위는 인사고과 통보일과 승격일이 구제신청을 한 2019년 8월로부터 3개월 이상 흘렀다고 봤습니다. 노동조합법 82조를 따른 것입니다. 사 측의 부당행위가 구제신청을 한 시점에는 이미 끝이 났다고 판단해 구제 신청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82조(구제신청) …구제의 신청은 부당노동행위가 있은 날(계속하는 행위는 그 종료일)부터 3월 이내에 이를 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법원은 사 측의 부당노동행위가 계속되고 있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법원은 금속노조원들이 2019년 8월 구제신청을 할 당시, 사 측이 '금속노조 소수화 전략 실행방안'을 철회하거나 종료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가 없다는 점에서 '계속되는 행위'라고 봤습니다.

한화테크윈은 2017년 7월 회사를 분할해 한화지상방산과 한화파워시스템, 한화정밀기계를 설립하고 이후 상호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로 바꿨습니다. 이듬해 또다시 회사 일부를 분할하는 등 복잡한 분할 과정을 거쳤습니다.

법원은 회사가 분할된 뒤에도 대체로 동일한 인사고과 평가 방법이 적용됐고, 여전히 기업노조원과 금속노조원의 하위 고과·승격 비율에서 유의미한 격차가 존재해 부당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2015년부터 2019년까지 이뤄진 부당노동행위는 회사가 분할됐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계속되는 행위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금속노조원에게만 하위 인사고과를 부여하고 승격을 누락시켜 임금의 차액이 발생한 것과 이후 회사가 정당한 평가에 따른 임금 차액을 지급하지 않은 것에는 '시간적 연속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재판부는 금속노조 소수화 실행방안에 대해 " 능력주의 평가원칙을 스스로 훼손한 행위의 결과라는 점에서 부당하고, 기업노조원과 비조합원 집단에 비해 불이익하게 취급했다는 점에서 차별적일 수밖에 없다"고 판결문에 적었습니다. 재판부는 중앙노동위원회가 금속노조원들에 대한 하위 인사고과 부여와 승격 누락, 임금지급 행위, 부작위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하는지를 심리·판정해야 한다고 주문했습니다.

판결 이후 금속노조 삼성테크윈지회는 "형사사건에 증거로 제출된 압수수색 문건까지 노동위원회에 제시했음에도 노동자의 절규를 외면했다"며 "이는 노동위원회의 존재 목적인 피해 노동자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의무마저 저버린 것"이라며 비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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