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장편소설의 새 경지 - 신경숙 ‘외딴방’

입력 2022.02.2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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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방과 글쓰기의 혁신

문학사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늘 그러하듯 외딴방(전 2권, 문학동네 1995)은 자기만의 독특한 형식과 정동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한국사의 엄혹한 시기(1978~1981년)에 한 농촌 출신 여성이 구로공단에 취직하여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녔던 이야기지만, 이런 소재를 즐겨 다뤘던 70~80년대 대다수 사실주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작중 화자 ‘나’는 소설 서두에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1권 9면)라며 발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이후 ‘나’는 소설서사의 틈새에서 글쓰기에 대한 사유의 끈을 이어가고, 덕분에 소설은 ‘메타픽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소설은 두 개의 서사와 메타픽션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주된 서사와 시공간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제2의 서사는 소설 집필 당시인 1994~1995년경의 ‘나’의 개인적 일상이나 소회는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90년대 중반의 시대적 사건을 언급한다. 하지만 제2서사의 주력은 글쓰기에 대한 사색과 고민으로 수렴된다. 이런 중층적 서사구조와 메타픽션적 성격은 소설 곳곳에서 개별자의 목소리를 되살려 한국 장편소설의 새 경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제2서사에서 산업체특별학급 동기인 하계숙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니?”(1권 37면) 하고 섭섭함을 토로하는데, ‘나’는 하계숙의 발언을 계기로 그 시절의 삶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이렇듯 제2의 서사가 주된 서사를 추동하고 논평하는 가운데 글쓰기에 대한 사유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이 소설은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생성적 글쓰기 혹은 현재진행형 소설쓰기를 선보인다.

소설에서 역사와 개별자

외딴방의 주된 서사는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삼청교육대 등 유신말기에서 신군부로 이어지는 시기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환한다. 노조 탄압이라든지 간부직원들의 갑질과 성희롱, YH사건을 통해서 당시의 공장 분위기도 실감나게 전달된다. 사실 이 소설은 여느 노동소설 못지않게 역사적 사건과 노동현장의 디테일이 풍부하며, ‘나’는 노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1980년대 대다수 민중문학이나 노동소설과 달리 급진적인 사회변혁이나 당위적인 역사적 대의를 따르거나 정당화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셋째오빠는 ‘나’에게 12·12 군사반란 같은 “그런 얘기들을 써봐”라고,

“니가 작가라면 그런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돼"라고 충고하지만(1권 259~56),‘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공식 역사에는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며,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시절 함께 쪽방에서 살았던 큰오빠와 외사촌, 하계숙과 안향숙과 미서 같은 산업체특별학급의 동기들, 그리고 희재 언니의 삶이었다. 이것이 반드시 역사나 거대서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가 살려내는 개별자의 삶의 진실을 통해 아래로부터 실제 사람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공식 역사와 어긋나는, 한국 근대의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전 소설들에서 보기 드문 이 소설의 빛나는 부분은 개별자들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목소리와 삶의 모습이 구체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가령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고자 ‘나’와 외사촌이 노동조합을 탈퇴하라는 회사측 강요에 굴복하는 수치를 감내하는 대목이라든지, 모범생인 큰오빠가 방위병 근무 앞뒤로 학원 강의를 하려고 가발을 쓰고 다니는 장면, 특히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희재 언니와 ‘나’가 ‘그럼 게임’을 하면서 꿈을 펼치는 부분이 그렇다. 이 생생함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개별자들을 오롯이 살려내려는 예술적 분투가 깃들어있고 상투적 유형과 시대의 풍속화에 갇히지 않으려는 버둥거림이 묻어난다.

트라우마적 사건과 삶의 순간을 살려내는 예술

주된 서사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한 대목은 서사와 정동이 팽팽하게 결합되어 있는 장면, 특히 상처/죽음과 결부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다. 여기서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동시에 역사적 의미도 획득한다. 소설 서두에서 열여섯의 ‘나’가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가고 싶은 조바심에서 무심코 쇠스랑을 휘두르다가 발바닥이 찍히는 사건이 그렇다. 발바닥에 쇠스랑이 박힌 채 아무렇지 않게 드러누워 있는 ‘나’의 모습이 섬뜩하고 기이한데, 그 독한 기운은 근대화의 절절한 열망에 상응하는 듯하다. ‘나’는 “생을 낚으러”(1권 27면) 고향을 떠나 도시근대화의 물결에 동참하지만, ‘나’가 도시에서 궁극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의 죽음이다. 그 죽음은 희재 언니의 자살에 본의 아니게 일조하게 된 ‘나’의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통해서 실감된다. 소설은 근대화의 트라우마적인 상처로 시작했다가 트라우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근대화의 어두운 행로를 가로질러 “언니의 진실을, 언니에 대한 나의 진실을, 제대로 따라가”고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1권 248면) 하는 ‘나’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외딴방은 글쓰기의 혁신을 통해서 장편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연 시대적 걸작이다. 이 작품의 중층적 서사와 메타픽션적 성격, 생성적 글쓰기의 특성에서 얼핏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진실/진리를 해체하고자 하는 다양한 유형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신경숙 문학은 구체적인 시간과 존재의 진실을 찾아나서며, 창조적인 글쓰기를 통해 온갖 종류의 상투성과 도식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개별자의 존재적 떨림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현재성의 예술을 보여준다. 이 장편은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으로 갈라져있던 기존의 소설문학을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통합하면서 개별자가 주체로 살아나는 시대에 걸맞는 현재성의 예술을 선보였다. 외딴방(1995)의 예술적 탐색은 엄마를 부탁해(2008)와 아버지에게 갔었어(2021)로 이어진다. 이 세 장편은 한국 근대의 가족과 공동체의 변화상을 새로운 사유와 감각으로 탁월하게 그려낸,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장편 삼부작으로 꼽을 만하다.

한기욱/문학평론가·인제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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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장편소설의 새 경지 - 신경숙 ‘외딴방’
    • 입력 2022-02-20 21:30:51
    취재K
외딴방과 글쓰기의 혁신

문학사의 분기점이 되는 작품이 늘 그러하듯 외딴방(전 2권, 문학동네 1995)은 자기만의 독특한 형식과 정동을 지니고 있다. 이 소설의 주된 서사는 한국사의 엄혹한 시기(1978~1981년)에 한 농촌 출신 여성이 구로공단에 취직하여 산업체특별학급을 다녔던 이야기지만, 이런 소재를 즐겨 다뤘던 70~80년대 대다수 사실주의 소설과는 사뭇 다르다. 작중 화자 ‘나’는 소설 서두에 “이 글은 사실도 픽션도 아닌 그 중간쯤의 글이 될 것 같은 예감이다. 하지만 그걸 문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인지. 글쓰기를 생각해본다, 내게 글쓰기란 무엇인가?”(1권 9면)라며 발본적인 물음을 제기한다. 이후 ‘나’는 소설서사의 틈새에서 글쓰기에 대한 사유의 끈을 이어가고, 덕분에 소설은 ‘메타픽션’적인 성격을 띠게 된다.

소설은 두 개의 서사와 메타픽션적인 부분으로 구성된다. 주된 서사와 시공간적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제2의 서사는 소설 집필 당시인 1994~1995년경의 ‘나’의 개인적 일상이나 소회는 물론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90년대 중반의 시대적 사건을 언급한다. 하지만 제2서사의 주력은 글쓰기에 대한 사색과 고민으로 수렴된다. 이런 중층적 서사구조와 메타픽션적 성격은 소설 곳곳에서 개별자의 목소리를 되살려 한국 장편소설의 새 경지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령 제2서사에서 산업체특별학급 동기인 하계숙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와 “너는 우리 얘기는 쓰지 않더구나”, “혹시 네게 그런 시절이 있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은 아니니?”(1권 37면) 하고 섭섭함을 토로하는데, ‘나’는 하계숙의 발언을 계기로 그 시절의 삶을 직시하고 그에 대한 글쓰기를 시도한다. 이렇듯 제2의 서사가 주된 서사를 추동하고 논평하는 가운데 글쓰기에 대한 사유의 자리를 마련함으로써 이 소설은 이전 소설과는 전혀 다른 생성적 글쓰기 혹은 현재진행형 소설쓰기를 선보인다.

소설에서 역사와 개별자

외딴방의 주된 서사는 10·26 사건, 12·12 군사반란, 1980년 서울의 봄과 5월 광주, 삼청교육대 등 유신말기에서 신군부로 이어지는 시기의 역사적인 사건들을 소환한다. 노조 탄압이라든지 간부직원들의 갑질과 성희롱, YH사건을 통해서 당시의 공장 분위기도 실감나게 전달된다. 사실 이 소설은 여느 노동소설 못지않게 역사적 사건과 노동현장의 디테일이 풍부하며, ‘나’는 노조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의 입장에 공감하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소설은 1980년대 대다수 민중문학이나 노동소설과 달리 급진적인 사회변혁이나 당위적인 역사적 대의를 따르거나 정당화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다. 셋째오빠는 ‘나’에게 12·12 군사반란 같은 “그런 얘기들을 써봐”라고,

“니가 작가라면 그런 문제들을 외면해서는 안 돼"라고 충고하지만(1권 259~56),‘나’가 관심을 가지는 것은 공식 역사에는 기록될 수 없는 것들이며,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는 그 시절 함께 쪽방에서 살았던 큰오빠와 외사촌, 하계숙과 안향숙과 미서 같은 산업체특별학급의 동기들, 그리고 희재 언니의 삶이었다. 이것이 반드시 역사나 거대서사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나’가 살려내는 개별자의 삶의 진실을 통해 아래로부터 실제 사람들의 역사를 다시 쓸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공식 역사와 어긋나는, 한국 근대의 역사적 진실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전 소설들에서 보기 드문 이 소설의 빛나는 부분은 개별자들 하나하나의 살아있는 목소리와 삶의 모습이 구체성을 획득하는 지점이다. 가령 산업체특별학급에 다니고자 ‘나’와 외사촌이 노동조합을 탈퇴하라는 회사측 강요에 굴복하는 수치를 감내하는 대목이라든지, 모범생인 큰오빠가 방위병 근무 앞뒤로 학원 강의를 하려고 가발을 쓰고 다니는 장면, 특히 옥상에서 우연히 만난 희재 언니와 ‘나’가 ‘그럼 게임’을 하면서 꿈을 펼치는 부분이 그렇다. 이 생생함에는 가난하고 소외된 개별자들을 오롯이 살려내려는 예술적 분투가 깃들어있고 상투적 유형과 시대의 풍속화에 갇히지 않으려는 버둥거림이 묻어난다.

트라우마적 사건과 삶의 순간을 살려내는 예술

주된 서사에서 가장 임팩트가 강한 대목은 서사와 정동이 팽팽하게 결합되어 있는 장면, 특히 상처/죽음과 결부되는 트라우마적 사건이다. 여기서 삶의 순간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동시에 역사적 의미도 획득한다. 소설 서두에서 열여섯의 ‘나’가 큰오빠가 있는 서울로 가고 싶은 조바심에서 무심코 쇠스랑을 휘두르다가 발바닥이 찍히는 사건이 그렇다. 발바닥에 쇠스랑이 박힌 채 아무렇지 않게 드러누워 있는 ‘나’의 모습이 섬뜩하고 기이한데, 그 독한 기운은 근대화의 절절한 열망에 상응하는 듯하다. ‘나’는 “생을 낚으러”(1권 27면) 고향을 떠나 도시근대화의 물결에 동참하지만, ‘나’가 도시에서 궁극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온 존재의 죽음이다. 그 죽음은 희재 언니의 자살에 본의 아니게 일조하게 된 ‘나’의 트라우마적인 경험을 통해서 실감된다. 소설은 근대화의 트라우마적인 상처로 시작했다가 트라우마적인 죽음으로 끝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근대화의 어두운 행로를 가로질러 “언니의 진실을, 언니에 대한 나의 진실을, 제대로 따라가”고 “글쓰기로 언니에게 도달해보려고”(1권 248면) 하는 ‘나’의 글쓰기는 계속된다.


외딴방은 글쓰기의 혁신을 통해서 장편소설의 새로운 경지를 연 시대적 걸작이다. 이 작품의 중층적 서사와 메타픽션적 성격, 생성적 글쓰기의 특성에서 얼핏 서구 포스트모더니즘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진실/진리를 해체하고자 하는 다양한 유형의 포스트모더니즘과 달리 신경숙 문학은 구체적인 시간과 존재의 진실을 찾아나서며, 창조적인 글쓰기를 통해 온갖 종류의 상투성과 도식적 역사관에서 벗어나서 개별자의 존재적 떨림을 생생하게 살려내는 현재성의 예술을 보여준다. 이 장편은 사실주의와 모더니즘으로 갈라져있던 기존의 소설문학을 새로운 리얼리즘으로 통합하면서 개별자가 주체로 살아나는 시대에 걸맞는 현재성의 예술을 선보였다. 외딴방(1995)의 예술적 탐색은 엄마를 부탁해(2008)와 아버지에게 갔었어(2021)로 이어진다. 이 세 장편은 한국 근대의 가족과 공동체의 변화상을 새로운 사유와 감각으로 탁월하게 그려낸, 한국문학에서 보기 드문 장편 삼부작으로 꼽을 만하다.

한기욱/문학평론가·인제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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