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고립과 비애를 통찰하는 ‘우주적’ 상상력…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입력 2022.02.2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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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문학동네, 2005)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나’가 십여 년 전 자신이 머물렀던 학교 근처 고시원 공간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삼촌의 과실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고 가족들은 흩어지게 된다. 부모님은 시골로, 형은 막노동판으로, ‘나’는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형에게 돈을 얻어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가장 싼 값의 방을 얻게 된다. 소설은 2년 6개월가량 “귓속의 달팽이 관 같은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배경으로 한 고시원은 그 시대 주거 약자들의 고립과 비애를 압축한 상징적 공간이다. 소설은 1990년대부터 시작하여 IMF 시기를 통과하고 이제 겨우 사회에 안착한 힘겨운 한 청춘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그 시대의 풍경을 탁월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 ‘체류기’라는 명명을 달고 있지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경제적 위기와 이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빈곤은 일시적 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는 현재로서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시원’ 소설의 원조로도 종종 불리는 이 작품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적 도시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주거공간의 다양한 형태가 한국문학사에 등장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해방과 분단 이후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여관과 여인숙, 축사와 공장 기숙사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들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거주지로 존재해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시원 역시 “여인숙의 대용 역할을 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1991년을 기록하고 있다.

‘나’에게 ‘고시원’은 ‘월 9만원 식사 제공’ 이라는 소개 문구를 통해 “단 한푼의 보증금도 없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학교 뒤 야산 근처에 있는 갑을고시원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형광등을 켜야 하는, 창문이 없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방(房)이라고 하기보다는, 관(棺)이라 불러야 할 사이즈의 공간”이라는 또렷한 비유에서 감지되듯이 살아있는 인간존재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최소한의 잠자리만 보장되는 곳이 바로 고시원이었던 것이다.

그 자세로 바닥에 눕게 되면, 누구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두 가닥의 빨래줄과 책상 위쪽에 붙어 있는 작은 옷장을 볼 수 있다. 천장의 중간에는 엑스레이 사진 속의 희미한 뼈 같은, 초소형의 형광등이 켜져 있다. 골절된 쇄골처럼 허약하고, 투영된 인체처럼 허망한 불빛이다. 그 다지 보고 싶지 않은 불빛이지만,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형광등을 켜야 한다.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280면)

옥탑방 식탁의 보온밥통에 가득 담겨 있는 ‘오래된’ 밥으로 공동식사를 하고 좁은 세면장, 화장실, 휴게실을 같이 쓰는 고시원의 삶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자아낸다. 소설이 보여주는 탁월한 비유는 몸도 편하게 쭉 뻗을 수 없는 좁은 방에서 주인공이 하는 변신의 상상에 있다. ‘나’는 몸이 딱딱해져가고, 오래된 가구처럼 변해가면서 폐가 이미 퇴화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내 정숙’에 온몸으로 부응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으로 변신하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은 온몸의 기관에서 나는 생리적 소리를 억누르는 처절한 분투로 표현된다. ‘소리 나지 않는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초여름 ‘쟁쟁쟁쟁’ 목놓아 우는 매미의 모습과 대비되어 짙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생리적인 현상에서 나오는 소리들조차도 소음으로 취급받는 공동의 숙소지만, 역설적으로 이 소리들이야말로 차가운 벽을 넘어 고시원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외계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으로 자주 명명되는 박민규 소설 특유의 환상적 기법은 단락을 자유롭게 바꾸고 대사를 비약시키는 서술방식을 통해 효과적인 울림을 갖는다. 작가는 유머와 비애의 화법을 통해 암담한 현실을 비틀고 풍자하는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솜씨 있게 보여준다. 쥐와 달팽이에 대한 비유에서 시작한 소설은 고시원의 방과 무덤의 관, 매미와 인간, 통조림과 참치 등 각종 사물과 동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상상을 자유자재로 연결한다. 비극적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이 공상의 세계는 유연하고 탁월한 말놀이를 통해 고유한 서사의 질감을 만들어낸다.


유머러스한 화법을 사용하지만 이 소설이 날카롭게 환기하는 것은 압도적인 사회구조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갑을고시원’에서 ‘최후의 진짜 고시생’인 ‘김검사’는 ‘실내 정숙’을 외치며, 유일하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지만, 결국 실연을 겪고 또다시 고시에 낙방하여 귀향한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나’의 형은 잘못된 전기공사로 감전하여 추락사하는 비극을 맞는다. 형의 죽음은 자본주의 사회의 끈질긴 채무구조와도 연동되어 주인공에게 뼈아픈 깨달음을 남긴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면서 빚은 저절로 사라졌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형이-죽음으로써 그 빚을 모두 갚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쪽도, 결국은 빚이란 생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장한 박민규의 소설은 웃음과 슬픔을 버무린 통렬한 화법을 통해 읽는 사람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는 고시원을 빠져나와 자신의 집을 장만했지만, 여전히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지치고 고단한 영혼”에 대한 깊은 존중과 따스한 위로가 담긴 이 작품은 빈곤과 불평등의 현실에 대한 예리하고 풍부한 문학적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백지연 문학평론가·서울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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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평] 고립과 비애를 통찰하는 ‘우주적’ 상상력…박민규 ‘갑을고시원 체류기’
    • 입력 2022-02-20 21:30:59
    취재K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카스테라』,문학동네, 2005)는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나’가 십여 년 전 자신이 머물렀던 학교 근처 고시원 공간을 회고하는 내용으로 시작된다. 삼촌의 과실로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를 맞고 가족들은 흩어지게 된다. 부모님은 시골로, 형은 막노동판으로, ‘나’는 친구 집을 전전하다가 형에게 돈을 얻어 학교 근처 고시원에서 가장 싼 값의 방을 얻게 된다. 소설은 2년 6개월가량 “귓속의 달팽이 관 같은 고시원의 복도 끝 방에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배경으로 한 고시원은 그 시대 주거 약자들의 고립과 비애를 압축한 상징적 공간이다. 소설은 1990년대부터 시작하여 IMF 시기를 통과하고 이제 겨우 사회에 안착한 힘겨운 한 청춘의 삶을 돌아봄으로써 그 시대의 풍경을 탁월하고 섬세하게 포착한다. ‘체류기’라는 명명을 달고 있지만 이 소설이 배경으로 삼는 경제적 위기와 이로 인한 사회적 약자들의 주거 빈곤은 일시적 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한국 사회의 문제를 환기하는 현재로서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고시원’ 소설의 원조로도 종종 불리는 이 작품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근대적 도시개발 과정에서 형성된 주거공간의 다양한 형태가 한국문학사에 등장했음을 볼 수 있다. 특히 해방과 분단 이후 산업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여관과 여인숙, 축사와 공장 기숙사 등 다양한 형태의 공간들이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사람들을 위한 거주지로 존재해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고시원 역시 “여인숙의 대용 역할을 하기 시작”한 시점으로 1991년을 기록하고 있다.

‘나’에게 ‘고시원’은 ‘월 9만원 식사 제공’ 이라는 소개 문구를 통해 “단 한푼의 보증금도 없이 이 어두운 세상을 밝혀주는 한줄기 빛”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학교 뒤 야산 근처에 있는 갑을고시원은,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형광등을 켜야 하는, 창문이 없는 협소한 공간이었다. “방(房)이라고 하기보다는, 관(棺)이라 불러야 할 사이즈의 공간”이라는 또렷한 비유에서 감지되듯이 살아있는 인간존재의 느낌을 가질 수 없는 최소한의 잠자리만 보장되는 곳이 바로 고시원이었던 것이다.

그 자세로 바닥에 눕게 되면, 누구나 천장을 가로지르는 두 가닥의 빨래줄과 책상 위쪽에 붙어 있는 작은 옷장을 볼 수 있다. 천장의 중간에는 엑스레이 사진 속의 희미한 뼈 같은, 초소형의 형광등이 켜져 있다. 골절된 쇄골처럼 허약하고, 투영된 인체처럼 허망한 불빛이다. 그 다지 보고 싶지 않은 불빛이지만, 잠을 잘 때를 제외하고는 언제나 형광등을 켜야 한다. 창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럼 식사는 어떻게? (280면)

옥탑방 식탁의 보온밥통에 가득 담겨 있는 ‘오래된’ 밥으로 공동식사를 하고 좁은 세면장, 화장실, 휴게실을 같이 쓰는 고시원의 삶은 “여기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자아낸다. 소설이 보여주는 탁월한 비유는 몸도 편하게 쭉 뻗을 수 없는 좁은 방에서 주인공이 하는 변신의 상상에 있다. ‘나’는 몸이 딱딱해져가고, 오래된 가구처럼 변해가면서 폐가 이미 퇴화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실내 정숙’에 온몸으로 부응하기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으로 변신하려는 ‘나’의 필사적인 노력은 온몸의 기관에서 나는 생리적 소리를 억누르는 처절한 분투로 표현된다. ‘소리 나지 않는 인간’이 되려는 노력은 초여름 ‘쟁쟁쟁쟁’ 목놓아 우는 매미의 모습과 대비되어 짙은 페이소스를 남긴다. 생리적인 현상에서 나오는 소리들조차도 소음으로 취급받는 공동의 숙소지만, 역설적으로 이 소리들이야말로 차가운 벽을 넘어 고시원에 기거하는 사람들이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징표다.

‘외계적 상상력’ ‘우주적 상상력’으로 자주 명명되는 박민규 소설 특유의 환상적 기법은 단락을 자유롭게 바꾸고 대사를 비약시키는 서술방식을 통해 효과적인 울림을 갖는다. 작가는 유머와 비애의 화법을 통해 암담한 현실을 비틀고 풍자하는 자유로운 연상작용을 솜씨 있게 보여준다. 쥐와 달팽이에 대한 비유에서 시작한 소설은 고시원의 방과 무덤의 관, 매미와 인간, 통조림과 참치 등 각종 사물과 동물, 인간의 존재에 대한 상상을 자유자재로 연결한다. 비극적 현실을 예리하게 포착하는 이 공상의 세계는 유연하고 탁월한 말놀이를 통해 고유한 서사의 질감을 만들어낸다.


유머러스한 화법을 사용하지만 이 소설이 날카롭게 환기하는 것은 압도적인 사회구조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존재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갑을고시원’에서 ‘최후의 진짜 고시생’인 ‘김검사’는 ‘실내 정숙’을 외치며, 유일하게 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남자지만, 결국 실연을 겪고 또다시 고시에 낙방하여 귀향한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던 ‘나’의 형은 잘못된 전기공사로 감전하여 추락사하는 비극을 맞는다. 형의 죽음은 자본주의 사회의 끈질긴 채무구조와도 연동되어 주인공에게 뼈아픈 깨달음을 남긴다. “역시나 시간이 지나면서 빚은 저절로 사라졌다. 세상은 그런 식으로 우리의 죄를 사해준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아니면 형이-죽음으로써 그 빚을 모두 갚았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떤 쪽도, 결국은 빚이란 생각이다.”

자본주의 사회의 빈곤과 불평등에 대한 비판의식을 내장한 박민규의 소설은 웃음과 슬픔을 버무린 통렬한 화법을 통해 읽는 사람의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나’는 고시원을 빠져나와 자신의 집을 장만했지만, 여전히 ‘밀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기분’을 떨치지 못한다. “살아있는 우리들의 지치고 고단한 영혼”에 대한 깊은 존중과 따스한 위로가 담긴 이 작품은 빈곤과 불평등의 현실에 대한 예리하고 풍부한 문학적 통찰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백지연 문학평론가·서울여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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