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여름 <문학과사회>에 처음 발표되었고 나중에 그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 2006)에 수록된 「봄밤」은 이제 한국 소설의 한 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권여선 작가의 그녀다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함께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씩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느껴지는 이야기의 가닥이 점차 하나로 엮이면서 그 윤곽이 드러난다. 그 중심에는 지금 지방 요양원에 함께 머물고 있는 부부 영경과 수환이 있다. 각각 알코올 중독증과 류마티스 관절염을 극심하게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애틋한 이 아슬아슬한 두 사람을 요양원 사람들은 ‘알류커플’이라고 부른다. 이런 조어에서 보이는 언어 감각은 인물들의 대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이야기에 실감을 더하는 한편 권여선 소설다운 독특한 캐릭터의 형상화에도 효과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보다 앞섰던 두 사람의 인연과 그리고 그 이전에 그들이 각자 겪었던 고난은 조금 뒤에야 전해진다. 그리하여 아물지 않은 그때의 상처가 지금 그들이 앓고 있는 증상의 원인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소의 시차를 두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재혼식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키운 상처였을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성적인 것이라기보다 이성적인 것의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성립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절대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악화된 증상을 사이좋게 떠안게 된 두 사람은 결국 요양원에서 함께 하는 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소설의 사건은 이쯤에서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그리고 수환과 영경 각자의 가족들과의 면회 장면이 삽입되면서 다소 넓고 완만하게 흐르던 이야기의 흐름은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배웅하는 수환을 뒤로 하고 영경이 요양원을 떠나면서 급속한 탄력을 얻는다. 그런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수환은 기꺼이 영경을 보내준다. 상식과는 크게 어긋나는 이 특별한 연인들의 행위와 심리가 이 소설의 근본적인 탐구의 대상을 이루고 있다. 술에 의존하는 영경은 한심한가? 또 그것을 허락하는 수환은 무책임한가? 그 자체로만 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법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마법 같은 힘이다.
요양원을 나와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소주 한 병으로 여유 있게 시작한 영경의 알코올 흡수의 스퍼트는 컵라면과 소주 한 병으로 이어지며 한도를 넘어서고, 다시 과자 한 봉지와 페트 소주와 생수를 사가지고 들어온 모텔 방에서 급기야 절정에 이른다. 그 점증적인 과정이 영경의 신체의 상태의 변화에 대한 묘사와 병행하고, 김수영의 시 「봄밤」을 읊조리는 영경의 목소리 톤의 리듬과 맞물리면서, 굳이 음주와 관련시키지 않더라도 한국 소설사에 남을 명장면이 탄생한다.
그렇지만 영경이 자신의 금단 증상을 잠재우고 있을 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증상을 한 단계 더 악화시키고 있을 무렵, 마찬가지로 의식을 잃은 수환은 영경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조급해진 간병인 종우의 두서없는,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들의 사랑과 닿아 있는 한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죽음을 맞고 있었다. 영경이 앰뷸런스에 실려 요양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수환의 장례가 끝난 뒤였고,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이후에도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결말은 신파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소설은 이미 종료된 듯한 결말에 한 장면을 덧붙인다.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경은 자신에게서 엄청난 것이 증발되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런 영경을 보며 요양원의 사람들은 그녀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끔 영경의 눈앞엔 첫 만남에서의 수환의 눈동자가 떠오르고 그럴 때면 오랜 시간 울기만 하는 영경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런 장면을 통해 소설은 그런 위험한 방식이야말로 영경와 수환이 자신들의 사랑을 완성해간 처절한 노력이었으며, 그들이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행복한 승자였다고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비장하면서도 숭고한 로맨스는 결코 들여다보고 싶지 않던 기억의 어두운 이면을,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다른 단편 「층」의 표현을 빌리면 토막난 기억 속에서 밀려나오는 “뭔가 징그럽고 보드라운 속살”을 주로 보여주었던 그때까지의 권여선 소설에서 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이런 현상을 소설 속에서 영경이 수환에게 읽어주는 톨스토이의 <부활>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어떨까.
톨스토이는 <부활>의 한 대목에서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적었다. 강물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지만 또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다.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또 어떤 곳은 따뜻한가 하면 어떤 곳은 차갑다. 그렇지만 강물은 어디에 있든 같은 강물이다. 인간도 누구나 인간의 모든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또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선하다든가 다른 인간은 악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좋지 않은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더 나은 부분을 애써서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봄밤」에서 인용된 한 정치범에 대한 네흘류도프의 평가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인간의 단점을 분자로, 그리고 장점을 분모로 삼아 1을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할 때 지력에 비해 자만심이 지나친 그 정치범은 하류의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없이 늘어나는 분모로 인해 자신의 분수식이 0에 수렴될지라도 상대방을 위해 조금이라도 분자를 늘여보고자 하는 수환과 영경은 그런 의미에서 톨스토이의 인간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에 비춰 보면 그들은 몰락으로서만 감당할 수 있는 어떤 윤리를 실현하고 있다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행운의 몫’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전념함으로써 내적인 ‘부활’을 기도하는 인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더불어 이 소설의 제목과 절정의 순간에 레퍼토리를 제공한 김수영의 「봄밤」 또한 그런 맥락에 기여하고 있다. 서두르는 초조한 마음을 다독이고 가누며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을 벼리는 김수영의 「봄밤」의 서정적 자아 또한 그 순간 부활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며, 「봄밤」은 그 시적 각성의 순간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다.
권여선 소설에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봄밤」에서의 이런 고전적 면모는 뒤이어 발표되었고 <안녕 주정뱅이>에 함께 수록된 「이모」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 같은 이름(윤경호)을 가진 이모는 타자의 존재에 의거하지 않고 자립적인 힘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삶에 이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만나지 못한 수환과 영경이 추구할 수 있었을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 무렵 권여선의 소설이 겨냥하는 대상은 사랑보다 더 큰 과녁이다. 「봄밤」은 톨스토이와 김수영과 합심하여 우리로 하여금 공동의 환상 너머 자기 신념의 방향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손정수 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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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평] 부활의 봄밤 - 권여선 ‘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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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2-20 21:31:00
2013년 여름 <문학과사회>에 처음 발표되었고 나중에 그녀의 다섯 번째 소설집 <안녕 주정뱅이>(창비, 2006)에 수록된 「봄밤」은 이제 한국 소설의 한 세대를 대표하고 있는 권여선 작가의 그녀다운 면과 그렇지 않은 면을 함께 보여주는 소설이다. 소설은 시간 순서를 따르지 않고 흩어진 이야기의 조각을 하나씩 제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처음에는 따로 떨어져 있는 듯 느껴지는 이야기의 가닥이 점차 하나로 엮이면서 그 윤곽이 드러난다. 그 중심에는 지금 지방 요양원에 함께 머물고 있는 부부 영경과 수환이 있다. 각각 알코올 중독증과 류마티스 관절염을 극심하게 앓고 있지만 그럼에도 서로에게 애틋한 이 아슬아슬한 두 사람을 요양원 사람들은 ‘알류커플’이라고 부른다. 이런 조어에서 보이는 언어 감각은 인물들의 대화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면서 이야기에 실감을 더하는 한편 권여선 소설다운 독특한 캐릭터의 형상화에도 효과적으로 이바지하고 있다.
시간상으로는 보다 앞섰던 두 사람의 인연과 그리고 그 이전에 그들이 각자 겪었던 고난은 조금 뒤에야 전해진다. 그리하여 아물지 않은 그때의 상처가 지금 그들이 앓고 있는 증상의 원인을 이루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소의 시차를 두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어느 재혼식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이 한눈에 서로를 알아볼 수 있었던 것 역시 그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키운 상처였을 것이다. 이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이성적인 것이라기보다 이성적인 것의 공백을 메우는 방식으로 성립된 것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더 절대적일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악화된 증상을 사이좋게 떠안게 된 두 사람은 결국 요양원에서 함께 하는 생활을 선택했던 것이다.
본격적인 소설의 사건은 이쯤에서 시작된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그리고 수환과 영경 각자의 가족들과의 면회 장면이 삽입되면서 다소 넓고 완만하게 흐르던 이야기의 흐름은 진통제 주사를 맞아가며 배웅하는 수환을 뒤로 하고 영경이 요양원을 떠나면서 급속한 탄력을 얻는다. 그런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게 될지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수환은 기꺼이 영경을 보내준다. 상식과는 크게 어긋나는 이 특별한 연인들의 행위와 심리가 이 소설의 근본적인 탐구의 대상을 이루고 있다. 술에 의존하는 영경은 한심한가? 또 그것을 허락하는 수환은 무책임한가? 그 자체로만 보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법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이 소설의 마법 같은 힘이다.
요양원을 나와 편의점에서 맥주 두 캔과 소주 한 병으로 여유 있게 시작한 영경의 알코올 흡수의 스퍼트는 컵라면과 소주 한 병으로 이어지며 한도를 넘어서고, 다시 과자 한 봉지와 페트 소주와 생수를 사가지고 들어온 모텔 방에서 급기야 절정에 이른다. 그 점증적인 과정이 영경의 신체의 상태의 변화에 대한 묘사와 병행하고, 김수영의 시 「봄밤」을 읊조리는 영경의 목소리 톤의 리듬과 맞물리면서, 굳이 음주와 관련시키지 않더라도 한국 소설사에 남을 명장면이 탄생한다.
그렇지만 영경이 자신의 금단 증상을 잠재우고 있을 때, 그러니까 결과적으로는 그녀의 증상을 한 단계 더 악화시키고 있을 무렵, 마찬가지로 의식을 잃은 수환은 영경에게 연락이 닿지 않아 조급해진 간병인 종우의 두서없는, 그렇지만 어딘지 모르게 이들의 사랑과 닿아 있는 한 여자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서서히 죽음을 맞고 있었다. 영경이 앰뷸런스에 실려 요양원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수환의 장례가 끝난 뒤였고, 그녀는 의식을 되찾은 이후에도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해내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이런 결말은 신파일까, 아니면 비극일까. 소설은 이미 종료된 듯한 결말에 한 장면을 덧붙인다. 수환의 존재조차 기억하지 못하지만 영경은 자신에게서 엄청난 것이 증발되었다는 것만은 느끼고 있는 듯 계속 뭔가를 찾아 두리번거린다. 그런 영경을 보며 요양원의 사람들은 그녀의 온전치 못한 정신이 수환을 보낼 때까지 죽을힘을 다해 견뎠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가끔 영경의 눈앞엔 첫 만남에서의 수환의 눈동자가 떠오르고 그럴 때면 오랜 시간 울기만 하는 영경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런 장면을 통해 소설은 그런 위험한 방식이야말로 영경와 수환이 자신들의 사랑을 완성해간 처절한 노력이었으며, 그들이 적어도 사랑에서만큼은 행복한 승자였다고 역설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비장하면서도 숭고한 로맨스는 결코 들여다보고 싶지 않던 기억의 어두운 이면을, <안녕 주정뱅이>에 실린 다른 단편 「층」의 표현을 빌리면 토막난 기억 속에서 밀려나오는 “뭔가 징그럽고 보드라운 속살”을 주로 보여주었던 그때까지의 권여선 소설에서 보면 다소 이례적이다. 이런 현상을 소설 속에서 영경이 수환에게 읽어주는 톨스토이의 <부활>과 연관시켜 생각해보면 어떨까.
톨스토이는 <부활>의 한 대목에서 인간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다고 적었다. 강물은 어떤 곳은 좁고 물살이 빠르지만 또 어떤 곳은 넓고 물살이 느리다. 어떤 곳은 맑고 어떤 곳은 흐리며 또 어떤 곳은 따뜻한가 하면 어떤 곳은 차갑다. 그렇지만 강물은 어디에 있든 같은 강물이다. 인간도 누구나 인간의 모든 특성을 맹아처럼 품고 있어서 어떤 때는 이런 특성이 또 어떤 때는 저런 특성이 튀어나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인간이 선하다든가 다른 인간은 악하다든가 하는 이야기는 성립하지 않는다. 다만 좋지 않은 부분은 최대한 줄이고 더 나은 부분을 애써서 늘리려는 노력이 필요할 따름이다.
「봄밤」에서 인용된 한 정치범에 대한 네흘류도프의 평가 또한 이런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한 인간의 단점을 분자로, 그리고 장점을 분모로 삼아 1을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할 때 지력에 비해 자만심이 지나친 그 정치범은 하류의 혁명가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없이 늘어나는 분모로 인해 자신의 분수식이 0에 수렴될지라도 상대방을 위해 조금이라도 분자를 늘여보고자 하는 수환과 영경은 그런 의미에서 톨스토이의 인간학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부활>에 비춰 보면 그들은 몰락으로서만 감당할 수 있는 어떤 윤리를 실현하고 있다기보다 아직 남아 있는 ‘행운의 몫’을 놓치지 않고 자신의 삶에 전념함으로써 내적인 ‘부활’을 기도하는 인물에 더 가까워 보인다.
더불어 이 소설의 제목과 절정의 순간에 레퍼토리를 제공한 김수영의 「봄밤」 또한 그런 맥락에 기여하고 있다. 서두르는 초조한 마음을 다독이고 가누며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을 벼리는 김수영의 「봄밤」의 서정적 자아 또한 그 순간 부활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며, 「봄밤」은 그 시적 각성의 순간을 소설 속에 고스란히 수용하고 있다.
권여선 소설에서는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을 「봄밤」에서의 이런 고전적 면모는 뒤이어 발표되었고 <안녕 주정뱅이>에 함께 수록된 「이모」에도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소설에서 남자 같은 이름(윤경호)을 가진 이모는 타자의 존재에 의거하지 않고 자립적인 힘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른 삶에 이르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서로를 만나지 못한 수환과 영경이 추구할 수 있었을 대안적 경로를 제시한다고 생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이 무렵 권여선의 소설이 겨냥하는 대상은 사랑보다 더 큰 과녁이다. 「봄밤」은 톨스토이와 김수영과 합심하여 우리로 하여금 공동의 환상 너머 자기 신념의 방향을 바라보도록 만든다.
손정수 문학평론가·계명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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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엽 기자 imhere@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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