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사우디는 정말 변하고 있는걸까…첫 여성 기관사 선발에 900:1

입력 2022.02.21 (07: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기차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우디 여성들(출처: 로이터, 2019년)기차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우디 여성들(출처: 로이터, 2019년)

'첫 여성 기관사 모집'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직 공고에 들썩거렸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철도를 운영하는 스페인 고속철도회사 렌페(Renfe)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철도 기관사 모집 공고를 낸 건데, 30명 모집에 여성 지원자는 2만 8천 명이 넘었습니다.

렌페는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교통청으로부터 이같은 모집 공고를 허가받았으며 현재 이를 지원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력과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1단계 채용 과정에 합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또다른 시험과 면접을 거쳐 3월부터 1년 간 훈련을 거친 뒤 메카와 메디나를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운전하게 됩니다.

훈련중인 사우디 첫 여성축구 리그 선수들훈련중인 사우디 첫 여성축구 리그 선수들

■ "사우디 여성을 도와달라" 20년 전 첫 외침 → 사회 많은 분야 여성 진출

"우리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We Saudi women have few possibilities for genuine change. We Saudi women need your help.)"

20년 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가 자국 내 여성 인권의 실상을 알리며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책 '술타나(Princess, Jean Sasson)'의 서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건 20년 전이지만 불과 3-4년 전까지도 사우디 여성들은 혼자 운전을 하고,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외출하고, 직업을 갖고 혼자 해외여행을 가는 일들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차를 살 수 있어도 혼자 운전은 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고용하거나 남자 가족들에게 운전을 부탁해야 했고, 후견인 제도 때문에 아버지 또는 남자형제의 동행없이는 해외 여행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처음으로 여성 운전이 허용됐고, 2019년에는 후견인 제도 일부분이 폐지됐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이 여권은 물론 혼인과 출생, 이혼 신고 등도 직접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일상생활에서도 변화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레스토랑에서 남성과 여성 구분이 없어졌고, 쇼핑몰 등에서는 줄을 따로 서지 않아도 됩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변화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 경기를 보지도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최초로 여성 축구 리그까지 창설됐습니다.

직업 선택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여성들의 노동 참가율은 지난 5년 사이 19%에서 33%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남성보다 여성 취업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창업에 나서는 경우도 많아져 여성 창업률도 38%로 증가했습니다.

여성 운전권을 주장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사우디 여성운동가 알-하스룰(출처: 로이터)여성 운전권을 주장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사우디 여성운동가 알-하스룰(출처: 로이터)

■ 여전히 많은 분야 남성 위주 …갈 길 먼 여성 인권 보장

하지만, '첫 여성 기관사' 라는 수식어에서 보듯이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남성들이 대부분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여성들은 '처음,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는 남성 편중이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지난해 3분기에도 여전히 남성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 실업률은 21.9%로 남성 실업률보다 3배 이상 높다고 로이터는 지적했습니다.

또 여성 인권 보장을 외쳐온 운동가들이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언론 기사· 비판들에 대해 침묵해오고 있다는 점도 꾸준히 인권단체들의 지적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여성 후견 제도와 여성 운전 금지에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해 왔던 알-하스룰의 구금,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등을 보면서 국제 사회는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하스룰은 지난 2014년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차를 직접 스스로 운전해 사우디로 입국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70일 간 구금된 바 있으며 이후 변화를 선동하고 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2018년 다시 체포돼 6년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3월 석방됐지만, 5년 간의 여행 금지와 3년 간의 보호관찰 등 엄격한 조건이 따라붙었다며 가족들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유롭지 못하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SNS에 밝혔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우디의 거리에는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변화와 관습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취재 인터뷰를 위해 거리로 나서면 많은 사우디 여성들이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놓는 일은 꺼립니다.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섭니다.

여성들은 여전히 가족의 관습에 따라야 하며, 특히 가족 가운데 남성의 결정권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결혼에 있어서 온전히 본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장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의료 서비스에의 접근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 이슬람권 일부에서는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의 변화를 '이슬람의 위기' 로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도 존재하는데, 사우디가 이 부분 또한 어떤 식으로 해결할 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사우디는 정말 변하고 있는걸까…첫 여성 기관사 선발에 900:1
    • 입력 2022-02-21 07:01:11
    특파원 리포트
기차를 타기 위해 줄 서 있는 사우디 여성들(출처: 로이터, 2019년)
'첫 여성 기관사 모집'

사우디아라비아가 구직 공고에 들썩거렸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철도를 운영하는 스페인 고속철도회사 렌페(Renfe)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철도 기관사 모집 공고를 낸 건데, 30명 모집에 여성 지원자는 2만 8천 명이 넘었습니다.

렌페는 지난해 12월 사우디아라비아 교통청으로부터 이같은 모집 공고를 허가받았으며 현재 이를 지원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학력과 영어 실력을 평가하는 1단계 채용 과정에 합격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들은 또다른 시험과 면접을 거쳐 3월부터 1년 간 훈련을 거친 뒤 메카와 메디나를 연결하는 고속열차를 운전하게 됩니다.

훈련중인 사우디 첫 여성축구 리그 선수들
■ "사우디 여성을 도와달라" 20년 전 첫 외침 → 사회 많은 분야 여성 진출

"우리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진정한 변화의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We Saudi women have few possibilities for genuine change. We Saudi women need your help.)"

20년 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공주가 자국 내 여성 인권의 실상을 알리며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책 '술타나(Princess, Jean Sasson)'의 서문에 있는 내용입니다.

이 책이 쓰여진 건 20년 전이지만 불과 3-4년 전까지도 사우디 여성들은 혼자 운전을 하고, 마음대로 가고 싶은 곳에 외출하고, 직업을 갖고 혼자 해외여행을 가는 일들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차를 살 수 있어도 혼자 운전은 할 수 없어 운전기사를 고용하거나 남자 가족들에게 운전을 부탁해야 했고, 후견인 제도 때문에 아버지 또는 남자형제의 동행없이는 해외 여행도 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많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처음으로 여성 운전이 허용됐고, 2019년에는 후견인 제도 일부분이 폐지됐습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이 여권은 물론 혼인과 출생, 이혼 신고 등도 직접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레스토랑과 카페 등 일상생활에서도 변화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많은 레스토랑에서 남성과 여성 구분이 없어졌고, 쇼핑몰 등에서는 줄을 따로 서지 않아도 됩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변화는 나타나고 있습니다. 2019년까지만 해도 여성들이 경기장에서 직접 축구 경기를 보지도 못했지만, 지난해에는 최초로 여성 축구 리그까지 창설됐습니다.

직업 선택에서도 많이 자유로워졌습니다. 여성들의 노동 참가율은 지난 5년 사이 19%에서 33%로 두 배 가까이 높아졌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남성보다 여성 취업자가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성이 주체적으로 창업에 나서는 경우도 많아져 여성 창업률도 38%로 증가했습니다.

여성 운전권을 주장하다 징역형을 선고받았던 사우디 여성운동가 알-하스룰(출처: 로이터)
■ 여전히 많은 분야 남성 위주 …갈 길 먼 여성 인권 보장

하지만, '첫 여성 기관사' 라는 수식어에서 보듯이 여전히 많은 분야에서 남성들이 대부분 요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아직도 여성들은 '처음, 최초'라는 타이틀을 달고 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공공 부문에서는 남성 편중이 심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 일하는 여성의 비율은 지난해 3분기에도 여전히 남성의 절반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여성 실업률은 21.9%로 남성 실업률보다 3배 이상 높다고 로이터는 지적했습니다.

또 여성 인권 보장을 외쳐온 운동가들이나 인권 문제를 제기한 언론 기사· 비판들에 대해 침묵해오고 있다는 점도 꾸준히 인권단체들의 지적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사우디의 여성 후견 제도와 여성 운전 금지에 적극적으로 반대 운동을 해 왔던 알-하스룰의 구금,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 등을 보면서 국제 사회는 여전히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습니다.

알-하스룰은 지난 2014년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차를 직접 스스로 운전해 사우디로 입국하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려 70일 간 구금된 바 있으며 이후 변화를 선동하고 혼란을 일으켰다는 이유로 2018년 다시 체포돼 6년 가까운 징역형을 선고받은 바 있습니다.

그녀는 지난해 3월 석방됐지만, 5년 간의 여행 금지와 3년 간의 보호관찰 등 엄격한 조건이 따라붙었다며 가족들은 "그녀는 집으로 돌아왔지만 자유롭지 못하며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고 SNS에 밝혔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사우디의 거리에는 분명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지만, 내부에서는 여전히 변화와 관습이 충돌하고 있습니다.

취재 인터뷰를 위해 거리로 나서면 많은 사우디 여성들이 관심을 갖고 인터뷰를 하고 싶어하지만 결국 방송에 얼굴을 드러내놓는 일은 꺼립니다. 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섭니다.

여성들은 여전히 가족의 관습에 따라야 하며, 특히 가족 가운데 남성의 결정권은 여성들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결혼에 있어서 온전히 본인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가장의 결정에 따라야 하며, 의료 서비스에의 접근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또 이슬람권 일부에서는 '이슬람 종주국' 사우디의 변화를 '이슬람의 위기' 로 못마땅하게 보는 시선도 존재하는데, 사우디가 이 부분 또한 어떤 식으로 해결할 지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