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인태 57개국 외교장관 불러모은 프랑스…이 와중에 왜?

입력 2022.02.22 (16:04) 수정 2022.02.22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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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

우크라이나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가운데,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 5시(현지시각 오전 9시) 프랑스 파리에 58개 나라 외교장관이 모입니다.

올 상반기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은 프랑스가 주최하는 '인도-태평양 협력에 관한 장관회의(Ministerial Forum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같은 회의가 열리는 건 처음으로, 정의용 외교장관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 따르면 장-이브 르 드리앙(Jean-Yves Le Drian) 프랑스 유럽·외교부 장관과 조셉 보렐(Josep Borrell)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함께 회의의 의장을 맡습니다.

회의 참석자는 인도, 일본, 호주,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인도-태평양 지역 30개 국과 EU 회원국의 외교장관, EU 기관들(유럽위원회·유럽의회·유럽투자은행),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환인도양연합(IORA), 태평양도서국포럼(PIF) 등 인도-태평양 지역 단체들의 관계자로 정해졌습니다. 미국과 중국 측 인사는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라운드테이블(원탁 토의) 방식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연계성(connectivity)·디지털 기술 ▲전 세계적 도전(기후, 생물다양성, 해양 오염·불법 조업, 코로나 대응·백신 협력 등 보건) ▲안보·방위 등 세 분야의 주제를 1시간 40분 동안 차례로 논의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대선 2달도 안 남긴 프랑스…대규모 국제회의 주최 이유는?

이번 회의는 지난해 9월 '인도-태평양에서의 협력을 위한 EU의 전략(EU Strategy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 차원으로 평가됩니다.

(▶EU 발표문 전문:
https://eeas.europa.eu/sites/default/files/jointcommunication_2021_24_1_en.pdf)

유럽이 새 전략 문서를 발표한 만큼 그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들을 불러 모아 구체적으로 계획을 소개하고, 각 나라들의 입장을 들어보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유럽연합은 2021년 9월 16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출처: 유럽연합)유럽연합은 2021년 9월 16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출처: 유럽연합)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오는 4월 10일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분주한 상황에서도, 프랑스가 이처럼 큰 국제회의를 준비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유럽 정치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프랑스는 상반기 의장국을 체코에 넘길 수 있었음에도 의장국을 맡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회의를 열었다"면서 "그만큼 프랑스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이,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외교적 업적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피에르 카베스탄(Jean-Pierre Cabestan)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8일 미국 싱크탱크 저먼 마셜 펀드(German Marshall Fund)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는 인도-태평양에서의 협력을 위한 EU의 전략을 이행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겠다고 선언해 왔고, 이 약속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22일 파리에서 인도-태평양 포럼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프랑스는 2019년 5월부터 3개의 인도-태평양 전략 문서를 발표해, 관련 전략을 EU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명문화한 국가입니다.

장-피에르 카베스탄 연구원은 EU 내의 의견 차이와 자원 부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프랑스의 EU 의장국 수행은 유럽연합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대체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유럽의 인도태평양 해상 군사 활동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프랑스가 상반기 의장국을 수임하면서 올해 EU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해양 안보 부분에서 뚜렷한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중국과 미국이 이번 회의에 초청되지 않은 것을 두고, 인도-태평양 전략 시행에 있어 전략성 자율성을 추구하는 EU의 노력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EU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내용 살펴보니

EU는 지난해 9월 발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두를 위해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관여를 높이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새 역학관계들에 대응하기 위해, 이 지역 파트너들과의 관여를 심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중국·주변국 간의 갈등 증가, 미·중 갈등의 격화, 아시아 경제의 급격한 성장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무역·투자를 위한 개방적이고 공정한 환경,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와 공정한(level) 경기장을 만들고,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며 EU와의 연계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습니다. EU와 그 파트너들이 헌신하고 있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EU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다자주의,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 수호, 다극 체제 등 EU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원칙과 접근법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계속 적용할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같은 보고서에서 분석했습니다.

2021년 11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회의장에 EU 정상들이 모여 앉아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2021년 11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회의장에 EU 정상들이 모여 앉아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

EU는 지속적이고 포용적인 번영, 녹색 전환, 해양 거버넌스, 디지털 거버넌스와 파트너십, 연계성, 안보와 방위, 인간 안보 등 7가지를 우선적으로 행동할 분야로 꼽았습니다. 오늘 파리 회의의 의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파트너십 및 협력 협정(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s, PCA), 무역 협정, 녹색 동맹 및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자격을 갖춘 유사 입장(like-minded) 파트너들과 연구·혁신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내놨습니다.

EU는 또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글로벌 가치 사슬을 만들기 위해, 무역·경제 관계를 다양화하고 공동의 가치·원칙에 부합하는 기술 기준과 규제를 발전시키는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들과 관여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해상교통로(sea lines of communication)와 인도-태평양 내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지원하고, 파트너들의 해양 안보 보장 능력을 높이기 위해 EU 회원국들의 해군 배치를 더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어업 관리·불법 조업에 대한 대항 등 역내 해양 거버넌스를 강화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 중국과는 다면적 관여…간접적으로 협조 압박

통상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중국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EU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EU의 접근법은 대결이 아닌 협력의 일환"이라면서 "이 지역에 대한 EU의 새 공약은 EU와 협력하기를 바라는 모든 파트너들을 포함하며, 파트너들이 (EU와) 원칙 및 가치 또는 상호이해를 공유하는 구체적 분야에 따라 이 협력을 적용할 것"이라고 중국과의 협력 여지를 열어뒀습니다.

이어 "EU는 중국과 다면적인 관여를 추구할 것"이라며 "공동의 도전들에 대한 해결책을 증진시키기 위해 양자적으로 관여하고, 공동의 이해관계에 관해 협력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제 역할을 하기를 독려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9월 15일 열린 중국-유럽연합 화상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중국중앙텔레비전)2020년 9월 15일 열린 중국-유럽연합 화상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중국중앙텔레비전)

김시홍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유럽연합의 대외정책: 다극화, 전략적 자율 그리고 인도태평양' 논문에서,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입장과는 결을 달리하는데 중국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체제를 구축하는데 방점이 놓여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도 2022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EU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과의 다면적 관여를 추구하면서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로운 행위자가 되도록 유도하려 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협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처럼 미국과는 차이가 있음에도, EU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4백조 원대 투자 계획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와 중국 내 인권 탄압, 남중국해 항행 문제에 대한 EU의 비판적 입장은 대중국 견제 행보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유럽 정치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행위 중 EU의 이해관계 또는 국제관계의 바람직한 방향과 배치되는 면이 있으니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대규모 투자 계획도) 단순히 중국을 훼방 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가 커졌고 그만큼 이해관계가 큰 곳이 됐으니 EU도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 EU 인도-태평양 전략서 '한국' 찾아보니…협력 방안은?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을 보면 본문에 한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단어가 모두 13번 등장합니다.

일례로 EU는 회복력 있고 다양화된 가치 사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반도체 공급망의 전략적 의존성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 한국, 타이완과 같은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유사 입장국들과의 디지털 파트너십 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며, 첫 단계에서는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에 이를 제안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한국은 또 EU의 연구개발 정책인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통한 협력을 논의하게 될 국가로도 꼽혔습니다.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 있어 유사입장 국가들과의 협력 심화를 강조하는 EU가, 한국을 주요 파트너 중 하나로 상정한 것입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2022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EU는 바이든 행정부와 그간 훼손된 대서양 동맹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면서 다극 체제를 지향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EU의 관여는 다극 체제를 지향하고 한국과 같은 역내 민주주의 국가의 동참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국도 쿼드(Quad),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오커스(AUKUS)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동맹국이자 주요 경제국이면서 민주국가라는 점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와 공유하는 점이 많다"면서 "독일, 프랑스 및 EU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협력 체제가 모호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안보 협력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한국의 인도-태평양 관련 정책인 '신남방 정책'과의 연결성을 높이고, 특히 EU의 관심과 역량이 높은 기후변화와 불법 어업, 생물 다양성 등 해양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제언이 나옵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이번 회의에서 신남방 정책을 소개하고 연계성을 모색하며,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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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U·인태 57개국 외교장관 불러모은 프랑스…이 와중에 왜?
    • 입력 2022-02-22 16:04:29
    • 수정2022-02-22 16:06:32
    취재K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달 19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유럽의회에서 연설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
우크라이나가 일촉즉발의 위기에 놓인 가운데, 우리 시각으로 오늘 오후 5시(현지시각 오전 9시) 프랑스 파리에 58개 나라 외교장관이 모입니다.

올 상반기 유럽연합(EU) 의장국을 맡은 프랑스가 주최하는 '인도-태평양 협력에 관한 장관회의(Ministerial Forum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에 참석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같은 회의가 열리는 건 처음으로, 정의용 외교장관도 초청을 받았습니다.

프랑스에 따르면 장-이브 르 드리앙(Jean-Yves Le Drian) 프랑스 유럽·외교부 장관과 조셉 보렐(Josep Borrell) 유럽연합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함께 회의의 의장을 맡습니다.

회의 참석자는 인도, 일본, 호주, 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인도-태평양 지역 30개 국과 EU 회원국의 외교장관, EU 기관들(유럽위원회·유럽의회·유럽투자은행),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환인도양연합(IORA), 태평양도서국포럼(PIF) 등 인도-태평양 지역 단체들의 관계자로 정해졌습니다. 미국과 중국 측 인사는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라운드테이블(원탁 토의) 방식의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연계성(connectivity)·디지털 기술 ▲전 세계적 도전(기후, 생물다양성, 해양 오염·불법 조업, 코로나 대응·백신 협력 등 보건) ▲안보·방위 등 세 분야의 주제를 1시간 40분 동안 차례로 논의하게 됩니다. 우크라이나 사태도 주요 의제가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 대선 2달도 안 남긴 프랑스…대규모 국제회의 주최 이유는?

이번 회의는 지난해 9월 '인도-태평양에서의 협력을 위한 EU의 전략(EU Strategy for Cooperation in the Indo-Pacific)' 발표에 따른 후속조치 차원으로 평가됩니다.

(▶EU 발표문 전문:
https://eeas.europa.eu/sites/default/files/jointcommunication_2021_24_1_en.pdf)

유럽이 새 전략 문서를 발표한 만큼 그 내용을 이행하기 위해 관련 당사국들을 불러 모아 구체적으로 계획을 소개하고, 각 나라들의 입장을 들어보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유럽연합은 2021년 9월 16일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출처: 유럽연합)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오는 4월 10일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분주한 상황에서도, 프랑스가 이처럼 큰 국제회의를 준비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대목입니다.

유럽 정치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프랑스는 상반기 의장국을 체코에 넘길 수 있었음에도 의장국을 맡아 대선을 코앞에 두고 회의를 열었다"면서 "그만큼 프랑스에게 인도-태평양 지역이, 마크롱 대통령에게는 외교적 업적이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장-피에르 카베스탄(Jean-Pierre Cabestan) 프랑스국립과학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지난 8일 미국 싱크탱크 저먼 마셜 펀드(German Marshall Fund)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스는 인도-태평양에서의 협력을 위한 EU의 전략을 이행하는 데 완전히 전념하겠다고 선언해 왔고, 이 약속을 분명히 보여주기 위해 22일 파리에서 인도-태평양 포럼을 여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프랑스는 2019년 5월부터 3개의 인도-태평양 전략 문서를 발표해, 관련 전략을 EU 국가들 가운데 처음으로 명문화한 국가입니다.

장-피에르 카베스탄 연구원은 EU 내의 의견 차이와 자원 부족으로 인한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프랑스의 EU 의장국 수행은 유럽연합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화하고 구체화하는 데 대체로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달 발표한 '유럽의 인도태평양 해상 군사 활동 동향과 전망' 보고서에서, 프랑스가 상반기 의장국을 수임하면서 올해 EU의 인도-태평양 전략이 구체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특히 해양 안보 부분에서 뚜렷한 영향이 나타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중국과 미국이 이번 회의에 초청되지 않은 것을 두고, 인도-태평양 전략 시행에 있어 전략성 자율성을 추구하는 EU의 노력이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 EU '인도·태평양 전략', 핵심 내용 살펴보니

EU는 지난해 9월 발표에서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모두를 위해 자유롭게 개방된 인도-태평양"을 유지하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관여를 높이려 한다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새 역학관계들에 대응하기 위해, 이 지역 파트너들과의 관여를 심화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중국의 부상과 중국·주변국 간의 갈등 증가, 미·중 갈등의 격화, 아시아 경제의 급격한 성장 등을 고려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지역에 무역·투자를 위한 개방적이고 공정한 환경, 규범에 기초한 국제 질서(rules-based international order)와 공정한(level) 경기장을 만들고,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며 EU와의 연계성을 지원하기 위해 새 전략을 세웠다고 설명했습니다. EU와 그 파트너들이 헌신하고 있는 가치와 원칙을 지키기 위함이라고도 했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EU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대해, "다자주의,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 인권과 민주주의 등의 가치 수호, 다극 체제 등 EU가 지속적으로 주장해 온 글로벌 거버넌스에 대한 원칙과 접근법을 인도-태평양 지역에서도 계속 적용할 의지를 재확인하고 있다"고 같은 보고서에서 분석했습니다.

2021년 11월 벨기에 브뤼셀에 있는 유럽연합 회의장에 EU 정상들이 모여 앉아 있다. (KBS 자료화면=로이터)
EU는 지속적이고 포용적인 번영, 녹색 전환, 해양 거버넌스, 디지털 거버넌스와 파트너십, 연계성, 안보와 방위, 인간 안보 등 7가지를 우선적으로 행동할 분야로 꼽았습니다. 오늘 파리 회의의 의제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러면서 인도-태평양 국가들과 파트너십 및 협력 협정(Partnership and Cooperation Agreements, PCA), 무역 협정, 녹색 동맹 및 파트너십을 맺고 디지털 파트너십 네트워크를 확장하며, 자격을 갖춘 유사 입장(like-minded) 파트너들과 연구·혁신에서의 협력을 강화하겠다고 구체적인 행동 계획을 내놨습니다.

EU는 또 회복력 있고 지속가능한 글로벌 가치 사슬을 만들기 위해, 무역·경제 관계를 다양화하고 공동의 가치·원칙에 부합하는 기술 기준과 규제를 발전시키는 등 인도-태평양 파트너들과 관여하겠다고 했습니다.

아울러 해상교통로(sea lines of communication)와 인도-태평양 내 항행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지원하고, 파트너들의 해양 안보 보장 능력을 높이기 위해 EU 회원국들의 해군 배치를 더 향상시킬 방법을 모색하고, 어업 관리·불법 조업에 대한 대항 등 역내 해양 거버넌스를 강화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 중국과는 다면적 관여…간접적으로 협조 압박

통상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에서 가장 주목받는 건 역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중국에 대한 접근법입니다.

EU는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한 EU의 접근법은 대결이 아닌 협력의 일환"이라면서 "이 지역에 대한 EU의 새 공약은 EU와 협력하기를 바라는 모든 파트너들을 포함하며, 파트너들이 (EU와) 원칙 및 가치 또는 상호이해를 공유하는 구체적 분야에 따라 이 협력을 적용할 것"이라고 중국과의 협력 여지를 열어뒀습니다.

이어 "EU는 중국과 다면적인 관여를 추구할 것"이라며 "공동의 도전들에 대한 해결책을 증진시키기 위해 양자적으로 관여하고, 공동의 이해관계에 관해 협력하고, 평화롭고 번영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이 제 역할을 하기를 독려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2020년 9월 15일 열린 중국-유럽연합 화상 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발언하고 있다. (KBS 자료화면=중국중앙텔레비전)
김시홍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유럽연합의 대외정책: 다극화, 전략적 자율 그리고 인도태평양' 논문에서,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미국의 입장과는 결을 달리하는데 중국을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을 위한 다자체제를 구축하는데 방점이 놓여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도 2022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EU는 인도·태평양 전략을 통해 중국과의 다면적 관여를 추구하면서 중국이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평화로운 행위자가 되도록 유도하려 할 것"이라면서 "중국의 협조를 얻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이처럼 미국과는 차이가 있음에도, EU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4백조 원대 투자 계획 '글로벌 게이트웨이(Global Gateway)'와 중국 내 인권 탄압, 남중국해 항행 문제에 대한 EU의 비판적 입장은 대중국 견제 행보로 거론되고 있는데요.

유럽 정치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중국의 행위 중 EU의 이해관계 또는 국제관계의 바람직한 방향과 배치되는 면이 있으니 그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대규모 투자 계획도) 단순히 중국을 훼방 놓겠다는 것이 아니라,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가 커졌고 그만큼 이해관계가 큰 곳이 됐으니 EU도 해야 할 일을 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습니다.


■ EU 인도-태평양 전략서 '한국' 찾아보니…협력 방안은?

유럽의 인도-태평양 전략 문건을 보면 본문에 한국(Republic of Korea)이라는 단어가 모두 13번 등장합니다.

일례로 EU는 회복력 있고 다양화된 가치 사슬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반도체 공급망의 전략적 의존성 문제를 풀기 위해 일본, 한국, 타이완과 같은 파트너들과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또 인도-태평양 지역의 유사 입장국들과의 디지털 파트너십 협정 체결을 추진하겠다며, 첫 단계에서는 일본과 한국, 싱가포르에 이를 제안하겠다고도 밝혔습니다. 한국은 또 EU의 연구개발 정책인 '호라이즌 유럽' 프로그램을 통한 협력을 논의하게 될 국가로도 꼽혔습니다.

인도-태평양 전략 추진에 있어 유사입장 국가들과의 협력 심화를 강조하는 EU가, 한국을 주요 파트너 중 하나로 상정한 것입니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2022년 국제정세전망 보고서에서 "EU는 바이든 행정부와 그간 훼손된 대서양 동맹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면서 다극 체제를 지향할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에 따라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EU의 관여는 다극 체제를 지향하고 한국과 같은 역내 민주주의 국가의 동참을 요청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한국도 쿼드(Quad), 파이브 아이즈(Five Eyes), 오커스(AUKUS)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동맹국이자 주요 경제국이면서 민주국가라는 점에서 독일이나 프랑스와 공유하는 점이 많다"면서 "독일, 프랑스 및 EU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미국과 협력 체제가 모호한 상황에서 한국과의 안보 협력을 모색하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습니다.

이에 한국의 인도-태평양 관련 정책인 '신남방 정책'과의 연결성을 높이고, 특히 EU의 관심과 역량이 높은 기후변화와 불법 어업, 생물 다양성 등 해양 안보 분야에서의 협력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정책적 제언이 나옵니다.

외교부 당국자 역시 이번 회의에서 신남방 정책을 소개하고 연계성을 모색하며, 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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