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닉슨 방중 50주년

입력 2022.02.22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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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을 찾은 첫 미국 대통령을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공항에서 영접했습니다.

영빈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저우 총리는 닉슨 대통령에게 1954년 덜레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신이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 국제질서 뒤흔든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데탕트' 시대 열어

일주일 동안 중국에 머문 닉슨 대통령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중국 수뇌부와 회담을 갖고 '상하이 코뮈니케'로 알려진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미중 관계를 이른바 데탕트(긴장 완화, 화해)의 시대로 인도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상하이 코뮈니케를 통해 미중 양국은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적 군사 분쟁의 위험을 줄이자는 등의 안건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만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의견을 냈습니다.

중국은 타이완이 중국의 하나의 성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은 '중국은 하나'라는 원칙을 밝혔습니다. 서로 다른 점은 남기고 공통점을 찾아 공동 이익을 추구한 전형적인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결과입니다.

1972년 2월 방중한 닉슨 미국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조성원 기자)1972년 2월 방중한 닉슨 미국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조성원 기자)

이같은 미중 접근의 배경에는 1969년 중국과 소련군의 국경 무력 충돌로 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던 중소 분쟁이 있습니다. 소련과 지정학적 갈등을 빚던 중국, 냉전 시대 소련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미중 양국을 넘어 국제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당장 타이완이 직접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방중한 닉슨이 '하나의 중국' 입장과 함께 타이완 미군 철수를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닉슨 방중을 앞둔 1971년 대륙의 중국은 타이완을 대신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971년 중국은 표 대결 끝에 타이완을 축출하고 유엔에 진출했다. 유엔 진출 뒤 첫 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1971년 중국은 표 대결 끝에 타이완을 축출하고 유엔에 진출했다. 유엔 진출 뒤 첫 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

미일 관계를 외교의 중추로 삼던 일본 역시 충격이 컸습니다. 1971년 닉슨이 방중을 예고하자 '닉슨 쇼크'란 말이 돌았습니다. 1972년 일본은 미중간 외교적 흐름을 타고 타이완과의 단교, 중국과의 수교를 일사천리 진행했습니다.

1979년에는 미국과 중국이 마침내 수교했습니다. 그 사이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미국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일단 튼 큰 물길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 중국, '닉슨 방중 50주년' 의미 강조...미국은 조용

이처럼 국제 질서를 뒤흔든 닉슨 방중으로부터 꼭 반세기가 흐른 지금, 미국과 중국은 당시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중국은 닉슨 방중 50주년을 강조하며 일찌감치 미중 양국이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라고 공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2월 10일 행사 계획을 밝히면서 "미중 양국이 상하이 코뮈니케를 통해 상호관계 발전의 원칙, 특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립했다"고 각별히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타이완의 독립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닉슨 방중을 계기로 발표한 상하이 코뮈니케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움직임은 이같은 중국의 적극적 태도를 무색하게 합니다. 2월 21일이 미국의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월요일)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공식적 논평 없이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최근 미국발 기사 하나가 관심을 끕니다.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이 중국에서 임대한 판다가 새끼를 낳아도 그 새끼를 중국에 보내지 말라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낸시 메이스 의원은 중국이 타이완을 위협하고 신장 위구르 등지에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중국이 판다 외교로 미국과 세계인을 속이고 인권 탄압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닉슨이 중국측 안내로 판다를 구경하고 있다. 1972년 닉슨 방중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에 판다 2마리를 선물했다.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닉슨이 중국측 안내로 판다를 구경하고 있다. 1972년 닉슨 방중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에 판다 2마리를 선물했다.

중국은 닉슨 방중을 계기로 판다 2마리를 선물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꾸준히 미국에 판다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판다가 보호종이라는 이유를 들어 임대 판다가 새끼를 낳으면 중국에 보내도록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판다 외교에까지 튄 것입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이번 법안은 미국 반중 정책 이면의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보여준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미중 양국간 감정의 골이 닉슨 방중의 유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깊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관계 악화 일로...'판다 외교'에도 불똥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갈등 사례는 한둘이 아닙니다. 그 정점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입니다. 미국이 앞장서자 적잖은 나라들이 이에 동조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정상 환영 오찬에 참석한 서방 국가 최고지도자는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중간 패권 경쟁은 미국이 인도 태평양 전략에 따라 오커스, 쿼드 등 역내 안보공동체를 잇따라 창설하고 중국 기술 기업들을 제재하며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역내 현안 협력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육상과 해상에서 잇달아 연합훈련을 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에서 공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러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사실 러시아는 '도핑 스캔들' 때문에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라는 국가 이름도 국기, 국가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망신스런 처지를 무릅쓰고, 또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국가 비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러 밀착을 과시한 것입니다.

■ 닉슨도 생전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나..." 자조

중국이 닉슨 방중을 기념할 때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 있습니다.

닉슨의 외손자, 크리스토퍼 닉슨 콕스입니다. 중국을 직접 방문해 중국 고위 인사들과 만나고, 중국 관영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닉슨 탄생 100주년이던 2013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할아버지는 중국의 경제와 중산층이 성장하면 정치적 개혁이 뒤따를 것이라고 늘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닉슨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던 2013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의 외손자 크리스토퍼 닉슨 콕스. 당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오른쪽) 등 중국 고위관리들의 환대를 받았다.닉슨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던 2013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의 외손자 크리스토퍼 닉슨 콕스. 당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오른쪽) 등 중국 고위관리들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중국의 발자취는 그같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물론 최근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 진영 인사 체포와 잇단 언론사 폐간은 그가 기대했던 정치적 결과와는 차이가 클 것입니다.

닉슨 본인도 199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고 자조 섞인 소회를 남겼습니다.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기념해 2021년 베이징에 문을 연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은 1972년 닉슨 방중과 1971년 중국의 유엔 진출 관련 사진들을 비중있게 전시하고 있다. (조성원 기자)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기념해 2021년 베이징에 문을 연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은 1972년 닉슨 방중과 1971년 중국의 유엔 진출 관련 사진들을 비중있게 전시하고 있다. (조성원 기자)

중국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닉슨 방중 50주년을 맞은 2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미중 갈등의 원인은 미국 측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 상대, 심지어 가상의 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국은 중국의 변화를 추구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은 50년 전 역사에서 지혜를 얻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닉슨의 방중을 수행했던 윈스턴 로드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이 자국내에서 더 억압적이 됐고 해외에서 더 공격적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개인 숭배와 철권 통치라는 측면에서 마오쩌둥과 비슷하다고 전제한 뒤, 시 주석은 저우언라이 등에게 업무를 위임했던 마오와 달리 점점 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도 실패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스인홍 중국 인민대 교수는 50년 전 미중 양국의 전략적 목표가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관계 정상화를 할 수 있었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가했습니다.

스 교수는 지금도 미중 양국이 주요 관심사를 광범위하게 공유하지만, 양국이 공통 관심사를 인식하는 것과 이를 위해 서로 정책을 재조정할 의사를 갖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이 당분간 협력 보다는 경쟁에 정책의 무게를 실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공동의 적, 소련을 앞에서 함께 데탕트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로부터 50년 뒤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양국 관계는 경색됐습니다. 중국은 이제 소련의 후계자 러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닉슨 방중 50년을 계기로 미중 관계를 돌아보면 19세기 대영제국 외교를 책임졌던 파머스턴 경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고, 국익을 따르는 것만이 우리의 의무다." (1848년 영국 하원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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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닉슨 방중 50주년
    • 입력 2022-02-22 16:20:17
    특파원 리포트
1972년 2월 중국 베이징을 방문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이 악수하고 있다.
1972년 2월 21일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 서우두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중국을 찾은 첫 미국 대통령을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공항에서 영접했습니다.

영빈관으로 가는 차안에서 저우 총리는 닉슨 대통령에게 1954년 덜레스 당시 미국 국무장관에게 자신이 악수를 청했다가 거절당한 경험을 이야기 했다고 합니다.


■ 국제질서 뒤흔든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데탕트' 시대 열어

일주일 동안 중국에 머문 닉슨 대통령은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등 중국 수뇌부와 회담을 갖고 '상하이 코뮈니케'로 알려진 공동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미중 관계를 이른바 데탕트(긴장 완화, 화해)의 시대로 인도한 역사적 순간입니다.

상하이 코뮈니케를 통해 미중 양국은 관계를 정상화하고 국제적 군사 분쟁의 위험을 줄이자는 등의 안건에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만 타이완 문제에 대해서는 따로 의견을 냈습니다.

중국은 타이완이 중국의 하나의 성이라고 주장했고, 미국은 '중국은 하나'라는 원칙을 밝혔습니다. 서로 다른 점은 남기고 공통점을 찾아 공동 이익을 추구한 전형적인 '구동존이(求同存異)'의 결과입니다.

1972년 2월 방중한 닉슨 미국 대통령을 공항에서 영접하는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조성원 기자)
이같은 미중 접근의 배경에는 1969년 중국과 소련군의 국경 무력 충돌로 전쟁 위기까지 치달았던 중소 분쟁이 있습니다. 소련과 지정학적 갈등을 빚던 중국, 냉전 시대 소련을 견제하려던 미국의 이익이 맞아떨어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파장은 미중 양국을 넘어 국제 질서를 뒤흔들었습니다. 당장 타이완이 직접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방중한 닉슨이 '하나의 중국' 입장과 함께 타이완 미군 철수를 공언했기 때문입니다.

닉슨 방중을 앞둔 1971년 대륙의 중국은 타이완을 대신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1971년 중국은 표 대결 끝에 타이완을 축출하고 유엔에 진출했다. 유엔 진출 뒤 첫 회의에 참석한 중국 대표단.
미일 관계를 외교의 중추로 삼던 일본 역시 충격이 컸습니다. 1971년 닉슨이 방중을 예고하자 '닉슨 쇼크'란 말이 돌았습니다. 1972년 일본은 미중간 외교적 흐름을 타고 타이완과의 단교, 중국과의 수교를 일사천리 진행했습니다.

1979년에는 미국과 중국이 마침내 수교했습니다. 그 사이 마오쩌둥이 사망하고 미국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일단 튼 큰 물길은 바뀌지 않았던 것입니다.


■ 중국, '닉슨 방중 50주년' 의미 강조...미국은 조용

이처럼 국제 질서를 뒤흔든 닉슨 방중으로부터 꼭 반세기가 흐른 지금, 미국과 중국은 당시를 어떻게 평가할까요?

중국은 닉슨 방중 50주년을 강조하며 일찌감치 미중 양국이 기념행사를 치를 예정이라고 공표했습니다. 중국 외교부 자오리젠 대변인은 2월 10일 행사 계획을 밝히면서 "미중 양국이 상하이 코뮈니케를 통해 상호관계 발전의 원칙, 특히 하나의 중국 원칙을 확립했다"고 각별히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타이완의 독립 움직임을 극도로 경계하는 중국 입장에서는 닉슨 방중을 계기로 발표한 상하이 코뮈니케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움직임은 이같은 중국의 적극적 태도를 무색하게 합니다. 2월 21일이 미국의 공휴일인 '대통령의 날'(2월 셋째 월요일)이기도 했지만 별다른 공식적 논평 없이 지나갔습니다.

오히려 최근 미국발 기사 하나가 관심을 끕니다. 미국 공화당 소속 하원의원이 중국에서 임대한 판다가 새끼를 낳아도 그 새끼를 중국에 보내지 말라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습니다.

낸시 메이스 의원은 중국이 타이완을 위협하고 신장 위구르 등지에서 인권을 탄압하고 있다면서 이같은 법안을 제출했습니다. 중국이 판다 외교로 미국과 세계인을 속이고 인권 탄압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닉슨 대통령의 부인 패트리샤 닉슨이 중국측 안내로 판다를 구경하고 있다. 1972년 닉슨 방중을 계기로 중국은 미국에 판다 2마리를 선물했다.
중국은 닉슨 방중을 계기로 판다 2마리를 선물했습니다. 이후 중국은 양국 우호의 상징으로 꾸준히 미국에 판다를 보내고 있습니다. 다만 판다가 보호종이라는 이유를 들어 임대 판다가 새끼를 낳으면 중국에 보내도록 규정을 만들었습니다.
미중 갈등의 불똥이 판다 외교에까지 튄 것입니다.

중국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미국의 이번 법안은 미국 반중 정책 이면의 어처구니 없는 논리를 보여준다고 비판했습니다. 실제 법안이 통과될지는 미지수입니다. 하지만 미중 양국간 감정의 골이 닉슨 방중의 유산을 덮어버릴 정도로 깊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관계 악화 일로...'판다 외교'에도 불똥

닉슨 방중 50주년, 미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갈등 사례는 한둘이 아닙니다. 그 정점은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대한 미국의 외교적 보이콧입니다. 미국이 앞장서자 적잖은 나라들이 이에 동조했습니다. 시진핑 주석의 정상 환영 오찬에 참석한 서방 국가 최고지도자는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미중간 패권 경쟁은 미국이 인도 태평양 전략에 따라 오커스, 쿼드 등 역내 안보공동체를 잇따라 창설하고 중국 기술 기업들을 제재하며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북한 비핵화 문제를 비롯한 역내 현안 협력도 삐걱거리고 있습니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급격히 가까워졌습니다. 육상과 해상에서 잇달아 연합훈련을 하고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대해서도 유엔 안보리에서 공조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막식 당일에는 푸틴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러 정상회담을 했습니다. 사실 러시아는 '도핑 스캔들' 때문에 이번 동계올림픽에서 러시아라는 국가 이름도 국기, 국가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같은 망신스런 처지를 무릅쓰고, 또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국가 비상 상황에도 불구하고 푸틴 대통령이 직접 베이징을 찾아 중러 밀착을 과시한 것입니다.

■ 닉슨도 생전에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었나..." 자조

중국이 닉슨 방중을 기념할 때 등장하는 단골 손님이 있습니다.

닉슨의 외손자, 크리스토퍼 닉슨 콕스입니다. 중국을 직접 방문해 중국 고위 인사들과 만나고, 중국 관영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합니다.

닉슨 탄생 100주년이던 2013년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할아버지는 중국의 경제와 중산층이 성장하면 정치적 개혁이 뒤따를 것이라고 늘 믿었다"고 말했습니다.

닉슨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던 2013년 중국을 방문한 닉슨의 외손자 크리스토퍼 닉슨 콕스. 당시 양제츠 외교담당 국무위원(오른쪽) 등 중국 고위관리들의 환대를 받았다.
하지만 실제 중국의 발자취는 그같은 희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1989년 천안문 사태는 물론 최근 홍콩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 진영 인사 체포와 잇단 언론사 폐간은 그가 기대했던 정치적 결과와는 차이가 클 것입니다.

닉슨 본인도 1994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냈는지도 모른다"고 자조 섞인 소회를 남겼습니다.

중국 공산당 100주년을 기념해 2021년 베이징에 문을 연 중국공산당역사박물관은 1972년 닉슨 방중과 1971년 중국의 유엔 진출 관련 사진들을 비중있게 전시하고 있다. (조성원 기자)
중국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은 닉슨 방중 50주년을 맞은 2월 21일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미중 갈등의 원인은 미국 측이 중국을 전략적 경쟁 상대, 심지어 가상의 적으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또 "미국은 중국의 변화를 추구하거나 억압해서는 안된다"면서, “미국은 50년 전 역사에서 지혜를 얻으라”고 주문했습니다.

닉슨의 방중을 수행했던 윈스턴 로드 전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중국이 자국내에서 더 억압적이 됐고 해외에서 더 공격적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시진핑 주석이 개인 숭배와 철권 통치라는 측면에서 마오쩌둥과 비슷하다고 전제한 뒤, 시 주석은 저우언라이 등에게 업무를 위임했던 마오와 달리 점점 더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지금은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해도 실패할 것이라고도 덧붙였습니다.


■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스인홍 중국 인민대 교수는 50년 전 미중 양국의 전략적 목표가 완전히 일치했기 때문에 신속하게 관계 정상화를 할 수 있었다고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가했습니다.

스 교수는 지금도 미중 양국이 주요 관심사를 광범위하게 공유하지만, 양국이 공통 관심사를 인식하는 것과 이를 위해 서로 정책을 재조정할 의사를 갖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양국이 당분간 협력 보다는 경쟁에 정책의 무게를 실을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미국과 중국은 공동의 적, 소련을 앞에서 함께 데탕트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로부터 50년 뒤 '신냉전'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양국 관계는 경색됐습니다. 중국은 이제 소련의 후계자 러시아와 전략적 연대를 다져가고 있습니다.

닉슨 방중 50년을 계기로 미중 관계를 돌아보면 19세기 대영제국 외교를 책임졌던 파머스턴 경의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겐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도 없다. 영원한 국익만 있고, 국익을 따르는 것만이 우리의 의무다." (1848년 영국 하원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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