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왕릉원에서 백제 왕실 장례문화 흔적 확인
입력 2022.02.23 (09:47)
수정 2022.02.23 (09:48)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부여 왕릉원에서 백제 왕실의 장례문화 흔적이 담긴 토기가 확인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부여 왕릉원 4호분을 발굴조사 한 결과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밝혀줄 수 있는 토기 2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는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으로 확인됐다"며 "상부구조인 봉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백제 시대 왕릉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은 시신을 안치한 방, '연도'는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는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됐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쪼갠 돌)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습니다.
연구소는 "이렇게 묘도 내부에서 토기에 돌을 덮은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시대 장례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며 "특히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문화재청은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힌다면, 당시 제의과정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빈약하고,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해 그동안 백제 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다음 달부터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 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부여 왕릉원 4호분을 발굴조사 한 결과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밝혀줄 수 있는 토기 2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는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으로 확인됐다"며 "상부구조인 봉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백제 시대 왕릉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은 시신을 안치한 방, '연도'는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는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됐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쪼갠 돌)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습니다.
연구소는 "이렇게 묘도 내부에서 토기에 돌을 덮은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시대 장례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며 "특히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문화재청은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힌다면, 당시 제의과정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빈약하고,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해 그동안 백제 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다음 달부터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 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부여 왕릉원에서 백제 왕실 장례문화 흔적 확인
-
- 입력 2022-02-23 09:47:32
- 수정2022-02-23 09:48:14
부여 왕릉원에서 백제 왕실의 장례문화 흔적이 담긴 토기가 확인됐습니다.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부여 왕릉원 4호분을 발굴조사 한 결과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밝혀줄 수 있는 토기 2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는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으로 확인됐다"며 "상부구조인 봉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백제 시대 왕릉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은 시신을 안치한 방, '연도'는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는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됐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쪼갠 돌)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습니다.
연구소는 "이렇게 묘도 내부에서 토기에 돌을 덮은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시대 장례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며 "특히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문화재청은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힌다면, 당시 제의과정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빈약하고,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해 그동안 백제 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다음 달부터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 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국립문화재연구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9월부터 부여 왕릉원 4호분을 발굴조사 한 결과 백제 장례문화의 일면을 밝혀줄 수 있는 토기 2점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소는 "조사 결과 4호분은 시신을 안치한 현실(玄室), 연도(羨道), 묘도(墓道)로 이루어진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분, 橫穴式石室墳)으로 확인됐다"며 "상부구조인 봉분도 비교적 잘 남아 있어서 백제 시대 왕릉 축조방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확인됐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실'은 시신을 안치한 방, '연도'는 고분의 입구에서 시신을 안치한 방까지 이르는 길, '묘도'는 무덤의 입구에서부터 시신을 두는 방까지 이르는 길을 의미합니다.
특히 4호분 무덤 입구(묘도)의 바닥 양쪽에서는 매납(埋納)시설 2기가 처음 확인됐는데, 매납시설 안에는 토기를 똑바로 세워 넣은 뒤 편평한 판석(쪼갠 돌)을 뚜껑으로 덮은 형태로 확인됐습니다.
연구소는 "이렇게 묘도 내부에서 토기에 돌을 덮은 시설은 백제 고분에서는 처음 확인된 사례로, 백제 시대 장례문화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주목된다"며 "특히 묘도를 축조한 뒤에 다시 묘도 바닥을 파고 토기를 매납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제의과정을 복원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여겨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문화재청은 "토기에 담긴 내용물을 밝힌다면, 당시 제의과정을 더 분명히 보여주는 단서가 될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에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과 함께 토기 내부에 쌓인 흙에 대한 유기물 분석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부여 왕릉원에는 일제강점기에 확인된 6기의 고분과 1966년 보수정비공사 과정에서 발견된 1기의 고분이 정비되어 있는데, 당시 고분들의 조사내용이 빈약하고, 사진과 도면자료도 매우 부족해 그동안 백제 시대 장례문화를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한편 문화재청은 다음 달부터 3호분(서하총)의 발굴조사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문화재청은 "3호분 역시 4호분과 마찬가지로 현재 정비된 봉분의 규모와 위치가 백제 시대 봉분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어 이에 대한 올바른 정비·복원 안을 마련하고자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사진 출처 : 문화재청 제공]
-
-
정연욱 기자 donkey@kbs.co.kr
정연욱 기자의 기사 모음
-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
좋아요
0
-
응원해요
0
-
후속 원해요
0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