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세계유산에 시멘트 ‘땜질’…업체 선정 의혹도?

입력 2022.02.28 (09:59) 수정 2022.06.08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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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백여 년 전 조선 시대 건축물인 대구 도동서원은 오랜 기간 원형을 유지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최대한 원형을 유지해야 하는 세계문화유산을 최근에 수리 보수하는 과정에서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닌 시멘트가 사용된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문화재 수리한다더니 시멘트 '땜질'…전문가 "누더기 우려"

KBS는 대구 도동서원을 비롯한 지역 문화재들이 시멘트로 땜질 보수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문화재 보존 관리는 원형 유지가 원칙으로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흙과 석회 같은 전통 재료를 써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는데요. 따라서 시멘트 같은 현대의 건축 재료는 기와 줄눈 등 소수 제한된 공정 외에는 사용이 금지됩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국가 보물로 지정된 서원 내 강당, '중정당'과 '담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시멘트로 보이는 재료가 확인됐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공간 ‘거의재’. 벽체와 기단 등 곳곳에서 시멘트가 확인됐습니다.유생들이 공부하던 공간 ‘거의재’. 벽체와 기단 등 곳곳에서 시멘트가 확인됐습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이건 그냥 마구잡이로 그냥 막 땜질 수리를 한 거나 똑같아요. 일반 무허가 집수리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 같고. 지금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완전 누더기가 돼서 다 죽이는 결과밖에 안 될 겁니다."

이 같은 서원 수리가 이뤄진 건 2011년부터. 해마다 1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수리를 진행한 업체는 시멘트 사용에 대해 "세계유산 지정 전의 일이며,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이면엔 관피아?

해당 수리 업체는 2년 전에도 도동서원 정문 '수월루'에 시멘트를 덧칠했다가 문화재청과 대구시에 적발됐습니다.

이후 수월루가 아닌 다른 곳에도 시멘트가 사용됐다는 민원이 대구시에 수차례 접수됐습니다.

업체 측이 문화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민원과 같은 내용이 기재됐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대구시는 이 같은 민원과 보고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입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2020년 시멘트 사용 적발 당시) 외부 쪽에만 점검했었고 실제 내부 쪽에는 확인을 못 했어요. (보고) 건수로 따지면 몇만 건이 되다 보니까 사실 일일이 세세하게 저희들이 알기가 어렵습니다."

대구시 관계자
"놓친 부분입니다. 그건 뭐 저희들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해당 수리 업체를 추적해봤습니다. 10년 넘게 대구 문화재의 경미한 수리보수 사업을 독점했는데, 최근 올해부터 2024년까지 진행되는 수리보수 사업 공모에도 경쟁업체 4곳을 제치고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설립 이후 대표 4명 가운데 3명이 퇴직 공무원이었습니다.


현행 지침은 문화재 훼손 등 지침을 위반한 경우 다음 연도 사업수행 단체 선정에서 제외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업체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유착 의혹에 대해 대구시는 외부 심사를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 "세계유산 취소될라" 문화재청 조치 나섰지만…끊이지 않는 의혹

대구 도동서원은 전국 다른 8개 서원과 하나로 묶인 유네스코 '연속유산'입니다. 이 때문에 도동서원의 시멘트 보수는 다른 서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른 시일 안에 시멘트 땜질의 원상복구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구시 소재 지정문화재(153개소)에 대해서는 수리현황 전수 실태조사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전국에서 이뤄지는 경미수리에 대한 사후확인 시스템을 도입·추진하고, 경미수리 전문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땜질 처방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 지침을 보면, 관리 감독 기관인 지자체는 1년에 한 번씩 행정점검만 할 뿐, 현장 실사나 감리는 하지 않습니다.

수리 업체가 문제를 파악해 스스로 보고하지 않는 이상 관리 당국이 사전에 문제를 알기 어려운 구조인 겁니다.

게다가 수리자격이 없어도 경험만 있으면 수리를 할 수 있게 했고, 보고를 누락해도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게다가 수리자격이 없어도 경험만 있으면 수리를 할 수 있게 했고, 보고를 누락해도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
이번 KBS 보도 이후 전국 곳곳에서 세계문화유산과 보물급 문화재들이 부실 관리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제보가 헛되지 않도록, 관리 당국이 문제 개선을 이뤄낼 때까지 관심을 두고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알려드립니다] 도동서원 수리를 담당한 업체는 문화재 보존을 위한 상시적인 예방관리 차원의 경미한 수리만을 담당하는 '문화재돌봄단체'로, 문화재 보수·복원·정비 및 손상 방지 업무를 하는 '문화재수리업자'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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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취재후] 세계유산에 시멘트 ‘땜질’…업체 선정 의혹도?
    • 입력 2022-02-28 09:59:09
    • 수정2022-06-08 07:28:20
    취재후·사건후

4백여 년 전 조선 시대 건축물인 대구 도동서원은 오랜 기간 원형을 유지한 역사와 가치를 인정받아 2019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습니다.

최대한 원형을 유지해야 하는 세계문화유산을 최근에 수리 보수하는 과정에서 전통 건축 재료가 아닌 시멘트가 사용된 사실이 KBS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 문화재 수리한다더니 시멘트 '땜질'…전문가 "누더기 우려"

KBS는 대구 도동서원을 비롯한 지역 문화재들이 시멘트로 땜질 보수되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문화재 보존 관리는 원형 유지가 원칙으로 법에 명시돼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에 대해 흙과 석회 같은 전통 재료를 써야 한다는 의미라고 밝혔는데요. 따라서 시멘트 같은 현대의 건축 재료는 기와 줄눈 등 소수 제한된 공정 외에는 사용이 금지됩니다.

사실 확인을 위해 전문가와 함께 현장을 찾았습니다.

그 결과 국가 보물로 지정된 서원 내 강당, '중정당'과 '담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시멘트로 보이는 재료가 확인됐습니다.

유생들이 공부하던 공간 ‘거의재’. 벽체와 기단 등 곳곳에서 시멘트가 확인됐습니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이건 그냥 마구잡이로 그냥 막 땜질 수리를 한 거나 똑같아요. 일반 무허가 집수리도 이렇게 하지 않을 것 같고. 지금 이런 식으로 계속 가다가는 완전 누더기가 돼서 다 죽이는 결과밖에 안 될 겁니다."

이 같은 서원 수리가 이뤄진 건 2011년부터. 해마다 10억 원에 이르는 예산이 투입됐습니다.

수리를 진행한 업체는 시멘트 사용에 대해 "세계유산 지정 전의 일이며,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이면엔 관피아?

해당 수리 업체는 2년 전에도 도동서원 정문 '수월루'에 시멘트를 덧칠했다가 문화재청과 대구시에 적발됐습니다.

이후 수월루가 아닌 다른 곳에도 시멘트가 사용됐다는 민원이 대구시에 수차례 접수됐습니다.

업체 측이 문화재청에 제출한 보고서에도 민원과 같은 내용이 기재됐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과 대구시는 이 같은 민원과 보고를 확인하지 못했다는 입장입니다.

문화재청 관계자
"(2020년 시멘트 사용 적발 당시) 외부 쪽에만 점검했었고 실제 내부 쪽에는 확인을 못 했어요. (보고) 건수로 따지면 몇만 건이 되다 보니까 사실 일일이 세세하게 저희들이 알기가 어렵습니다."

대구시 관계자
"놓친 부분입니다. 그건 뭐 저희들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요."

해당 수리 업체를 추적해봤습니다. 10년 넘게 대구 문화재의 경미한 수리보수 사업을 독점했는데, 최근 올해부터 2024년까지 진행되는 수리보수 사업 공모에도 경쟁업체 4곳을 제치고 선정됐습니다.

그런데 설립 이후 대표 4명 가운데 3명이 퇴직 공무원이었습니다.


현행 지침은 문화재 훼손 등 지침을 위반한 경우 다음 연도 사업수행 단체 선정에서 제외할 것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업체 선정 과정에서 불거진 유착 의혹에 대해 대구시는 외부 심사를 거친 만큼 문제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 "세계유산 취소될라" 문화재청 조치 나섰지만…끊이지 않는 의혹

대구 도동서원은 전국 다른 8개 서원과 하나로 묶인 유네스코 '연속유산'입니다. 이 때문에 도동서원의 시멘트 보수는 다른 서원에도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은 이른 시일 안에 시멘트 땜질의 원상복구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대구시 소재 지정문화재(153개소)에 대해서는 수리현황 전수 실태조사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이 밖에도 전국에서 이뤄지는 경미수리에 대한 사후확인 시스템을 도입·추진하고, 경미수리 전문교육도 강화할 계획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못한 땜질 처방이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현 지침을 보면, 관리 감독 기관인 지자체는 1년에 한 번씩 행정점검만 할 뿐, 현장 실사나 감리는 하지 않습니다.

수리 업체가 문제를 파악해 스스로 보고하지 않는 이상 관리 당국이 사전에 문제를 알기 어려운 구조인 겁니다.

게다가 수리자격이 없어도 경험만 있으면 수리를 할 수 있게 했고, 보고를 누락해도 제재 수단이 없습니다.이번 KBS 보도 이후 전국 곳곳에서 세계문화유산과 보물급 문화재들이 부실 관리되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제보가 헛되지 않도록, 관리 당국이 문제 개선을 이뤄낼 때까지 관심을 두고 취재를 이어가겠습니다.

[알려드립니다] 도동서원 수리를 담당한 업체는 문화재 보존을 위한 상시적인 예방관리 차원의 경미한 수리만을 담당하는 '문화재돌봄단체'로, 문화재 보수·복원·정비 및 손상 방지 업무를 하는 '문화재수리업자'와는 무관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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