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우크라 사태에 ‘핵공유’ 언급한 아베…‘개념 확장’하는 日자위권

입력 2022.02.28 (15:0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상대 국가의 영공에서의 폭격도 배제하지 않는다"

지난 2월 16일 일본 입헌민주당 의원이 일본 정부가 추진 의사를 밝힌 '적기지 공격능력'에 대해 상대국 영공에서의 폭격도 포함하는지를 묻자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패전 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적기지 공격능력'의 보유 검토를 언급했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말 9년 만에 개정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담길 예정입니다.

자위대 관열식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자위대 관열식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

평화헌법상 적기지공격 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게 기시다 총리의 해석입니다. 그 근거로 1956년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의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의 발언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일본)에 대한 급박부정(急迫不正)의 침해가 행해졌고, 그 침해의 수단으로써 우리 국토에 대해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이 행해진 경우, 앉아서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헌법에 담긴 취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같은 경우에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부득이한 필요최소한도의 조치를 취할 것, 예를 들어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그 밖의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유도탄 등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자위의 범위에 포함돼 가능합니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는 '급박부정'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될 때' 등의 조건을 붙였습니다.

'적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적극성을 드러내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 후 60여 년이 지나도록 적기지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의 방위 정책은 '전수방위'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일본의 방위백서에는 전수방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수방위란,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또한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으로 한다.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해 필요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헌법의 정신에 중하는 수동적인 방위전략의 자세'

전수방위의 개념에 따르면, 보유하는 병기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의 국토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병기, 예를 들어 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등은 보유할 수 없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인용 보도한 NHK조선중앙통신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인용 보도한 NHK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검토하겠다는 건 이 같은 기존의 태도를 바꾸는 겁니다. 이제까지 방위력을 수동적인 '대처'로 제한해 왔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억지'가 핵심입니다.

일본 헌법은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 전수방위 원칙이 지켜져 왔습니다. 따라서, 유사시에 적국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적기지 공격능력의 보유는 이 같은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시 노부오 방위상기시 노부오 방위상

기시 방위상은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행사가 전제"라고 하면서도 상대국 영공에서의 폭격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의도를 확실하게 확인해주었습니다. 기존 전수방위의 틀을 깨고, '대처'에서 '억지'로 개념을 확장해가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일본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2일 기사에서, 일본 정부가 '억지 쪽으로 기울면서도 전수방위의 범위 내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런 흐름으로 적기공격능력을 보유하는 것은 전수방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억지력 강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변국의 군축 확장 경쟁을 부채질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안전보장의 딜레마'에 빠질 우려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1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도한 NHK지난 1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도한 NHK

24일 중의원 예산위에서는 총리가 말한 '선택지'에 핵무기도 포함되냐는 질문까지 나왔습니다. 비판과 우려 섞인 추궁에 가까웠지만 일본 내에서 '적기지공격'에 대한 논의의 범위는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1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적기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른 답변이었습니다.


미사일은 고정되어 있는 기지 뿐만 아니라 이동식, 즉 발사대가 장착된 특수 차량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질문입니다. 상대국의 기지가 아닌 곳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을 지낸 오리키 료이치 씨는 한발 더 나아가 닛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명칭으로 '반격 능력'을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적기지 공격능력이라고 해버리면, 말 그대로 상대의 기지를 공격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군사의 합리성을 생각하면 일본이 반격 능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반격능력이란 상대의 기지에 한정하지 않고, 지휘·통제시설이나 통신시설 등의 공격도 포함한다.

일본 공산당은 '적기지 공격 능력이란 전쟁수행 능력을 말하고, 상대국을 섬멸할 수 있는 타격력=반격능력에 다름 아니'라며 '이것은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외국에서의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9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방위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할 만한 이 같은 흐름의 시작은 아베정권이었습니다. 2015년 내각 결정으로 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했고, 지난해 말에는 "타이완 유사는 일본의 유사나 마찬가지"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해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도, 아베는 TV에 출연해 미국의 핵무기를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정책을 일본도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해 논란의 범위를 '핵무기'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당장,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침공이나 국경 변경을 중단시키지 못하는 경우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력 행사로 파급할 것을 우려한다'는 답변이 77%로 나타났습니다.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또 한 번 '범위 확장'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우크라 사태에 ‘핵공유’ 언급한 아베…‘개념 확장’하는 日자위권
    • 입력 2022-02-28 15:01:14
    특파원 리포트

"상대 국가의 영공에서의 폭격도 배제하지 않는다"

지난 2월 16일 일본 입헌민주당 의원이 일본 정부가 추진 의사를 밝힌 '적기지 공격능력'에 대해 상대국 영공에서의 폭격도 포함하는지를 묻자 기시 노부오 방위상은 "배제하지 않는다"고 답변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일본의 패전 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에서 '적기지 공격능력'의 보유 검토를 언급했습니다. 그 결과는, 올해 말 9년 만에 개정하는 국가안전보장전략에 담길 예정입니다.

자위대 관열식에 참석한 기시다 총리
평화헌법상 적기지공격 능력을 보유할 수 있다는 게 기시다 총리의 해석입니다. 그 근거로 1956년 하토야마 이치로 총리의 중의원 내각위원회에서의 발언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일본)에 대한 급박부정(急迫不正)의 침해가 행해졌고, 그 침해의 수단으로써 우리 국토에 대해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이 행해진 경우, 앉아서 자멸을 기다리는 것이 헌법에 담긴 취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 같은 경우에는 그 공격을 막기 위해 부득이한 필요최소한도의 조치를 취할 것, 예를 들어 유도탄 등에 의한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그 밖의 수단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 한해 유도탄 등의 기지를 공격하는 것은 법리적으로는 자위의 범위에 포함돼 가능합니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는 '급박부정'의 경우, '어쩔 수 없이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될 때' 등의 조건을 붙였습니다.

'적기지 공격 능력'이라는 표현에서부터 적극성을 드러내는 지금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습니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 후 60여 년이 지나도록 적기지공격 능력을 보유하지 않았습니다.

일본 정부의 방위 정책은 '전수방위'의 원칙을 지켜왔습니다. 일본의 방위백서에는 전수방위에 대해 이렇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전수방위란, 무력공격을 받았을 때 비로소 방위력을 행사하고, 그 또한 자위를 위한 필요최소한으로 한다. 보유하는 방위력도 자위를 위해 필요최소한으로 한정하는 등 헌법의 정신에 중하는 수동적인 방위전략의 자세'

전수방위의 개념에 따르면, 보유하는 병기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적으로 간주하는 국가의 국토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병기, 예를 들어 대륙간 탄도미사일, 폭격기 등은 보유할 수 없습니다.

조선중앙통신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인용 보도한 NHK
일본 정부가 본격적으로 적기지 공격 능력 보유를 검토하겠다는 건 이 같은 기존의 태도를 바꾸는 겁니다. 이제까지 방위력을 수동적인 '대처'로 제한해 왔다면 이제는 적극적인 '억지'가 핵심입니다.

일본 헌법은 전쟁을 포기하고, 전력도 보유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고, 이에 근거해 전수방위 원칙이 지켜져 왔습니다. 따라서, 유사시에 적국을 선제 타격할 수 있는 적기지 공격능력의 보유는 이 같은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시 노부오 방위상
기시 방위상은 "필요 최소한도의 실력행사가 전제"라고 하면서도 상대국 영공에서의 폭격도 배제하지 않는다며 일본 정부의 의도를 확실하게 확인해주었습니다. 기존 전수방위의 틀을 깨고, '대처'에서 '억지'로 개념을 확장해가는 일본 정부의 태도에 일본 언론들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아사히신문은 22일 기사에서, 일본 정부가 '억지 쪽으로 기울면서도 전수방위의 범위 내에 있다고 주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또 '이런 흐름으로 적기공격능력을 보유하는 것은 전수방위를 유명무실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습니다.

실제로 '억지력 강화'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주변국의 군축 확장 경쟁을 부채질해 긴장을 고조시키는 '안전보장의 딜레마'에 빠질 우려도 있다는 겁니다.

지난 1월 북한의 미사일 발사 소식을 날짜별로 정리해 보도한 NHK
24일 중의원 예산위에서는 총리가 말한 '선택지'에 핵무기도 포함되냐는 질문까지 나왔습니다. 비판과 우려 섞인 추궁에 가까웠지만 일본 내에서 '적기지공격'에 대한 논의의 범위는 계속 '확장'되고 있습니다.

기시다 총리는 18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명칭 변경'을 검토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적기지'라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른 답변이었습니다.


미사일은 고정되어 있는 기지 뿐만 아니라 이동식, 즉 발사대가 장착된 특수 차량에서도 발사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 질문입니다. 상대국의 기지가 아닌 곳도 공격이 가능하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일본 자위대 통합막료장을 지낸 오리키 료이치 씨는 한발 더 나아가 닛케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명칭으로 '반격 능력'을 제안하고 나섰습니다.

적기지 공격능력이라고 해버리면, 말 그대로 상대의 기지를 공격하는 이미지가 너무 강하다. 군사의 합리성을 생각하면 일본이 반격 능력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반격능력이란 상대의 기지에 한정하지 않고, 지휘·통제시설이나 통신시설 등의 공격도 포함한다.

일본 공산당은 '적기지 공격 능력이란 전쟁수행 능력을 말하고, 상대국을 섬멸할 수 있는 타격력=반격능력에 다름 아니'라며 '이것은 전쟁 포기를 선언하고, 외국에서의 무력행사를 금지한 헌법9조에 정면으로 위배된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일본 방위정책의 대전환이라고 할 만한 이 같은 흐름의 시작은 아베정권이었습니다. 2015년 내각 결정으로 헌법의 해석을 바꿔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했고, 지난해 말에는 "타이완 유사는 일본의 유사나 마찬가지"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 가능성을 언급해 중국을 자극했습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관련해서도, 아베는 TV에 출연해 미국의 핵무기를 영토 내에 배치해 공동 운용하는 '핵 공유' 정책을 일본도 논의해야 한다는 견해를 표명해 논란의 범위를 '핵무기'로까지 확장시켰습니다.

당장,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최근 실시한 전화 여론조사 결과, '국제사회가 러시아의 침공이나 국경 변경을 중단시키지 못하는 경우 중국의 타이완에 대한 무력 행사로 파급할 것을 우려한다'는 답변이 77%로 나타났습니다.

'자위를 위한 최소한도의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이냐.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또 한 번 '범위 확장'을 시도하는 계기가 될 것은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