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에서 다치면 무조건 보상?…“부주의 사고는 보상 불가”

입력 2022.03.0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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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길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만큼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곤 합니다. 출입문에 끼이거나, 역사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발이 빠지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이렇게 지하철에서 다칠 경우, 공사 측에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 치료비를 받아낼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오늘(3일), "승객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치료비가 지급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지하철에서 다치면 책임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치료비를 지급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시민이 여럿 있어 업무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 무리한 보상 요구에 모욕·폭언까지…공사 측 "정신적 고통"

구체적인 사례를 한번 볼까요. 서울교통공사는 일부 승객의 경우 무리한 보상 요구나 민원 제기, 담당 직원에 대한 항의를 넘어 공사에 민·형사소송을 내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 사례1
2019년 7월 22일, 1호선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다가 경미한 끼임 사고를 당한 A 씨는 공사에 1천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공사가 손해사정사와 협의해 적정한 보상 금액을 제시하자, A 씨는 금액이 적다며 배상 담당자와 서울역 역장·부역장을 형사고발 한 후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담당자 이름을 유서에 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자택에 방문한 손해사정사에게는 흉기까지 보여주며 위협했습니다.

# 사례2
2018년 8월 31일, 80대 B 씨는 술을 마신 뒤 1호선 신설동역에서 본인 부주의로 넘어져 다쳤습니다. 사고 후 B 씨의 보호자가 공사를 찾아와 보상비를 요구했고, 공사가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B 씨가 음주 상태였다는 것은 인정하나, 보험에 가입한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을 돌리지 말라’, ‘비리 공사가 또다시 부정한 태도를 보이니 납세자로서 불쾌하다’ 등의 악성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습니다.

# 사례3
2017년 9월 20일, 휴대전화로 통화하던 70대 C 씨는 3호선 을지로3가역 승강장에서 뒤늦게 열차를 타려다 닫히던 문에 부딪혀 뒤로 넘어졌습니다. C 씨는 승무원이 자신이 탑승하는 것을 보면서도 무리하게 문을 닫아 다친 것이라며 공사에 민사소송을 냈지만, CCTV를 통해 문이 닫히기 시작한 다음 통화 때문에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탑승하려던 것이 확인됐습니다.

배상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본인 과실이 명백한 사고에 대해 민법 등을 근거로 보상이 어렵다고 답하면 ‘죗값을 받을 거다’, ‘당신이 판사냐’, ‘세금 받고 그렇게 일을 하느냐’ 같은 식의 모욕적 표현을 한다"며 "이럴 때 가장 대하기 난감하다"고 전했습니다.

또 "공사 책임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보상액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 민사소송 내도 공사 승소율 94.4%…사고 책임 제한적

공사는 사상사고처리규정 내 기준에 따라 사고 책임이 공사에 있는지 우선 판단한 후, 책임이 공사에 있을 때만 사고처리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이 아주 제한적입니다. 공사와 승객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때는 책임비율에 따라 비용을 각각 분담합니다.


협의가 잘되지 않아 민·형사 소송까지 간 경우에도 대부분 승객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명백해 무혐의 또는 공사 승소로 종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10년간 제기된 민사소송 18건 가운데 17건이 공사 배상책임 0~50% 미만으로 인정돼, 승소율이 94.4%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출입문이 닫히는 도중 무리하게 뛰어들어 승차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기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전화를 보며 열차를 타다 발 빠짐 ▲ 음주 상태로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등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짐 등이 있었습니다.


패소한 1건은 2017년 10월 20일 지하철 1·5호선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했다가 숨진 고(故) 한경덕 씨의 사고 관련 소송입니다.

법원은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추락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것은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확보 못 한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이로 인해 사망한 유가족에게 공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지하철 10대 안전수칙 홍보…"무분별한 보상 청구 자제해달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위한 지하철 10대 안전수칙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낡은 시설을 개량하고, 지하철 탑승 시 발 빠짐 주의·무리한 승차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안내음성을 송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불가피한 사고로 발생한 승객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영업배상책임보험에 매년 가입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다만 보상액 지급이 늘어날수록 미래의 보험료가 상승해, 승객의 무분별한 사고 보상 청구는 공사 재정난이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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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하철에서 다치면 무조건 보상?…“부주의 사고는 보상 불가”
    • 입력 2022-03-03 06:00:47
    취재K

출·퇴근길 시민들의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 많은 이들이 이용하는 만큼 크고 작은 사고가 발생하곤 합니다. 출입문에 끼이거나, 역사나 에스컬레이터에서 넘어지거나,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발이 빠지는 경우가 가장 대표적인데요.

이렇게 지하철에서 다칠 경우, 공사 측에 관리 감독 책임을 물어 치료비를 받아낼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오늘(3일), "승객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치료비가 지급되지 않는 게 원칙"이라며 "지하철에서 다치면 책임을 따지지 않고 누구나 치료비를 지급한다는 소문을 듣고, 무리한 보상을 요구하는 시민이 여럿 있어 업무에 어려움이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 무리한 보상 요구에 모욕·폭언까지…공사 측 "정신적 고통"

구체적인 사례를 한번 볼까요. 서울교통공사는 일부 승객의 경우 무리한 보상 요구나 민원 제기, 담당 직원에 대한 항의를 넘어 공사에 민·형사소송을 내기도 한다고 밝혔습니다.

# 사례1
2019년 7월 22일, 1호선 서울역에서 열차를 타다가 경미한 끼임 사고를 당한 A 씨는 공사에 1천만 원을 요구했습니다. 공사가 손해사정사와 협의해 적정한 보상 금액을 제시하자, A 씨는 금액이 적다며 배상 담당자와 서울역 역장·부역장을 형사고발 한 후 돈을 더 주지 않으면 담당자 이름을 유서에 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자택에 방문한 손해사정사에게는 흉기까지 보여주며 위협했습니다.

# 사례2
2018년 8월 31일, 80대 B 씨는 술을 마신 뒤 1호선 신설동역에서 본인 부주의로 넘어져 다쳤습니다. 사고 후 B 씨의 보호자가 공사를 찾아와 보상비를 요구했고, 공사가 지급할 수 없다고 하자 ‘B 씨가 음주 상태였다는 것은 인정하나, 보험에 가입한 것을 알고 있는데 말을 돌리지 말라’, ‘비리 공사가 또다시 부정한 태도를 보이니 납세자로서 불쾌하다’ 등의 악성 민원을 여러 차례 제기했습니다.

# 사례3
2017년 9월 20일, 휴대전화로 통화하던 70대 C 씨는 3호선 을지로3가역 승강장에서 뒤늦게 열차를 타려다 닫히던 문에 부딪혀 뒤로 넘어졌습니다. C 씨는 승무원이 자신이 탑승하는 것을 보면서도 무리하게 문을 닫아 다친 것이라며 공사에 민사소송을 냈지만, CCTV를 통해 문이 닫히기 시작한 다음 통화 때문에 앞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탑승하려던 것이 확인됐습니다.

배상 업무를 담당하는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본인 과실이 명백한 사고에 대해 민법 등을 근거로 보상이 어렵다고 답하면 ‘죗값을 받을 거다’, ‘당신이 판사냐’, ‘세금 받고 그렇게 일을 하느냐’ 같은 식의 모욕적 표현을 한다"며 "이럴 때 가장 대하기 난감하다"고 전했습니다.

또 "공사 책임이 어느 정도 인정되는 사고에 대해서도 납득할 수 없는 보상액을 제시하고, 이에 대해 조정이 필요하다고 하면 마찬가지로 위협을 가하는 경우가 많아 힘들다"고 덧붙였습니다.


■ 민사소송 내도 공사 승소율 94.4%…사고 책임 제한적

공사는 사상사고처리규정 내 기준에 따라 사고 책임이 공사에 있는지 우선 판단한 후, 책임이 공사에 있을 때만 사고처리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준은 다음과 같이 아주 제한적입니다. 공사와 승객 모두에게 책임이 있을 때는 책임비율에 따라 비용을 각각 분담합니다.


협의가 잘되지 않아 민·형사 소송까지 간 경우에도 대부분 승객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했다는 증거가 명백해 무혐의 또는 공사 승소로 종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10년간 제기된 민사소송 18건 가운데 17건이 공사 배상책임 0~50% 미만으로 인정돼, 승소율이 94.4%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대표적 사례로는 ▲출입문이 닫히는 도중 무리하게 뛰어들어 승차 ▲에스컬레이터에서 걷거나 뛰기 ▲이어폰을 꽂은 채 휴대전화를 보며 열차를 타다 발 빠짐 ▲ 음주 상태로 에스컬레이터나 계단 등에서 균형을 잃고 넘어짐 등이 있었습니다.


패소한 1건은 2017년 10월 20일 지하철 1·5호선 신길역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했다가 숨진 고(故) 한경덕 씨의 사고 관련 소송입니다.

법원은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추락사고 발생 가능성이 있음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보호장치도 설치하지 않은 것은 통상 갖춰야 할 안전성을 확보 못 한 설치·보존상의 하자로 이로 인해 사망한 유가족에게 공사가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 지하철 10대 안전수칙 홍보…"무분별한 보상 청구 자제해달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한 지하철 이용을 위한 지하철 10대 안전수칙을 홍보하고 있습니다. 이에 더해 낡은 시설을 개량하고, 지하철 탑승 시 발 빠짐 주의·무리한 승차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안내음성을 송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불가피한 사고로 발생한 승객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영업배상책임보험에 매년 가입하고 있다고도 밝혔습니다. 다만 보상액 지급이 늘어날수록 미래의 보험료가 상승해, 승객의 무분별한 사고 보상 청구는 공사 재정난이 심화하는 원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인포그래픽: 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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