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에 둘러싸인 민주주의’ 美 연두교서 속 세계

입력 2022.03.0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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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든의 2022 연두교서

이런 것까지 알아야 되나 싶지만, 알면 지구촌 정치 경제의 현주소가 보인다.

영어로는 State of the Union Address. 직역하면 '연방의 현 상태에 대한 연설' 정도다. 미국 대통령이 매년 연초에 의회에 가서 하는 연설이다. 충분한 분량(한 시간 분량) 덕에 미국의 현재 상태, 올해 국정의 기본 방향을 소상히 살피고 밝힌다.


미국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지난 2년간 전 인류를 시험한 코로나 팬데믹. 점점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 미국의 문제지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연두교서는 이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우리나라가 등장한다는 측면만 부각하지 말고, (물론 국격의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은 하다), 중국에 대한 적개심만 강조하지도 말고, (이번 연두교서에서 중국이란 단어는 딱 2번 등장한다, 러시아는 18번.)

몇 가지 키워드로 이 연설의 큰 흐름을 살펴보자. 남의 나라 대통령 연설문이지만, 지구촌 모두에게 의미 있는 기록으로 살피기에 손색이 없다.




■ Sanction : 제재

㉠정책 :
맨 앞 15%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에 할애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를 지키겠다. 물리적 전쟁 빼고 모든 걸 하겠다. 온 지구가 다 함께.

경제 제재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은행을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끊어내고,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경제와 군사 발전을 위한 해외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고, 올리가르히(특권층)와 부패한 지도자들은 해외에 은닉한 재산을 잃을 것이다.

의미 :
경제적인 압박이 가능할수는 있다. 그러나 러시아만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다. 국제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러시아라는 시장의 상실은 여러 국가의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당장 러시아는 '고유가의 멋진 신세계를 경험해보라'며 비아냥거렸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세계의 많은 국가가 모두 단호하게, 한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점이다. 바이든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국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우리 입장에선 한국이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아닌, 고유명사 '한국'으로 불리었단 사실, 딱 열 개 안에 언급됐단 점에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포함한 27개 EU 회원국,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심지어 스위스를 비롯한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함께한다.


■ Bottom : 바닥을 다져 성장을 모색한다

경제 정책은 연두교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큰 기조는 딱 하나, '낙수효과는 없다'는 선언이다.

For the past 40 years we were told that if we gave tax breaks to those at the very top, the benefits would trickle down to everyone else.
지난 40년간, 우리는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흩뿌려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But that trickle-down theory led to weaker economic growth, lower wages, bigger deficits, and the widest gap between those at the top and everyone else in nearly a century.
© Nick Lowndes© Nick Lowndes
하지만 낙수효과 이론은 더 미약한 경제성장, 낮은 노동임금, 더 큰 정부 재정적자, 부자와 나머지 사이의 틈새가 근 100년 사이 최대수준까지 벌어지게 했을 뿐이다.

Invest in America. Educate Americans. Grow the workforce. Build the economy from the bottom up and the middle out, not from the top down.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교육하고, 노동력을 키워가야 한다. 경제를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중간에서 건설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정책 :
낙수효과의 반대, 바닥으로부터의 분수효과를 촉진한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편성했던 자신의 코로나 경제 대응 예산,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은 이 '분수효과'의 시작점이다.

바닥으로부터의 경제정책은 중층적 의미를 가진다. 한 측면에선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두껍게 지원해서 유효수요를 끌어올리는 정책이다. 우리의 소득주도 성장과 유사하다.

다른 측면은 사회 기반시설, 인프라 투자다. 전국에 50만 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건설하고, 노후 고속도로와 교량을 보수하고, 신성장 기술과 제조업 투자를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정책이 바이든에겐 분수효과의 근원이다.

㉡의미 :
상대적으로 성장을 이끄는 '혁신' 보다는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 기업활동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선회' 시키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논쟁적인 지점이다.

방법 또한 논쟁적이다. 경제이론 측면에선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세계화보다는 자국 중심주의를 강조한다. 반도체 종합기업 인텔이 국내 투자를 늘린 것을 강조하며, CEO 펫 겔싱어를 연두회견장에 초청했다. 알려졌다시피 겔싱어 CEO는 한국의 삼성전자나 타이완의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더라도, 그들에겐 추가적인 세제 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맞는 길인지' 논쟁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의 흐름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같은 주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단 점은 분명하다.


■ Inflation : 물가 잡겠다

One way to fight inflation is to drive down wages and make Americans poorer.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미국을 더 가난해지게 하는 것이다.

I have a better plan to fight inflation.
제겐 인플레이션과 싸울 더 나은 계획이 있습니다.
Lower your costs, not your wages.
당신의 임금 말고, 당신의 비용을 낮추는 길입니다.

㉠ 정책 :
인플레이션 해법으로 든 세 가지 정책. ① 의료비용을 낮춘다, ②친환경 투자로 에너지 비용도 낮춘다. ③ 육아비용도 낮춘다. 예컨대 미국인 10%가 앓는 당뇨용 약 인슐린을 만드는 데 10달러가 든다. 그러나 약값은 그 30배다. 미국의 고질적인 의료비용을 낮추면 가구 실질 소득이 늘 수 있다.

정부 지출을 줄이지 않고 늘리면서도 생활의 비용을 낮춰 물가 안정화를 추구하겠다는 정책이다. 이걸 임금을 낮추고 생활 수준을 떨어트리는 긴축 말고, 비용을 낮추겠다고 표현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의미 :
쉽게 말하면 긴축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인플레이션 대응은 긴축이 정석인데 왜 거부하는 것일까. 여기에 현재 전세계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가 숨어있다.

분수효과를 유도하려는 바이든 계획의 치명적 약점은 '물가 상승 압력'이다. 당장 코로나 지원금이 미국의 7%대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의회는 바이든 핵심 공약에 대한 동의를 망설였다. 정부가 돈을 더 쓰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걱정 때문이다.

정답인지는 불확실하다. 위 세 정책이 지금의 정치적 긴장, 에너지 지정학, 공급망 교란, 반도체 병목에 대한 해법이 될까? 바이든은 ' 노벨 경제학상을 탄 17명이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고 변호했지만 의심스럽다.

다만 의구심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 하나. '인플레이션'이 이미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질문이 되었단 사실 자체다.


■ Fair : 공정한 세금


I’m not looking to punish anyone. But let’s make sure corporations and the wealthiest Americans start paying their fair share.
누군가 처벌하려는게 아닙니다. 기업과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이 공정한 조세 부담을 하게 하자는 겁니다.

We got more than 130 countries to agree on a global minimum tax rate so companies can’t get out of paying their taxes at home by shipping jobs and factories overseas.
전 세계 130여 개국이 글로벌 최저세율에 합의했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그들의 공정한 조세 부담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일자리나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그래왔었죠.

㉠정책 :
증세는 없다. 연간 소득이 40만 달러(4억 8천만 원)가 안된다면. 증세가 아닌 '공정한 조세제도 확립'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 모두가 공정한 자기 몫의 세금을 부담하면 된다.

이를테면 포천 500대 기업 중 55개가 48조 원의 이익을 내지만 연방 법인세는 1달러도 내지 않는다. 이런 기업이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합의도 이 맥락에 있다. 기업들이 조세 회피처 등의 회피수단을 쓰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부자가 교사나 소방관보다 낮은 세금 내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의미:
역시 코로나 시대 정부의 딜레마가 보인다. 더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높이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린다. 정치적 자살행위인 보편 증세는 현대 민주 정부의 선출직 리더가 가장 피하고 싶은 선택이다.

문제는 증세 없이 세원 확충만으로 해법 모색하겠다는 대책, 지출과 수입을 따져보면 현실성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단 점이다.

지구촌이 똑같은 고민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장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앞다퉈 정부 역할을 다하겠단 공약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재원 문제를 분명히 언급하진 않는다. 세출 구조조정, 항목 조정... 말하는 사람도 한계를 알고 있다. 초고소득 증세?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나 고민은 똑같다.


■ Labour : 노동의 정당한 권리

We’ll also cut costs and keep the economy going strong by giving workers a fair shot, provide more training and apprenticeships, hire them based on their skills not degrees.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더 많은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학위가 아닌 실력을 보고 고용하게 할 겁니다. 그리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경제가 강건하게 유지되게 할 것입니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 정책 :
불평등 해소와 분수 경제를 동시에 달성하는 해법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분배를 늘리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바이든이 15달러 최저임금 인상을 제시하고, 아동수당을 강조하고, 재교육을 강화시킬 지역사회 교육기관(커뮤니티 컬리지)강화를 내세운 건 이 맥락이다. 노조 설립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하게 하자고 했다.

㉡ 의미 :
불평등이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는데, 기술혁신으로 불평등은 점점 더 확대된다. 세계적으로 이 불평등 확산을 어떻게 막을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다. 바이든의 해답은 한 편으론 앞서 말한 '공정한 세금'이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 공정성'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놓는 해법이 이렇다.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 연두교서 속 '지금 우리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우선은 권위주의 체제의 도발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시장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이다. 성장과 혁신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거대 빅테크 기업과 초고소득층에 성장의 과실이 쏠리면서 이 성장과 혁신의 가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불평등이 커져가고, 능력주의는 의심받는다. 공동체를 위한 결정보다는 부분 이익이, 극단적 주장과 파괴적 생각이 힘을 얻는다. 선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갈등의 변주곡이다.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을 다시 한번 수정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탄력성을 증명할 것인가?

바이든의 대책이 최선의 정책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2022 연두교서는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하고 있단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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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전에 둘러싸인 민주주의’ 美 연두교서 속 세계
    • 입력 2022-03-04 07:00:53
    취재K

■ 바이든의 2022 연두교서

이런 것까지 알아야 되나 싶지만, 알면 지구촌 정치 경제의 현주소가 보인다.

영어로는 State of the Union Address. 직역하면 '연방의 현 상태에 대한 연설' 정도다. 미국 대통령이 매년 연초에 의회에 가서 하는 연설이다. 충분한 분량(한 시간 분량) 덕에 미국의 현재 상태, 올해 국정의 기본 방향을 소상히 살피고 밝힌다.


미국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지난 2년간 전 인류를 시험한 코로나 팬데믹. 점점 심화되는 경제 불평등. 미국의 문제지만 우리 모두의 문제다. 연두교서는 이를 종합적으로 다룬다.

우리나라가 등장한다는 측면만 부각하지 말고, (물론 국격의 측면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은 하다), 중국에 대한 적개심만 강조하지도 말고, (이번 연두교서에서 중국이란 단어는 딱 2번 등장한다, 러시아는 18번.)

몇 가지 키워드로 이 연설의 큰 흐름을 살펴보자. 남의 나라 대통령 연설문이지만, 지구촌 모두에게 의미 있는 기록으로 살피기에 손색이 없다.




■ Sanction : 제재

㉠정책 :
맨 앞 15%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대응에 할애했다. 메시지는 분명하다. 자유를 지키겠다. 물리적 전쟁 빼고 모든 걸 하겠다. 온 지구가 다 함께.

경제 제재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은행을 국제 금융시스템에서 끊어내고, 중앙은행 외환보유고를 무용지물로 만든다. 경제와 군사 발전을 위한 해외 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없을 것이고, 올리가르히(특권층)와 부패한 지도자들은 해외에 은닉한 재산을 잃을 것이다.

의미 :
경제적인 압박이 가능할수는 있다. 그러나 러시아만 고통스럽진 않을 것이다. 국제 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러시아라는 시장의 상실은 여러 국가의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다. 당장 러시아는 '고유가의 멋진 신세계를 경험해보라'며 비아냥거렸다.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세계의 많은 국가가 모두 단호하게, 한마음으로 함께 한다는 점이다. 바이든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국가들을 하나하나 호명한다. 우리 입장에선 한국이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아닌, 고유명사 '한국'으로 불리었단 사실, 딱 열 개 안에 언급됐단 점에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를 포함한 27개 EU 회원국, 영국, 캐나다, 일본, 한국, 호주, 뉴질랜드, 그리고 심지어 스위스를 비롯한 수많은 다른 나라들이 함께한다.


■ Bottom : 바닥을 다져 성장을 모색한다

경제 정책은 연두교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큰 기조는 딱 하나, '낙수효과는 없다'는 선언이다.

For the past 40 years we were told that if we gave tax breaks to those at the very top, the benefits would trickle down to everyone else.
지난 40년간, 우리는 고소득층의 세금을 깎아주면 그 혜택이 모두에게 골고루 흩뿌려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But that trickle-down theory led to weaker economic growth, lower wages, bigger deficits, and the widest gap between those at the top and everyone else in nearly a century.© Nick Lowndes하지만 낙수효과 이론은 더 미약한 경제성장, 낮은 노동임금, 더 큰 정부 재정적자, 부자와 나머지 사이의 틈새가 근 100년 사이 최대수준까지 벌어지게 했을 뿐이다.

Invest in America. Educate Americans. Grow the workforce. Build the economy from the bottom up and the middle out, not from the top down.
미국에 투자하고, 미국인을 교육하고, 노동력을 키워가야 한다. 경제를 아래에서 위로 그리고 중간에서 건설해야 한다. 위에서 아래로가 아니라.


㉠정책 :
낙수효과의 반대, 바닥으로부터의 분수효과를 촉진한다. 대통령이 되자마자 편성했던 자신의 코로나 경제 대응 예산, 미국 구조 계획(American Rescue Plan)은 이 '분수효과'의 시작점이다.

바닥으로부터의 경제정책은 중층적 의미를 가진다. 한 측면에선 저소득층과 중산층을 두껍게 지원해서 유효수요를 끌어올리는 정책이다. 우리의 소득주도 성장과 유사하다.

다른 측면은 사회 기반시설, 인프라 투자다. 전국에 50만 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건설하고, 노후 고속도로와 교량을 보수하고, 신성장 기술과 제조업 투자를 정부가 지원하는 모든 정책이 바이든에겐 분수효과의 근원이다.

㉡의미 :
상대적으로 성장을 이끄는 '혁신' 보다는 '정부의 역할'을 중시한다. 기업활동을 사회를 이롭게 하는 방향으로 '선회' 시키려는 노력을 강조한다. 논쟁적인 지점이다.

방법 또한 논쟁적이다. 경제이론 측면에선 모두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세계화보다는 자국 중심주의를 강조한다. 반도체 종합기업 인텔이 국내 투자를 늘린 것을 강조하며, CEO 펫 겔싱어를 연두회견장에 초청했다. 알려졌다시피 겔싱어 CEO는 한국의 삼성전자나 타이완의 TSMC가 미국에 공장을 건설하더라도, 그들에겐 추가적인 세제 지원을 해선 안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맞는 길인지' 논쟁적이다. 그러나 이같은 생각의 흐름이 미국뿐 아니라 중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 같은 주요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단 점은 분명하다.


■ Inflation : 물가 잡겠다

One way to fight inflation is to drive down wages and make Americans poorer.
인플레이션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은 노동자 임금을 낮추고, 미국을 더 가난해지게 하는 것이다.

I have a better plan to fight inflation.
제겐 인플레이션과 싸울 더 나은 계획이 있습니다.
Lower your costs, not your wages.
당신의 임금 말고, 당신의 비용을 낮추는 길입니다.

㉠ 정책 :
인플레이션 해법으로 든 세 가지 정책. ① 의료비용을 낮춘다, ②친환경 투자로 에너지 비용도 낮춘다. ③ 육아비용도 낮춘다. 예컨대 미국인 10%가 앓는 당뇨용 약 인슐린을 만드는 데 10달러가 든다. 그러나 약값은 그 30배다. 미국의 고질적인 의료비용을 낮추면 가구 실질 소득이 늘 수 있다.

정부 지출을 줄이지 않고 늘리면서도 생활의 비용을 낮춰 물가 안정화를 추구하겠다는 정책이다. 이걸 임금을 낮추고 생활 수준을 떨어트리는 긴축 말고, 비용을 낮추겠다고 표현했다.

게티이미지
㉡의미 :
쉽게 말하면 긴축하지 않는다는 선언이다. 인플레이션 대응은 긴축이 정석인데 왜 거부하는 것일까. 여기에 현재 전세계 정부가 당면한 딜레마가 숨어있다.

분수효과를 유도하려는 바이든 계획의 치명적 약점은 '물가 상승 압력'이다. 당장 코로나 지원금이 미국의 7%대 인플레이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인플레이션 때문에 의회는 바이든 핵심 공약에 대한 동의를 망설였다. 정부가 돈을 더 쓰면 인플레이션을 자극할 수밖에 없다는 걱정 때문이다.

정답인지는 불확실하다. 위 세 정책이 지금의 정치적 긴장, 에너지 지정학, 공급망 교란, 반도체 병목에 대한 해법이 될까? 바이든은 ' 노벨 경제학상을 탄 17명이 이 정책이 장기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완화할 것이라고 했다'고 변호했지만 의심스럽다.

다만 의구심 속에서도 분명한 사실 하나. '인플레이션'이 이미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질문이 되었단 사실 자체다.


■ Fair : 공정한 세금


I’m not looking to punish anyone. But let’s make sure corporations and the wealthiest Americans start paying their fair share.
누군가 처벌하려는게 아닙니다. 기업과 가장 부유한 미국인들이 공정한 조세 부담을 하게 하자는 겁니다.

We got more than 130 countries to agree on a global minimum tax rate so companies can’t get out of paying their taxes at home by shipping jobs and factories overseas.
전 세계 130여 개국이 글로벌 최저세율에 합의했습니다. 이제 기업들은 그들의 공정한 조세 부담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일자리나 공장을 해외로 옮기면서 그래왔었죠.

㉠정책 :
증세는 없다. 연간 소득이 40만 달러(4억 8천만 원)가 안된다면. 증세가 아닌 '공정한 조세제도 확립'으로 재원을 마련하겠다. 모두가 공정한 자기 몫의 세금을 부담하면 된다.

이를테면 포천 500대 기업 중 55개가 48조 원의 이익을 내지만 연방 법인세는 1달러도 내지 않는다. 이런 기업이 세금을 내게 해야 한다.

글로벌 법인세 최저세율 합의도 이 맥락에 있다. 기업들이 조세 회피처 등의 회피수단을 쓰는 행위를 막아야 한다. 부자가 교사나 소방관보다 낮은 세금 내는 상황도 막아야 한다.

게티이미지
㉡의미:
역시 코로나 시대 정부의 딜레마가 보인다. 더 적극적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세금을 높이면 정치적 입지가 흔들린다. 정치적 자살행위인 보편 증세는 현대 민주 정부의 선출직 리더가 가장 피하고 싶은 선택이다.

문제는 증세 없이 세원 확충만으로 해법 모색하겠다는 대책, 지출과 수입을 따져보면 현실성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단 점이다.

지구촌이 똑같은 고민이고 우리도 마찬가지다. 당장 대통령 선거 후보들은 앞다퉈 정부 역할을 다하겠단 공약을 소리높여 외치지만, 재원 문제를 분명히 언급하진 않는다. 세출 구조조정, 항목 조정... 말하는 사람도 한계를 알고 있다. 초고소득 증세?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나 고민은 똑같다.


■ Labour : 노동의 정당한 권리

We’ll also cut costs and keep the economy going strong by giving workers a fair shot, provide more training and apprenticeships, hire them based on their skills not degrees.
노동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고, 더 많은 교육훈련 기회를 제공하고, 학위가 아닌 실력을 보고 고용하게 할 겁니다. 그리하여 비용을 절감하고 경제가 강건하게 유지되게 할 것입니다.

게티이미지
㉠ 정책 :
불평등 해소와 분수 경제를 동시에 달성하는 해법은 필연적으로 노동자에 대한 분배를 늘리는 방향으로 귀결된다.

바이든이 15달러 최저임금 인상을 제시하고, 아동수당을 강조하고, 재교육을 강화시킬 지역사회 교육기관(커뮤니티 컬리지)강화를 내세운 건 이 맥락이다. 노조 설립도 더 쉽게 할 수 있게 하게 하자고 했다.

㉡ 의미 :
불평등이 사회 갈등의 원인이 되는데, 기술혁신으로 불평등은 점점 더 확대된다. 세계적으로 이 불평등 확산을 어떻게 막을지를 놓고 골머리를 앓는다. 바이든의 해답은 한 편으론 앞서 말한 '공정한 세금'이고, 다른 한편으론 '노동 공정성'이다.

자본주의의 심장에서 현직 대통령이 내놓는 해법이 이렇다.

게티이미지
■ 연두교서 속 '지금 우리 세계'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우선은 권위주의 체제의 도발 때문이다.

다른 한 편으로는 시장 자본주의의 모순 때문이다. 성장과 혁신은 언제나 좋은 것이라고 여겨졌지만, 거대 빅테크 기업과 초고소득층에 성장의 과실이 쏠리면서 이 성장과 혁신의 가치에 대한 의심이 커졌다.

불평등이 커져가고, 능력주의는 의심받는다. 공동체를 위한 결정보다는 부분 이익이, 극단적 주장과 파괴적 생각이 힘을 얻는다. 선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똑같은 갈등의 변주곡이다.

자본주의는 자체의 모순을 다시 한번 수정할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는 탄력성을 증명할 것인가?

바이든의 대책이 최선의 정책은 아닐지는 모른다. 하지만 2022 연두교서는 바로 이 질문을 정면으로 하고 있단 점에서 읽을 가치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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