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물었더니

입력 2022.03.04 (13:39) 수정 2022.03.04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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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8일째인 현지시간 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이 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가 공언한 대로 수도 키이우에 남아, 대통령 집무실 건물에서 기자들을 직접 대면했습니다. 외신이 전한 전장 속 기자회견 모습을 전합니다.

■ 젤렌스키 대통령, 키이우에서 기자회견 개최

뉴욕타임스의 앤드류 크래머 기자는 기자회견이 열린 키이우의 대통령 집무실 건물은 모래주머니가 성채를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집무실 건물로 가는 도로는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됐고 탱크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제 기둥이 X자 모양으로 놓였습니다. 기자들을 태운 미니밴은 대통령 집무실 건물 뒤편에 멈춰 섰고, 보안요원들이 기자들을 호위한 채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군인들이 가득 찬 복도는 어두워서 기자들은 보안요원의 손전등 불빛을 따라 이동해야 했습니다. 창틀마다 모래주머니가 쌓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총격 발사 장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도 총기를 소지한 군인들이 보초를 섰고, 창문은 어김없이 하얀 모래주머니로 막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국방색 티셔츠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났습니다. 매일 SNS에 수십 개씩 올리는 영상과 사진 속 모습과 같습니다. 그는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죠."라고 기자회견을 연 이유를 밝혔습니다.

 지난 1일 CNN -로이터 인터뷰 당시 촬영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무실에 보초를 선 무장 장병의 모습. 지난 1일 CNN -로이터 인터뷰 당시 촬영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무실에 보초를 선 무장 장병의 모습.

■ "푸틴 만나자…전쟁 멈출 방법은 대화뿐"

이날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 담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협상할 수 있는 사안들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나는 푸틴과 대화하길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푸틴과 대화할 의무가 있을 뿐이고 세계는 푸틴과 얘기해야만 한다.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어와 영어로 기자회견에 답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향해 대화를 촉구하는 대목에서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슐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거대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만난 점을 상기시키며, 정치 풍자와 같은 신랄한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0미터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나는 물지 않는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와 함께 앉아서 대화하자.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맞이한 모습. 이날 두 정상은 동시통역기를 귀에 꽂고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어가 유창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은 푸틴 대통령과 이렇게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물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맞이한 모습. 이날 두 정상은 동시통역기를 귀에 꽂고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어가 유창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은 푸틴 대통령과 이렇게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물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45살인 젤렌스키는 18, 19살에 불과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딸 또래임을 상기시키며 "군복을 입은 이들의 결정 때문에 이들은 군복을 입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러시아가 자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전사자 송환에도 나서지 않는다며 "이건 악몽이다. 그렇게 행동을 계획하는 이들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음 공격대상은 발틱" 서방 압박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에 이미 거절당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요구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나토는 러시아와의 확전을 우려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부했지만, 그는 독일과 프랑스에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순서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몰도바, 조지아, 폴란드를 거쳐 베를린 장벽으로 진군할 것이라며, 공동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온적이었던 서방 국가들을 SNS을 통해 공개 압박했던 것과 같이, 젤렌스키는 기자회견에서도 일부 국가들에 아쉬움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는 독일이 러시아와의 가스관 연결 사업인 노르드 스트림2 때문에 러시아 제재 참여를 주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자국산 부품이 사용된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했다며,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젤렌스키 "죽음 두렵지만, 대통령은 두려워할 권리 없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이 되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른 우크라이나 국민들처럼,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쳐보였습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 밑은 어둡고 주름은 깊었습니다. 뺨은 수척했고 목소리는 갈라졌습니다. 통상적인 국가 정상의 기자회견과 달리, 그는 단상의 의자에 앉아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왼쪽)과 전쟁 8일째인 3일(오른쪽)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왼쪽)과 전쟁 8일째인 3일(오른쪽)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

젤렌스키는 잠시 질문을 놓치자, 하루에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20~30통의 국제전화를 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사안에 정확한 답변이 아닐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팔에 얼굴을 기댄 채 고개를 깊이 숙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포위당한 수도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저항을 호소한 영상으로 그가 민주주의 수호와 용기의 상징이 된 것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이날 기자회견 영상 역시 그의 SNS에 즉시 공개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자신이 강인한 결단력을 갖게 된 것은 모두 "특별한 국민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러시아의 공격에 맞선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자랑스러워했고, 고위 각료들도 모두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원병으로 나서 무기를 받았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만큼 총을 잘 쏘지는 못했을 거라며, 군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모든 이들이 그런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나 자녀의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아픈 사람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다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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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젤렌스키에게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물었더니
    • 입력 2022-03-04 13:39:40
    • 수정2022-03-04 13:39:53
    세계는 지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8일째인 현지시간 3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외신 기자들을 상대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이 된 젤렌스키 대통령은 그가 공언한 대로 수도 키이우에 남아, 대통령 집무실 건물에서 기자들을 직접 대면했습니다. 외신이 전한 전장 속 기자회견 모습을 전합니다.

■ 젤렌스키 대통령, 키이우에서 기자회견 개최

뉴욕타임스의 앤드류 크래머 기자는 기자회견이 열린 키이우의 대통령 집무실 건물은 모래주머니가 성채를 이루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집무실 건물로 가는 도로는 일반 차량의 통행이 금지됐고 탱크의 진입을 저지하기 위해 콘크리트와 철제 기둥이 X자 모양으로 놓였습니다. 기자들을 태운 미니밴은 대통령 집무실 건물 뒤편에 멈춰 섰고, 보안요원들이 기자들을 호위한 채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군인들이 가득 찬 복도는 어두워서 기자들은 보안요원의 손전등 불빛을 따라 이동해야 했습니다. 창틀마다 모래주머니가 쌓였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총격 발사 장소가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장에도 총기를 소지한 군인들이 보초를 섰고, 창문은 어김없이 하얀 모래주머니로 막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면도하지 않은 얼굴에 국방색 티셔츠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났습니다. 매일 SNS에 수십 개씩 올리는 영상과 사진 속 모습과 같습니다. 그는 "여러분 눈으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죠."라고 기자회견을 연 이유를 밝혔습니다.

 지난 1일 CNN -로이터 인터뷰 당시 촬영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집무실에 보초를 선 무장 장병의 모습.
■ "푸틴 만나자…전쟁 멈출 방법은 대화뿐"

이날 기자회견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직접 만나 담판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도, 협상할 수 있는 사안들도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나는 푸틴과 대화하길 원하는 게 아니다. 나는 푸틴과 대화할 의무가 있을 뿐이고 세계는 푸틴과 얘기해야만 한다. 이 전쟁을 멈추기 위한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크라이나어와 영어로 기자회견에 답하던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을 향해 대화를 촉구하는 대목에서는 유창한 러시아어로 말을 바꿨습니다. 그는 푸틴 대통령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슐츠 독일 총리와의 회담에서 거대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만난 점을 상기시키며, 정치 풍자와 같은 신랄한 표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30미터 거리를 둘 필요는 없다. 나는 물지 않는다. 나는 평범한 사람이다. 나와 함께 앉아서 대화하자. 무엇이 두려운가?"라고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위기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7일 러시아 모스크바를 방문한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맞이한 모습. 이날 두 정상은 동시통역기를 귀에 꽂고 대화를 나눴다. 러시아어가 유창한 젤렌스키 대통령은 자신은 푸틴 대통령과 이렇게 대화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물지 않는다”라고 표현했다.
45살인 젤렌스키는 18, 19살에 불과한 러시아 군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했습니다. 그는 러시아 군인들이 자신의 딸 또래임을 상기시키며 "군복을 입은 이들의 결정 때문에 이들은 군복을 입고 죽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러시아가 자국 내 반전 여론이 확산할 것을 우려해 전사자 송환에도 나서지 않는다며 "이건 악몽이다. 그렇게 행동을 계획하는 이들을 나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다음 공격대상은 발틱" 서방 압박

젤렌스키 대통령은 서방에 이미 거절당한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듭 요구했습니다. 미국과 영국, 나토는 러시아와의 확전을 우려해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거부했지만, 그는 독일과 프랑스에도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요청했습니다.

젤렌스키는 러시아의 공격은 우크라이나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다음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의 순서가 될 것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이어 몰도바, 조지아, 폴란드를 거쳐 베를린 장벽으로 진군할 것이라며, 공동 대응을 촉구했습니다.

개전 초기 우크라이나 지원에 미온적이었던 서방 국가들을 SNS을 통해 공개 압박했던 것과 같이, 젤렌스키는 기자회견에서도 일부 국가들에 아쉬움을 거침없이 드러냈습니다. 그는 독일이 러시아와의 가스관 연결 사업인 노르드 스트림2 때문에 러시아 제재 참여를 주저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스라엘도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해 자국산 부품이 사용된 무기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저지했다며, 윤리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 젤렌스키 "죽음 두렵지만, 대통령은 두려워할 권리 없어"

젤렌스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저항의 상징이 되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세계 언론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다른 우크라이나 국민들처럼, 젤렌스키 대통령도 지쳐보였습니다. 그의 안색은 창백했고 눈 밑은 어둡고 주름은 깊었습니다. 뺨은 수척했고 목소리는 갈라졌습니다. 통상적인 국가 정상의 기자회견과 달리, 그는 단상의 의자에 앉아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시작된 지난달 24일(왼쪽)과 전쟁 8일째인 3일(오른쪽) 젤렌스키 대통령의 모습.
젤렌스키는 잠시 질문을 놓치자, 하루에 세 시간 정도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며 양해를 구하기도 했습니다. 매일 20~30통의 국제전화를 하고 있다며, 세부적인 사안에 정확한 답변이 아닐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팔에 얼굴을 기댄 채 고개를 깊이 숙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포위당한 수도에서 계속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며 저항을 호소한 영상으로 그가 민주주의 수호와 용기의 상징이 된 것을 잘 알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이날 기자회견 영상 역시 그의 SNS에 즉시 공개했습니다.

젤렌스키는 자신이 강인한 결단력을 갖게 된 것은 모두 "특별한 국민들" 덕분이라고 공을 돌렸습니다. 러시아의 공격에 맞선 평범한 우크라이나 국민들을 자랑스러워했고, 고위 각료들도 모두 우크라이나를 떠나지 않았다고 강조했습니다.

만약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지금 어떻게 행동했을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자원병으로 나서 무기를 받았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다른 이들만큼 총을 잘 쏘지는 못했을 거라며, 군인들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일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전쟁에서 죽는 것이 두렵지 않으냐고 묻자, 그는 모든 이들이 그런 공포를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자신이나 자녀의 생명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어딘가 아픈 사람일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다만 대통령으로서 나는 (죽음을) 두려워할 권리를 갖고 있지 않다. "라고 덧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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