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정말로 후쿠시마에서 살 수 있을까?

입력 2022.03.1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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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대지진에 이은 쓰나미, 원전 폭발까지, 일본 후쿠시마에 ‘복합 재해’가 발생한지 11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피해 지역의 부흥을 줄곧 외쳐왔지만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취재진은 3월 9일과 10일,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후타바마치(双葉町)와 그 옆의 가쓰라오무라(葛尾村)를 찾았습니다.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며 주민들이 대피했던 지역입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이 담긴 포대 무더기가 여전히 곳곳에 쌓여 있었습니다.

노란색의 ‘귀환 곤란구역’ 표시와 통행을 막은 바리케이드도 자주 눈에 띕니다. 아직 방사능 수치가 높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취재진은 출입 허가를 받아 귀환 곤란구역에 들어가 봤습니다. 11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던 나이토 씨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언젠가는 후쿠시마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나이토 씨는, 피난지시가 해제될 때까지 옛 집에 체류하면서 살 준비를 할 수 있는 ‘준비 숙박’을 신청했습니다. 이 구역의 피난지시는 이번 봄 해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쓰라오무라에서 발급한 귀환곤란구역 통행허가증가쓰라오무라에서 발급한 귀환곤란구역 통행허가증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2010년 아내의 고향에 새집을 지은 나이토 씨. 이듬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토 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통행로. 귀환곤란구역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나이토 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통행로. 귀환곤란구역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이후 도쿄도 하치오지시(八王子市)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네 시간가량을 운전해 후쿠시마를 오갔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매번 방호복을 입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지은 지 11년이 지난 '새집'에서 나이토 씨가 요즘 하는 일은 밤새 다녀간 동물들의 발자국을 없애고 사람의 흔적을 만드는 겁니다. 그동안 달라진 건, 주변에 살던 사람과 집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겁니다.

귀환 준비를 위해 3월부터 준비숙박을 신청한 나이토 씨귀환 준비를 위해 3월부터 준비숙박을 신청한 나이토 씨

자연을 공유하던 가족이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지내던 집들도 모두 헐렸습니다. 나이토 씨처럼 귀환을 희망하는 원주민은 극히 드뭅니다.

나이토 가즈오 / 준비숙박 신청자

"예전 같으면 함께 살던 가족들이 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텐데... 지금은 혼자서 해야하니까요"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게 언제가 될지 정해지지 않은 게 가장 힘들었죠"

가쓰라오무라의 이번 준비숙박 대상자는 30세대 83명입니다. 이 중 나이토 씨 부부를 포함해 2세대 4명만 신청했습니다. 사실 대상자들의 집 중에서 헐리지 않고 남아 있는 집이 네 채 뿐이라고 합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가쓰라오 주민은 477세대 1,567명. 11년이 지난 현재의 인구는 약 30%에 불과한 451명입니다.

그마저도 마을로 돌아온 귀환 인구는 335명뿐이고, 나머지는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여전히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3만 8천여 명에 달합니다.

가쓰라오무라는 2016년 대부분 피난지시가 해제됐고, 원전과의 거리나 방사능 수치 등으로 볼 때 여건이 비교적 나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인구는 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피난을 떠난 원주민들이 귀환할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귀환주민은 60대 이상이 대부분입니다. 3.11이 고령화까지 더 앞당긴 꼴이 됐습니다. 재생과 부흥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조차도 모를 상황입니다.

이시다 다쿠야 / 가쓰라오무라 부흥추진실장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신들은 돌아온다고 해도 아이들이 와도 될지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고령화가 더 심해져서) 30년 정도 지나면 지역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의 부흥예산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예산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후타바마치에서도 준비숙박이 시작됐습니다. 아직 집이 남아있는 3백 세대 중 30세대 만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습니다.

후타바역 앞 거리후타바역 앞 거리

후타바마치 중심부는 2020년 3월에 피난지시가 해제됐습니다. 지역의 약 5%에 해당하는 면적을 부흥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후타바역을 새단장하고, 방치되고 있는 빈집 외벽에 벽화도 그려 넣었습니다.

역을 둘러싸고 가설 행정 청사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산업단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귀환 주민이 없으니 일자리라도 만들어 인구를 늘려보기 위해섭니다.

일본 정부와 피해지역의 자치단체는 주민들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달라 보입니다. 역 인근에서조차 행인도, 편의시설도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직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취재진이 둘러본 소방지서 내부는 사고 당시 그대로이고, 인근 빈집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제염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사능 수치에 문제가 없다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거주'라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11년. 후쿠시마 현지 취재를 하며 들었던 생각은 '끝나간다'라기보다는 '이대로라면 과연 끝이 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여기에 아직도 새로운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수 방류를 1년 뒤로 예고하고, 준비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기자와 만난 70대 주민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뜻밖에도 원전의 '폐로' 얘기까지 꺼냈습니다. "생전에 폐로 작업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원전 내부에 남아 있는 '데브리(핵연료 찌꺼기)'"라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6개월 동안 후쿠시마를 두 차례 오가며 만난 여러 현지인들의 표정에서 아직 '재생'에 대한 희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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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정말로 후쿠시마에서 살 수 있을까?
    • 입력 2022-03-15 07:00:11
    특파원 리포트

동일본대지진에 이은 쓰나미, 원전 폭발까지, 일본 후쿠시마에 ‘복합 재해’가 발생한지 11년이 지났습니다. 일본 정부는 피해 지역의 부흥을 줄곧 외쳐왔지만 그동안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취재진은 3월 9일과 10일, 후쿠시마 제1원전이 있는 후타바마치(双葉町)와 그 옆의 가쓰라오무라(葛尾村)를 찾았습니다.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며 주민들이 대피했던 지역입니다.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방사능 오염 물질이 담긴 포대 무더기가 여전히 곳곳에 쌓여 있었습니다.

노란색의 ‘귀환 곤란구역’ 표시와 통행을 막은 바리케이드도 자주 눈에 띕니다. 아직 방사능 수치가 높아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입니다.


취재진은 출입 허가를 받아 귀환 곤란구역에 들어가 봤습니다. 11년 동안 피난 생활을 했던 나이토 씨의 집이 있는 곳입니다.

언젠가는 후쿠시마로 돌아오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나이토 씨는, 피난지시가 해제될 때까지 옛 집에 체류하면서 살 준비를 할 수 있는 ‘준비 숙박’을 신청했습니다. 이 구역의 피난지시는 이번 봄 해제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쓰라오무라에서 발급한 귀환곤란구역 통행허가증
한가로운 전원생활을 꿈꾸며 2010년 아내의 고향에 새집을 지은 나이토 씨. 이듬해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가 터지면서 이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이토 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통행로. 귀환곤란구역 바리케이드가 설치돼 있다
이후 도쿄도 하치오지시(八王子市)에 임시 거처를 마련했지만 언젠가 돌아갈 집을 마냥 방치할 수는 없었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네 시간가량을 운전해 후쿠시마를 오갔습니다.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과 매번 방호복을 입는 번거로움을 감내해야 했습니다.

지은 지 11년이 지난 '새집'에서 나이토 씨가 요즘 하는 일은 밤새 다녀간 동물들의 발자국을 없애고 사람의 흔적을 만드는 겁니다. 그동안 달라진 건, 주변에 살던 사람과 집들이 모두 없어졌다는 겁니다.

귀환 준비를 위해 3월부터 준비숙박을 신청한 나이토 씨
자연을 공유하던 가족이 세상을 떠났고, 그들이 지내던 집들도 모두 헐렸습니다. 나이토 씨처럼 귀환을 희망하는 원주민은 극히 드뭅니다.

나이토 가즈오 / 준비숙박 신청자

"예전 같으면 함께 살던 가족들이 이 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줬을 텐데... 지금은 혼자서 해야하니까요"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하면서도, 그게 언제가 될지 정해지지 않은 게 가장 힘들었죠"

가쓰라오무라의 이번 준비숙박 대상자는 30세대 83명입니다. 이 중 나이토 씨 부부를 포함해 2세대 4명만 신청했습니다. 사실 대상자들의 집 중에서 헐리지 않고 남아 있는 집이 네 채 뿐이라고 합니다.

동일본대지진이 발생하기 전 가쓰라오 주민은 477세대 1,567명. 11년이 지난 현재의 인구는 약 30%에 불과한 451명입니다.

그마저도 마을로 돌아온 귀환 인구는 335명뿐이고, 나머지는 새롭게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동일본대지진 여파로 여전히 피난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3만 8천여 명에 달합니다.

가쓰라오무라는 2016년 대부분 피난지시가 해제됐고, 원전과의 거리나 방사능 수치 등으로 볼 때 여건이 비교적 나은 곳인데도 불구하고, 인구는 늘지 않고 있습니다. 이는 사실상 피난을 떠난 원주민들이 귀환할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귀환주민은 60대 이상이 대부분입니다. 3.11이 고령화까지 더 앞당긴 꼴이 됐습니다. 재생과 부흥이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지조차도 모를 상황입니다.

이시다 다쿠야 / 가쓰라오무라 부흥추진실장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신들은 돌아온다고 해도 아이들이 와도 될지에 대한 걱정이 많습니다. (고령화가 더 심해져서) 30년 정도 지나면 지역이 어떻게 될 것인지,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정부의 부흥예산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예산이 지원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후쿠시마 원전이 위치한 후타바마치에서도 준비숙박이 시작됐습니다. 아직 집이 남아있는 3백 세대 중 30세대 만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습니다.

후타바역 앞 거리
후타바마치 중심부는 2020년 3월에 피난지시가 해제됐습니다. 지역의 약 5%에 해당하는 면적을 부흥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후타바역을 새단장하고, 방치되고 있는 빈집 외벽에 벽화도 그려 넣었습니다.

역을 둘러싸고 가설 행정 청사와 기업을 유치하기 위한 산업단지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귀환 주민이 없으니 일자리라도 만들어 인구를 늘려보기 위해섭니다.

일본 정부와 피해지역의 자치단체는 주민들의 귀환을 촉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달라 보입니다. 역 인근에서조차 행인도, 편의시설도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아직 위험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취재진이 둘러본 소방지서 내부는 사고 당시 그대로이고, 인근 빈집에서는 방호복을 입은 작업자들이 제염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방사능 수치에 문제가 없다지만, 어떤 이유에서든지 '거주'라는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동일본대지진 11년. 후쿠시마 현지 취재를 하며 들었던 생각은 '끝나간다'라기보다는 '이대로라면 과연 끝이 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여기에 아직도 새로운 싸움이 남아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나온 오염수 방류를 1년 뒤로 예고하고, 준비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바닷가에서 기자와 만난 70대 주민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뜻밖에도 원전의 '폐로' 얘기까지 꺼냈습니다. "생전에 폐로 작업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며 "진짜 문제는 원전 내부에 남아 있는 '데브리(핵연료 찌꺼기)'"라는 겁니다.

실제로 최근 6개월 동안 후쿠시마를 두 차례 오가며 만난 여러 현지인들의 표정에서 아직 '재생'에 대한 희망을 찾아보기는 어려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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