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공 이후 20만 명 추산”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

입력 2022.03.15 (08:03) 수정 2022.03.1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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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스로 러시아를 떠나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유지되고 있고 러시아인이 비자 없이 출국할 수 있는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주요 목적지입니다.

조지아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입국한 러시아인이 2만 5천여 명이라고 밝혔고, 아르메니아 정부는 그 날 이후 러시아인 8만 명이 입국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핀란드에서도 지난달 러시아 입국자가 4만 4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7천 명 늘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콘스타틴 소닌 미국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침공 이후 열흘간 고국을 등진 러시아인이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만 명 러시아 떠나"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경찰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는 모습.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경찰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는 모습.

이들이 러시아를 떠난 이유는 푸틴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조지아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 활동을 돕는 예브게니 랴민도 그 중에 한 명입니다.

23살의 정치학도인 예브게니 랴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푸틴 정권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러시아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오른 안냐는 부부의 한달 급여가 넘는 비용을 내고 편도행 비행기표를 구입했습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면서 최고 20년 형에 처해질 수 있는 국가반역죄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BBC에 말했습니다. 그녀는 "스탈린 시대에 살았던 할머니가 내게 해줬던 공포국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면서 "폐쇄된 국경, 정치적 억압, 징집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러시아를 떠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북미 영공의 비행이 금지된 아에로플로트와 로시야 등 러시아 항공사 소속 여객기들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대기하는 모습.북미 영공의 비행이 금지된 아에로플로트와 로시야 등 러시아 항공사 소속 여객기들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대기하는 모습.

■ "젊은 IT기업 종사자가 상당수"

이렇게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젊은 IT산업 종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아로 탈출한 게임 개발자 이고르는 "우리가 푸틴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기술과 돈을 가지고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비슷한 결정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다국적 IT 회사의 직원인 비탈리는 회사의 지원으로 가족과 함께 터키로 탈출했습니다. 비탈리는 "공항 발권 창구에 수백명이 줄을 섰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습니다. "동료 한 명은 4천 유로를 지불하고 타슈켄트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내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은 목적지에 관계 없이 항공권을 구하려 애썼는데, 아르메니아로 가는 항공권을 사느라 현금과 모든 신용카드를 꺼내고 비트코인을 매매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출국 목적에 "휴가"라고 밝혔지만 비행기 안에는 후드티 차림에 노트북을 든 IT 종사자들이 많이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휴가라기보다는 마치 기술 컨벤션에 가려는 사람들처럼 보였다고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처럼 IT산업 종사자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이유로, 교육 수준이 높고 여러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 전세계의 다양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관영 매체만 남기고 다른 매체들을 차단했지만, IT 산업 종사자들은 기술 장벽을 넘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루블화의 가치 폭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금을 찾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러시아인들이 줄을 선 모습.루블화의 가치 폭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금을 찾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러시아인들이 줄을 선 모습.

■ "유능한 인재일수록 독재 싫어해"... 두뇌 유출 우려

이런 러시아 탈출 움직임이 두뇌 유출로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IT회사의 세금을 면제하고 종사자에게는 저리의 주택자금대출을 제공하는 반면, 출국할 때는 1만 달러 이상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인 올레그 이츠코키 미국 UCLA 교수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구의 제재조치로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의 러시아 탈출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푸틴이 집권한 이후 2019년까지 러시아를 떠난 사람이 200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창조산업 종사자나 기업가, 학자였다는 겁니다.

이츠코키 교수는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독재 체제에서 감시받고 인권을 제약받는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상황이 장기화하면 인재 유출은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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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공 이후 20만 명 추산” 러시아를 떠나는 사람들
    • 입력 2022-03-15 08:0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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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는 지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스스로 러시아를 떠나는 러시아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출발하는 항공편이 유지되고 있고 러시아인이 비자 없이 출국할 수 있는 터키,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랍에미리트 등이 주요 목적지입니다.

조지아 정부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월 24일 이후 입국한 러시아인이 2만 5천여 명이라고 밝혔고, 아르메니아 정부는 그 날 이후 러시아인 8만 명이 입국했다고 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육로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핀란드에서도 지난달 러시아 입국자가 4만 4천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만 7천 명 늘었습니다.

러시아 출신의 정치경제학자 콘스타틴 소닌 미국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는, 침공 이후 열흘간 고국을 등진 러시아인이 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습니다.

■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20만 명 러시아 떠나"

러시아 제2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경찰이 우크라이나 침공에 항의하는 반전 시위 참가자들을 체포하는 모습.
이들이 러시아를 떠난 이유는 푸틴 정부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조지아에서 우크라이나 난민 구호 활동을 돕는 예브게니 랴민도 그 중에 한 명입니다.

23살의 정치학도인 예브게니 랴민은 BBC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인들을 도울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는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푸틴 정권에 대항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러시아를 떠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스탄불행 비행기에 오른 안냐는 부부의 한달 급여가 넘는 비용을 내고 편도행 비행기표를 구입했습니다.

그녀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현하면서 최고 20년 형에 처해질 수 있는 국가반역죄가 위협적으로 느껴졌다고 BBC에 말했습니다. 그녀는 "스탈린 시대에 살았던 할머니가 내게 해줬던 공포국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면서 "폐쇄된 국경, 정치적 억압, 징집에 두려움을 느꼈다."고 러시아를 떠난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북미 영공의 비행이 금지된 아에로플로트와 로시야 등 러시아 항공사 소속 여객기들이 모스크바 셰레메티예보 국제공항에서 대기하는 모습.
■ "젊은 IT기업 종사자가 상당수"

이렇게 러시아를 떠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젊은 IT산업 종사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지아로 탈출한 게임 개발자 이고르는 "우리가 푸틴 정권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기술과 돈을 가지고 나라를 떠나는 것이었다."면서 "주변 사람들이 비슷한 결정을 했다."고 전했습니다

다국적 IT 회사의 직원인 비탈리는 회사의 지원으로 가족과 함께 터키로 탈출했습니다. 비탈리는 "공항 발권 창구에 수백명이 줄을 섰다."고 워싱턴포스트에 밝혔습니다. "동료 한 명은 4천 유로를 지불하고 타슈켄트행 항공권을 구입했다. 내 앞에 있는 어떤 사람은 목적지에 관계 없이 항공권을 구하려 애썼는데, 아르메니아로 가는 항공권을 사느라 현금과 모든 신용카드를 꺼내고 비트코인을 매매했다."고 전했습니다.

그는 회사가 시키는 대로 출국 목적에 "휴가"라고 밝혔지만 비행기 안에는 후드티 차림에 노트북을 든 IT 종사자들이 많이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휴가라기보다는 마치 기술 컨벤션에 가려는 사람들처럼 보였다고도 했습니다.

워싱턴포스트는 이처럼 IT산업 종사자들이 러시아를 떠나는 이유로, 교육 수준이 높고 여러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 전세계의 다양한 뉴스를 접하는 이들이라는 점을 꼽았습니다. 러시아 정부가 관영 매체만 남기고 다른 매체들을 차단했지만, IT 산업 종사자들은 기술 장벽을 넘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뉴스를 접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습니다.

루블화의 가치 폭락이 이어지는 가운데, 현금을 찾기 위해 현금자동인출기(ATM) 앞에 러시아인들이 줄을 선 모습.
■ "유능한 인재일수록 독재 싫어해"... 두뇌 유출 우려

이런 러시아 탈출 움직임이 두뇌 유출로 이어질 거란 전망도 나옵니다. 러시아는 그동안 자국 인재들의 해외 유출을 막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IT회사의 세금을 면제하고 종사자에게는 저리의 주택자금대출을 제공하는 반면, 출국할 때는 1만 달러 이상을 소지하지 못하도록 금지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출신 경제학자인 올레그 이츠코키 미국 UCLA 교수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서구의 제재조치로 교육 수준이 높은 중산층의 러시아 탈출이 가속화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푸틴이 집권한 이후 2019년까지 러시아를 떠난 사람이 200만 명에 이르렀는데, 이들 중 상당수가 창조산업 종사자나 기업가, 학자였다는 겁니다.

이츠코키 교수는 인사이더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받은 사람들은 독재 체제에서 감시받고 인권을 제약받는 생활을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상황이 장기화하면 인재 유출은 러시아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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