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적 근거 30년 전 판례 뿐… 인권위 “비의료인도 문신할 수 있어야”

입력 2022.03.16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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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연예인에게 문신 시술을 한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범죄화하지 않기 위해, 문신과 관련해 국회에 계류 중인 입법안들이 조속히 논의돼야 한다고 오늘(16일)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 오랜 기간 '의료 행위'로 규제된 문신…국민 10명 중 4명은 문신 경험자

우리나라는 문신 시술 행위를 '의료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눈썹 문신에 대해 의료법이 규율하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1992년 판단한 바 있습니다.

(눈썹 또는 속눈썹 문신이)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에게 사용한 문신용 침을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하면 이로 인하여 각종 질병이 전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어 '의료법'이 규율하고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대법원 1992.5.22 선고 92도 3219 판결 등)

이 때문에 국내에선 문신 시술은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만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비의료인이 문신 시술을 하면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이 돼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문신 시술이 점점 대중화돼가는 상황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8%는 문신이나 반영구 화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문신 시술자는 8천 7백여 명, 반영구화장 문신 시술자는 1만 8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 문신 자격 법제화 시도, 국내에서도 있었지만 성과 없어…현재도 계류 중

국내에서도 문신 자격을 법제화해 안전한 시술 행위를 보장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공중위생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문신사법안 등 여러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문신사법안, 타투업법안, 반영구화장문신사법안 등 6개의 법안이 있지만 모두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들은 명칭과 세부 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문신 시술 행위와 시술자의 개념을 정의하고, 시술자가 되기 위한 면허 사항, 문신업을 위한 신고사항, 이에 대한 지도·감독·벌칙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무면허자의 문신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과 안전관리 교육, 위생관리 의무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 해외 사례는?…"이미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

인권위는 해외 사례를 따져봐도, 문신이 이미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문신과 관련한 규제를 다루는 법안은 없지만, 주 정부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는 문신과 반영구화장 문신 면허제도(license)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문신 시술업을 수행하기 위해 시술자가 각 지역에 있는 지방보건청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고 시 위생교육 수료증을 제출해야 합니다.

태국은 문신이나 피어싱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1) 건전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호흡기 질환이나 반발성 피부질환이 없고, 2) 매년 신체 검진을 통해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C형 결핵 등 질환이 없다는 의사 증명서를 소지하고, 3) 항간염 및 폐기물 관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비의료인의 시술 행위를 처벌해왔지만 2년 전 비범죄화를 결정했습니다. 2020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문신 시술 행위가 오로지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사회의 수용도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위는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보면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문신 시술사의 자격제도와 영업상의 규제로 관리할 뿐,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 인권위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타투이스트 김도윤 씨 "환영"

인권위는 이 문제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개성 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신 시술이 인체에 대한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수행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이어, 사회현실과 법 제도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 빨리 국회에서 조속한 입법 논의와 검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지회장으로 활동하는 김도윤 씨는 인권위의 의견 표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 씨는 "너무나 상식적"이라며 "의료단체에서 반대하는 게 실질적인 소비자 권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읽힌다"고 KBS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김 씨는 또 "인권위 권고를 기점 삼아 입법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사법부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일본처럼 입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김 씨는 지난해 말 나온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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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적 근거 30년 전 판례 뿐… 인권위 “비의료인도 문신할 수 있어야”
    • 입력 2022-03-16 13:49:42
    취재K

지난해 말 연예인에게 문신 시술을 한 타투이스트 김도윤 씨가 무면허 의료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1심에서 벌금 5백만 원을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현실을 외면한 판결'이라는 비판도 있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이 같은 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범죄화하지 않기 위해, 문신과 관련해 국회에 계류 중인 입법안들이 조속히 논의돼야 한다고 오늘(16일) 입장을 표명했습니다.


■ 오랜 기간 '의료 행위'로 규제된 문신…국민 10명 중 4명은 문신 경험자

우리나라는 문신 시술 행위를 '의료행위'로 보고 있습니다. 대법원은 눈썹 문신에 대해 의료법이 규율하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1992년 판단한 바 있습니다.

(눈썹 또는 속눈썹 문신이) 진피에 색소가 주입될 가능성이 없다고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또 한 사람에게 사용한 문신용 침을 다른 사람에게도 사용하면 이로 인하여 각종 질병이 전염될 우려가 있기 때문에 보건위생상 위해 우려가 있어 '의료법'이 규율하고 있는 의료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

(대법원 1992.5.22 선고 92도 3219 판결 등)

이 때문에 국내에선 문신 시술은 의사면허를 가진 사람만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비의료인이 문신 시술을 하면 의료법과 보건범죄단속법 위반이 돼 형사처벌 대상이 됩니다.

하지만 문신 시술이 점점 대중화돼가는 상황에서,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건 과도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돼 왔습니다.

2019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8%는 문신이나 반영구 화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국내 문신 시술자는 8천 7백여 명, 반영구화장 문신 시술자는 1만 8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 문신 자격 법제화 시도, 국내에서도 있었지만 성과 없어…현재도 계류 중

국내에서도 문신 자격을 법제화해 안전한 시술 행위를 보장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있었습니다. 17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공중위생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 문신사법안 등 여러 법안이 의원입법으로 발의됐지만 모두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습니다.

현재 21대 국회에는 문신사법안, 타투업법안, 반영구화장문신사법안 등 6개의 법안이 있지만 모두 계류 중입니다. 이 법안들은 명칭과 세부 사항은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문신 시술 행위와 시술자의 개념을 정의하고, 시술자가 되기 위한 면허 사항, 문신업을 위한 신고사항, 이에 대한 지도·감독·벌칙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무면허자의 문신 행위를 금지하는 내용과 안전관리 교육, 위생관리 의무 등도 포함돼 있습니다.



■ 해외 사례는?…"이미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

인권위는 해외 사례를 따져봐도, 문신이 이미 국제사회에서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고 있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은 연방 차원에서 문신과 관련한 규제를 다루는 법안은 없지만, 주 정부에서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주는 문신과 반영구화장 문신 면허제도(license)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프랑스는 문신 시술업을 수행하기 위해 시술자가 각 지역에 있는 지방보건청에 신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신고 시 위생교육 수료증을 제출해야 합니다.

태국은 문신이나 피어싱 서비스에 종사하는 사람은 1) 건전한 건강 상태를 유지하고 호흡기 질환이나 반발성 피부질환이 없고, 2) 매년 신체 검진을 통해 B형 간염이나 C형 간염, C형 결핵 등 질환이 없다는 의사 증명서를 소지하고, 3) 항간염 및 폐기물 관리에 대한 충분한 지식 있을 것을 요구합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비의료인의 시술 행위를 처벌해왔지만 2년 전 비범죄화를 결정했습니다. 2020년 9월 일본 최고재판소는 문신 시술 행위가 오로지 의사만이 수행할 수 있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하면서, 사회의 수용도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인권위는 이 같은 해외 사례를 보면 "나라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의료인의 문신 시술을 문신 시술사의 자격제도와 영업상의 규제로 관리할 뿐, 비의료인의 의료행위로 접근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 인권위 "직업선택의 자유 침해"…타투이스트 김도윤 씨 "환영"

인권위는 이 문제가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선택의 자유와 행복추구권에서 파생하는 개성 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밝혔습니다. 문신 시술이 인체에 대한 위험이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의사면허를 취득한 사람만이 수행할 정도라고 보기 어렵다고도 지적했습니다.

인권위는 이어, 사회현실과 법 제도의 괴리를 해소하기 위해 하루 빨리 국회에서 조속한 입법 논의와 검토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타투이스트이자 타투유니온 지회장으로 활동하는 김도윤 씨는 인권위의 의견 표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김 씨는 "너무나 상식적"이라며 "의료단체에서 반대하는 게 실질적인 소비자 권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읽힌다"고 KBS 취재진에게 말했습니다.

김 씨는 또 "인권위 권고를 기점 삼아 입법을 최대한 빨리 준비해서, 사법부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을 때 일본처럼 입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김 씨는 지난해 말 나온 1심 판결에 대해 항소하고,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청구한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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