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새 정부도 경찰 ‘세평’으로 인사검증?…경찰 권한 남용 우려도

입력 2022.03.17 (07:00) 수정 2022.03.17 (09:03)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윤석열 당선인 측이 민정실을 없애고, 공직자 인사검증은 법무부·경찰에 맡기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재 법무부에는 인사검증 기능이 없습니다. 새롭게 부서를 만든다고 해도 검증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인사검증에서 경찰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보경찰 개혁'을 시도했지만, 인사검증 부분에서는 오히려 정보경찰에 더 의존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치 개입의 원죄'가 있는 정보경찰에 인사검증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정보경찰의 인사검증은 어떻게 이뤄지고,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습니다.


■ 검증 핵심은 세평 수집…업무 태도, 국회·언론과의 관계 등 담겨

청와대에서 검증 요청이 오면, 경찰청 정보국은 해당 공직자 소속 부처를 담당하는 정보관들에게 검증 지시를 내립니다.

정보관들은 이른바 '세평' 수집에 나섭니다. 수집 대상은 해당 공직자와 함께 일했던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입니다. '업무 태도나 이해도가 어떠한지' '업무 지시는 적절했는지' '국회나 언론과의 관계' 등을 파악하는 겁니다. 전국 곳곳에 3천여 명의 정보관들이 포진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수집된 세평 등을 취합해 보고서를 실제 쓰는 곳은 정보국 정보분석과입니다. 보고서는 보통 1~2페이지 분량이라고 합니다. 기본 신상 정보에 세평과 특이사항 등이 담깁니다. 특이사항에는 술버릇이나 주량, 습관 등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보고서가 세평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 했던 복무점검 자료나 언론 보도 등도 참고한다"고 전했습니다. 복무점검이란 공직자가 청와대의 국정운영 방향대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 또한 정보경찰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보고서 초안이 나오면, 과장과 국장 등이 이른바 '데스킹', 감수를 합니다. 이때 전체적인 분위기나 수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보고서는 청와대에 전달됩니다.


■ 세평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출처 검증도 쉽지 않아

문제는 보고서의 핵심을 이루는 세평이 과연 객관적이고 정확한지 여부입니다. 정보관들은 한 부처를 오래 담당하면서 쌓은 친분 관계를 활용해 세평을 수집한다고 합니다.

① 그러나 만약 질문을 받은 사람이 검증 대상자와 개인적인 관계가 나쁠 때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험담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좁은 공직 사회에서 부하 직원에게 상급자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② 검찰 등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부처는 특히 세평 수집이 어렵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보관은 계급이 높지 않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사람에 한계가 있다"며 "정보가 과연 정확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③정보관 숫자와 비교하면 검증 인원이 너무 많을 때도 있습니다. 정기 인사를 앞두면 사법 연수원이나 행정고시 특정 기수에 대한 인사검증이 한꺼번에 내려오는데, 부처별로 한 두 명인 정보관이 맡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한 정보관은 한 번에 60명까지 해봤다고도 했습니다.

④ '정치 외풍'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찰이 청와대가 사실상 낙점한 인사에 대해 철저히 검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대상에 따라 검증 방법과 기간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검증 절차에 관한 규정은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세평인 경우,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대상자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 한, 변명의 기회나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 '정치 개입·불법 사찰' 오명에 악용 우려도 여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경찰의 정치 개입과 불법 사찰 등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겁니다.정보경찰은 지난 정부에서 '권력의 촉수' 역할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정보경찰을 이용해 친박근혜계 의원을 위한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 대책을 수립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정보경찰이 조직적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댓글을 다는 등 '사이버 여론전'을 수행했고, 당시 경찰청장은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며, 인사검증 기능은 인사혁신처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습니다. 경찰의 정보 수집 범위가 모호한 데다, 악용 가능성도 여전하다는 겁니다.

정보경찰 개혁 과정에서 정보 수집 범위가 '치안정보'에서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로 바뀌었지만, 모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은 직무 관련 정보에 집중한다지만, 술버릇이나 국회·언론 관계 등이 직무 정보인지 의문입니다.

참여연대는 " 정보경찰을 존치 시키는 한, 언제든지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권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가공하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경찰 검증보고서, '크로스체크' 할 수 있어야

윤 당선인 측이 인사검증 제도에 어떤 변화를 줄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보경찰의 인사검증 보고서를 '크로스체크'(교차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강구될 필요는 있습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그런 역할을 했지만,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한 여러 문제점이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 후보자가 낙마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경찰의 인사검증에 법률적 근거가 취약한 부분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명확한 규정 없이 청와대에 대한 업무 협조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분석] 새 정부도 경찰 ‘세평’으로 인사검증?…경찰 권한 남용 우려도
    • 입력 2022-03-17 07:00:24
    • 수정2022-03-17 09:03:47
    취재K

윤석열 당선인 측이 민정실을 없애고, 공직자 인사검증은 법무부·경찰에 맡기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현재 법무부에는 인사검증 기능이 없습니다. 새롭게 부서를 만든다고 해도 검증 노하우를 축적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인사검증에서 경찰의 역할이 더 커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정보경찰 개혁'을 시도했지만, 인사검증 부분에서는 오히려 정보경찰에 더 의존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정치 개입의 원죄'가 있는 정보경찰에 인사검증을 맡겨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줄곧 제기돼 왔습니다. 정보경찰의 인사검증은 어떻게 이뤄지고, 무엇이 문제인지 분석했습니다.


■ 검증 핵심은 세평 수집…업무 태도, 국회·언론과의 관계 등 담겨

청와대에서 검증 요청이 오면, 경찰청 정보국은 해당 공직자 소속 부처를 담당하는 정보관들에게 검증 지시를 내립니다.

정보관들은 이른바 '세평' 수집에 나섭니다. 수집 대상은 해당 공직자와 함께 일했던 부하 직원이나 동료들입니다. '업무 태도나 이해도가 어떠한지' '업무 지시는 적절했는지' '국회나 언론과의 관계' 등을 파악하는 겁니다. 전국 곳곳에 3천여 명의 정보관들이 포진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이렇게 수집된 세평 등을 취합해 보고서를 실제 쓰는 곳은 정보국 정보분석과입니다. 보고서는 보통 1~2페이지 분량이라고 합니다. 기본 신상 정보에 세평과 특이사항 등이 담깁니다. 특이사항에는 술버릇이나 주량, 습관 등이 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보고서가 세평에만 의존하는 건 아닙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에 했던 복무점검 자료나 언론 보도 등도 참고한다"고 전했습니다. 복무점검이란 공직자가 청와대의 국정운영 방향대로 정책을 집행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으로, 이 또한 정보경찰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보고서 초안이 나오면, 과장과 국장 등이 이른바 '데스킹', 감수를 합니다. 이때 전체적인 분위기나 수위를 조절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완성된 보고서는 청와대에 전달됩니다.


■ 세평은 얼마나 객관적인가? 출처 검증도 쉽지 않아

문제는 보고서의 핵심을 이루는 세평이 과연 객관적이고 정확한지 여부입니다. 정보관들은 한 부처를 오래 담당하면서 쌓은 친분 관계를 활용해 세평을 수집한다고 합니다.

① 그러나 만약 질문을 받은 사람이 검증 대상자와 개인적인 관계가 나쁠 때는 사실과 다르거나 과장된 험담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좁은 공직 사회에서 부하 직원에게 상급자에 대한 솔직한 평가를 듣기는 어렵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② 검찰 등 상대적으로 문턱이 높은 부처는 특히 세평 수집이 어렵습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정보관은 계급이 높지 않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사람에 한계가 있다"며 "정보가 과연 정확하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③정보관 숫자와 비교하면 검증 인원이 너무 많을 때도 있습니다. 정기 인사를 앞두면 사법 연수원이나 행정고시 특정 기수에 대한 인사검증이 한꺼번에 내려오는데, 부처별로 한 두 명인 정보관이 맡아야 하는 실정입니다. 한 정보관은 한 번에 60명까지 해봤다고도 했습니다.

④ '정치 외풍'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경찰이 청와대가 사실상 낙점한 인사에 대해 철저히 검증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도 제기됩니다. 대상에 따라 검증 방법과 기간이 천차만별일 수 있습니다. 검증 절차에 관한 규정은 비공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세평인 경우, 청와대 인사검증팀이 대상자에게 해명을 요구하지 않는 한, 변명의 기회나 잘못된 사실을 바로잡을 기회도 없는 게 현실입니다.


■ '정치 개입·불법 사찰' 오명에 악용 우려도 여전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보경찰의 정치 개입과 불법 사찰 등 권한 남용에 대한 우려가 여전하다는 겁니다.정보경찰은 지난 정부에서 '권력의 촉수' 역할을 해온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강신명 전 경찰청장은 2016년 20대 총선 당시, 정보경찰을 이용해 친박근혜계 의원을 위한 선거 정보를 수집하고, 선거 대책을 수립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는 정보경찰이 조직적으로 정부에 우호적인 댓글을 다는 등 '사이버 여론전'을 수행했고, 당시 경찰청장은 유죄를 선고받았습니다.

시민단체들 사이에서는 정보경찰 폐지를 요구하며, 인사검증 기능은 인사혁신처 등으로 이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습니다. 경찰의 정보 수집 범위가 모호한 데다, 악용 가능성도 여전하다는 겁니다.

정보경찰 개혁 과정에서 정보 수집 범위가 '치안정보'에서 ‘공공안녕에 대한 위험의 예방과 대응을 위한 정보'로 바뀌었지만, 모호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경찰은 직무 관련 정보에 집중한다지만, 술버릇이나 국회·언론 관계 등이 직무 정보인지 의문입니다.

참여연대는 " 정보경찰을 존치 시키는 한, 언제든지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권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가공하여 통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습니다.


■ 경찰 검증보고서, '크로스체크' 할 수 있어야

윤 당선인 측이 인사검증 제도에 어떤 변화를 줄지 아직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다만, 정보경찰의 인사검증 보고서를 '크로스체크'(교차 검증)할 수 있는 수단이 강구될 필요는 있습니다.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이 그런 역할을 했지만, 검증 과정에서 확인하지 못한 여러 문제점이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나 후보자가 낙마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경찰의 인사검증에 법률적 근거가 취약한 부분도 개선이 필요합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명확한 규정 없이 청와대에 대한 업무 협조로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