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서방, UAE·사우디 설득할 수 있을까…중동 산유국 속내는?
입력 2022.03.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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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스 존슨 총리는 3월 16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각각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났습니다.
존슨 총리는 이에 앞서 기고문을 통해 "세계가 러시아 석유와 가스 의존에서 벗어난다면 푸틴 대통령의 돈줄을 끊고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서방 국가들이 오히려 경제 관계를 강화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대안으로 친환경 에너지를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불가능한만큼 존슨 총리는 사우디와 UAE를 방문해 증산 설득에 나섰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와 가스 시설 [출처 : 사우디 아람코, 2018]](/data/fckeditor/new/image/2022/03/18/292471647507989391.jpg)
■ 산유국 UAE·사우디, '원유 증산' 서방 요청에 부정적
UAE와 사우디는 현재 하루 천 3백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데,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 중에서도 원유 증산 능력을 갖춘 국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국을 포함한 시장은 두 국가의 원유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두 국가는 현재 OPEC+가 합의한 양 이상의 증산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OPEC+는 지난해 8월부터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는 존슨 총리와 두 산유국의 회담 결과로도 이어졌습니다.
회담 직후 사우디 정부의 발표문에는 증산에 관한 언급이 없었고, 존슨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우디도 국제 석유와 가스 시장 안정을 보장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고만 답했습니다. UAE 또한 회담 관련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 유지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우디와 UAE는 이에 앞서 미국의 원유 증산 요청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최근 몇 주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산 에너지 전면 금지라는 초강경 제재를 내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향후 셈법이 쉽지 않아진 셈입니다.
■ 사우디-미국 어긋난 관계가 영향
사우디가 이처럼 서방 국가들의 잇따른 증산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건, 사우디와 미국 간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같은 관계는 2018년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점, 그리고 사우디의 인권 문제 등을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줄곧 비판해 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미국이 이란 핵 합의 복원 시도에 나서면서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UAE도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미국에 최근 불만인 모양새입니다. 지난 1월 후티 반군이 아부다비 등에 미사일 공격을 했는데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UAE는 이달 초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결의한 표결 때 기권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관계 악화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중동 지역 최대 동맹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친중 행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가 중국에 원유를 수출할 때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중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에 대한 사우디의 실망이 커지면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사우디는 오직 달러만 받고 원유를 수출해 왔는데, 중국과 위안화 결제 협상이 성사되면 국제 원유 시장에서의 달러 지배력은 약해질 수 있으며 이는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가 시작하면 다른 국가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 美, 카타르 '주요 非나토 동맹국' 지정…사우디에 메시지?
이런 가운데 미국이 카타르의 입지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시그널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3월 10일 중동의 카타르를 주요 비(非) 나토 동맹국(Major non-NATO) ally/MNNA)로 지정했습니다.
MNNA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 가까운 동맹국입니다. 한국도 포함되어 있으며 걸프국 중에서는 바레인과 쿠웨이트에 이어 카타르가 세 번째입니다. 중동 전체로 보면 이집트와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수출국 중 하나인만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거진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조치인 동시에 최근 관계가 어긋나고 있는 사우디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분석입니다.
이 조치로 카타르는 다양한 이점을 누리게 됩니다.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 적용에서 제외돼 미국 군사 기술에 먼저 접근할 수 있고, 미국과 함께 방어 장비, 군수품 연구 개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카타르와 미국이 안보 분야에서 더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겁니다. 중동 내 카타르 입지도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사우디에 미국이 '견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카타르는 2017년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국가들로부터 '단교'를 당한 바 있으며, 최근 재수교 등 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이전의 형제국 같은 관계는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카타르에 힘을 실어준 건 사우디에 하나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
중동 산유국들의 복잡한 셈법에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에너지 공급원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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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3-18 09:07:54

보리스 존슨 총리는 3월 16일, 아랍에미리트(UAE)와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해 각각 무함마드 빈 자예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와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만났습니다.
존슨 총리는 이에 앞서 기고문을 통해 "세계가 러시아 석유와 가스 의존에서 벗어난다면 푸틴 대통령의 돈줄을 끊고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지난 2014년 푸틴 대통령의 크림반도 합병 당시 서방 국가들이 오히려 경제 관계를 강화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의 대안으로 친환경 에너지를 거론했습니다. 하지만, 당장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은 불가능한만큼 존슨 총리는 사우디와 UAE를 방문해 증산 설득에 나섰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와 가스 시설 [출처 : 사우디 아람코, 2018]](/data/fckeditor/new/image/2022/03/18/292471647507989391.jpg)
■ 산유국 UAE·사우디, '원유 증산' 서방 요청에 부정적
UAE와 사우디는 현재 하루 천 3백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하고 있는데, OPEC(석유수출국기구) 회원국들 중에서도 원유 증산 능력을 갖춘 국가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때문에 영국을 포함한 시장은 두 국가의 원유 정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지만, 두 국가는 현재 OPEC+가 합의한 양 이상의 증산에는 부정적인 입장입니다. OPEC+는 지난해 8월부터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한 바 있습니다.
이같은 분위기는 존슨 총리와 두 산유국의 회담 결과로도 이어졌습니다.
회담 직후 사우디 정부의 발표문에는 증산에 관한 언급이 없었고, 존슨 총리는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우디도 국제 석유와 가스 시장 안정을 보장할 필요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본다"고만 답했습니다. UAE 또한 회담 관련 현지 언론 보도를 통해 '글로벌 에너지 안정성과 에너지 안보 유지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했다"고 전했습니다.
사우디와 UAE는 이에 앞서 미국의 원유 증산 요청도 단번에 거절했습니다. 미국 언론들은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와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최근 몇 주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 요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했습니다.
러시아산 에너지 전면 금지라는 초강경 제재를 내놓은 미국의 입장에서는 향후 셈법이 쉽지 않아진 셈입니다.
■ 사우디-미국 어긋난 관계가 영향
사우디가 이처럼 서방 국가들의 잇따른 증산 요구에도 꿈쩍하지 않는 건, 사우디와 미국 간 관계가 좋지 않다는 점이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입니다.
이같은 관계는 2018년 터키 주재 사우디 영사관에서 살해된 사우디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사건 배후에 빈 살만 왕세자가 있다는 점, 그리고 사우디의 인권 문제 등을 미국 바이든 행정부가 줄곧 비판해 왔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또 미국이 이란 핵 합의 복원 시도에 나서면서 갈등 수위가 높아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UAE도 예멘 후티 반군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는 미국에 최근 불만인 모양새입니다. 지난 1월 후티 반군이 아부다비 등에 미사일 공격을 했는데도 미국이 도와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UAE는 이달 초 러시아를 규탄하는 유엔 결의한 표결 때 기권표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관계 악화는 전통적으로 미국의 중동 지역 최대 동맹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친중 행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사우디가 중국에 원유를 수출할 때 달러가 아닌 위안화로 결제하는 방안을 중국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최근 들어 미국의 안보 보장 약속에 대한 사우디의 실망이 커지면서 급격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겁니다.
그동안 사우디는 오직 달러만 받고 원유를 수출해 왔는데, 중국과 위안화 결제 협상이 성사되면 국제 원유 시장에서의 달러 지배력은 약해질 수 있으며 이는 상당한 파급 효과를 낳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우디가 시작하면 다른 국가들도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다만 사우디가 실제로 실행할지에 대해서는 전망이 엇갈립니다.

■ 美, 카타르 '주요 非나토 동맹국' 지정…사우디에 메시지?
이런 가운데 미국이 카타르의 입지 확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시그널도 나오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난 3월 10일 중동의 카타르를 주요 비(非) 나토 동맹국(Major non-NATO) ally/MNNA)로 지정했습니다.
MNNA는 북대서양조약기구, 즉 나토(NATO)에는 가입하지 않았지만,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맺는 가까운 동맹국입니다. 한국도 포함되어 있으며 걸프국 중에서는 바레인과 쿠웨이트에 이어 카타르가 세 번째입니다. 중동 전체로 보면 이집트와 이스라엘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카타르는 세계 최대 액화천연가스(LNG)수출국 중 하나인만큼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불거진 유럽의 에너지 위기에 대비한 조치인 동시에 최근 관계가 어긋나고 있는 사우디에 보내는 메시지라는 분석입니다.
이 조치로 카타르는 다양한 이점을 누리게 됩니다.
미국의 무기수출통제법 적용에서 제외돼 미국 군사 기술에 먼저 접근할 수 있고, 미국과 함께 방어 장비, 군수품 연구 개발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카타르와 미국이 안보 분야에서 더 긴밀하게 협력한다는 겁니다. 중동 내 카타르 입지도 크게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때문에 사우디에 미국이 '견제'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카타르는 2017년 사우디를 포함한 걸프국가들로부터 '단교'를 당한 바 있으며, 최근 재수교 등 관계 복원에 나섰지만, 이전의 형제국 같은 관계는 복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이 카타르에 힘을 실어준 건 사우디에 하나의 '메시지'로 읽힐 수 있습니다.
중동 산유국들의 복잡한 셈법에 미국과 유럽 등 서방의 에너지 공급원 찾기는 생각보다 쉽지 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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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경 기자 swoo@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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