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S와 리어카]② 진통제 먹으며 일하는 노인들

입력 2022.03.22 (07:00) 수정 2022.04.28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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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우리는 매일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마주친다.
하지만 이런 노인들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는지,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

이에 KBS가 국내 언론 최초로 폐지수집 노동의 실태를 분석했다.리어카에 GPS를 부착해 노인들의 노동시간과 이동거리를 기록했고, 폐지수집 노동의 실태를 분석했다.


리어카에 GPS를 부착하니, 노인들의 폐지 수집 노동이 아래와 같이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 제1 특성. 긴 이동 거리, 긴 노동시간

“할아버지 안 추우세요?”

지난해 12월, 동대구역 앞에서 문창기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그는 달랑 체크무늬 셔츠만 입고 있었다. 수레를 끌고 한나절 동네를 돌아다니면, 칼바람 부는 날에도 등에서 땀이 난다 했다. 올해 75살, 이 일을 시작한 지는 5년째다.

문창기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 얇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문창기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 얇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
왜 폐지를 줍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목수로 일했다. 30년간 이어온 목수 일을 마치고, 남은 노년을 편히 보내려고 할 때 그만 식도암에 걸렸다. 할아버지는 가입된 암 보험이 없었다. 결국, 모아둔 돈을 모두 치료비로 썼다. 힘든 치료 도중 아내와도 사별했다.

식도를 전부 들어내자, 수중에 남은 돈이 모두 사라졌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작은 손수레를 끌게 됐다.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 무거운 리어카 끄는 건 엄두를 못 냈다.

문창기/75살, (2016년부터 폐지수집)

“글도 모르고, 초등학교도 안 나왔어요. 1학년 다니다가 다리를 다쳐 버려가지고, 학교를 못 다녔어요.”

할아버지는 글을 못 읽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복지 정책 수혜자에 해당하는지 잘 몰랐다. 할아버지는 매달 기초연금 30만 원과 폐지를 수집해 판 돈 20만 원 남짓으로 살았다. 지금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부지런히 폐지 줍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에게 GPS를 채워드린 뒤, 함께 골목을 돌아다녔다. 원룸촌 뒷골목에는 전봇대마다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할아버지는 이 중에 폐지와 플라스틱, 고철을 수레에 골라 담았다.

주택가 골목은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로 넘쳐났다.주택가 골목은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로 넘쳐났다.
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과 원룸이 밀집한 주택가는 주 3회 구청과 계약한 쓰레기 수거 업체가 쓰레기를 수거해갔다. 분리수거함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탓에, 골목에는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버려졌다. 이곳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일종의 ‘1차 재활용’ 업무를 맡고 있었다.

기자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끝이 없네요."
문창기 할아버지 "어휴, 감당도 못 해요. 전부 분리수거 안 한다고 봐야지..."

하루 몇 시간 일하시느냐 물었다. 할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다 하루 7시간 정도 일한다고 대답했다. 또 수레를 끌고 4km 정도 걷는다고 말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노동 시간과 거리였다. GPS가 측정한 실제 데이터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기자가 할아버지와 잠깐 동행한 이 날. 할아버지는 폐지를 팔아 9천 원을 손에 쥐었다. 고물상에서 나오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졌다.

할아버지는 아플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프면 ‘돈 주우러 못 다니니까’ 그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아팠다. 75살 노인의 육체로 100kg 무게의 수레를 끌고 다니니 아플 수밖에.

문창기 할아버지
"어떡합니까. 진통제 먹고 일해야지. 먹고 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회사로 돌아왔다. 다음날 노트북을 켜고, GPS 정보를 확인했다. 문창기 할아버지는 어제 하루 새벽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그다음 6시부터 밤 11시 50분까지 일했다. 무려 15시간 동안 거리에서 폐지를 주운 것이다.

좌표가 찍힌 이동 거리는 16,970m, 무려 17km였다. 할아버지 당신이 생각했던 노동 양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 노인 열 명의 GPS 정보를 통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특성. 노인들은 많이 걸었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하루 평균 13km를 걸었다. 매일 축구장 45바퀴를 걷은 셈이다. 무려 26km를 걸은 노인도 있었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1. 긴 이동거리, 긴 노동시간.폐지수집 노동 특성1. 긴 이동거리, 긴 노동시간.
또 오랫동안 일했다. 하루 평균 11시간 20분을 일 한 것이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 다른 노인은 일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 나 빠졌다고 말했다.

김운식(74세)/2020년부터 폐지수집

“내가 이 동네를 하루에 3번 정도 돌아요. 그러니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고, 폐지 줍느라 엎드리니까 허리가 아프고, 리어카 끌어서 어깨가 아파요. 그래서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는데, 살이 쪽쪽 빠지고 피곤해. 나는 1년 만에 몸무게가 54kg에서 44kg으로 줄었어.”

모두 돈 때문이었다. 가난한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 제2 특성. 취약시간 노동

살을 에는 찬바람에 이가 덜덜 떨린다. 1월의 새벽은 너무 추웠다. 우리는 김은숙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새벽 4시에 회사에서 나섰다. GPS가 매일 새벽 5시부터 작동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일터는 대구 서문시장이다. 영남권 최대 규모의 시장이자,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찾아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 그러나 역시 새벽에는 적막하다. 올해 77살 김은숙 할머니는 혼자 이곳을 떠돈다.

김은숙(77살)/2016년부터 폐지 수집

“새벽에요? 전에는 4시 30분 되면 나오고, 요즘에는 조금 추워서, 5시 되면 나오고 이래요. 안 그러면 폐지가 없어.”

남들보다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 새벽부터 일한다고 했다. 작고 연약한 할머니는 목장갑 낀 손으로 시장 바닥에 떨어진 폐지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주웠다. 컴컴한 시장에 할머니 혼자 일 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정작 할머니는 기분이 좋다고 했다.

기자 “아침에 일찍 나오시면 어떠신가요?”
김은숙 할머니 “이 천지가 내 것 같지. 아무도 없잖아. 춤을 추니 누가 뭐라고 하나, 다리를 드니 뭐라고 하나. 낮에는 말이 많아요.”



할머니가 시장에 나온 지 3시간이 더 지나서야, 시장은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시장 상인들이 무심한 듯 종이 박스를 거리에 툭툭 던졌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계속 박스를 주웠다. (할머니는 버려진 박스를 가져가는 대가로 시장 상인의 잔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게 앞 청소와 물건 정리 등.)

할머니의 남편은 다른 곳에서 폐지를 주웠다. 부부는 폐지를 주워 손자를 길렀다.

김은숙 할머니
“내가 폐지를 주워서 손자를 키웠거든요. 안 해야 하는데 아직도 한다.”

할머니는 매일 집에서 울었다. 생활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서 운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폐지 주우러 나가고 없을 때 화장실에 가서 몰래 눈물을 흘렸다.

화장실은 김은숙 할머니의 유일한 쉼터다.화장실은 김은숙 할머니의 유일한 쉼터다.
김은숙 할머니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지. 내가 살아온 게 슬프니까. 아이고... 나는 왜 이러노. 천지 사랑이라고 받아봤나. 일은 황소같이 하고, 배는 배대로 쫄쫄 굶고... 그래도 밖에 나오면 절대 그런 표현 안 합니다. 웃고 사니 사람들은 나보고 힘을 얻는다 하는데, 내 속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거지.”

오후 6시가 되자, 시장 상인들이 장을 정리했다. 손님들도 모두 빠져나갔다. 또다시 시장에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할머니는 장이 끝난 뒤 나온 폐지를 주웠다.

김은숙 할머니
“힘들지, 너무 힘들지. 나오기 싫지. 그래도 나와야지. 어디 가서 손 내밀고 살 수는 없잖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77살 노인의 육체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이날 할머니는 꼬박 14시간을 일했다. 오후 8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 2. 취약시간 노동.폐지수집 노동 특성 2. 취약시간 노동.
GPS를 통해 알 수 있었던 폐지 수집 노동의 두 번째 특성. 노인들은 모두 취약시간이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서였다. 무려 새벽 3시, 4시부터 폐지를 줍는 노인도 있었다. 그리고 종일 꼬박 폐지만 줍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 노인도 있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GPS 정보를 활용한 폐지수집 특성 소개, 내일 기사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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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PS와 리어카]② 진통제 먹으며 일하는 노인들
    • 입력 2022-03-22 07:00:09
    • 수정2022-04-28 19:55:31
    취재K
우리는 매일 거리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을 마주친다.<br />하지만 이런 노인들이 우리나라에 몇 명이나 있는지, 이들의 삶은 어떠한지 알 수 있는 자료는 없었다.<br /><br />이에 KBS가 국내 언론 최초로 폐지수집 노동의 실태를 분석했다.리어카에 GPS를 부착해 노인들의 노동시간과 이동거리를 기록했고, 폐지수집 노동의 실태를 분석했다.<br />

리어카에 GPS를 부착하니, 노인들의 폐지 수집 노동이 아래와 같이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 제1 특성. 긴 이동 거리, 긴 노동시간

“할아버지 안 추우세요?”

지난해 12월, 동대구역 앞에서 문창기 할아버지를 처음 만난 날, 그는 달랑 체크무늬 셔츠만 입고 있었다. 수레를 끌고 한나절 동네를 돌아다니면, 칼바람 부는 날에도 등에서 땀이 난다 했다. 올해 75살, 이 일을 시작한 지는 5년째다.

문창기 할아버지는 추운 겨울 얇은 셔츠만 입고 있었다.왜 폐지를 줍는 것일까.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 목수로 일했다. 30년간 이어온 목수 일을 마치고, 남은 노년을 편히 보내려고 할 때 그만 식도암에 걸렸다. 할아버지는 가입된 암 보험이 없었다. 결국, 모아둔 돈을 모두 치료비로 썼다. 힘든 치료 도중 아내와도 사별했다.

식도를 전부 들어내자, 수중에 남은 돈이 모두 사라졌다. 당장 먹고 살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작은 손수레를 끌게 됐다. 당장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힘이 없어 무거운 리어카 끄는 건 엄두를 못 냈다.

문창기/75살, (2016년부터 폐지수집)

“글도 모르고, 초등학교도 안 나왔어요. 1학년 다니다가 다리를 다쳐 버려가지고, 학교를 못 다녔어요.”

할아버지는 글을 못 읽었다. 그래서 자신이 어떤 복지 정책 수혜자에 해당하는지 잘 몰랐다. 할아버지는 매달 기초연금 30만 원과 폐지를 수집해 판 돈 20만 원 남짓으로 살았다. 지금 할아버지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부지런히 폐지 줍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에게 GPS를 채워드린 뒤, 함께 골목을 돌아다녔다. 원룸촌 뒷골목에는 전봇대마다 쓰레기가 한가득 쌓여있었다. 할아버지는 이 중에 폐지와 플라스틱, 고철을 수레에 골라 담았다.

주택가 골목은 분리수거되지 않은 쓰레기들로 넘쳐났다.아파트와 달리, 단독주택과 원룸이 밀집한 주택가는 주 3회 구청과 계약한 쓰레기 수거 업체가 쓰레기를 수거해갔다. 분리수거함도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탓에, 골목에는 쓰레기가 무분별하게 버려졌다. 이곳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은 일종의 ‘1차 재활용’ 업무를 맡고 있었다.

기자 "치워도, 치워도 쓰레기가 끝이 없네요."
문창기 할아버지 "어휴, 감당도 못 해요. 전부 분리수거 안 한다고 봐야지..."

하루 몇 시간 일하시느냐 물었다. 할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다 하루 7시간 정도 일한다고 대답했다. 또 수레를 끌고 4km 정도 걷는다고 말했다.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은 노동 시간과 거리였다. GPS가 측정한 실제 데이터와 비교해보고 싶었다.

기자가 할아버지와 잠깐 동행한 이 날. 할아버지는 폐지를 팔아 9천 원을 손에 쥐었다. 고물상에서 나오는 할아버지의 표정이 밝아졌다.

할아버지는 아플 때 가장 힘들다고 했다. 아프면 ‘돈 주우러 못 다니니까’ 그게 제일 힘들다고 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거의 매일 아팠다. 75살 노인의 육체로 100kg 무게의 수레를 끌고 다니니 아플 수밖에.

문창기 할아버지
"어떡합니까. 진통제 먹고 일해야지. 먹고 살려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고 회사로 돌아왔다. 다음날 노트북을 켜고, GPS 정보를 확인했다. 문창기 할아버지는 어제 하루 새벽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또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그다음 6시부터 밤 11시 50분까지 일했다. 무려 15시간 동안 거리에서 폐지를 주운 것이다.

좌표가 찍힌 이동 거리는 16,970m, 무려 17km였다. 할아버지 당신이 생각했던 노동 양보다 훨씬 많았다.

실제 노인 열 명의 GPS 정보를 통해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었던 특성. 노인들은 많이 걸었다. 무거운 리어카를 끌고, 하루 평균 13km를 걸었다. 매일 축구장 45바퀴를 걷은 셈이다. 무려 26km를 걸은 노인도 있었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1. 긴 이동거리, 긴 노동시간. 또 오랫동안 일했다. 하루 평균 11시간 20분을 일 한 것이다. 주말에도 쉬지 않았다. 우리가 만난 다른 노인은 일을 시작한 지 1년 만에 몸무게가 10kg 나 빠졌다고 말했다.

김운식(74세)/2020년부터 폐지수집

“내가 이 동네를 하루에 3번 정도 돌아요. 그러니 많이 걸어서 다리가 아프고, 폐지 줍느라 엎드리니까 허리가 아프고, 리어카 끌어서 어깨가 아파요. 그래서 진통제를 매일 한 알씩 먹는데, 살이 쪽쪽 빠지고 피곤해. 나는 1년 만에 몸무게가 54kg에서 44kg으로 줄었어.”

모두 돈 때문이었다. 가난한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했다.


■ 제2 특성. 취약시간 노동

살을 에는 찬바람에 이가 덜덜 떨린다. 1월의 새벽은 너무 추웠다. 우리는 김은숙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새벽 4시에 회사에서 나섰다. GPS가 매일 새벽 5시부터 작동했기 때문이다.

할머니의 일터는 대구 서문시장이다. 영남권 최대 규모의 시장이자, 유력 정치인들이 선거 때마다 찾아 사람들로 북적이는 이곳. 그러나 역시 새벽에는 적막하다. 올해 77살 김은숙 할머니는 혼자 이곳을 떠돈다.

김은숙(77살)/2016년부터 폐지 수집

“새벽에요? 전에는 4시 30분 되면 나오고, 요즘에는 조금 추워서, 5시 되면 나오고 이래요. 안 그러면 폐지가 없어.”

남들보다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 새벽부터 일한다고 했다. 작고 연약한 할머니는 목장갑 낀 손으로 시장 바닥에 떨어진 폐지 한 장, 한 장을 조심스레 주웠다. 컴컴한 시장에 할머니 혼자 일 하는 모습이 위태로워 보였다. 정작 할머니는 기분이 좋다고 했다.

기자 “아침에 일찍 나오시면 어떠신가요?”
김은숙 할머니 “이 천지가 내 것 같지. 아무도 없잖아. 춤을 추니 누가 뭐라고 하나, 다리를 드니 뭐라고 하나. 낮에는 말이 많아요.”



할머니가 시장에 나온 지 3시간이 더 지나서야, 시장은 상인과 손님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한 번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시장 상인들이 무심한 듯 종이 박스를 거리에 툭툭 던졌다. 할머니는 고맙다며 계속 박스를 주웠다. (할머니는 버려진 박스를 가져가는 대가로 시장 상인의 잔일을 도와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가게 앞 청소와 물건 정리 등.)

할머니의 남편은 다른 곳에서 폐지를 주웠다. 부부는 폐지를 주워 손자를 길렀다.

김은숙 할머니
“내가 폐지를 주워서 손자를 키웠거든요. 안 해야 하는데 아직도 한다.”

할머니는 매일 집에서 울었다. 생활이 너무 고달프고 힘들어서 운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폐지 주우러 나가고 없을 때 화장실에 가서 몰래 눈물을 흘렸다.

화장실은 김은숙 할머니의 유일한 쉼터다.
김은숙 할머니
“화장실이 유일한 쉼터지. 내가 살아온 게 슬프니까. 아이고... 나는 왜 이러노. 천지 사랑이라고 받아봤나. 일은 황소같이 하고, 배는 배대로 쫄쫄 굶고... 그래도 밖에 나오면 절대 그런 표현 안 합니다. 웃고 사니 사람들은 나보고 힘을 얻는다 하는데, 내 속은 다 썩어 문드러지는 거지.”

오후 6시가 되자, 시장 상인들이 장을 정리했다. 손님들도 모두 빠져나갔다. 또다시 시장에는 할머니 혼자 남았다. 할머니는 장이 끝난 뒤 나온 폐지를 주웠다.

김은숙 할머니
“힘들지, 너무 힘들지. 나오기 싫지. 그래도 나와야지. 어디 가서 손 내밀고 살 수는 없잖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이 77살 노인의 육체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이날 할머니는 꼬박 14시간을 일했다. 오후 8시가 넘는 시간이었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 2. 취약시간 노동.GPS를 통해 알 수 있었던 폐지 수집 노동의 두 번째 특성. 노인들은 모두 취약시간이 새벽부터 일을 시작했다. 남들보다 일찍 나와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서였다. 무려 새벽 3시, 4시부터 폐지를 줍는 노인도 있었다. 그리고 종일 꼬박 폐지만 줍다 자정이 되어서야 집에 돌아간 노인도 있었다.

부지런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할 수 없었다.

GPS 정보를 활용한 폐지수집 특성 소개, 내일 기사에서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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