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처벌법 ‘1호’ 영장 기각…이유는?

입력 2022.03.22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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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이제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는 사망 사고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삼표산업과 여천NCC 등,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업장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로 인한 사망 외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직업성 질병'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발생한 '사고'뿐 아니라 '질병'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이 부족했다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게 했습니다.

KBS 취재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수사기관에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도 이 '직업성 질병' 중대산업재해 사건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법 첫 구속영장 청구…‘기각’ (2022.3.22. KBS1TV 뉴스광장)

■ 직업성 질병도, 구속영장도 '1호'…왜?

처음으로 구속 위기에 놓였던 기업은 지난달 급성 중독 노동자가 여러 명 발생한 경남 창원의 제조업체 '두성산업'입니다.

이 사업장에선 파이프를 닦는 데에 화학 물질이 든 세척제를 사용했는데, 이 세척제에 든 유독성 물질 '트리클로로메탄'이 노동자들에게 급성 중독을 일으켰습니다.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임시건강진단을 했더니, 16명이 직업성 질병으로 판정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업체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올해 이전까지 났던 사고와는 달리, 누구도 사고로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척제 속 '트리클로로메탄'이라는 똑같은 유해 요인으로 3명 이상 '직업성 질병'이 발생했기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됐습니다.

'직업성 질병'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수사 대상이 된 겁니다.

그리고 지난 17일, 경영책임자인 업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사고와 질병 통틀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으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사당국이 업체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업체에서는 세척제를 그저 제공받아 썼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해 물질을 취급한다면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업체에서 전달받은 세척제에 표기된 물질은 '트리클로로메탄'이 아니라 '디클로로에틸렌'이었는데,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하고 호흡이 가능한 방독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건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사업장에선 두 조치 모두 이뤄지지 않은 거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유독성 물질에 16명 급성중독…“세척액 성분 모르고 사용” (2022.2.18. KBS1TV 뉴스9)

다음으로, 한 사업장에 16명이나 직업성 질병이 발생해 사안이 심각한 데다가, 이 세척제를 여러 달 동안 사용했고, 이번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개선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정적으로 수사당국은 앞선 압수수색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통해 업체 대표가 직업성 질병 발생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 "범죄 혐의 소명되지만…증거 인멸 우려 없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창원지방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가 일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이미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증거도 충분하니까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에 대한 첫 구속 수사 시도였기 때문에, 고용부와 검찰에서도 법원의 판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결국 기각되긴 했지만, 고용부 내부에선 법원의 판단에 긍정적인 측면도 보인다는 분위기입니다. 이전까지는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법원에서) 인정해준 측면이 있어서, 수사에 차질이 있거나 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용부는 이른 시일 내에 수사를 마무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길 방침입니다.

■ 잇따르는 세척제 급성 중독 '주의보'

이번 사건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물론 일터에서 사망 사고가 많긴 하지만,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의 직업성 질병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직업성 질병에 의한 중대산업재해도, 사고와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여러 유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세척제 사용입니다. 실제로 두성산업에서 사용한 세척제를 제조한 업체는 여러 곳에 세척제를 납품했는데, 이 또한 문제가 됐습니다. 경남 김해의 대흥알앤티도 똑같이 세척제에 의한 중독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3명 확인됐습니다.

지난 12일 인천 계양구의 한 사업장에서도 노동자가 숨졌는데, 이 노동자도 디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세척제를 닦아내는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고용부는 5월부터 세척 공정을 하는 사업장 2천8백 곳에 대한 집중 감독을 하고,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 전, 다음 달까지는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때 개선을 못 한다면, 두성산업이나 대흥알앤티와 같이 법 위반에 따른 수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세 가지입니다. 유해 물질이 들어간 세척제를 취급하는 노동자들에게 유해성을 알리고, 취급 요령을 교육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환기가 잘 되도록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하고, 물질을 취급하는 사람에겐 방독 마스크 등 호흡이 가능한 보호구를 지급하고 착용하게 해야 합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게 "첫째,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알게' 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물질이 위험하다는 걸 안다면, 당연히 개인 보호구를 착용할 것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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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대재해처벌법 ‘1호’ 영장 기각…이유는?
    • 입력 2022-03-22 15:57:30
    취재K

올해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이제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는 사망 사고 소식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삼표산업과 여천NCC 등,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사업장도 계속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로 인한 사망 외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직업성 질병'입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일터에서 발생한 '사고'뿐 아니라 '질병'에 대해서도, 관리 감독이 부족했다면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게 했습니다.

KBS 취재 결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 처음으로 수사기관에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 것도 이 '직업성 질병' 중대산업재해 사건이었습니다.

[연관 기사] 중대재해법 첫 구속영장 청구…‘기각’ (2022.3.22. KBS1TV 뉴스광장)

■ 직업성 질병도, 구속영장도 '1호'…왜?

처음으로 구속 위기에 놓였던 기업은 지난달 급성 중독 노동자가 여러 명 발생한 경남 창원의 제조업체 '두성산업'입니다.

이 사업장에선 파이프를 닦는 데에 화학 물질이 든 세척제를 사용했는데, 이 세척제에 든 유독성 물질 '트리클로로메탄'이 노동자들에게 급성 중독을 일으켰습니다. 사업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에게 임시건강진단을 했더니, 16명이 직업성 질병으로 판정됐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업체 대표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습니다. 올해 이전까지 났던 사고와는 달리, 누구도 사고로 다치거나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척제 속 '트리클로로메탄'이라는 똑같은 유해 요인으로 3명 이상 '직업성 질병'이 발생했기 때문에, 수사 대상이 됐습니다.

'직업성 질병'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 '1호' 수사 대상이 된 겁니다.

그리고 지난 17일, 경영책임자인 업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습니다. 사고와 질병 통틀어,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으로서는 처음이었습니다.


수사당국이 업체에 대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본 점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업체에서는 세척제를 그저 제공받아 썼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유해 물질을 취급한다면 안전 조치를 해야 한다는 게 수사당국의 판단입니다.

예를 들어, 업체에서 전달받은 세척제에 표기된 물질은 '트리클로로메탄'이 아니라 '디클로로에틸렌'이었는데,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하고 호흡이 가능한 방독 마스크를 써야 하는 건 둘 다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 사업장에선 두 조치 모두 이뤄지지 않은 거로 수사당국은 보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유독성 물질에 16명 급성중독…“세척액 성분 모르고 사용” (2022.2.18. KBS1TV 뉴스9)

다음으로, 한 사업장에 16명이나 직업성 질병이 발생해 사안이 심각한 데다가, 이 세척제를 여러 달 동안 사용했고, 이번에 문제가 불거지지 않았다면 개선이 되지 않았을 거라는 점도 고려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결정적으로 수사당국은 앞선 압수수색 등에서 확보한 자료를 통해 업체 대표가 직업성 질병 발생에 대해 인지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습니다.

■ "범죄 혐의 소명되지만…증거 인멸 우려 없다"

하지만 법원은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습니다.

창원지방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사안이 중대하다"는 점은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피의자가 일부 범행을 인정하고 있고, 이미 증거가 충분히 확보돼 증거 인멸에 대한 우려가 없다고 봤습니다.


다시 말해서, 혐의가 어느 정도 인정되고 증거도 충분하니까 구속까지 할 필요는 없다는 겁니다.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경영책임자에 대한 첫 구속 수사 시도였기 때문에, 고용부와 검찰에서도 법원의 판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결국 기각되긴 했지만, 고용부 내부에선 법원의 판단에 긍정적인 측면도 보인다는 분위기입니다. 이전까지는 과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경영책임자에게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겠느냐는 시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사안의 중대성을 (법원에서) 인정해준 측면이 있어서, 수사에 차질이 있거나 한 부분은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고용부는 이른 시일 내에 수사를 마무리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사건을 넘길 방침입니다.

■ 잇따르는 세척제 급성 중독 '주의보'

이번 사건을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물론 일터에서 사망 사고가 많긴 하지만, 화학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서의 직업성 질병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직업성 질병에 의한 중대산업재해도, 사고와 마찬가지로 강도 높은 수사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여러 유독성 물질이 들어있는 세척제 사용입니다. 실제로 두성산업에서 사용한 세척제를 제조한 업체는 여러 곳에 세척제를 납품했는데, 이 또한 문제가 됐습니다. 경남 김해의 대흥알앤티도 똑같이 세척제에 의한 중독으로 직업성 질병자가 13명 확인됐습니다.

지난 12일 인천 계양구의 한 사업장에서도 노동자가 숨졌는데, 이 노동자도 디클로로메탄이 함유된 세척제를 닦아내는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고용부는 5월부터 세척 공정을 하는 사업장 2천8백 곳에 대한 집중 감독을 하고, 법 위반 사항에 대해서 엄중히 조치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그 전, 다음 달까지는 자율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이때 개선을 못 한다면, 두성산업이나 대흥알앤티와 같이 법 위반에 따른 수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세 가지입니다. 유해 물질이 들어간 세척제를 취급하는 노동자들에게 유해성을 알리고, 취급 요령을 교육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리고 환기가 잘 되도록 국소 배기 장치를 설치하고, 물질을 취급하는 사람에겐 방독 마스크 등 호흡이 가능한 보호구를 지급하고 착용하게 해야 합니다.

고용부 관계자는 이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게 "첫째, 그러니까 노동자들이 '알게' 하는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물질이 위험하다는 걸 안다면, 당연히 개인 보호구를 착용할 것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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