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잔류? 외교부 환원?…경제안보 시대, ‘통상’ 기능 어디로

입력 2022.03.22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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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둔 2013년 1월 15일, 당시 외교통상부는 돌연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지식경제부로 이관해 산업통상자원부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유민봉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총괄간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교섭과 통상 교섭 이후의 국내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께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외교통상부 내에선 "장·차관도 몰랐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전 조짐이 감지되지 않았던 깜짝 발표였습니다.

이같은 인수위 발표가 나온 지 66일 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식경제부는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로, 외교통상부는 현재의 외교부로 개편됐습니다.

9년이 흐른 지금, 이번엔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의 통상 기능 조정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18일 출범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특정 부처에 통상 기능을 두는 것뿐 아니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같은 제3의 독립기구 설립까지 다양한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수위 출범부터 정부조직 개편 발표까지 11일이 걸렸던 2013년의 전례를 고려하면, 인수위가 이르면 이달 안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외교부와 산업부도 정부의 통상 기능 이관을 주제로 최근
포럼과 심포지엄을 잇따라 열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통상, 더이상 산업적 이익 보호 차원 아냐"…외교통상부 부활?

통상 기능의 외교부 환원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일단 통상이 가진 외교적 함의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중요성의 대두, 통상의 가치 중심화(환경, 노동,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최근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상은 경제와 효율성 차원을 넘어 복합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입니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7일 한국행정학회·외교부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모든 시장이 갈라지고 있는 지금은 통상을 전혀 새로운 기반 위에서 구상해야 할 시기"라며 "과거에는 효율성에 기초한 관행으로 통상 정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변했고, 통상과 경제, 안보, 외교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제외교는 정부조직법상 외교부가 하게 되어 있는데, 거기서 통상만 딱 떼어낸다는 건 지난 10년 동안 변화한 경제와 안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행정학회와 외교부가 지난 17일 ‘경제안보 시대의 한국 외교 인프라 강화’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행정학회]한국행정학회와 외교부가 지난 17일 ‘경제안보 시대의 한국 외교 인프라 강화’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행정학회]

정헌주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같은 자리에서 "(통상이) 개별적 산업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외교부가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역량과 기능을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송유철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경제안보의 화두로 떠오른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언급하면서, "IPEF는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산업부에서는 과연 이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업부가 특정 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송유철 교수는 "산업부에서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반적인 국익에 기초하지 못한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단적으로 자동차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농산물을 내준다든지 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산업부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 특정 업계의 고문 등으로 재취업할 기회가 많고, 그렇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반면 외교부는 그럴 일이 거의 없어서 이해관계자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외교통상부 역시 2013년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일부 제조업 소관부처가 통상교섭을 총괄할 경우 중립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외교와 통상의 분리에서 초래되는 시너지 효과 단절과 대외적 입장의 일관성 저하, 통상에 필수적인 외국어 능력과 국제법적 지식 등 외교부 인력이 갖춘 전문성, 외교부 재외공관 활용의 중요성 등이 '외교통상부' 부활론의 근거로 거론됩니다.

■ "산업·통상 괴리되면 안 되는 시점" "10년도 안 됐는데"…산업통상자원부 존속?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자유무역, 다자무역질서의 쇠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통상 환경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과거 통상산업부에서 아주통상1과장으로 일했던 표인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22일 열린 한국국제통상학회 등 주최 심포지엄에서 "산업과 통상의 괴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출통제와 투자심사 등 경제안보 정책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대외무역법과 투자 관련 법,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 등을 관장하는 산업부가 통상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심포지엄에서 "현재 전세계는 자국 기업을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자원 배분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IPEF의 핵심 의제를 봐도 공급망과 디지털 경제, 무역·투자 원활화, 인프라 격차 감소 등 모두 산업과 기업에 관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상의 외교안보적 수단 측면만 강조하면 국부 창출의 기반이라는 통상 정책의 또 다른 산업적 기반을 놓칠 수 있다"며 "국내 산업, 기업과 긴밀히 소통하고 우리 기업들의 국제시장에서의 현 주소와 미래 글로벌 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경험과 판단력이 있는 부서에서 통상 정책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2일 한국국제통상학회, 한국국제경제법학회, 무역구제학회가 주최하고 산업부가 후원한 ‘신정부 통상정책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무역협회 유튜브 영상 캡처]22일 한국국제통상학회, 한국국제경제법학회, 무역구제학회가 주최하고 산업부가 후원한 ‘신정부 통상정책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무역협회 유튜브 영상 캡처]

무역의존도가 높거나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산업통상형 조직을 다수 채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자주 등장합니다.

허윤 교수는 "각국의 통상조직 특징을 보면, 중국과 일본, 독일, 영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들은 산업통상형을 택하고 있고 자원 부국들은 주로 외교통상형을 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국이 정부 보조금을 뿌리며 자국 기업 보호와 육성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산업부가 통상의 키를 잡고 제조업, 에너지업 등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통상 정책에 잘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표인수 변호사도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자국 내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라며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반도체와 배터리를 총괄하고 있는 산업부에서 통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잦은 정부조직 개편이 통상 정책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산업통상형 조직을 채택하고 10년 정도 돼서 이제 착근해야 하는 시점에 또 (통상 기능을) 환원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어디서 제공할 것인가를 정책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면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예를 들어 보면 기업이 피해를 봤을 때 그걸 해결하려고 외교부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냐"라고 말했습니다.

또 "통상정책의 초점이 글로벌 산업정책, 공급망 협력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외교통상형으로 가자는 주장 자체가 갑작스럽다"면서 "외교, 정무적 고려는 통상의 시작과 끝에 고려하면 되지 구체적 전략과 내용을 결정하는 건 별도의 업무인데 그걸 위해 통상 정책의 틀을 흔드는 것이 과연 맞나"라고 밝혔습니다.


■ "조직 전문화, 하이브리드화 필요" "컨트롤타워 있어야" 목소리도

외교부냐 산업부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좀더 근본적인 전략부터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송백훈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2일 심포지엄에서 "디지털 무역과 환경, 노동, 외교적 이슈가 합쳐지며 통상의 역할이 복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과연 담당 조직이 하이브리드화 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통상 기능이 어느 부처로 가야하는지보다는 통상 정책이 이 험난한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지, 통상에서 다뤄져야 할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는지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통상 불확실성이 최근 수십 년 중 제일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이분론적으로 거버넌스 논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바캉스 시절에 이노베이션(innovation)하는 펜션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의 통상교섭본부는 여전히 교섭 기능 위주인데, 이제는 통상 기획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이건 어느 부처가 맡든 가야 하는 길"이라며 "이분론적으로 갈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통상 조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특정 부처를 뛰어 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17일 포럼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경제안보 외교를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 청와대 내에 경제안보 부처를 설치하지는 않겠다고 돼 있다"면서 "아직 부처 간 협업이 잘 되지 않는 정책 문화를 고려하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경제안보 관련 컨트롤타워는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백훈 교수도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산업 정책이 부활했지만 단기적으로는 외교적 해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당장 제3의 조직을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 직속 안보통상위원회 신설이든 기존 무역위원회의 강화이든 통상산업과 외교안보를 동시에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인포그래픽: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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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업부 잔류? 외교부 환원?…경제안보 시대, ‘통상’ 기능 어디로
    • 입력 2022-03-22 17:39:04
    취재K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둔 2013년 1월 15일, 당시 외교통상부는 돌연 큰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발표하면서, 외교통상부의 통상 기능을 지식경제부로 이관해 산업통상자원부를 만들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유민봉 당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총괄간사는 "산업통상자원부가 통상 교섭과 통상 교섭 이후의 국내 대책까지 종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국민께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습니다.

외교통상부 내에선 "장·차관도 몰랐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전 조짐이 감지되지 않았던 깜짝 발표였습니다.

이같은 인수위 발표가 나온 지 66일 뒤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지식경제부는 현재의 산업통상자원부로, 외교통상부는 현재의 외교부로 개편됐습니다.

9년이 흐른 지금, 이번엔 윤석열 정부 출범을 앞두고 정부의 통상 기능 조정에 대한 논의에 다시 불이 붙었습니다.

18일 출범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이 문제를 검토하고 있는데, 특정 부처에 통상 기능을 두는 것뿐 아니라 미국 무역대표부(USTR)와 같은 제3의 독립기구 설립까지 다양한 방안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인수위 출범부터 정부조직 개편 발표까지 11일이 걸렸던 2013년의 전례를 고려하면, 인수위가 이르면 이달 안에 정부조직 개편안을 내놓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외교부와 산업부도 정부의 통상 기능 이관을 주제로 최근
포럼과 심포지엄을 잇따라 열고,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 "통상, 더이상 산업적 이익 보호 차원 아냐"…외교통상부 부활?

통상 기능의 외교부 환원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는, 일단 통상이 가진 외교적 함의가 높아졌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과 경제안보 중요성의 대두, 통상의 가치 중심화(환경, 노동, 인권, 민주주의)와 같은 최근의 변화를 고려할 때, 통상은 경제와 효율성 차원을 넘어 복합적인 문제가 됐다는 것입니다.

안호영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전 외교부 1차관)은 지난 17일 한국행정학회·외교부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모든 시장이 갈라지고 있는 지금은 통상을 전혀 새로운 기반 위에서 구상해야 할 시기"라며 "과거에는 효율성에 기초한 관행으로 통상 정책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세상이 너무 변했고, 통상과 경제, 안보, 외교를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경제외교는 정부조직법상 외교부가 하게 되어 있는데, 거기서 통상만 딱 떼어낸다는 건 지난 10년 동안 변화한 경제와 안보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국행정학회와 외교부가 지난 17일 ‘경제안보 시대의 한국 외교 인프라 강화’를 주제로 개최한 포럼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행정학회]
정헌주 연세대학교 행정학과 교수도 같은 자리에서 "(통상이) 개별적 산업 이익이 아니라 가치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외교부가 종합적으로 할 수 있는 역량과 기능을 해야하지 않을까"라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송유철 동덕여대 국제경영학과 교수는 올해 경제안보의 화두로 떠오른 미국 주도의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언급하면서, "IPEF는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 하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산업부에서는 과연 이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있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산업부가 특정 산업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송유철 교수는 "산업부에서는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전반적인 국익에 기초하지 못한 협상을 할 가능성도 있다"면서 "단적으로 자동차 협상을 하는 과정에서 농산물을 내준다든지 하는 사례를 들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산업부 공무원들은 퇴직 후에 특정 업계의 고문 등으로 재취업할 기회가 많고, 그렇다면 팔이 안으로 굽는 현상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반면 외교부는 그럴 일이 거의 없어서 이해관계자로부터 상당한 자율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과거 외교통상부 역시 2013년 정부조직 개편을 앞두고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서 "일부 제조업 소관부처가 통상교섭을 총괄할 경우 중립성과 공정성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습니다.

이밖에 외교와 통상의 분리에서 초래되는 시너지 효과 단절과 대외적 입장의 일관성 저하, 통상에 필수적인 외국어 능력과 국제법적 지식 등 외교부 인력이 갖춘 전문성, 외교부 재외공관 활용의 중요성 등이 '외교통상부' 부활론의 근거로 거론됩니다.

■ "산업·통상 괴리되면 안 되는 시점" "10년도 안 됐는데"…산업통상자원부 존속?

반면 산업통상자원부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에서는 자유무역, 다자무역질서의 쇠퇴와 보호무역주의 강화 등 통상 환경의 변화를 강조합니다.

과거 통상산업부에서 아주통상1과장으로 일했던 표인수 변호사(법무법인 태평양)는 22일 열린 한국국제통상학회 등 주최 심포지엄에서 "산업과 통상의 괴리를 피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수출통제와 투자심사 등 경제안보 정책이 중요해진 상황에서, 대외무역법과 투자 관련 법, 산업기술유출방지법, 국가핵심전략산업특별법 등을 관장하는 산업부가 통상 기능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도 심포지엄에서 "현재 전세계는 자국 기업을 국제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데 중점을 두고 자원 배분을 서두르고 있다"면서 "IPEF의 핵심 의제를 봐도 공급망과 디지털 경제, 무역·투자 원활화, 인프라 격차 감소 등 모두 산업과 기업에 관련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통상의 외교안보적 수단 측면만 강조하면 국부 창출의 기반이라는 통상 정책의 또 다른 산업적 기반을 놓칠 수 있다"며 "국내 산업, 기업과 긴밀히 소통하고 우리 기업들의 국제시장에서의 현 주소와 미래 글로벌 시장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경험과 판단력이 있는 부서에서 통상 정책을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습니다.

22일 한국국제통상학회, 한국국제경제법학회, 무역구제학회가 주최하고 산업부가 후원한 ‘신정부 통상정책 심포지엄’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한국무역협회 유튜브 영상 캡처]
무역의존도가 높거나 제조업 비중이 높은 국가들은 산업통상형 조직을 다수 채택하고 있다는 지적도 자주 등장합니다.

허윤 교수는 "각국의 통상조직 특징을 보면, 중국과 일본, 독일, 영국과 같은 제조업 강국들은 산업통상형을 택하고 있고 자원 부국들은 주로 외교통상형을 택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각국이 정부 보조금을 뿌리며 자국 기업 보호와 육성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 산업부가 통상의 키를 잡고 제조업, 에너지업 등 산업계의 이해관계를 통상 정책에 잘 반영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표인수 변호사도 "미국은 반도체와 배터리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자국 내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상태"라며 "이러한 중차대한 시기에 반도체와 배터리를 총괄하고 있는 산업부에서 통상이 떨어져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잦은 정부조직 개편이 통상 정책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최성호 경기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심포지엄에서 "산업통상형 조직을 채택하고 10년 정도 돼서 이제 착근해야 하는 시점에 또 (통상 기능을) 환원하는 것은 문제"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통합적으로 서비스를 어디서 제공할 것인가를 정책수요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면서 "최근 우크라이나 사태로 예를 들어 보면 기업이 피해를 봤을 때 그걸 해결하려고 외교부부터 찾아가야 할 것이냐"라고 말했습니다.

또 "통상정책의 초점이 글로벌 산업정책, 공급망 협력으로 돌아서고 있는데 외교통상형으로 가자는 주장 자체가 갑작스럽다"면서 "외교, 정무적 고려는 통상의 시작과 끝에 고려하면 되지 구체적 전략과 내용을 결정하는 건 별도의 업무인데 그걸 위해 통상 정책의 틀을 흔드는 것이 과연 맞나"라고 밝혔습니다.


■ "조직 전문화, 하이브리드화 필요" "컨트롤타워 있어야" 목소리도

외교부냐 산업부냐라는 양자택일의 문제에서 벗어나 좀더 근본적인 전략부터 다지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송백훈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22일 심포지엄에서 "디지털 무역과 환경, 노동, 외교적 이슈가 합쳐지며 통상의 역할이 복합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면서 "과연 담당 조직이 하이브리드화 되고 있느냐 하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통상 기능이 어느 부처로 가야하는지보다는 통상 정책이 이 험난한 국제 통상환경의 변화에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지, 통상에서 다뤄져야 할 수많은 이슈들에 대해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는지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시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통상 불확실성이 최근 수십 년 중 제일 어려운 상황에서 지금 이분론적으로 거버넌스 논의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바캉스 시절에 이노베이션(innovation)하는 펜션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이 교수는 "현재의 통상교섭본부는 여전히 교섭 기능 위주인데, 이제는 통상 기획 기능을 강화해야 하고 이건 어느 부처가 맡든 가야 하는 길"이라며 "이분론적으로 갈 게 아니라 앞으로 우리의 통상 조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 것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특정 부처를 뛰어 넘는 컨트롤타워가 필요한 시점이라는 주장도 나옵니다.

김선혁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는 17일 포럼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보면 경제안보 외교를 적극 추진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지만, 청와대 내에 경제안보 부처를 설치하지는 않겠다고 돼 있다"면서 "아직 부처 간 협업이 잘 되지 않는 정책 문화를 고려하면, 국가전략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경제안보 관련 컨트롤타워는 굉장히 중요하고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송백훈 교수도 "공급망 안정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면서 산업 정책이 부활했지만 단기적으로는 외교적 해법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면서 "당장 제3의 조직을 만들 수는 없지만, 대통령 직속 안보통상위원회 신설이든 기존 무역위원회의 강화이든 통상산업과 외교안보를 동시에 거시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조직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습니다.

[인포그래픽:김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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