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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와 리어카]③ ‘당신은 시급 950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
입력 2022.03.23 (07:00) 수정 2022.04.28 (19:55)
폐지 실어나르는 리어카에 GPS를 달았다.
가난한 노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고 싶었다.

GPS는 우리가 매일 스치던 폐지 줍는 노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려줬다.
어제에 이어 폐지수집 노동의 나머지 특성들을 소개한다.

(본 기사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습니다. 다음 링크로 들어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f2Ggk815zl4

폐지 줍는 리어카에 GPS를 부착하니, 노인들의 폐지 수집 노동이 아래와 같이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위치좌표가 화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폐지 수집 노동이 사상 처음으로 시각화된 것이다.폐지 줍는 노인들의 위치좌표가 화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폐지 수집 노동이 사상 처음으로 시각화된 것이다.

■ 제3 특성. 형편없는 노동 대가

올해 여든인 박국자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고물상에 가 폐지를 팔았다. 할머니 집에서 고물상까지는 왕복 4km. 80대 여성이 리어카를 끌고 가기엔 너무 먼 거리다.

씨익 – 씨익 –.

할머니 입에서 강한 쇳소리가 들렸다. 몸무게 50kg의 할머니가 그 무게의 세 배가 넘는 리어카를 끄니 어쩔 수 없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의아하게 할머니를 바라봤다.

박국자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에 지나는 행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박국자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에 지나는 행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폐지값 받으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다, 갑자기 언덕이 나오는 식이었다. 할머니는 중간 중간 리어카를 세우고 숨을 골랐다. 허리를 좌우로 돌리고, 팔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할머니만의 쉬는 방법이었다.

할머니는 20년 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은 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산에서 나물 캐서 팔고,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온갖 일을 했다. 그러다 나이가 더 들고 노인이 되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폐지를 주웠다. (할머니는 경제적 지원을 해줄 자녀가 없다고 했다.)

박국자(80세)/20년 전부터 폐지수집

“배우지도 못했는데 뭘 하겠습니까. 나이든 노인 보고 오라는 데도 없다. 나이 팔십에 누가 오라고 하겠노. 건강이 따라주니 이렇게 폐지라도 줍는 걸 나는 감사히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고물상 가는 길에도 폐지가 있으면 차곡차곡 리어카에 담았다. 할머니 눈에는 종이 한 장이 돈이었다.

그런데 고물상을 향해 열심히 걷던 할머니가 고물상 하나를 그냥 지나쳤다. 마치 누구에게도 이곳을 지나는 것을 들키면 안 되는 듯 빨리. 그리고 할머니는 500m를 더 걸어 다른 고물상으로 들어갔다. 왜 집에서 가까운 고물상을 두고 더 먼 곳을 찾았을까.

폐지를 팔러 나온 박국자 할머니가 고물상을 그냥 지나친다. 왜일까.폐지를 팔러 나온 박국자 할머니가 고물상을 그냥 지나친다. 왜일까.

박국자 할머니
“아까 그 고물상은 폐지 1kg에 100원을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건이 좋으니, 다만 10원이라도 더 쳐주지 부탁하니, 자기는 마진을 20원만 남긴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뒤로 돌아서 여기 고물상에 와봤지. 그런데 여기는 150원을 주는 거야. 50 원 차이면 얼마나 큽니까.”

이날 박국자 할머니는 이틀간 모은 폐지를 팔아 1만 8천 원을 손에 쥐었다.

폐지 수집 노동 특성3. 형편없는 노동대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가 먼 고물상을 찾았다.폐지 수집 노동 특성3. 형편없는 노동대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가 먼 고물상을 찾았다.

GP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세 번째 특성. 노인들은 거리와 상관없이 폐지값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았다. 한 노인은 지하철을 타고 1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 뒤, 폐지값 잘 쳐주는 고물상 근처에서 일하기도 했다.

형편없는 노동 대가 때문이다. 노인들에게는 10원, 20원을 더 버는 게 시간과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중요했다.

조규석(70세)/2010년부터 폐지 수집

“노동 대가가 아주 별로죠. 그래도 100원이라도 더 벌어야지. 내가 심심해서 이 먼 거리를 지하철 타고 와서 일하겠습니까.”

■ 제4 특성. 부실한 끼니

다시 만난 문창기 할아버지는 5시간을 쉬지 않고 일 하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점심 식사를 챙겼다. 할아버지가 향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할아버지는 매 점심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웠다.

문창기 할아버지
“폐지 더 주우려면 집에 갈 여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컵라면 간단하게 먹고 폐지 주우러 또 나갑니다.”

식도암을 앓았던 할아버지는 지금은 췌장염에 시달리고 있다. 오후 늦게 먹는 컵라면이 할아버지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건강보다 간편함을 선택했다. 사실 건강을 선택한다고 해도 할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상 더 나은 식사를 하긴 어렵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4. 부실한 끼니.폐지수집 노동 특성4. 부실한 끼니.

노인들은 식사를 제 시간에 챙기지도 못했다. 남들이 쉬는 틈을 타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서다. 이른 오전 10시에 점심을 먹거나, 아니면 늦은 오후 2시, 3시가 넘어서 식사를 챙긴 노인이 많았다. 폐지를 적게 주운 날에는 아예 끼니를 걸렀다.

식사를 집에서 챙겨먹어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15년째 폐지를 줍고 있는 82살 정시화 할아버지는 4평짜리 단독주택 지하방에 혼자 세 들어 산다. 이 작은 방에 싱크대와 식탁, 누울 공간이 함께 있다. 80대 노인이 지내기에는 너무 열악한 공간이다.


할아버지는 냄비에 식은 밥 한 덩어리를 퍼 담은 뒤,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고작 물 말은 밥 만드느라고 좁은 단칸방의 습도가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죽이 된 밥을 냄비째로 밥상 위에 올려놓고 식사하기 시작했다.

반찬은 며칠 전에 딴 장조림 통조림 하나와 생된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을 한 입 먹고는, 숟가락으로 생된장을 조금 떠 입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식사의 전부였다. 이날 마음씨 좋은 이웃으로부터 육개장 한 통을 부식으로 받았지만, 할아버지는 대장암을 앓았던 터라 육개장에 손을 대지 못했다.

생된장을 퍼먹는 손이 조금씩 떨렸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지 못한 노인이 매일 10시간 넘게 힘들게 일하니 기력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할아버지의 식사에는 맛을 느끼거나, 영양을 챙기거나 하는 따위의 평범한 식사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 "요즘 무얼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
정시화 할아버지 " 국물이지 뭐. 소뼈는 못 구할망정, 돼지 뼈라도 푹 고아서 국물에 타 먹으면 제일 낫지."

할아버지는 곰탕이 제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 벌이로는 9천 원짜리 곰탕을 사 먹을 수 없었다.


정시화 할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서문시장서 일하던 김은숙 할머니는 10년 동안 소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문시장 근처의 한 국밥집에 가 제작비 중 일부를 소고기 국밥으로 선결제해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며칠간 매일 소고기 국밥을 드셨다. 그저 눈물 나는 끼니였다.

■ 제5 특성. 위험한 노동환경

가난보다 더 박국자 할머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할머니는 사람과 리어카, 자동차가 한 데 뒤엉킨 골목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간다. 할머니는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작년과 재작년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 5. 노인들의 일터는 위험하다.폐지수집 노동 특성 5. 노인들의 일터는 위험하다.

박국자 할머니
"재작년에 미군 부대 앞을 지나가는데, 덤프트럭이 차가 높아서 그런지 짐째로 박아서 내가 넘어졌어. 그래서 허리를 다쳐서 내가 오래 쉬었다니까."

GPS 취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마지막 특성. 노인들이 일하는 환경은 너무 위험했다. 이들은 모두 도로 폭이 좁은 주택가 골목에서 일했는데, 대부분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교통사고 위험이 컸다.

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한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그만 미끄러진 것이다. 할아버지의 골반이 부서졌다.

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가 차를 피하다 넘어져 골반이 부서졌다.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가 차를 피하다 넘어져 골반이 부서졌다.

사고당한 노인
"골반 골절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80대 노인의 부서진 골반이 제대로 붙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붙더라도 과연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노인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일하고 있었다.

애초에 리어카가 현행법상 자동차로 구분돼 차도로만 다녀야 했다. 노인들이 자동차를 피해 인도로 다니다 사고가 나면, 피해자도 일부 위법을 저지른 게 돼 보상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거리의 나이든 노동자들은 이래저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 ‘시급 948원 인생’

한 달에 걸친 GPS 취재가 모두 끝났다. 노인 열명이 6일 동안 걸은 누적 거리는 총 743km.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노인 한 명당 하루 평균 13km를 이동했다.

이들이 6일 동안 일한 시간은 모두 677시간. 하루 평균 11시간 20분씩 일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모두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제작진은 매일 GPS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노인들에게 그날 벌어들인 폐지 값을 기록했다. 노인 열 명이 6일 동안 받은 폐지 값은 모두 64만 2,000원이었다. 1인당 시급으로 치면 고작 948원이었다. 2022년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노인들이 한 시간 꼬박 일해도 김밥 한 줄 사 먹을 수 없다. 바나나 우유 하나 사 먹을 수 없다. 단팥빵 하나 사 먹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삶은 너무 버겁고 힘겨웠다. 과연 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기는 할까. 이런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조규석(70세)
"옛날에는 넝마주이라고 그랬잖아요. 지게 짊어지고 그렇게 다녔는데, 그런 인식 때문인지 사람들이 전부 우습게 보고, 사람을 사람같이 안 보고 그렇더라고.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지…."

그동안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그동안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

제작진은 단순히 이들의 힘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것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근거를 찾고자 진행한 다음 연구 결과는 내일 이어간다.
  • [GPS와 리어카]③ ‘당신은 시급 950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
    • 입력 2022-03-23 07:00:10
    • 수정2022-04-28 19:55:31
<strong>폐지 실어나르는 </strong><strong>리어카에 GPS를 달았다.</strong><br />가난한 노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고 싶었다.<br /><br />GPS는 우리가 매일 스치던 폐지 줍는 노인들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려줬다.<br />어제에 이어 폐지수집 노동의 나머지 특성들을 소개한다.<br /><br />(본 기사는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됐습니다. 다음 링크로 들어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br /> https://www.youtube.com/watch?v=f2Ggk815zl4

폐지 줍는 리어카에 GPS를 부착하니, 노인들의 폐지 수집 노동이 아래와 같이 시각화되기 시작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의 위치좌표가 화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폐지 수집 노동이 사상 처음으로 시각화된 것이다.폐지 줍는 노인들의 위치좌표가 화면에 기록되기 시작했다. 폐지 수집 노동이 사상 처음으로 시각화된 것이다.

■ 제3 특성. 형편없는 노동 대가

올해 여든인 박국자 할머니는 이틀에 한 번 고물상에 가 폐지를 팔았다. 할머니 집에서 고물상까지는 왕복 4km. 80대 여성이 리어카를 끌고 가기엔 너무 먼 거리다.

씨익 – 씨익 –.

할머니 입에서 강한 쇳소리가 들렸다. 몸무게 50kg의 할머니가 그 무게의 세 배가 넘는 리어카를 끄니 어쩔 수 없었다. 스쳐 지나는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의아하게 할머니를 바라봤다.

박국자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에 지나는 행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박국자 할머니의 거친 숨소리에 지나는 행인이 의아하게 쳐다본다.

폐지값 받으러 가는 길은 험난했다. 가파른 내리막이 이어지다, 갑자기 언덕이 나오는 식이었다. 할머니는 중간 중간 리어카를 세우고 숨을 골랐다. 허리를 좌우로 돌리고, 팔을 아래위로 흔들었다. 할머니만의 쉬는 방법이었다.

할머니는 20년 전부터 폐지를 줍기 시작했다. 일찍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은 네 자녀를 키우기 위해 산에서 나물 캐서 팔고, 식당에서 설거지하고 온갖 일을 했다. 그러다 나이가 더 들고 노인이 되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폐지를 주웠다. (할머니는 경제적 지원을 해줄 자녀가 없다고 했다.)

박국자(80세)/20년 전부터 폐지수집

“배우지도 못했는데 뭘 하겠습니까. 나이든 노인 보고 오라는 데도 없다. 나이 팔십에 누가 오라고 하겠노. 건강이 따라주니 이렇게 폐지라도 줍는 걸 나는 감사히 생각합니다.”

할머니는 고물상 가는 길에도 폐지가 있으면 차곡차곡 리어카에 담았다. 할머니 눈에는 종이 한 장이 돈이었다.

그런데 고물상을 향해 열심히 걷던 할머니가 고물상 하나를 그냥 지나쳤다. 마치 누구에게도 이곳을 지나는 것을 들키면 안 되는 듯 빨리. 그리고 할머니는 500m를 더 걸어 다른 고물상으로 들어갔다. 왜 집에서 가까운 고물상을 두고 더 먼 곳을 찾았을까.

폐지를 팔러 나온 박국자 할머니가 고물상을 그냥 지나친다. 왜일까.폐지를 팔러 나온 박국자 할머니가 고물상을 그냥 지나친다. 왜일까.

박국자 할머니
“아까 그 고물상은 폐지 1kg에 100원을 주더라고. 그래서 내가 물건이 좋으니, 다만 10원이라도 더 쳐주지 부탁하니, 자기는 마진을 20원만 남긴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뒤로 돌아서 여기 고물상에 와봤지. 그런데 여기는 150원을 주는 거야. 50 원 차이면 얼마나 큽니까.”

이날 박국자 할머니는 이틀간 모은 폐지를 팔아 1만 8천 원을 손에 쥐었다.

폐지 수집 노동 특성3. 형편없는 노동대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가 먼 고물상을 찾았다.폐지 수집 노동 특성3. 형편없는 노동대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거리가 먼 고물상을 찾았다.

GPS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세 번째 특성. 노인들은 거리와 상관없이 폐지값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았다. 한 노인은 지하철을 타고 10km가 넘는 거리를 이동한 뒤, 폐지값 잘 쳐주는 고물상 근처에서 일하기도 했다.

형편없는 노동 대가 때문이다. 노인들에게는 10원, 20원을 더 버는 게 시간과 육체적 고통보다 훨씬 중요했다.

조규석(70세)/2010년부터 폐지 수집

“노동 대가가 아주 별로죠. 그래도 100원이라도 더 벌어야지. 내가 심심해서 이 먼 거리를 지하철 타고 와서 일하겠습니까.”

■ 제4 특성. 부실한 끼니

다시 만난 문창기 할아버지는 5시간을 쉬지 않고 일 하다 오후 2시가 넘어서야 점심 식사를 챙겼다. 할아버지가 향한 곳은 편의점이었다. 할아버지는 매 점심 끼니를 컵라면으로 때웠다.

문창기 할아버지
“폐지 더 주우려면 집에 갈 여가가 없습니다. 그래서 컵라면 간단하게 먹고 폐지 주우러 또 나갑니다.”

식도암을 앓았던 할아버지는 지금은 췌장염에 시달리고 있다. 오후 늦게 먹는 컵라면이 할아버지 몸에 좋을 리 없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건강보다 간편함을 선택했다. 사실 건강을 선택한다고 해도 할아버지의 주머니 사정상 더 나은 식사를 하긴 어렵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4. 부실한 끼니.폐지수집 노동 특성4. 부실한 끼니.

노인들은 식사를 제 시간에 챙기지도 못했다. 남들이 쉬는 틈을 타 폐지를 더 많이 줍기 위해서다. 이른 오전 10시에 점심을 먹거나, 아니면 늦은 오후 2시, 3시가 넘어서 식사를 챙긴 노인이 많았다. 폐지를 적게 주운 날에는 아예 끼니를 걸렀다.

식사를 집에서 챙겨먹어도 부실하기는 마찬가지다. 15년째 폐지를 줍고 있는 82살 정시화 할아버지는 4평짜리 단독주택 지하방에 혼자 세 들어 산다. 이 작은 방에 싱크대와 식탁, 누울 공간이 함께 있다. 80대 노인이 지내기에는 너무 열악한 공간이다.


할아버지는 냄비에 식은 밥 한 덩어리를 퍼 담은 뒤, 물을 붓고 가스레인지에 올렸다. 고작 물 말은 밥 만드느라고 좁은 단칸방의 습도가 올라갔다. 할아버지는 죽이 된 밥을 냄비째로 밥상 위에 올려놓고 식사하기 시작했다.

반찬은 며칠 전에 딴 장조림 통조림 하나와 생된장이었다. 할아버지는 죽을 한 입 먹고는, 숟가락으로 생된장을 조금 떠 입에 집어넣었다. 그것이 식사의 전부였다. 이날 마음씨 좋은 이웃으로부터 육개장 한 통을 부식으로 받았지만, 할아버지는 대장암을 앓았던 터라 육개장에 손을 대지 못했다.

생된장을 퍼먹는 손이 조금씩 떨렸다.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하지 못한 노인이 매일 10시간 넘게 힘들게 일하니 기력이 없는 게 당연했다. 할아버지의 식사에는 맛을 느끼거나, 영양을 챙기거나 하는 따위의 평범한 식사 개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기자 "요즘 무얼 제일 드시고 싶으세요?"
정시화 할아버지 " 국물이지 뭐. 소뼈는 못 구할망정, 돼지 뼈라도 푹 고아서 국물에 타 먹으면 제일 낫지."

할아버지는 곰탕이 제일 먹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할아버지 벌이로는 9천 원짜리 곰탕을 사 먹을 수 없었다.


정시화 할아버지뿐만이 아니었다. 서문시장서 일하던 김은숙 할머니는 10년 동안 소고기를 먹어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서문시장 근처의 한 국밥집에 가 제작비 중 일부를 소고기 국밥으로 선결제해 할머니께 드렸다. 할머니는 며칠간 매일 소고기 국밥을 드셨다. 그저 눈물 나는 끼니였다.

■ 제5 특성. 위험한 노동환경

가난보다 더 박국자 할머니를 괴롭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동차다. 할머니는 사람과 리어카, 자동차가 한 데 뒤엉킨 골목을 하루에도 수십 번 오간다. 할머니는 자동차가 지날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고 했다. 그럴만했다. 작년과 재작년 잇따라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폐지수집 노동 특성 5. 노인들의 일터는 위험하다.폐지수집 노동 특성 5. 노인들의 일터는 위험하다.

박국자 할머니
"재작년에 미군 부대 앞을 지나가는데, 덤프트럭이 차가 높아서 그런지 짐째로 박아서 내가 넘어졌어. 그래서 허리를 다쳐서 내가 오래 쉬었다니까."

GPS 취재를 통해 알 수 있었던 마지막 특성. 노인들이 일하는 환경은 너무 위험했다. 이들은 모두 도로 폭이 좁은 주택가 골목에서 일했는데, 대부분 차도와 인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아 교통사고 위험이 컸다.

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한 할아버지가 사고를 당했다. 차를 피해 도로를 건너다 그만 미끄러진 것이다. 할아버지의 골반이 부서졌다.

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가 차를 피하다 넘어져 골반이 부서졌다.실제 취재에 참여했던 할아버지가 차를 피하다 넘어져 골반이 부서졌다.

사고당한 노인
"골반 골절이라고 하더라고. 그래서 수술해야 한다고 하더라고."

80대 노인의 부서진 골반이 제대로 붙을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붙더라도 과연 이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노인들은 그야말로 '목숨 걸고' 일하고 있었다.

애초에 리어카가 현행법상 자동차로 구분돼 차도로만 다녀야 했다. 노인들이 자동차를 피해 인도로 다니다 사고가 나면, 피해자도 일부 위법을 저지른 게 돼 보상에 제약이 있을 수 있다. 거리의 나이든 노동자들은 이래저래 안전을 보장받지 못했다.

■ ‘시급 948원 인생’

한 달에 걸친 GPS 취재가 모두 끝났다. 노인 열명이 6일 동안 걸은 누적 거리는 총 743km. 서울과 부산을 왕복할 수 있는 거리다. 노인 한 명당 하루 평균 13km를 이동했다.

이들이 6일 동안 일한 시간은 모두 677시간. 하루 평균 11시간 20분씩 일했다. 폐지 줍는 노인들은 모두 일반인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강도의 노동을 수행하고 있었다.


여기에 제작진은 매일 GPS 배터리를 교체하면서, 노인들에게 그날 벌어들인 폐지 값을 기록했다. 노인 열 명이 6일 동안 받은 폐지 값은 모두 64만 2,000원이었다. 1인당 시급으로 치면 고작 948원이었다. 2022년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노인들이 한 시간 꼬박 일해도 김밥 한 줄 사 먹을 수 없다. 바나나 우유 하나 사 먹을 수 없다. 단팥빵 하나 사 먹을 수 없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 이들의 삶은 너무 버겁고 힘겨웠다. 과연 이들이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가능성이 있기는 할까. 이런 생활을 얼마나 지속할 수 있을까?

조규석(70세)
"옛날에는 넝마주이라고 그랬잖아요. 지게 짊어지고 그렇게 다녔는데, 그런 인식 때문인지 사람들이 전부 우습게 보고, 사람을 사람같이 안 보고 그렇더라고. 그때는 참 많이 힘들었지…."

그동안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그동안 존재했지만 동시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들. 이들을 이대로 방치해도 되는가.

제작진은 단순히 이들의 힘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적으로 도와줄 방법을 찾는 것이 맞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 근거를 찾고자 진행한 다음 연구 결과는 내일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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