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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와 리어카]④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입력 2022.03.24 (07:00) 수정 2022.04.28 (19:55)
-폐지 실어나르는 리어카에 GPS를 달았다.
-가난한 노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KBS는 이 자료를 토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자 한다.

[GPS와 리어카 연속 보도]
① 시급 948원 인생…“나는 거리에서 돈을 줍습니다”
② 진통제 먹으며 일하는 노인들
③ ‘당신은 시급 950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
④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시급 948원' 받는 노인들

폐지 줍는 리어카에 GPS를 부착했다. 아래와 같이 폐지수집 노동의 실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열 명으로부터, 모두 60개의 GPS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아래와 같이 폐지수집 노동의 특성을 분류했다.

<GPS로 드러난 폐지수집 노동 특성>

① 장시간 노동: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20분 동안 일하며, 13km를 걸었다. 한 노인은 하루 동안 무려 15시간을 일하며 26km를 걸었다.


②취약시간 노동: 남들보다 더 많이 폐지를 줍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을 시작했고,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③형편없는 노동 대가: 폐지 1kg당 120원 수준. (2022년 2월 기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무리 멀어도 가격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았다. 한 노인은 무려 1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일했다.


④ 부실한 식사: 많은 노인들이 다른 노인이 쉬는 틈을 타 폐지를 줍느라, 제시간에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폐지를 적게 주운 날에는 아예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⑤ 위험한 노동환경: 노인들은 대부분 주택가 차도와 인도가 구분 안 된 도로에서 일한다. 사람과 리어카, 차가 한 데 섞이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컸다. 현행법상 리어카는 차로 구분돼,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주택가 골목. 노인들의 일터는 아슬하기만 하다.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주택가 골목. 노인들의 일터는 아슬하기만 하다.

노인 열 명이 6일 동안 걸은 누적 거리는 총 743km. 같은 기간 이들의 노동 시간은 모두 677시간이다. 이들 열 명이 벌어들인 폐지 값을 모두 합치니, 64만 2,000원. 1인당 시급으로 치면 고작 948원이다. 2022년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폐지 줍는 가난한 노인이 한 시간 동안 일 해도, 김밥 한 줄 사먹을 수 없다. 이들의 노동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렇다면 2022년 대한민국에 폐지 수집 노인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6만 명'과 '200만 명'. 무관심이 가져온 엄청난 간극

우리나라에 폐지 줍는 사람은 몇 명 있는지 먼저 자료를 검색해보자. 지난 2017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이 약 6만 6천 명이라고 추정했다. 이 자료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를 이용한 것이다. 추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전국 노인 1만 여명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 물었다.
이중 노인 92명(0.90%)이 '폐지 수집을 한다'고 답했다.
주민등록상 노인 인구 7백 30만여 명에 같은 비율을 적용했다.
약 6만 6천 명이라는 추정치가 나온다.

그러나 이 조사는 온전히 폐지수집 노인 인구 산출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점, 또 지역과 연령 등 다른 고려사항 없이 조사된 인구를 전체 주민등록상 노인 인구에 단순 적용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 실제 지난해 노인실태조사에서는 폐지수집을 한다고 응답한 노인이 30명대에 불과해 추정치를 내놓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단체에서는 폐지수집 인구가 175만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자원 재활용 연대'라는 단체에서는 고물상 업계 종사자 30만 명에 비수급 빈곤층 170만 명을 고려해 이러한 추정치를 내놓았다. 비수급 빈곤층 모두가 폐지를 줍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6만 명 추정치보다 신뢰도가 더 낮아 보이지만, 파격적인 숫자 때문에 많은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6.21.) -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중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의 국가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만 200만 명에 달합니다. 노인세대 절반 이상이 빈곤과 소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6만 명과 200만 명. 특정 분야 종사자 숫자라고 하기엔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

왜 이렇게 차이가 큰 것일까. 지금까지 전국 단위의 폐지 수집 노인 인구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이 거리에서 폐지 줍는 풍경이 일상이 된 지 수십 년인데, 이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니, 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수도 없었다.

KBS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최초로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산출해보기로 했던 이유다. 취재진은 먼저 전국 모든 자치단체에 폐지수집 노인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이 중 180여 자치단체로부터 야광 조끼와 발열 내의 등 '보호장구를 지급한 노인 명단' 등 기초 자료를 확보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연구진은 자치단체별 인구와 노인 인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와 평균 소득, 지역 총생산 등을 변수로 이용해 머신러닝 방법으로 전국의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예측했다.

그 결과, 다양한 예측 결과 모형에 따라 최대 15,181명, 최소 14,800명, 평균 14,954명이라는 폐지수집 노인 인구가 산출됐다.

'6만 명이니, 200만 명이니' 하는 추정치보다는 적은 숫자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 폐지를 줍지 않으면, 당장 내일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노인들이다.

하루에 한 두시간만 폐지 줍는 '비생계형' 폐지수집 노인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들은 이번 인구 산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폐지 수집이 아니면 생계가 불가능한', 가난한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자는 원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물론 다양한 정책 연구를 위해 비생계형을 포함한 폐지수집 노인 전체에 대한 통계 산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일단 최조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생계형 폐지수집 종사자의 구체적 숫자가 도출됐다.

노인 인구를 연구한 부산대 김남훈 교수노인 인구를 연구한 부산대 김남훈 교수

김남훈/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연구진)

"그동안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수가 최소 1만 5천 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죠."

14,954. 이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앞으로 폐지수집 노인을 보호할 정책을 만들 때, 그 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쓰일 것이다.

강선우 국회의원강선우 국회의원

강선우 /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1만 5천 명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개인의 문제로 놔둘 만한 그런 숫자는 절대 아닙니다.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죠."

서정숙/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필수 생계를 위해 폐지 수집에 종사하는 노인들의 수가 연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수치를 기본으로 해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강요받은 자부심

형편없는 벌이에도 노인들은 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본인의 일이 우리나라 자원 재활용에 일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국자 할머니는 폐지 수집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박국자 할머니는 폐지 수집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박국자 할머니 (2002년부터 폐지 수집)

"이 일을 허술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폐지가 전부 박스 만드는 원료잖아요.
이 폐지를 그냥 버리면 쓰레기고, 모으면 자원입니다.. 우리나라 자원입니다. 전부."

박국자 할머니는 '고물 줍는다' 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자신은 나라에 좋은 일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실제 할머니가 분리수거 안 된 쓰레기 더미에 손 뻗을 때마다, 폐지와 알루미늄 캔, 고철이 자석처럼 달려 올라왔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1차 자원 재활용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작진이 만난 50여 명의 폐지 줍는 노인이 모두 비슷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놀라웠다. 생계를 꾸린다는 현실적 이유 외에, 이 자부심이야말로 형편없는 노동 대가에도 이들을 계속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부심은 노인들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폐지수집의 공적 가치

가난한 노인들은 개인의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다. 그런데 이 일은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지닌다. 널부러진 쓰레기를 줍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경 미화가 될 것이고, 그냥 버려질 쓰레기를 재활용하니,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가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일의 공적 가치는 무시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폐지수집 노동의 사회적 기여도를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진은 앞서 나온 1만 5천 명의 인구를 토대로, 노인들의 하루 노동시간(3.84시간, 이봉화 2011)과 노인 한 명당 하루 폐지 수집량(58.5kg, 이봉화 2011)을 이용하여 폐지 수거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 적극적 폐지수집 노인의 연평균 총 폐지 수집량은 총 24만 6,023톤으로 추정됐다.


이게 얼마나 많은 양이냐 하면,

폐지수집 노인은 대부분 도시지역 단독주택(단독, 다가구, 다세대주택)에서 배출되는 폐지를 수거한다. 2019년 도시지역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폐지는 모두 86만 7707톤이다. 이중 40만 8036톤이 재활용됐다.

즉 단순 대입하자면, 폐지수집 노인들이 우리나라 단독주택 지역에서 배출되는 폐지 재활용 중 약 60.3%에 해당하는 양의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비생계형 노인들이 수집한 폐지양까지 합치면 기여율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전체 가구의 연간 폐지 재활용량은 146만 5,840톤이다.)


사적 영역에서 빈곤 노인의 경제활동으로만 치부됐던 폐지수집 노동이, 실질적으로 공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부연구위원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부연구위원

배재윤/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연구진)

"폐지 줍는 노인이 국내 재활용 산업에 기여하는 바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노동을 사적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확대해야 할 근거가 생겼습니다."

공적 역할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 낮은 대가로 힘들게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공적인 보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인재근 /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폐지 수집 노동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되는 계기를 마련한 연구라고 보입니다. 이분들의 노동이 온정적인 시선을 넘어서 사회적, 경제적 가치로 산출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기여에 걸맞은 사회적 보장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사회적 임무를 수행해 온 폐지수집 노인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근거가 생겼다.

내일은 [GPS와 리어카] 마지막 편으로, 폐지수집 노동의 제도권 편입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다.
  • [GPS와 리어카]④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 입력 2022-03-24 07:00:11
    • 수정2022-04-28 19:55:30
<strong>-폐지 실어나르는 리어카에 GPS를 달았다. </strong><br />-가난한 노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br />-KBS는 이 자료를 토대로 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자 한다.<br /><br />[GPS와 리어카 연속 보도]<br />① 시급 948원 인생…“나는 거리에서 돈을 줍습니다”<br />② 진통제 먹으며 일하는 노인들<br />③ ‘당신은 시급 950원 받고 일할 수 있습니까?’<br /><strong>④ GPS가 알려준 진실 "노인들의 폐지 수집은 사회적 기여였다" </strong><br />

'시급 948원' 받는 노인들

폐지 줍는 리어카에 GPS를 부착했다. 아래와 같이 폐지수집 노동의 실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제작진은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열 명으로부터, 모두 60개의 GPS 데이터를 확보했다. 이 데이터를 이용해 아래와 같이 폐지수집 노동의 특성을 분류했다.

<GPS로 드러난 폐지수집 노동 특성>

① 장시간 노동: 노인들은 하루 평균 11시간 20분 동안 일하며, 13km를 걸었다. 한 노인은 하루 동안 무려 15시간을 일하며 26km를 걸었다.


②취약시간 노동: 남들보다 더 많이 폐지를 줍기 위해 이른 새벽에 일을 시작했고,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③형편없는 노동 대가: 폐지 1kg당 120원 수준. (2022년 2월 기준) 노인들은 한 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아무리 멀어도 가격을 더 잘 쳐주는 고물상을 찾았다. 한 노인은 무려 10km 넘는 거리를 이동하며 일했다.


④ 부실한 식사: 많은 노인들이 다른 노인이 쉬는 틈을 타 폐지를 줍느라, 제시간에 식사조차 하지 못했다. 폐지를 적게 주운 날에는 아예 끼니를 거르기도 했다.


⑤ 위험한 노동환경: 노인들은 대부분 주택가 차도와 인도가 구분 안 된 도로에서 일한다. 사람과 리어카, 차가 한 데 섞이기 때문에 사고 위험이 컸다. 현행법상 리어카는 차로 구분돼, 차도로만 다녀야 한다.

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주택가 골목. 노인들의 일터는 아슬하기만 하다.인도와 차도가 구분되어 있지 않은 주택가 골목. 노인들의 일터는 아슬하기만 하다.

노인 열 명이 6일 동안 걸은 누적 거리는 총 743km. 같은 기간 이들의 노동 시간은 모두 677시간이다. 이들 열 명이 벌어들인 폐지 값을 모두 합치니, 64만 2,000원. 1인당 시급으로 치면 고작 948원이다. 2022년도 최저임금 9,160원의 10분의 1 수준이다.


폐지 줍는 가난한 노인이 한 시간 동안 일 해도, 김밥 한 줄 사먹을 수 없다. 이들의 노동 환경은 생각보다 훨씬 열악했다.

그렇다면 2022년 대한민국에 폐지 수집 노인은 과연 몇 명이나 있을까?

■ '6만 명'과 '200만 명'. 무관심이 가져온 엄청난 간극

우리나라에 폐지 줍는 사람은 몇 명 있는지 먼저 자료를 검색해보자. 지난 2017년,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전국의 폐지 수집 노인이 약 6만 6천 명이라고 추정했다. 이 자료는 보건복지부와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실태조사'를 이용한 것이다. 추정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전국 노인 1만 여명에게 '무슨 일을 하느냐' 물었다.
이중 노인 92명(0.90%)이 '폐지 수집을 한다'고 답했다.
주민등록상 노인 인구 7백 30만여 명에 같은 비율을 적용했다.
약 6만 6천 명이라는 추정치가 나온다.

그러나 이 조사는 온전히 폐지수집 노인 인구 산출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다는 점, 또 지역과 연령 등 다른 고려사항 없이 조사된 인구를 전체 주민등록상 노인 인구에 단순 적용했다는 점에서 신뢰성에 의문이 든다. 실제 지난해 노인실태조사에서는 폐지수집을 한다고 응답한 노인이 30명대에 불과해 추정치를 내놓지 않기도 했다.


그런데 또 다른 단체에서는 폐지수집 인구가 175만 명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지난 2012년, '자원 재활용 연대'라는 단체에서는 고물상 업계 종사자 30만 명에 비수급 빈곤층 170만 명을 고려해 이러한 추정치를 내놓았다. 비수급 빈곤층 모두가 폐지를 줍는 건 아니기 때문에 앞서 소개한 6만 명 추정치보다 신뢰도가 더 낮아 보이지만, 파격적인 숫자 때문에 많은 정치인의 입에 오르내렸다.

김종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2016.6.21.) -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 중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대한민국은 OECD 노인빈곤율 1위, 노인자살률 1위의 국가입니다. 폐지 줍는 노인만 200만 명에 달합니다. 노인세대 절반 이상이 빈곤과 소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6만 명과 200만 명. 특정 분야 종사자 숫자라고 하기엔 둘 사이의 간극은 너무 크다.

왜 이렇게 차이가 큰 것일까. 지금까지 전국 단위의 폐지 수집 노인 인구 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난한 노인이 거리에서 폐지 줍는 풍경이 일상이 된 지 수십 년인데, 이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무도 몰랐던 것이다. 몇 명이나 되는지 모르니, 이들을 위한 정책이나 제도를 만들 수도 없었다.

KBS가 한국노인인력개발원과 함께 최초로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산출해보기로 했던 이유다. 취재진은 먼저 전국 모든 자치단체에 폐지수집 노인 관련 자료를 요구했다. 이 중 180여 자치단체로부터 야광 조끼와 발열 내의 등 '보호장구를 지급한 노인 명단' 등 기초 자료를 확보했다.


이 자료를 토대로 연구진은 자치단체별 인구와 노인 인구, 기초생활보장 수급자 수와 평균 소득, 지역 총생산 등을 변수로 이용해 머신러닝 방법으로 전국의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인구를 예측했다.

그 결과, 다양한 예측 결과 모형에 따라 최대 15,181명, 최소 14,800명, 평균 14,954명이라는 폐지수집 노인 인구가 산출됐다.

'6만 명이니, 200만 명이니' 하는 추정치보다는 적은 숫자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만 포함됐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 폐지를 줍지 않으면, 당장 내일 먹고 살 길이 막막한 노인들이다.

하루에 한 두시간만 폐지 줍는 '비생계형' 폐지수집 노인의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이들은 이번 인구 산출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폐지 수집이 아니면 생계가 불가능한', 가난한 노인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을 만들자는 원래 취지에 충실하기 위해서다. 물론 다양한 정책 연구를 위해 비생계형을 포함한 폐지수집 노인 전체에 대한 통계 산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일단 최조로 과학적인 방법으로 생계형 폐지수집 종사자의 구체적 숫자가 도출됐다.

노인 인구를 연구한 부산대 김남훈 교수노인 인구를 연구한 부산대 김남훈 교수

김남훈/부산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연구진)

"그동안 아무도 정확한 숫자를 몰랐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수가 최소 1만 5천 명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거죠."

14,954. 이 숫자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 앞으로 폐지수집 노인을 보호할 정책을 만들 때, 그 정책의 가장 기초적인 자료로 쓰일 것이다.

강선우 국회의원강선우 국회의원

강선우 /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1만 5천 명이라는 숫자는 우리가 개인의 문제로 놔둘 만한 그런 숫자는 절대 아닙니다. 제도 안으로 편입시키는 방법은 많은 고민이 필요하겠죠."

서정숙/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필수 생계를 위해 폐지 수집에 종사하는 노인들의 수가 연구에서 나왔기 때문에, 그 수치를 기본으로 해서 국가가 정책적으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강요받은 자부심

형편없는 벌이에도 노인들은 이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본인의 일이 우리나라 자원 재활용에 일조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박국자 할머니는 폐지 수집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박국자 할머니는 폐지 수집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박국자 할머니 (2002년부터 폐지 수집)

"이 일을 허술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폐지가 전부 박스 만드는 원료잖아요.
이 폐지를 그냥 버리면 쓰레기고, 모으면 자원입니다.. 우리나라 자원입니다. 전부."

박국자 할머니는 '고물 줍는다' 는 손가락질을 받더라도, 자신은 나라에 좋은 일 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했다.

실제 할머니가 분리수거 안 된 쓰레기 더미에 손 뻗을 때마다, 폐지와 알루미늄 캔, 고철이 자석처럼 달려 올라왔다. 쓰레기가 돈이 되는 순간이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실제로 이들이 '1차 자원 재활용 업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제작진이 만난 50여 명의 폐지 줍는 노인이 모두 비슷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놀라웠다. 생계를 꾸린다는 현실적 이유 외에, 이 자부심이야말로 형편없는 노동 대가에도 이들을 계속 일하게 하는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자부심은 노인들만의 착각이 아니었다. 진실이었다.

■ 예상을 훨씬 뛰어넘은 폐지수집의 공적 가치

가난한 노인들은 개인의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는다. 그런데 이 일은 동시에 사회적 가치도 지닌다. 널부러진 쓰레기를 줍기 때문에 자연스레 환경 미화가 될 것이고, 그냥 버려질 쓰레기를 재활용하니, 자원을 재활용한다는 가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 일의 공적 가치는 무시되어 왔다. 그래서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폐지수집 노동의 사회적 기여도를 연구해 달라고 부탁했다.

연구진은 앞서 나온 1만 5천 명의 인구를 토대로, 노인들의 하루 노동시간(3.84시간, 이봉화 2011)과 노인 한 명당 하루 폐지 수집량(58.5kg, 이봉화 2011)을 이용하여 폐지 수거량을 계산했다. 그 결과, 적극적 폐지수집 노인의 연평균 총 폐지 수집량은 총 24만 6,023톤으로 추정됐다.


이게 얼마나 많은 양이냐 하면,

폐지수집 노인은 대부분 도시지역 단독주택(단독, 다가구, 다세대주택)에서 배출되는 폐지를 수거한다. 2019년 도시지역 단독주택에서 발생한 폐지는 모두 86만 7707톤이다. 이중 40만 8036톤이 재활용됐다.

즉 단순 대입하자면, 폐지수집 노인들이 우리나라 단독주택 지역에서 배출되는 폐지 재활용 중 약 60.3%에 해당하는 양의 폐지를 수집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약 비생계형 노인들이 수집한 폐지양까지 합치면 기여율은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아파트를 포함한 전체 가구의 연간 폐지 재활용량은 146만 5,840톤이다.)


사적 영역에서 빈곤 노인의 경제활동으로만 치부됐던 폐지수집 노동이, 실질적으로 공적 가치를 갖고 있다는 것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부연구위원한국노인인력개발원 배재윤 부연구위원

배재윤/한국노인인력개발원 부연구위원(연구진)

"폐지 줍는 노인이 국내 재활용 산업에 기여하는 바를 최초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의 노동을 사적 영역에 국한하지 않고, 공적 영역으로 확대해야 할 근거가 생겼습니다."

공적 역할에는 보상이 따라야 한다. 낮은 대가로 힘들게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공적인 보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인재근 / 국회의원(보건복지위원회)

"폐지 수집 노동이 사회적으로 재조명되는 계기를 마련한 연구라고 보입니다. 이분들의 노동이 온정적인 시선을 넘어서 사회적, 경제적 가치로 산출되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기여에 걸맞은 사회적 보장 정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누구도 제대로 알아주지 않았지만, 묵묵히 사회적 임무를 수행해 온 폐지수집 노인들.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근거가 생겼다.

내일은 [GPS와 리어카] 마지막 편으로, 폐지수집 노동의 제도권 편입에 대한 논의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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