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톡] “우리 로켓 쓰지마”…러시아 큰소리가 통하는 이유

입력 2022.03.24 (08:00) 수정 2022.03.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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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없다면)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지구 어디론가 떨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국가들은 (우리 로켓이 없으면) 우주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야 할 것이다.”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드미트리 로고진 국장
러시아 연방우주국의 수장인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의 최근 발언들입니다.

자신들을 빼고 우주로 뭔가를 올릴 수 있겠느냐는, 협박에 가까운 자신감입니다. 로고진 국장이 이런 입장을 연이어 밝힌 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배경입니다.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다양한 대러시아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무고한 희생을 내는 전쟁을 멈추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러시아를 향한 정당한 요구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우주항공 산업을 책임지는 연방우주국은 우주 산업에서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일체 중단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로고진 국장의 글들도 이런 가운데 나온 것들입니다.

러시아가 이처럼 강하게 나올 수 있는 건, 현재 전 세계 우주 로켓 산업에서 러시아가 그만큼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주항공 산업은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러 연방우주국은 앞다퉈 로켓을 발사하며 우주로 향했습니다.

거침없는 질주에 먼저 제동이 걸린 건 미국 나사였습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우주왕복선 사업에서 잇달아 처참한 실패가 발생하며 국내 입지가 극도로 좁아진 겁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과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은 미 나사를 궁지로 몰았습니다. 결국 2011년 미국은 우주왕복선 사업을 종료하게 됩니다. 우주로 사람을 보낼 길이 사라진 겁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러시아였습니다.

대표적으로 1998년부터 주요 16개국이 합작해 건설을 시작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있습니다. ISS는 우주 공간에서 실험하는 등 우주 탐사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정기적으로 탐사대를 보내고 귀환하는 일정이 반복됩니다.

국제우주정거장국제우주정거장
2011년 미국이 우주왕복선 사업을 종료한 이후 10년 가까이 전세계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사람을 보낼 때마다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빌려야 했습니다.

지금도 ISS에서 65번째 탐사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는 30일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타고 귀환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조종사들로 구성됐는데, 로고진 국장이 ‘미국 조종사는 빼놓고 우리끼리만 귀환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게시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 나사 측은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는 변함없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소유즈 로켓이 아니면 당장 귀환할 길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사 측이 스콧 켈리 등 전직 우주비행사들에게 ‘러시아와의 논쟁에 조심해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건도 이런 이유로 추정됩니다. 켈리는 그동안 러 연방우주국을 비판하며 거친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러시아의 큰소리는 ISS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국의 위성인터넷 업체인 ‘원웹’에게는 “우리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고, 일부 미국 항공우주 업체들에는 “로켓 엔진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소유즈 로켓에 장착된 원웹 위성소유즈 로켓에 장착된 원웹 위성
원웹은 애초 지난 5일 위성 36기가 소유즈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었는데, 전날 급작스레 취소 작업이 진행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러 연방우주국은 이 과정을 트위터에 그대로 올리며 사태를 일부러 대외에 알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올 하반기 위성 2기를 소유즈 로켓에 실어 올릴 예정이었지만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몽니’에 오히려 결집하는 모습입니다. 미 나사는 혹시 러시아가 ISS 사업에서 아예 발 빼는 사태를 대비해 대체재를 찾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만든 우주항공 업체 스페이스X 등이 유력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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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3-24 08: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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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없다면)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지구 어디론가 떨어질 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국가들은 (우리 로켓이 없으면) 우주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가야 할 것이다.”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러시아 연방우주국의 수장인 드미트리 로고진 국장의 최근 발언들입니다.

자신들을 빼고 우주로 뭔가를 올릴 수 있겠느냐는, 협박에 가까운 자신감입니다. 로고진 국장이 이런 입장을 연이어 밝힌 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이 배경입니다.

지난달 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공격한 이후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다양한 대러시아 제재를 가하고 있습니다. 무고한 희생을 내는 전쟁을 멈추고 대화로 해결하자는, 러시아를 향한 정당한 요구입니다.

국제사회의 제재에 러시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특히 러시아 우주항공 산업을 책임지는 연방우주국은 우주 산업에서 다른 나라와의 협력을 일체 중단할 수 있다는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앞서 로고진 국장의 글들도 이런 가운데 나온 것들입니다.

러시아가 이처럼 강하게 나올 수 있는 건, 현재 전 세계 우주 로켓 산업에서 러시아가 그만큼 깊숙이 개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우주항공 산업은 미국과 러시아가 양분하고 있었습니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러 연방우주국은 앞다퉈 로켓을 발사하며 우주로 향했습니다.

거침없는 질주에 먼저 제동이 걸린 건 미국 나사였습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우주왕복선 사업에서 잇달아 처참한 실패가 발생하며 국내 입지가 극도로 좁아진 겁니다.

1986년 우주왕복선 챌린저호 폭발과 2003년 우주왕복선 컬럼비아호 폭발은 미 나사를 궁지로 몰았습니다. 결국 2011년 미국은 우주왕복선 사업을 종료하게 됩니다. 우주로 사람을 보낼 길이 사라진 겁니다.

미국의 우주왕복선이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러시아였습니다.

대표적으로 1998년부터 주요 16개국이 합작해 건설을 시작한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있습니다. ISS는 우주 공간에서 실험하는 등 우주 탐사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곳입니다. 정기적으로 탐사대를 보내고 귀환하는 일정이 반복됩니다.

국제우주정거장2011년 미국이 우주왕복선 사업을 종료한 이후 10년 가까이 전세계는 국제우주정거장에 사람을 보낼 때마다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빌려야 했습니다.

지금도 ISS에서 65번째 탐사대가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데 오는 30일 러시아 소유즈 로켓을 타고 귀환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조종사들로 구성됐는데, 로고진 국장이 ‘미국 조종사는 빼놓고 우리끼리만 귀환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게시글을 트위터에 올리며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미 나사 측은 “러시아와의 협력 관계는 변함없다”며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러시아 소유즈 로켓이 아니면 당장 귀환할 길이 없는 것도 사실입니다.

나사 측이 스콧 켈리 등 전직 우주비행사들에게 ‘러시아와의 논쟁에 조심해 달라’는 내용의 이메일을 보낸 건도 이런 이유로 추정됩니다. 켈리는 그동안 러 연방우주국을 비판하며 거친 논쟁을 벌여 왔습니다.

러시아의 큰소리는 ISS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국의 위성인터넷 업체인 ‘원웹’에게는 “우리 로켓을 이용해 위성을 쏘아 올릴 수 없다”며 으름장을 놨고, 일부 미국 항공우주 업체들에는 “로켓 엔진 판매를 중단하겠다”고 일방적인 통보를 했습니다.

소유즈 로켓에 장착된 원웹 위성원웹은 애초 지난 5일 위성 36기가 소유즈 로켓에 실려 발사될 예정이었는데, 전날 급작스레 취소 작업이 진행되는 굴욕을 맛봤습니다. 러 연방우주국은 이 과정을 트위터에 그대로 올리며 사태를 일부러 대외에 알리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올 하반기 위성 2기를 소유즈 로켓에 실어 올릴 예정이었지만 불투명해진 상황입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몽니’에 오히려 결집하는 모습입니다. 미 나사는 혹시 러시아가 ISS 사업에서 아예 발 빼는 사태를 대비해 대체재를 찾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가 만든 우주항공 업체 스페이스X 등이 유력 후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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