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로힝야족 집단학살…“그때는 아니고, 지금은 맞다”

입력 2022.03.24 (10:00) 수정 2022.03.24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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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7년 8월

미얀마군이 동부 라카인주에 살고 있는 로힝야족에 대한 진압작전을 벌였다. 2년후 국제 인권단체인 포티파이라이츠’(Fortify Rights)는 당시 학살에 참여한 미얀마 군인 2명의 증언을 녹화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했다.

33살의 미얀마군 묘 윈툰은 "구덩이를 파서 아이 7명과 여성 8명, 남성 15명 등 30명을 밀어 넣은 뒤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승려 출신 조 나인툰(30) 은 "보이는 모든 로힝야족에게 사격을 해도 좋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부대는 20개 마을을 돌며 80여 명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직급이 낮아 집단 성폭행에는 가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참혹한 인종 사냥으로 최소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살인과 방화, 성폭행을 당했다.


목숨을 건진 73만여 명의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등으로 달아나 지금도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일부는 지금도 보트피플로 안다만해를 떠돌고 있다.

2017년 9월, 미얀마군의 공격을 피해 강을 건너는 로힝야족 주민들  사진 AP2017년 9월, 미얀마군의 공격을 피해 강을 건너는 로힝야족 주민들 사진 AP

2.집단학살인가 아닌가

이듬해 유엔 진상조사단은 참혹한 학살의 증언이 담긴 400페이지 분량의 진상조사 보고서를 냈다. 진상조사단은 이 조사를 근거로 이 사건을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학살을 강력히 비난했지만, 미얀마 군부가 이를 의도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국무부는 대신 국제형사법상 처벌 규정이 없는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라고 규정지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대변인은 이들 용어는 '매우 구체적인 법적 용어'라서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이후 책임자 처벌은 점점 어려워졌다. 당시 핵심 책임자로 6명의 미얀마군 장성들이 지목됐다. 당시 총 사령관은 '민 아웅 흘라잉 (Min Aung Hlaing)'이였다.

2017년 로힝야족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국제사회가 책임을 묻지 못하면서 그의 권위는 더 강력해졌다. 이후 아웅 산 수 치의 문민정부가 집권했지만, 사실상 권력을 분점해 온 그는 2021년 2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진 AP2017년 로힝야족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국제사회가 책임을 묻지 못하면서 그의 권위는 더 강력해졌다. 이후 아웅 산 수 치의 문민정부가 집권했지만, 사실상 권력을 분점해 온 그는 2021년 2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진 AP
그렇게 5년이 지난 2022년 3월 22일, 백악관은 크게 진전된 입장을 내놨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일부러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은 '집단학살(genocide)'과 '반 인륜적 범죄'라고 밝혔다.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며, 로힝야족을 말살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이를 위해 방글라데시 난민촌의 로힝야 난민 1천명 이상을 조사했다. 그들 4명중 3명은 직접 눈으로 미얀마군의 로힝야 주민 살인을 목격했다고 했다.
이중 절반은 직접 성폭행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주민 5명중 1명은 한번에 100명이 이상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로서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후 르완다, 다르푸르의 학살 등 미국정부가 대량학살로 인정한 사건은 모두 8개로 늘어났다.


늦었지만 국제법상 로힝야 가해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토대도 강화됐다. 만약 이런 강경한 입장이 지난 2019년에 나왔으면 미얀마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로힝야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로힝야 학살 4년뒤인 지난해 2월, 총선 결과를 부정하며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의 민주화 시계는 다시 1980년대로 돌아갔다.



3. 아웅 산 수 치 Aung San Suu Kyi

20년 넘게 군부와 싸우며 가택연금을 반복했던 아웅산 수 치는 2015년 결국 총선에서 승리해 첫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70년 넘게 집권한 군부와 권력 분점이 불가피했다. 그렇게 권력을 나눠 가진지 3년이 지날 무렵, 군부는 로힝야족을 집단 학살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다. 2차대전 무렵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투쟁을 벌일 때 영국군 편에 섰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다수 버마족의 여론은 오히려 가해자인 군부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아웅산 수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19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한 아웅 산 수 치 고문, 로힝야 학살에 대한 군부의 책임을 사실상 부인했다. 사진 로이터2019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한 아웅 산 수 치 고문, 로힝야 학살에 대한 군부의 책임을 사실상 부인했다. 사진 로이터

2019년 12월 11일, 아웅산 수 치 고문이 로힝야 진상조사를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로힝야 집단학살을 부인하며 사실상 군부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을 저지른 군인들을 기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집단 학살'은 아니며, 이를 위한 군부의 의도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수치 고문은 이런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가 로힝야 학살에 대한 재판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크게 실망했다. 유럽 곳곳에서 그녀의 '노벨평화상'을 취소하라는 시위가 이어졌다.

백악관은 고민했다. 인도와 중국에 인접한(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제일 국토가 넓은 나라다) 미얀마에서 민주화된 문민정부를 유지하는게 우선이였다. 죽은 로힝야족들의 영혼을 뒤로하고 군부에 면죄부를 준 아웅산 수치를 그냥 지켜봤다. '집단학살'은 없는게 됐다. 그렇게 군부의 싹을 살려뒀다.


4.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로힝야의 참극은 이제서야 백악관에 의해 '집단학살'이 됐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얀마에서 더이상의 잔학행위를 막고 책임을 묻기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우리의 입장을 강화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미 국부무의 입장 변화에 대해 미얀마 군부는 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은 어떠한 집단학살 행위에도 가담한 적이 없고, 어떤 집단학살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 기반을 다지고 있다.

미얀마 군은 탓마도(tatmadaw)라 불린다. 국민의 군대라는 뜻이다. 70여년전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위해 민족 영웅 아웅산(AUNG SAN) 장군이 창설했다.


탓마도는 지난해 2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한 문민정부의 임기 첫날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 치' 고문을 다시 잡아 가두고, 최소 12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수 치 고문은 지난 두번의 재판에서 모두 6년형을 받았다. 하나둘씩 남은 형량이 더해지면 최소 수십년형이 불가피하다.


로힝야 참극을 5년만에 '집단학살'로 규정한 미국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엔이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로힝야족을 지정'한 건 지난 2012년이다. 국제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사법재판소는 최근 로힝야족 학살에 대한 재판 개시를 위한 청문 절차를 시작했다.

로힝야족 일부는 방글라데시 난민촌을 떠나 같은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보트 피플로 바다를 떠돌거나 일부는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사진은 피난길의 로힝야족. 사진 로이터로힝야족 일부는 방글라데시 난민촌을 떠나 같은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보트 피플로 바다를 떠돌거나 일부는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사진은 피난길의 로힝야족. 사진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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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로힝야족 집단학살…“그때는 아니고, 지금은 맞다”
    • 입력 2022-03-24 10:00:40
    • 수정2022-03-24 14:14:33
    특파원 리포트

1. 2017년 8월

미얀마군이 동부 라카인주에 살고 있는 로힝야족에 대한 진압작전을 벌였다. 2년후 국제 인권단체인 포티파이라이츠’(Fortify Rights)는 당시 학살에 참여한 미얀마 군인 2명의 증언을 녹화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출했다.

33살의 미얀마군 묘 윈툰은 "구덩이를 파서 아이 7명과 여성 8명, 남성 15명 등 30명을 밀어 넣은 뒤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고 증언했다.

승려 출신 조 나인툰(30) 은 "보이는 모든 로힝야족에게 사격을 해도 좋다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의 부대는 20개 마을을 돌며 80여 명을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그는 직급이 낮아 집단 성폭행에는 가담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 참혹한 인종 사냥으로 최소 수만 명의 로힝야족이 살인과 방화, 성폭행을 당했다.


목숨을 건진 73만여 명의 로힝야족은 방글라데시 등으로 달아나 지금도 난민으로 살고 있다. 일부는 지금도 보트피플로 안다만해를 떠돌고 있다.

2017년 9월, 미얀마군의 공격을 피해 강을 건너는 로힝야족 주민들  사진 AP
2.집단학살인가 아닌가

이듬해 유엔 진상조사단은 참혹한 학살의 증언이 담긴 400페이지 분량의 진상조사 보고서를 냈다. 진상조사단은 이 조사를 근거로 이 사건을 미얀마 군부의 '집단학살(genocide)'로 규정했다. 하지만 미 국무부의 입장은 조금 달랐다.


학살을 강력히 비난했지만, 미얀마 군부가 이를 의도했다는 뚜렷한 증거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국무부는 대신 국제형사법상 처벌 규정이 없는 '인종 청소(ethnic cleansing)'라고 규정지었다. 헤더 노어트 국무부대변인은 이들 용어는 '매우 구체적인 법적 용어'라서 쉽게 사용할 수 없다는 신중한 입장을 내놨다.

이후 책임자 처벌은 점점 어려워졌다. 당시 핵심 책임자로 6명의 미얀마군 장성들이 지목됐다. 당시 총 사령관은 '민 아웅 흘라잉 (Min Aung Hlaing)'이였다.

2017년 로힝야족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 국제사회가 책임을 묻지 못하면서 그의 권위는 더 강력해졌다. 이후 아웅 산 수 치의 문민정부가 집권했지만, 사실상 권력을 분점해 온 그는 2021년 2월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사진 AP그렇게 5년이 지난 2022년 3월 22일, 백악관은 크게 진전된 입장을 내놨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일부러 홀로코스트 박물관을 찾아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에 대한 폭력은 '집단학살(genocide)'과 '반 인륜적 범죄'라고 밝혔다. '광범위하고 조직적이며, 로힝야족을 말살하려는 분명한 의도가 있었다'고 강조했다.


국무부는 이를 위해 방글라데시 난민촌의 로힝야 난민 1천명 이상을 조사했다. 그들 4명중 3명은 직접 눈으로 미얀마군의 로힝야 주민 살인을 목격했다고 했다.
이중 절반은 직접 성폭행을 목격했다고 증언했다. 주민 5명중 1명은 한번에 100명이 이상이 죽는 것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이로서 나찌의 유대인 학살이후 르완다, 다르푸르의 학살 등 미국정부가 대량학살로 인정한 사건은 모두 8개로 늘어났다.


늦었지만 국제법상 로힝야 가해자들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토대도 강화됐다. 만약 이런 강경한 입장이 지난 2019년에 나왔으면 미얀마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로힝야 학살을 주도한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로힝야 학살 4년뒤인 지난해 2월, 총선 결과를 부정하며 결국 쿠데타를 일으켰다. 미얀마의 민주화 시계는 다시 1980년대로 돌아갔다.



3. 아웅 산 수 치 Aung San Suu Kyi

20년 넘게 군부와 싸우며 가택연금을 반복했던 아웅산 수 치는 2015년 결국 총선에서 승리해 첫 문민정부 시대를 열었다. 하지만 70년 넘게 집권한 군부와 권력 분점이 불가피했다. 그렇게 권력을 나눠 가진지 3년이 지날 무렵, 군부는 로힝야족을 집단 학살했다.

로힝야족은 이슬람교다. 2차대전 무렵 미얀마가 영국으로부터 독립 투쟁을 벌일 때 영국군 편에 섰다. 그러니 불교를 믿는 다수 버마족의 여론은 오히려 가해자인 군부에 유리하게 흘러갔다. 아웅산 수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019년 12월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한 아웅 산 수 치 고문, 로힝야 학살에 대한 군부의 책임을 사실상 부인했다. 사진 로이터
2019년 12월 11일, 아웅산 수 치 고문이 로힝야 진상조사를 위해 국제사법재판소에 출석했다. 이 자리에서 로힝야 집단학살을 부인하며 사실상 군부의 손을 들어줬다.


불법을 저지른 군인들을 기소하겠다고 밝혔지만, '집단 학살'은 아니며, 이를 위한 군부의 의도도 찾기 어렵다고 했다.

수치 고문은 이런 이유로 국제사법재판소가 로힝야 학살에 대한 재판의 권리를 갖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국제사회는 크게 실망했다. 유럽 곳곳에서 그녀의 '노벨평화상'을 취소하라는 시위가 이어졌다.

백악관은 고민했다. 인도와 중국에 인접한(미얀마는 인도차이나반도에서 제일 국토가 넓은 나라다) 미얀마에서 민주화된 문민정부를 유지하는게 우선이였다. 죽은 로힝야족들의 영혼을 뒤로하고 군부에 면죄부를 준 아웅산 수치를 그냥 지켜봤다. '집단학살'은 없는게 됐다. 그렇게 군부의 싹을 살려뒀다.


4.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로힝야의 참극은 이제서야 백악관에 의해 '집단학살'이 됐다. 백악관 관계자는 '미얀마에서 더이상의 잔학행위를 막고 책임을 묻기위한 국제적인 지지를 얻으려는 우리의 입장을 강화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미 국부무의 입장 변화에 대해 미얀마 군부는 성명을 내고, "미얀마 군은 어떠한 집단학살 행위에도 가담한 적이 없고, 어떤 집단학살 의도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쿠데타 주역 '민 아웅 흘라잉' 사령관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받으며 장기 집권 기반을 다지고 있다.

미얀마 군은 탓마도(tatmadaw)라 불린다. 국민의 군대라는 뜻이다. 70여년전 영국과의 독립전쟁을 위해 민족 영웅 아웅산(AUNG SAN) 장군이 창설했다.


탓마도는 지난해 2월, 총선에서 다시 승리한 문민정부의 임기 첫날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장군의 딸 '아웅산 수 치' 고문을 다시 잡아 가두고, 최소 12개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수 치 고문은 지난 두번의 재판에서 모두 6년형을 받았다. 하나둘씩 남은 형량이 더해지면 최소 수십년형이 불가피하다.


로힝야 참극을 5년만에 '집단학살'로 규정한 미국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유엔이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소수민족으로 로힝야족을 지정'한 건 지난 2012년이다. 국제사회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국제사법재판소는 최근 로힝야족 학살에 대한 재판 개시를 위한 청문 절차를 시작했다.

로힝야족 일부는 방글라데시 난민촌을 떠나 같은 이슬람국가인 말레이시아 등으로 밀입국을 시도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입국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보트 피플로 바다를 떠돌거나 일부는 바다에서 죽음을 맞는다. 사진은 피난길의 로힝야족. 사진 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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