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강아지 ‘눈덩이’가 맞아 죽은 이유…중국 ‘무해화’란?

입력 2022.03.26 (07:00) 수정 2022.03.26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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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예드 품종의 강아지 '눈덩이(雪球)'는 고작 3년 3개월을 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장시성 샹라오에서 맞아 죽은 코기 모습. (출처: 바이두) 지난해 11월 장시성 샹라오에서 맞아 죽은 코기 모습. (출처: 바이두)

위 사진 속의 웰시 코기도 지난해 11월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두 마리 모두 자신들의 반려인으로부터 갑자기 격리된 채, 극도의 두려움 속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긴 막대를 든 방역 요원을 피해 ‘눈덩이’가 구석에 숨어 있다. (출처: 바이두) 긴 막대를 든 방역 요원을 피해 ‘눈덩이’가 구석에 숨어 있다. (출처: 바이두)

바로 위 사진처럼 방역 인력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서 말입니다. 지난해 9월 중국 선전시에서는 고양이 세 마리도 '같은 이유'로 죽었습니다.

■ 반려동물들이 희생된 이유는?

반려동물을 향한 이러한 폭력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중국식 '제로 코로나', 이른바 코로나19 무관용 정책은 원칙상 감염자를 1명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제로 코로나' 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려동물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반려인'과의 연관성 때문이었습니다.

3월 2일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에서 사모예드 '눈덩이' 사례의 경우, 반려인의 남자친구가 무증상 감염됐습니다. 반려인 역시 곧바로 격리 조치 됐습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됐기 때문인데요.

격리가 시작되자 마자 방역 당국은 반려인에게 '집안은 소독하고, 동물은 무해화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무해화(无害化)', 한마디로 해가 없도록 처리한다는 겁니다.

혹시 반려동물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 모르니 '인간에게' 해가 없도록 처분하겠다는 뜻입니다.

 반려인은 여러 방역 기관에 ‘눈덩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했다. (출처: 웨이보) 반려인은 여러 방역 기관에 ‘눈덩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했다. (출처: 웨이보)

무해화 통보를 받은 반려인은 여러 방역 기관과 연락했습니다. '무해화'를 막을 수는 없는지, 또 눈덩이가 끌려갔다면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기 위해서였는데요.

하지만 반려인은 자신이 격리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눈덩이'가 집안 창고에서 살해당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도 폐쇄회로 TV를 통해서 말입니다.

실제 반려인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눈덩이'도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감염됐을 가능성'을 이유로 반려인은 격리되고, 반려견은 죽음을 당한 겁니다.

지난해 11월 중국 장시성 샹라오에서 죽임을 당한 웰시코기 사건은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반려인과 웰시코기 모두 코로나19 감염 검사가 '음성'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음성 결과를 기다릴 새도 없을 만큼 무해화 처분은 '급하고 획일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웰시코기에 이어 눈덩이 사건까지 공개되면서 중국 내 '무해화' 조치에 대한 논란은 커졌습니다. 결국, 해당 방역 당국은 통보문 한 장을 발표했습니다.


'부당한 처치'에 대한 짧은 사과,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없었습니다.

■ 반려동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퍼트릴까?

'반려동물 = 처리'라는 조건반사적인 '무해화' 조치 뒤에는 지방 방역 당국의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할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치료는 불가능하고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루훙저우 중국 국가위건위 위원이 중국 관영매체 CCTV에 출연해 동물 무해화 처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루훙저우 중국 국가위건위 위원이 중국 관영매체 CCTV에 출연해 동물 무해화 처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현지 언론조차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이유로 반려동물을 죽이는 것은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현재까지 반려동물이 코로나19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질병 예방 통제 전문가 위원회의 루훙저우 위원은 지난해 11월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동물들이 발병한 증거가 없고,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전파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반려동물을 격리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과학적인 태도"라고 밝혔습니다.

베이징시의 경우 반려인이 격리되면 집에 남은 반려동물을 돌봐준다고 홍보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혼자 집에 남은 반려견을 베이징시 방역 요원이 관리해주는 모습. 격리 중인 반려인과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지난해 11월 혼자 집에 남은 반려견을 베이징시 방역 요원이 관리해주는 모습. 격리 중인 반려인과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한수의사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가능성보다 사람에서 동물로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동물쪽에서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난 5일 상하이 한 격리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자신이 동물 무해화 처분에 대한 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공개했다.  지난 5일 상하이 한 격리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자신이 동물 무해화 처분에 대한 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많은 지방 정부들은 '무해화'가 아닌 다른 방법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진은 지난 3월 5일, 중국 상하이 슈샨 진쟝의 한 격리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공개한 '승낙서'입니다. 앞서 1월 상하이 훙차오 한 격리시설에서 반려인들이 같은 내용의 동의서를 받았다고 폭로한데 이어 두 번째입니다.

'자발적으로, 즉시, 무조건 반려동물을 무해화 처분'하는 것에 동의해야하는 것도 모자라 반려동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하는 겁니다.

 무해화된 웰시코기(왼쪽)와 눈덩이(오른쪽). 과연 해를 끼치는 것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르겠다. 무해화된 웰시코기(왼쪽)와 눈덩이(오른쪽). 과연 해를 끼치는 것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르겠다.

'2019년 중국 반려동물백서'에 따르면 중국에는 9천만 마리 넘는 반려견과 반려묘가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의 반려동물들에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라 팬데믹이 불러 온 인간의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더 큰 위협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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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강아지 ‘눈덩이’가 맞아 죽은 이유…중국 ‘무해화’란?
    • 입력 2022-03-26 07:00:33
    • 수정2022-03-26 08:04:24
    특파원 리포트

사모예드 품종의 강아지 '눈덩이(雪球)'는 고작 3년 3개월을 살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습니다.

병에 걸렸거나 사고를 당한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장시성 샹라오에서 맞아 죽은 코기 모습. (출처: 바이두)
위 사진 속의 웰시 코기도 지난해 11월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두 마리 모두 자신들의 반려인으로부터 갑자기 격리된 채, 극도의 두려움 속에 죽음을 맞이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긴 막대를 든 방역 요원을 피해 ‘눈덩이’가 구석에 숨어 있다. (출처: 바이두)
바로 위 사진처럼 방역 인력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서 말입니다. 지난해 9월 중국 선전시에서는 고양이 세 마리도 '같은 이유'로 죽었습니다.

■ 반려동물들이 희생된 이유는?

반려동물을 향한 이러한 폭력은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중국식 '제로 코로나', 이른바 코로나19 무관용 정책은 원칙상 감염자를 1명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반려견과 반려묘가 '제로 코로나' 정책과 무슨 상관이 있겠냐고 하겠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반려동물 때문이 아니라 함께 사는 '반려인'과의 연관성 때문이었습니다.

3월 2일 중국 광둥성 후이저우에서 사모예드 '눈덩이' 사례의 경우, 반려인의 남자친구가 무증상 감염됐습니다. 반려인 역시 곧바로 격리 조치 됐습니다. 밀접접촉자로 분류됐기 때문인데요.

격리가 시작되자 마자 방역 당국은 반려인에게 '집안은 소독하고, 동물은 무해화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무해화(无害化)', 한마디로 해가 없도록 처리한다는 겁니다.

혹시 반려동물도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을지 모르니 '인간에게' 해가 없도록 처분하겠다는 뜻입니다.

 반려인은 여러 방역 기관에 ‘눈덩이’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연락했다. (출처: 웨이보)
무해화 통보를 받은 반려인은 여러 방역 기관과 연락했습니다. '무해화'를 막을 수는 없는지, 또 눈덩이가 끌려갔다면 어디로 갔는지 찾아내기 위해서였는데요.

하지만 반려인은 자신이 격리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눈덩이'가 집안 창고에서 살해당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것도 폐쇄회로 TV를 통해서 말입니다.

실제 반려인이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됐는지, '눈덩이'도 바이러스에 노출됐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도 아니고, '감염됐을 가능성'을 이유로 반려인은 격리되고, 반려견은 죽음을 당한 겁니다.

지난해 11월 중국 장시성 샹라오에서 죽임을 당한 웰시코기 사건은 더욱 당혹스럽습니다.

반려인과 웰시코기 모두 코로나19 감염 검사가 '음성'으로 확인됐기 때문입니다. 음성 결과를 기다릴 새도 없을 만큼 무해화 처분은 '급하고 획일적으로' 이뤄졌습니다.

웰시코기에 이어 눈덩이 사건까지 공개되면서 중국 내 '무해화' 조치에 대한 논란은 커졌습니다. 결국, 해당 방역 당국은 통보문 한 장을 발표했습니다.


'부당한 처치'에 대한 짧은 사과, 하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는 약속은 없었습니다.

■ 반려동물이 코로나19 바이러스 퍼트릴까?

'반려동물 = 처리'라는 조건반사적인 '무해화' 조치 뒤에는 지방 방역 당국의 잘못된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19를 전파할 수 있다.', '동물에 대한 치료는 불가능하고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입니다.

 루훙저우 중국 국가위건위 위원이 중국 관영매체 CCTV에 출연해 동물 무해화 처리에 대한 반대 의견을 밝혔다.
하지만 중국 현지 언론조차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 위험을 이유로 반려동물을 죽이는 것은 의학적인 근거가 없다고 설명합니다.

현재까지 반려동물이 코로나19를 퍼뜨릴 수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는 확인된 바가 없습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 질병 예방 통제 전문가 위원회의 루훙저우 위원은 지난해 11월 중국 관영 CCTV와의 인터뷰에서 "동물들이 발병한 증거가 없고, 바이러스를 사람에게 전파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반려동물을 격리시키면 된다고 생각한다. 이게 과학적인 태도"라고 밝혔습니다.

베이징시의 경우 반려인이 격리되면 집에 남은 반려동물을 돌봐준다고 홍보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혼자 집에 남은 반려견을 베이징시 방역 요원이 관리해주는 모습. 격리 중인 반려인과 영상통화도 가능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도 동물이 사람에게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전파할 위험은 낮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한수의사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동물에서 사람으로 전파될 가능성보다 사람에서 동물로 전파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동물쪽에서 사람과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죠.

 지난 5일 상하이 한 격리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자신이 동물 무해화 처분에 대한 동의서를 써야 했다고 공개했다.
하지만 아직도 중국의 많은 지방 정부들은 '무해화'가 아닌 다른 방법은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위 사진은 지난 3월 5일, 중국 상하이 슈샨 진쟝의 한 격리시설에 들어가게 된 사람이 공개한 '승낙서'입니다. 앞서 1월 상하이 훙차오 한 격리시설에서 반려인들이 같은 내용의 동의서를 받았다고 폭로한데 이어 두 번째입니다.

'자발적으로, 즉시, 무조건 반려동물을 무해화 처분'하는 것에 동의해야하는 것도 모자라 반려동물에 대한 어떠한 권리도 주장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하는 겁니다.

 무해화된 웰시코기(왼쪽)와 눈덩이(오른쪽). 과연 해를 끼치는 것이 인간인지 동물인지 모르겠다.
'2019년 중국 반려동물백서'에 따르면 중국에는 9천만 마리 넘는 반려견과 반려묘가 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중국의 반려동물들에게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아니라 팬데믹이 불러 온 인간의 막연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더 큰 위협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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