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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천재 조각가’ 권진규 전시회…BTS RM 소장품까지
입력 2022.03.27 (09:01) 수정 2022.03.27 (16:42) 취재K

한때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 작품을 기억하시나요? 조각가 권진규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1967)인데요.

1922년 4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조각가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사흘전인 지난 24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 회화 등 주요작품 총 240여 점이 선보입니다. 이 중에는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도 있었습니다.

전시회장을 다녀왔습니다.

■ 왜 '비운의 천재 조각가'?

이번 전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노실의 천사(Angel of Atelier)'라는 제목으로 열렸습니다. 노실은 가마가 있는 방, 천사는 그가 만들어 낸 작품들을 뜻합니다.

권진규(1922~1973)는 세속을 떠나 이상을 추구하던 조각가입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편견 없이 넘나들었습니다.

학예연구사인 유수경씨는 " 권진규에게 있어서 진정한 작품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대상의 진정한 본질적인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조각가 권진규.


비록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간 예술가였다는 겁니다.

■ '우물' 위에 동물상들이?… 방탄소년단 RM 소장품까지

이번 전시는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작품(총 141점)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리움 등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니 권진규가 생전 작품을 만들던 장소인 우물과 가마가 그대로 재현돼 있었습니다. 이 '우물'위에는 다양한 동물 조각들이 놓여 있었는데요.

아틀리에에서 개를 키우는 등 동물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고, 다시 스케치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검은 고양이>(1963)은 하늘로 꼬리를 힘껏 올리며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집트 조각처럼 정면성이 강조되고 세부적인 묘사는 생략된 채 강건한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 하늘을 쳐다보는 말, 붉은 말, 고개를 아래로 구부리고 있는 말 등 다양한 형태의 <마두>도 있습니다. 고개를 아래로 구부리고 있는 흰 말은 마치 풀을 뜯어먹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권진규가 1965년쯤 작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이 곳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는데요.

흰 말은 방탄소년단 RM이 개인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RM이 말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연락했는데 "권진규 조각가를 좋아한다며 RM이 흔쾌히 작품 대여를 허락해 전시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 교과서에서 본 <지원의 얼굴> 등 여성상 만들어


권진규는 홍익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서양화과의 장지원, 공예과의 최경자, 오형자 등을 모델로 여성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원의 얼굴'(1967)은 제자 장지원을 모델로 한 조각상입니다.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약간 들어 시선을 위로 하고 긴 목을 앞으로 살짝 뺀 모습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주는 강한 정신성을 볼 수 있는 권진규의 대표작입니다.

지원의 얼굴이 전시된 이곳은 권진규가 조각을 빚던 가마가 있는 방을 형상화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테라코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테라코타는 '구운 흙'이라는 뜻으로 점토를 손으로 빚어 구운 조각을 말합니다.

권진규가 만든 여성상은 얼굴과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유수경 학예연구사는 "고대 이집트 미술이 대상을 포현할 때 세부적인 표현보다는 대상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단정한 형태 안에서 깊이 있는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각은 정직하게 손으로 빚어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는 서울시립미술관 측. 이번 전시를 통해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권진규만의 강한 정신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 ‘비운의 천재 조각가’ 권진규 전시회…BTS RM 소장품까지
    • 입력 2022-03-27 09:01:00
    • 수정2022-03-27 16:42:39
    취재K

한때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이 작품을 기억하시나요? 조각가 권진규의 대표작 <지원의 얼굴>(1967)인데요.

1922년 4월 함경남도 함흥에서 태어난 조각가 권진규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전시가 사흘전인 지난 24일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막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기까지 그의 조각, 회화 등 주요작품 총 240여 점이 선보입니다. 이 중에는 방탄소년단 RM이 소장하고 있던 작품도 있었습니다.

전시회장을 다녀왔습니다.

■ 왜 '비운의 천재 조각가'?

이번 전시는 권진규 탄생 100주년을 맞아 '노실의 천사(Angel of Atelier)'라는 제목으로 열렸습니다. 노실은 가마가 있는 방, 천사는 그가 만들어 낸 작품들을 뜻합니다.

권진규(1922~1973)는 세속을 떠나 이상을 추구하던 조각가입니다. 그는 작품을 통해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편견 없이 넘나들었습니다.

학예연구사인 유수경씨는 " 권진규에게 있어서 진정한 작품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것도 아닌 대상의 진정한 본질적인 것을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중섭,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미술의 3대 거장’으로 불리는 조각가 권진규.


비록 생전에는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어떤 사조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자신만의 세계를 묵묵히 걸어간 예술가였다는 겁니다.

■ '우물' 위에 동물상들이?… 방탄소년단 RM 소장품까지

이번 전시는 지난해 유족이 기증한 작품(총 141점)과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학교박물관, 리움 등 기관과 개인 소장자로부터 대여받은 작품이 포함됐습니다.


전시 공간에 들어서니 권진규가 생전 작품을 만들던 장소인 우물과 가마가 그대로 재현돼 있었습니다. 이 '우물'위에는 다양한 동물 조각들이 놓여 있었는데요.

아틀리에에서 개를 키우는 등 동물과 가까이 지냈던 그는 이들의 다양한 움직임을 관찰하고, 사진으로 찍고, 다시 스케치하는 과정을 거쳐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검은 고양이>(1963)은 하늘로 꼬리를 힘껏 올리며 기지개를 펴는 모습을 표현한 작품입니다. 이집트 조각처럼 정면성이 강조되고 세부적인 묘사는 생략된 채 강건한 모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또, 하늘을 쳐다보는 말, 붉은 말, 고개를 아래로 구부리고 있는 말 등 다양한 형태의 <마두>도 있습니다. 고개를 아래로 구부리고 있는 흰 말은 마치 풀을 뜯어먹는 듯한 모습이었는데요. 권진규가 1965년쯤 작업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입니다.


이 곳 앞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이 많았는데요.

흰 말은 방탄소년단 RM이 개인 소장하고 있던 작품이었습니다. 미술관 측은 RM이 말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을 듣고 연락했는데 "권진규 조각가를 좋아한다며 RM이 흔쾌히 작품 대여를 허락해 전시하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 교과서에서 본 <지원의 얼굴> 등 여성상 만들어


권진규는 홍익대학교 강사로 근무하면서 알게 된 서양화과의 장지원, 공예과의 최경자, 오형자 등을 모델로 여성 흉상을 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도 '지원의 얼굴'(1967)은 제자 장지원을 모델로 한 조각상입니다. 스카프로 머리를 감싼 채 고개를 약간 들어 시선을 위로 하고 긴 목을 앞으로 살짝 뺀 모습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주는 강한 정신성을 볼 수 있는 권진규의 대표작입니다.

지원의 얼굴이 전시된 이곳은 권진규가 조각을 빚던 가마가 있는 방을 형상화했습니다.


이 작품들은 테라코타 방식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테라코타는 '구운 흙'이라는 뜻으로 점토를 손으로 빚어 구운 조각을 말합니다.

권진규가 만든 여성상은 얼굴과 시선은 정면을 바라보고, 얼굴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의 묘사는 과감하게 생략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유수경 학예연구사는 "고대 이집트 미술이 대상을 포현할 때 세부적인 표현보다는 대상의 본질적인 부분에 집중하는 것처럼 단순하고 단정한 형태 안에서 깊이 있는 정신성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조각은 정직하게 손으로 빚어내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에게도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는 서울시립미술관 측. 이번 전시를 통해 외부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는 권진규만의 강한 정신성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는 5월 2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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