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미군정 희생자 ‘형 집행’ 문서 첫 입수

입력 2022.03.29 (08:07) 수정 2022.03.2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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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 당시 수형인과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이 이어지면서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당시 재판부의 기록이 재심의 중요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경우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한 희생자의 미 군정 문서를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문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흔을 앞둔 이순천 할아버지가 친형 이경천 씨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70여 년 전인 1947년 4월입니다.

당시 22살의 교사였던 친형은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이순천/이경천 씨 동생 : "어머님이 아마 참석을 했던 모양이야. 재판하는데. 형님 얼굴도 봤대 (체포이후)처음으로…"]

미 군정 재판이었기에 국가기록원에 판결문도 없는 상황, 유일한 기록은 당시 지역 신문기사뿐이었습니다.

KBS는 재판과 관련한 기록을 입증할 미 군정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당시 조선주둔미군군정청 제주군정재판소가 목포형무소장에게 보낸 문서입니다.

영어로 적힌 이경천 씨 이름과 이 씨가 살던 북제주군의 주소가 명시됐습니다.

포고령 제2호 위반, 징역 8월 선고까지 당시 기사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주 4.3 당시 일반 재판부에서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유족은 당시 판결문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이 아닌 미 군정의 이번 '형 집행' 문서는 시민단체와 변호인의 도움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법원이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로는 처음으로 재심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김세은/재심 담당 변호인 : "이러한 자료가 현재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라는 것들이 확인됐기 때문에 추후 미군에 의한 재판을 받으셨던 분들이 (재심 때) 더 수월하게 자료를 확인하고... "]

이 씨와 같은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 수는 관련 기록이 없거나 찾아내지 못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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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주 4·3 미군정 희생자 ‘형 집행’ 문서 첫 입수
    • 입력 2022-03-29 08:07:08
    • 수정2022-03-29 08: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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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최대 비극인 제주 4·3 당시 수형인과 희생자들에 대한 재심이 이어지면서 명예 회복이 이뤄지고 있는데요.

당시 재판부의 기록이 재심의 중요 자료가 됩니다.

하지만,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경우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었는데, 한 희생자의 미 군정 문서를 KBS가 처음으로 입수했습니다.

문준영 기자입니다.

[리포트]

아흔을 앞둔 이순천 할아버지가 친형 이경천 씨를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70여 년 전인 1947년 4월입니다.

당시 22살의 교사였던 친형은 3·1절 기념식에 참석했다는 이유 등으로 미 군정 재판부로부터 형을 선고받고 목포형무소에 수감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이순천/이경천 씨 동생 : "어머님이 아마 참석을 했던 모양이야. 재판하는데. 형님 얼굴도 봤대 (체포이후)처음으로…"]

미 군정 재판이었기에 국가기록원에 판결문도 없는 상황, 유일한 기록은 당시 지역 신문기사뿐이었습니다.

KBS는 재판과 관련한 기록을 입증할 미 군정 문서를 입수했습니다.

당시 조선주둔미군군정청 제주군정재판소가 목포형무소장에게 보낸 문서입니다.

영어로 적힌 이경천 씨 이름과 이 씨가 살던 북제주군의 주소가 명시됐습니다.

포고령 제2호 위반, 징역 8월 선고까지 당시 기사 내용과 일치합니다.

제주 4.3 당시 일반 재판부에서 형을 선고받은 희생자의 유족은 당시 판결문으로 재심을 청구하고 있습니다.

판결문이 아닌 미 군정의 이번 '형 집행' 문서는 시민단체와 변호인의 도움으로 국가기록원에서 어렵게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법원이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로는 처음으로 재심을 결정하게 된 계기가 됐습니다.

[김세은/재심 담당 변호인 : "이러한 자료가 현재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라는 것들이 확인됐기 때문에 추후 미군에 의한 재판을 받으셨던 분들이 (재심 때) 더 수월하게 자료를 확인하고... "]

이 씨와 같은 미 군정 재판부의 희생자 수는 관련 기록이 없거나 찾아내지 못해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KBS 뉴스 문준영입니다.

촬영기자:신비오/그래픽:조하연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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