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한일관계 회복? 아베는 “역사전 총력 지원”
입력 2022.03.31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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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광산
아베와 아소 전 총리, 니카이 도시히로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전현 간사장, 다카이치 정무조사회장…. 내로라할 일본 정계 거물급 인사들이 지난 28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자민당 의원연맹 설립총회가 열린 자리입니다. 아베와 아소, 스가 등 전 총리 세 명은 고문에 이름을 올렸고, 자민당 내 모든 파벌의 간부가 참여했습니다.
기시다 내각이 사도광산의 후보 추천을 머뭇거리자 아베 등 강경파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난 2월 추천 후에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한 의원연맹을 설립하고 나선 겁니다. 한국의 눈치를 보는 내각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들이 '일본 정부의 한국과의 역사전을 총력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 "보수계 후보에 불리할까봐"…입 연 아베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할지는 '불투명'하다는 일본 내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문화청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후보 선정' 직후입니다. 정부 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례적인 조건에서 한발 더 나아간 관측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동안 세계유산 후보 추천에 뜸을 들였습니다. 언론에 추천 보류설을 흘려놓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듯했습니다.
한국의 반발로 인해 등재가 어려워질 가능성, 메이지산업혁명유산(군함도)에 대해 '전체 역사를 기재'하겠다는 유네스코와의 약속 불이행, 일본의 이중잣대(난징대학살 기록 유산 등재 추진 당시 일본이 당사국으로서 문제 제기) 등이 배경으로 거론됐습니다.
'사도광산 추천 보류설'에 일본 내에서는 의아해했고, 등재를 준비해 온 니가타현과 사도시, 지역 정치인들은 줄기차게 반발했습니다. 20년가량 이어져 온 지역의 숙원을 일본 정부가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갑작스럽게 없던 일로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정부에 사도광산 추천 요청서를 전달하는 니가타현 지사
궁금증을 자아냈던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아베 전 총리가 최근 입을 열었습니다. 아베는 월간지 겟칸 하나다(月刊 hanada)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왜 사도광산의 후보 추천을 미뤘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언급했습니다.
'사도광산 문제가 조만간 치러질 한국의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견해가 일본 정부 내에 존재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내용입니다.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면) 한국 내 반일감정이 더 강해지고, 그로 인해 보수계 후보가 (대선에서) 불리해지지 않을까(라는 견해가 일본 정부 내에 존재했다)"라고 말합니다. 후보들의 이름이나 보수계 후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투표하는 대선 후보
■기시다 내각이 걱정한 건 무엇일까?
일본의 세계유산을 하나 늘리는 것보다 한국에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본 정부 내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한일관계가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사도광산의 등재 여건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은 1년 뒤로 예고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방류'입니다.
이에 대한 주변국(한국과 중국)의 비판 수위를 낮추는 건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사도광산의 추천보다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 외무성이 한국의 반응을 우려해 사도광산 추천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것은 일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됐던 내용입니다.
후쿠시마 제1 원전 부지 내 방사능 오염수가 담긴 저장탱크들
그런데도 당시 아베는 기시다 내각이 사도광산 추천에 뜸을 들이자, 주도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일본 자민당 보수단결회를 결집시켜 사도광산 문제를 '역사전쟁'으로 규정했고, 정부가 왜 보류 결정을 내렸는지 근거를 밝히라고 압박했습니다.
또 자신의 SNS에는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해서 등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인가? 역사전에 도전 받은 이상 피할 수 없다"라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전에 도전 받은 이상 피할 수 없다’고 주장한 아베 전 총리의 페이스북 게시글(1월 27일)
■ '세계유산 추천, 한국과는 무관'
아베는 '사도광산 추천 강행'을 주장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2015년에 한국은 (보수계인) 박근혜 정권 집권기였고, "일본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정권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인식 문제에서는 달라" 반발이 극심했다는 겁니다.
2015년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메이지산업혁명유산(군함도)
결국, 아베는 정치적으로 어떤 성향의 한국 정권이든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도광산 추천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문화유산을 추천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로, 한국의 사정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제징용의 역사를 누락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도광산 추천 여부는 일본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치열한 논쟁이 일었지만, 기시다 내각은 전면에 나선 아베와 다카이치 정조회장 등 강경파의 압박에 못 이겨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추천을 강행했습니다. 문화청의 선정 발표 이후 추천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시다 내각 일부에서 제기됐던 예측과는 달리 사도광산은 한국의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고, 보수계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기시다 내각은 한국 대선에서 보수계 후보가 불리해질 것을 우려했던 만큼, 다음 정부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28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만나 "진정성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면 저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관계 회복에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양쪽이 다 노력하자고도 했습니다.
■ 아베 패싱, 가능할까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아베는 여전히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기시다 내각의 사도광산의 처리 방향을 틀게 한 것도 그입니다.
내각 출범 당시 언론에 오르내리던 '기시다 컬러'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아베-스가 정권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베와 그의 맹우 아소, 스가 전 총리가 주도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지원하기 위한 의원연맹을 발족시켰습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자민당 내에 '사도광산을 제2의 군함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은 '강제징용 현장의 세계유산화'라는 의미로 '제2의 군함도'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은 다릅니다. 강제징용 역사를 누락했다고 해서 유네스코가 왈가왈부하는 지금의 군함도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기시다 총리와 윤석열 당선인
한일관계의 개선의 첫 단추는 과거사 문제입니다. 군함도에 이어 무대에 오른 사도광산은 강제징용에 대한 양측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베가 이끄는 사도광산 의원연맹은 내년 여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기시다 내각의 '한국과의 역사전'을 총력 지원한다는 태세입니다. 기시다 내각이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면,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은 역사전에 나선 이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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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력 2022-03-31 16:12:26
아베와 아소 전 총리, 니카이 도시히로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전현 간사장, 다카이치 정무조사회장…. 내로라할 일본 정계 거물급 인사들이 지난 28일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자민당 의원연맹 설립총회가 열린 자리입니다. 아베와 아소, 스가 등 전 총리 세 명은 고문에 이름을 올렸고, 자민당 내 모든 파벌의 간부가 참여했습니다.
기시다 내각이 사도광산의 후보 추천을 머뭇거리자 아베 등 강경파가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난 2월 추천 후에도 '보고만 있을 수 없다'며 강력한 의원연맹을 설립하고 나선 겁니다. 한국의 눈치를 보는 내각에 대한 불신도 작용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이들이 '일본 정부의 한국과의 역사전을 총력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썼습니다.
■ "보수계 후보에 불리할까봐"…입 연 아베
지난해 12월, 일본 정부가 조선인 강제징용 현장인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할지는 '불투명'하다는 일본 내 보도가 이어졌습니다. 문화청의 '사도광산 세계유산 후보 선정' 직후입니다. 정부 내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이례적인 조건에서 한발 더 나아간 관측이었습니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한동안 세계유산 후보 추천에 뜸을 들였습니다. 언론에 추천 보류설을 흘려놓고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듯했습니다.
한국의 반발로 인해 등재가 어려워질 가능성, 메이지산업혁명유산(군함도)에 대해 '전체 역사를 기재'하겠다는 유네스코와의 약속 불이행, 일본의 이중잣대(난징대학살 기록 유산 등재 추진 당시 일본이 당사국으로서 문제 제기) 등이 배경으로 거론됐습니다.
'사도광산 추천 보류설'에 일본 내에서는 의아해했고, 등재를 준비해 온 니가타현과 사도시, 지역 정치인들은 줄기차게 반발했습니다. 20년가량 이어져 온 지역의 숙원을 일본 정부가 뚜렷한 이유도 밝히지 않고 갑작스럽게 없던 일로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궁금증을 자아냈던 일본 정부의 태도에 대해 아베 전 총리가 최근 입을 열었습니다. 아베는 월간지 겟칸 하나다(月刊 hanada)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가 왜 사도광산의 후보 추천을 미뤘는지를 묻는 질문에 '한국의 대통령 선거'를 언급했습니다.
'사도광산 문제가 조만간 치러질 한국의 대선 결과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 이 같은 견해가 일본 정부 내에 존재했다는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이런 내용입니다.
"(사도광산을 세계유산 후보로 추천하면) 한국 내 반일감정이 더 강해지고, 그로 인해 보수계 후보가 (대선에서) 불리해지지 않을까(라는 견해가 일본 정부 내에 존재했다)"라고 말합니다. 후보들의 이름이나 보수계 후보가 누구를 지칭하는지는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기시다 내각이 걱정한 건 무엇일까?
일본의 세계유산을 하나 늘리는 것보다 한국에 보수 성향의 정권이 들어서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인식이 일본 정부 내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에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한일관계가 일본에 유리한 방향으로 개선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사도광산의 등재 여건이 지금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합니다. 특히,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발등에 떨어진 불은 1년 뒤로 예고한 후쿠시마 오염수의 '해양방류'입니다.
이에 대한 주변국(한국과 중국)의 비판 수위를 낮추는 건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사도광산의 추천보다 더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일본 외무성이 한국의 반응을 우려해 사도광산 추천을 강력히 반대했다는 것은 일본 언론에서도 여러 차례 보도됐던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당시 아베는 기시다 내각이 사도광산 추천에 뜸을 들이자, 주도적으로 비판하고 나섰습니다. 일본 자민당 보수단결회를 결집시켜 사도광산 문제를 '역사전쟁'으로 규정했고, 정부가 왜 보류 결정을 내렸는지 근거를 밝히라고 압박했습니다.
또 자신의 SNS에는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해서 등재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인가? 역사전에 도전 받은 이상 피할 수 없다"라며 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했습니다.
■ '세계유산 추천, 한국과는 무관'
아베는 '사도광산 추천 강행'을 주장했던 이유에 대해서도 밝혔습니다.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2015년에 한국은 (보수계인) 박근혜 정권 집권기였고, "일본에 대한 이해도가 가장 높은 정권이었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인식 문제에서는 달라" 반발이 극심했다는 겁니다.
결국, 아베는 정치적으로 어떤 성향의 한국 정권이든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에 대해서는 다르지 않기 때문에 사도광산 추천을 강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일본 정부가 문화유산을 추천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문제로, 한국의 사정은 관계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강제징용의 역사를 누락해도 문제될 게 없다는 생각입니다. 사도광산 추천 여부는 일본 집권 자민당 내부에서조차 치열한 논쟁이 일었지만, 기시다 내각은 전면에 나선 아베와 다카이치 정조회장 등 강경파의 압박에 못 이겨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후보 추천을 강행했습니다. 문화청의 선정 발표 이후 추천까지 한 달 넘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기시다 내각 일부에서 제기됐던 예측과는 달리 사도광산은 한국의 대선에서 큰 이슈가 되지 않았고, 보수계 후보가 승리했습니다. 기시다 내각은 한국 대선에서 보수계 후보가 불리해질 것을 우려했던 만큼, 다음 정부에 대한 '기대'는 높아졌습니다.
윤석열 당선인은 28일 아이보시 고이치 주한일본대사를 만나 "진정성을 가지고 서로 소통하고 대화하면 저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관계 회복에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양쪽이 다 노력하자고도 했습니다.
■ 아베 패싱, 가능할까
자민당 최대 파벌의 수장인 아베는 여전히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기시다 내각의 사도광산의 처리 방향을 틀게 한 것도 그입니다.
내각 출범 당시 언론에 오르내리던 '기시다 컬러'는 지금은 찾아볼 수 없고, 아베-스가 정권의 연장선이라는 인식이 굳어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아베와 그의 맹우 아소, 스가 전 총리가 주도해 사도광산의 세계유산 등재를 지원하기 위한 의원연맹을 발족시켰습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자민당 내에 '사도광산을 제2의 군함도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은 '강제징용 현장의 세계유산화'라는 의미로 '제2의 군함도'라고 표현하지만, 이들은 다릅니다. 강제징용 역사를 누락했다고 해서 유네스코가 왈가왈부하는 지금의 군함도 같은 상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한일관계의 개선의 첫 단추는 과거사 문제입니다. 군함도에 이어 무대에 오른 사도광산은 강제징용에 대한 양측의 인식을 확인할 수 있는 생생한 현장입니다.
실질적으로 아베가 이끄는 사도광산 의원연맹은 내년 여름 세계유산 등재를 목표로 기시다 내각의 '한국과의 역사전'을 총력 지원한다는 태세입니다. 기시다 내각이 한일관계 개선에 나서겠다면, 넘어야 할 첫 번째 벽은 역사전에 나선 이들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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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종익 기자 jigu@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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