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병원 참사’ 아내 잃은 가장, 아들 두고 하늘로…배상은 ‘지연’

입력 2022.03.31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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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 반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불이 나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 반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불이 나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

사망 47명, 부상 112명

2018년 1월 26일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피해자들입니다.

문성규 씨의 띠동갑 아내 이희정 씨도 사망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당시 36살로, 사망자 가운데 가장 젊었습니다. 불이 나기 한 달 전, 교통사고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집에서 푹 쉬면 괜찮아질 정도였지만, 하루라도 빨리 나으려고 세종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달 뒤 하나뿐인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건강한 모습으로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희정씨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해 9월 화물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있는 모습.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해 9월 화물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있는 모습.

아내를 잃은 슬픔을 오래 간직할 겨를도 없이 문 씨는 화물차를 몰았습니다. 뇌성마비 아들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섭니다. 혼자서는 생활이 힘든 아들을 장애인 복지 시설에 맡기고 전국을 돌며 화물을 운송했습니다.

밤·낮 구분 없는 삶이 지속 되던 2020년. 문 씨는 틈틈이 시간을 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소송 상대는 병원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한 경상남도와 밀양시였습니다.

아내의 황당한 죽음, 나아가 159명의 사상자를 낸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 아내를 가슴 속에서 내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송에는 문 씨를 포함해 사망한 입원 환자와 당직의사 고 민현식 씨, 간호사 고 김점자 씨 유족들이 함께했습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문성규 씨가 아내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찾은 모습.지난해 9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문성규 씨가 아내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찾은 모습.

지난해 9월 1심 법원인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차례 안전점검에도 화재 위험 요소를 발견하지 못한 경상남도와 밀양시의 과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법원을 나온 문 씨는 곧장 아내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찾아 반가운 소식을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 경상남도-밀양시 책임 공방…문성규 씨, 최근 뇌출혈로 숨져

반가운 소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심 재판 불과 며칠 뒤, 경상남도와 밀양시는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각각 항소했습니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책임은 서로 상대방, 혹은 병원에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참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 15일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뇌출혈로 숨졌다.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참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 15일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뇌출혈로 숨졌다.

그렇게 2심 재판 시작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이번 달 중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터로 나간 문성규 씨가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뇌출혈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차된 차 안에 쓰러진 문 씨를 동료들이 발견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문 씨는 결국 자치단체로부터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아내 곁으로 떠났습니다.

유족들은 문 씨가 아내를 잃고 난 뒤 토끼잠을 자며 일했다고 전했습니다. 문성규 씨의 누나는 "보상을 좀 해줬으면 그만큼 피로도 안 쌓였고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먹여 살리려고 하니까,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법원 "경상남도·밀양시, 화재 예방 의무 게을리해…70% 배상해야"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연결하는 2층 통로에는 불법 설치된 가림막이 있었습니다. 화재 당시 발생한 연기가 이 가림막을 타고 병원 위층과 바로 옆 요양병원으로 확산했습니다.

밀양시와 소방서는 이 가림막의 존재를 2011년부터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두 기관이 가림막에 대해 이행강제금만 부과했을 뿐 병원 측이 철거하도록 조치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고 봤습니다.

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 2층 통로에 불법 설치된 가림막. 가림막을 통해 연기가 확산돼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 2층 통로에 불법 설치된 가림막. 가림막을 통해 연기가 확산돼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밀양시와 경상남도의 화재 안전 점검이 허술했던 점도 확인됐습니다. 2015년 세종병원에 대한 국가안전대진단이 있었는데, 대피 방향과 반대로 붙어 있었던 피난 안내도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화재 때 신속한 대피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또, 병원 비상 발전기 점검에서 용량이 충분하다는 병원 측 말만 믿고서는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불이 날 당시 비상 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정지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6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산소호흡기에 전원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법원은 경상남도와 밀양시의 이 같은 과실을 인정해 유족 청구금액의 70%를 각각 배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 경상남도·밀양시, 네 탓 공방에 배상 지연…유족 고통은 진행 중

먼저 경상남도는 소방시설 관리 점검의 1차 책임은 세종병원에 있으며, 국가안전대진단의 점검 주체도 밀양시라며 책임을 넘겼습니다.

반면 밀양시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화재 피해를 예방할 의무가 밀양시에는 부과되어 있지 않다고 맞섰습니다. 또 국가안전대진단은 행정상 조치에 불과하며, 발전기 점검은 경상남도가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손해배상 책임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책임 공방이 이어진 것입니다.

고 문성규 씨의 빈소.고 문성규 씨의 빈소.

문 씨가 끝내 보지 못하고 간 2심 재판은 오는 5월 12일 다시 시작됩니다.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유족들은 쉽게 끝나지 않을 소송임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두 기관이 2심 재판에 이어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세종병원 참사가 난 지 4년.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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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병원 참사’ 아내 잃은 가장, 아들 두고 하늘로…배상은 ‘지연’
    • 입력 2022-03-31 19:21:52
    취재K
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 반쯤 경남 밀양시 세종병원 1층 응급실에서 불이 나 47명이 숨지고 112명이 다쳤다.
사망 47명, 부상 112명

2018년 1월 26일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참사 피해자들입니다.

문성규 씨의 띠동갑 아내 이희정 씨도 사망자 가운데 한 명입니다. 당시 36살로, 사망자 가운데 가장 젊었습니다. 불이 나기 한 달 전, 교통사고로 물리치료를 받으러 간 것이 화근이 됐습니다.

집에서 푹 쉬면 괜찮아질 정도였지만, 하루라도 빨리 나으려고 세종병원에 입원했습니다. 한 달 뒤 하나뿐인 아들의 초등학교 졸업식에 건강한 모습으로 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희정씨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밀양 세종병원 화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해 9월 화물차를 타고 일터로 가고 있는 모습.
아내를 잃은 슬픔을 오래 간직할 겨를도 없이 문 씨는 화물차를 몰았습니다. 뇌성마비 아들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섭니다. 혼자서는 생활이 힘든 아들을 장애인 복지 시설에 맡기고 전국을 돌며 화물을 운송했습니다.

밤·낮 구분 없는 삶이 지속 되던 2020년. 문 씨는 틈틈이 시간을 내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습니다. 소송 상대는 병원 안전 점검을 소홀히 한 경상남도와 밀양시였습니다.

아내의 황당한 죽음, 나아가 159명의 사상자를 낸 책임을 누군가에게는 물어야 아내를 가슴 속에서 내보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소송에는 문 씨를 포함해 사망한 입원 환자와 당직의사 고 민현식 씨, 간호사 고 김점자 씨 유족들이 함께했습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문성규 씨가 아내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찾은 모습.
지난해 9월 1심 법원인 창원지법 밀양지원은 유족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일부 받아들였습니다. 여러 차례 안전점검에도 화재 위험 요소를 발견하지 못한 경상남도와 밀양시의 과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법원을 나온 문 씨는 곧장 아내의 위패가 봉안된 사찰을 찾아 반가운 소식을 아내에게 전했습니다.

■ 경상남도-밀양시 책임 공방…문성규 씨, 최근 뇌출혈로 숨져

반가운 소식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1심 재판 불과 며칠 뒤, 경상남도와 밀양시는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며 각각 항소했습니다. 대형 인명피해가 발생한 책임은 서로 상대방, 혹은 병원에 있다는 이유였습니다.

2018년 1월 밀양 세종병원 참사로 아내를 잃은 문성규 씨가 지난 15일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뇌출혈로 숨졌다.
그렇게 2심 재판 시작을 불과 한 달여 앞둔 이번 달 중순,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터로 나간 문성규 씨가 자신의 화물차 안에서 뇌출혈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주차된 차 안에 쓰러진 문 씨를 동료들이 발견했지만, 이미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문 씨는 결국 자치단체로부터 사과도, 배상도 받지 못한 채 아내 곁으로 떠났습니다.

유족들은 문 씨가 아내를 잃고 난 뒤 토끼잠을 자며 일했다고 전했습니다. 문성규 씨의 누나는 "보상을 좀 해줬으면 그만큼 피로도 안 쌓였고 아직까지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하고 먹여 살리려고 하니까, 얼마나 고생했겠습니까"라며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 법원 "경상남도·밀양시, 화재 예방 의무 게을리해…70% 배상해야"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연결하는 2층 통로에는 불법 설치된 가림막이 있었습니다. 화재 당시 발생한 연기가 이 가림막을 타고 병원 위층과 바로 옆 요양병원으로 확산했습니다.

밀양시와 소방서는 이 가림막의 존재를 2011년부터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두 기관이 가림막에 대해 이행강제금만 부과했을 뿐 병원 측이 철거하도록 조치하지 않아 인명피해가 커졌다고 봤습니다.

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 2층 통로에 불법 설치된 가림막. 가림막을 통해 연기가 확산돼 인명 피해가 커진 것으로 경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밀양시와 경상남도의 화재 안전 점검이 허술했던 점도 확인됐습니다. 2015년 세종병원에 대한 국가안전대진단이 있었는데, 대피 방향과 반대로 붙어 있었던 피난 안내도를 제대로 점검하지 않아 화재 때 신속한 대피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습니다.


또, 병원 비상 발전기 점검에서 용량이 충분하다는 병원 측 말만 믿고서는 '적합' 판정을 내린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불이 날 당시 비상 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정지된 엘리베이터 안에서 6명이 숨진 채 발견됐고, 산소호흡기에 전원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아 3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법원은 경상남도와 밀양시의 이 같은 과실을 인정해 유족 청구금액의 70%를 각각 배상하라고 주문했습니다.

■ 경상남도·밀양시, 네 탓 공방에 배상 지연…유족 고통은 진행 중

먼저 경상남도는 소방시설 관리 점검의 1차 책임은 세종병원에 있으며, 국가안전대진단의 점검 주체도 밀양시라며 책임을 넘겼습니다.

반면 밀양시는 지역보건법에 따라 화재 피해를 예방할 의무가 밀양시에는 부과되어 있지 않다고 맞섰습니다. 또 국가안전대진단은 행정상 조치에 불과하며, 발전기 점검은 경상남도가 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결국, 손해배상 책임비율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책임 공방이 이어진 것입니다.

고 문성규 씨의 빈소.
문 씨가 끝내 보지 못하고 간 2심 재판은 오는 5월 12일 다시 시작됩니다.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유족들은 쉽게 끝나지 않을 소송임을 예견하고 있습니다. 두 기관이 2심 재판에 이어 대법원까지 소송을 이어갈 뜻을 내비쳤기 때문입니다.

세종병원 참사가 난 지 4년. 참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고 있지만, 유족들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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