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행복택시’ 보조금…개인택시는 왜 제외?

입력 2022.04.06 (0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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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 행복택시', 들어보신 분들 더러 계실 겁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노인들의 이동 편의를 돕기 위해, 택시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이름과 내용의 교통 복지 사업이 속속 시행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도 2018년 3월부터 '어르신 행복택시' 사업이 시작된 이래, 수년째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제주에 사는 만 70세 이상 도민은 택시 요금을 지원하는 '복지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택시를 이용할 때 한 번에 최대 7천 원까지 결제할 수 있고, 연간 24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보다 면적은 넓지만, 인구는 특정 지역에 쏠려 있는 데다 지하철이 없는 등 대중교통이 열악한 탓에, 읍·면 지역을 비롯해 시내권에서도 '어르신 행복택시'의 인기는 해마다 높아졌죠.

문제는, 이 제도를 악용하는 비양심 택시 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 "기본요금 거리인데…택시요금이 7천 원?"

제주시에 사는 도민 A씨는 아흔이 넘은 모친의 택시 요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A씨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가까운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동네 의원까지 거리는 겨우 1.4km 남짓으로, 기본요금 거리인 2km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A씨가 모친의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니, 반년 동안 결제된 택시비는 많게는 6~7천 원까지 들쑥날쑥이었습니다. 기본요금 3천 300원이 '정직하게' 결제된 횟수는 단 세 번. 아침에 집을 나서 병원에 갈 때 요금과 집으로 되돌아올 때 요금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A씨는 "어머니께선 일부러 집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셔서 택시를 잡으시는 분이셨다"면서 "택시기사가 '복지카드가 있고, 1년에 24번 쓸 수가 있고, 한 번에 카드 결제할 때 7천 원 긁으면 됩니다'라고 했다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그길로 택시업체에 따져 물었더니, 그제야 잘못을 시인했다"며 황당함을 표했습니다.

제주시에 사는 또 다른 도민 B씨도 비슷한 경험을 말했습니다. 그의 부친 역시 어르신 행복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복지카드'를 발급받아 사용 중입니다.


B씨는 "(아버지가) 하귀에서 외도를 가는 데 평균 한 4~5천 원이 나오는 거리이지만, 계속 7천 원이 결제된다고 하시길래 의아했다"면서 택시 기사가 노인들에게 몰래, 요금을 과잉 청구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했습니다.

지난해 초, 이 같은 의혹과 관련해 공익 신고를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제주도 감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는데요. 그 결과, 일부 택시기사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과잉 요금을 청구한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 실제 주행거리보다 요금 과다 청구…'미터기 끈 채' 운행도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어르신 행복택시' 사업이 시작된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3년간 복지카드로 결제된 택시요금 44만 7천200여 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정상 요금보다 더 많이 결제된 부당요금 징수 건수는 2만 9천 6백여 건(6.63%)에 달했고, 미터기를 켜지 않고 돈을 받은 사례도 6만 3천여 건으로, 전체의 14%를 넘었습니다.

이렇게 택시회사들이 추가로 받아간 보조금만 7천500여만 원에 달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어르신 몰래 요금을 더 많이 받는 경우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르신 행복택시의 요금 과다 결제행위 건수는 사업 첫해인 2018년, 1천700여 건이었지만 이듬해 8천200여 건으로 무려 4배 이상 껑충 뛰었고, 지난해에는 1만 4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그야말로, '안 챙겨 먹으면 바보'라는 나랏돈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세태라고나 할까요.

■ 조사 대상, 택시 전체의 23%뿐…개인택시는 제외?

이번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조사로, 그간 말로만 전해왔던 '어르신 행복택시'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가 다수 확인돼, 제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감사가 반쪽짜리에 그친다는 비판도 피하긴 어렵습니다. 보조금 부정 수급 의혹과 관련한 감사 대상 택시가 너무 한정적이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번 제주도 감사위의 조사 대상은 제주도내 34개 일반택시회사가 운영하는 택시 1,300~1,400여 대.
제주에서 영업하는 택시 5천323대(지난해 11월 기준) 가운데 겨우 27%에 불과합니다.

전체 택시의 73%에 달하는 개인택시는 이번 조사에서 빠진 탓에, 실제 '어르신 행복택시' 요금 과다 결제와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택시에 설치된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의 기록을 토대로, 실제 택시 운행기록과 택시요금을 복지카드로 결제한 내역을 비교 분석한 건데요.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 Taxi operation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은 요금미터기와 운행기록장치 정보를 실시간 수집해 택시 운송 수입금, 운행정보, 운전자 근무실태 등을 수집·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개인택시의 경우 이 같은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에서 빠져 있어, 이번 요금 부정 청구와 보조금 부당 수급 사례를 조사하기 어렵다는 게 제주도의 입장입니다.

제주도 택시행정팀 관계자는 "(개인택시는) 택시운행정보 시스템에 가입시키는 강제 규정이 없다"면서 "앞으로 전기차 보조금이라든가 노후택시 교체사업 보조 지원 사업을 통해서, '팀스(TIMS, 택시운행정보 시스템)'에 가입하도록 행정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제주도 감사위는 택시업체에 추가 지급된 보조금을 회수하도록 하고, 복지카드 결제방식 보완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며 제주도에 주문했습니다.


제주도는 부정 지급된 보조금 회수와 함께, 부당 요금 징수와 관련해 해당 택시기사와 업체에 과태료 처분도 내릴 방침입니다.

제주도가 올해 어르신 행복택시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52억 원. 사업 시행 첫해인 2018년부터 지금까지 혈세 195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일부 택시기사들이 '어르신 행복택시' 요금을 과잉 청구하면서 보조금을 부정으로 받아 챙기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사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기됐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업 시행 4년째가 되도록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한데요.

고령의 택시 승객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는 업계 일부 비양심도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세금이 올바르게 집행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행정도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연관 기사]
‘어르신 행복택시’ 요금 빼돌리기 의혹…감사위 조사 중 (2021. 09. 02.)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71190
행복택시 ‘부정수급’ 반복…제도개선은 ‘요원’ (2021. 09. 03.)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272738
기본요금 거리를 7천 원에?…‘어르신 행복택시’ 요금 과잉결제 사실로 (2022. 04. 05.)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32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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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줄줄 새는 ‘행복택시’ 보조금…개인택시는 왜 제외?
    • 입력 2022-04-06 06:02:12
    취재K
게티이미지
'어르신 행복택시', 들어보신 분들 더러 계실 겁니다. 대중교통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을 중심으로 노인들의 이동 편의를 돕기 위해, 택시비 일부를 지원해주는 제도인데요.

최근 몇 년 사이, 전국 각지에서 비슷한 이름과 내용의 교통 복지 사업이 속속 시행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도 2018년 3월부터 '어르신 행복택시' 사업이 시작된 이래, 수년째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제주에 사는 만 70세 이상 도민은 택시 요금을 지원하는 '복지카드'를 발급받을 수 있는데, 택시를 이용할 때 한 번에 최대 7천 원까지 결제할 수 있고, 연간 24회 이용할 수 있습니다.

서울보다 면적은 넓지만, 인구는 특정 지역에 쏠려 있는 데다 지하철이 없는 등 대중교통이 열악한 탓에, 읍·면 지역을 비롯해 시내권에서도 '어르신 행복택시'의 인기는 해마다 높아졌죠.

문제는, 이 제도를 악용하는 비양심 택시 기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 "기본요금 거리인데…택시요금이 7천 원?"

제주시에 사는 도민 A씨는 아흔이 넘은 모친의 택시 요금을 보고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A씨의 어머니는 일주일에 한 번, 집에서 가까운 의원에서 치료를 받으러 다닙니다. 동네 의원까지 거리는 겨우 1.4km 남짓으로, 기본요금 거리인 2km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그러나 A씨가 모친의 카드 결제 내역을 살펴보니, 반년 동안 결제된 택시비는 많게는 6~7천 원까지 들쑥날쑥이었습니다. 기본요금 3천 300원이 '정직하게' 결제된 횟수는 단 세 번. 아침에 집을 나서 병원에 갈 때 요금과 집으로 되돌아올 때 요금이 2배 이상 차이가 나는 날도 있었습니다.

A씨는 "어머니께선 일부러 집 근처 버스정류장까지 걸어가셔서 택시를 잡으시는 분이셨다"면서 "택시기사가 '복지카드가 있고, 1년에 24번 쓸 수가 있고, 한 번에 카드 결제할 때 7천 원 긁으면 됩니다'라고 했다더라. 어처구니가 없어 그길로 택시업체에 따져 물었더니, 그제야 잘못을 시인했다"며 황당함을 표했습니다.

제주시에 사는 또 다른 도민 B씨도 비슷한 경험을 말했습니다. 그의 부친 역시 어르신 행복택시를 이용하기 위해 제주도에서 '복지카드'를 발급받아 사용 중입니다.


B씨는 "(아버지가) 하귀에서 외도를 가는 데 평균 한 4~5천 원이 나오는 거리이지만, 계속 7천 원이 결제된다고 하시길래 의아했다"면서 택시 기사가 노인들에게 몰래, 요금을 과잉 청구하는 게 아니냐며 의심했습니다.

지난해 초, 이 같은 의혹과 관련해 공익 신고를 접수한 국민권익위원회는 제주도 감사위원회에 조사를 의뢰했는데요. 그 결과, 일부 택시기사들이 이 제도를 악용해 과잉 요금을 청구한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습니다.

■ 실제 주행거리보다 요금 과다 청구…'미터기 끈 채' 운행도

제주도 감사위원회는 '어르신 행복택시' 사업이 시작된 2018년 3월부터 지난해 3월까지, 3년간 복지카드로 결제된 택시요금 44만 7천200여 건을 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정상 요금보다 더 많이 결제된 부당요금 징수 건수는 2만 9천 6백여 건(6.63%)에 달했고, 미터기를 켜지 않고 돈을 받은 사례도 6만 3천여 건으로, 전체의 14%를 넘었습니다.

이렇게 택시회사들이 추가로 받아간 보조금만 7천500여만 원에 달했습니다.

주목할 점은, 어르신 몰래 요금을 더 많이 받는 경우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는 겁니다.

어르신 행복택시의 요금 과다 결제행위 건수는 사업 첫해인 2018년, 1천700여 건이었지만 이듬해 8천200여 건으로 무려 4배 이상 껑충 뛰었고, 지난해에는 1만 4천 건을 넘어섰습니다.


그야말로, '안 챙겨 먹으면 바보'라는 나랏돈에 대한 인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씁쓸한 세태라고나 할까요.

■ 조사 대상, 택시 전체의 23%뿐…개인택시는 제외?

이번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조사로, 그간 말로만 전해왔던 '어르신 행복택시'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가 다수 확인돼, 제도 개선의 계기를 마련한 점은 긍정적입니다.

그러나 이번 감사가 반쪽짜리에 그친다는 비판도 피하긴 어렵습니다. 보조금 부정 수급 의혹과 관련한 감사 대상 택시가 너무 한정적이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이번 제주도 감사위의 조사 대상은 제주도내 34개 일반택시회사가 운영하는 택시 1,300~1,400여 대.
제주에서 영업하는 택시 5천323대(지난해 11월 기준) 가운데 겨우 27%에 불과합니다.

전체 택시의 73%에 달하는 개인택시는 이번 조사에서 빠진 탓에, 실제 '어르신 행복택시' 요금 과다 결제와 보조금 부정 수급 사례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제주도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택시에 설치된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의 기록을 토대로, 실제 택시 운행기록과 택시요금을 복지카드로 결제한 내역을 비교 분석한 건데요.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TIMS, Taxi operation Information Management System)은 요금미터기와 운행기록장치 정보를 실시간 수집해 택시 운송 수입금, 운행정보, 운전자 근무실태 등을 수집·관리하는 시스템입니다.

개인택시의 경우 이 같은 택시운행정보관리시스템에서 빠져 있어, 이번 요금 부정 청구와 보조금 부당 수급 사례를 조사하기 어렵다는 게 제주도의 입장입니다.

제주도 택시행정팀 관계자는 "(개인택시는) 택시운행정보 시스템에 가입시키는 강제 규정이 없다"면서 "앞으로 전기차 보조금이라든가 노후택시 교체사업 보조 지원 사업을 통해서, '팀스(TIMS, 택시운행정보 시스템)'에 가입하도록 행정적으로 유도할 방침"이라고 밝혔습니다.

한편 제주도 감사위는 택시업체에 추가 지급된 보조금을 회수하도록 하고, 복지카드 결제방식 보완 등 개선 방안을 마련하라며 제주도에 주문했습니다.


제주도는 부정 지급된 보조금 회수와 함께, 부당 요금 징수와 관련해 해당 택시기사와 업체에 과태료 처분도 내릴 방침입니다.

제주도가 올해 어르신 행복택시에 지원하는 보조금은 52억 원. 사업 시행 첫해인 2018년부터 지금까지 혈세 195억 원이 투입됐습니다.

일부 택시기사들이 '어르신 행복택시' 요금을 과잉 청구하면서 보조금을 부정으로 받아 챙기는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는, 사실 제도 도입 초기부터 제기됐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업 시행 4년째가 되도록 제도 개선은 지지부진한데요.

고령의 택시 승객들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보조금을 부정으로 수급하는 업계 일부 비양심도 비판받아야 마땅하지만, 세금이 올바르게 집행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행정도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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