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닉 바잉’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

입력 2022.04.06 (07:00) 수정 2022.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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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조치로 러시아에서 의약품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의약품의 70%를 다국적 제약사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 제약사들은 인도적인 이유로 러시아에 필수 의약품을 계속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약품 부족 현상이 빚어진 것은 제재조치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데다, 의약품 공급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약을 사재기하는 공황 구매(panic buying)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어린이 시럽부터 전문의약품까지 80여 종 품귀"

AP통신은 모스크바와 인근 도시에서 일부 의약품을 구하기 힘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3월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러시아의 최대 의료인 커뮤니티가 의사 3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염제, 위장약, 항경련제, 항우울제 등 의약품 80여 종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널리 쓰이는 어린이용 시럽제를 비롯해 갑상선 약, 당뇨약 같은 만성질환 약조차 며칠씩 찾아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모스크바 병원의 심장 전문의 알렉세이 에르리히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치료하는 환자에게 쓸 특정 혈압약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주변 의사들도 수술에 사용하던 고가의 중요한 의약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도 환자 권리 보호 단체가 가장 흔히 쓰이는 약품 10가지의 수급 상황을 파악해봤더니, 정부가 운영하는 약국도 물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약품의 추가 입고 시점도 불투명했습니다.


■ 공급망 교란에 불안감 확산…패닉 바잉

의약품 부족 사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러시아가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에서 퇴출되면서 결제에 차질이 빚어졌고, 러시아를 오가는 항공과 선박 편이 급감하면서 공급망이 교란됐습니다.

의약품 공급이 차질을 빚자 언제 의약품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러시아 국민들이 약을 사재기하는 공황 구매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의약 시장 분석 기업 RNC파마의 니콜라이 베스팔로프 개발 책임자는 1년이나 1년 6개월치 물량이 한달 안에 동난 경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당국도 의약품 부족은 공황 구매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일부 의약품의 수요가 최근 몇주 사이에 10배씩 뛰어올랐다는 겁니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라앉으면 의약품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제약사, 러시아 제재 수위 올릴까

관건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러시아 제재 동참 움직임입니다. 존슨앤존슨은 지난달 29일 글로벌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러시아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필수 의약품이 아닌 피부 관리 제품이나 구강 청결제 같은 개인 위생 용품의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겁니다.


존슨앤존슨의 이번 조치는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제재 조치를 한 단계 강화한 것입니다. 존슨앤존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유보하고 광고 중단, 신규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올린 수익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겠다고도 했습니다. 다만 러시아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 공급은 지속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번에 의약품 공급 방침은 유지하면서도 의약품이 아닌 제품에 대한 공급을 일부 중단하는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머크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도 그동안 존슨앤존슨과 비슷한 수준, 즉 투자를 제한하는 정도의 제재 조치를 시행해왔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의약품 공급을 전면 중단할 경우, 전쟁에 책임이 없는 환자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윤리적 딜레마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약사들도 존슨앤존슨처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일부 제품 공급 중단 단계로 높인다면, 언젠가 의약품 공급이 끊길 거라는 러시아인들의 불안감이 현실화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의약품의 70%를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러시아에 있는 서방 기업의 생산에 의존합니다.

러시아의 영문 언론인 모스크바 타임즈는 의약품 부족 사태와 공황 구매가 지속되면 의약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암시장이 활성화될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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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닉 바잉’ 의약품 부족에 시달리는 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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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정2022-04-06 07:00:55
    세계는 지금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제재조치로 러시아에서 의약품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의약품의 70%를 다국적 제약사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들 제약사들은 인도적인 이유로 러시아에 필수 의약품을 계속 공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의약품 부족 현상이 빚어진 것은 제재조치로 공급망에 차질이 빚어진 데다, 의약품 공급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약을 사재기하는 공황 구매(panic buying)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 "어린이 시럽부터 전문의약품까지 80여 종 품귀"

AP통신은 모스크바와 인근 도시에서 일부 의약품을 구하기 힘들다고 보도했습니다. 이런 현상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직후인 3월 초부터 시작됐습니다.

러시아의 최대 의료인 커뮤니티가 의사 3천 명 이상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소염제, 위장약, 항경련제, 항우울제 등 의약품 80여 종이 부족한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널리 쓰이는 어린이용 시럽제를 비롯해 갑상선 약, 당뇨약 같은 만성질환 약조차 며칠씩 찾아야 구할 수 있는 상황이 됐습니다.

모스크바 병원의 심장 전문의 알렉세이 에르리히는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치료하는 환자에게 쓸 특정 혈압약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주변 의사들도 수술에 사용하던 고가의 중요한 의약품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러시아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도 환자 권리 보호 단체가 가장 흔히 쓰이는 약품 10가지의 수급 상황을 파악해봤더니, 정부가 운영하는 약국도 물량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의약품의 추가 입고 시점도 불투명했습니다.


■ 공급망 교란에 불안감 확산…패닉 바잉

의약품 부족 사태는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가 본격화되면서 시작됐습니다. 러시아가 달러 결제망인 스위프트에서 퇴출되면서 결제에 차질이 빚어졌고, 러시아를 오가는 항공과 선박 편이 급감하면서 공급망이 교란됐습니다.

의약품 공급이 차질을 빚자 언제 의약품 수입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러시아 국민들이 약을 사재기하는 공황 구매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의약 시장 분석 기업 RNC파마의 니콜라이 베스팔로프 개발 책임자는 1년이나 1년 6개월치 물량이 한달 안에 동난 경우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러시아 당국도 의약품 부족은 공황 구매 탓이라고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일부 의약품의 수요가 최근 몇주 사이에 10배씩 뛰어올랐다는 겁니다. 러시아 정부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가라앉으면 의약품 수급이 정상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글로벌 제약사, 러시아 제재 수위 올릴까

관건은 다국적 제약사들의 러시아 제재 동참 움직임입니다. 존슨앤존슨은 지난달 29일 글로벌 제약사 가운데 처음으로 러시아에 제품 공급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필수 의약품이 아닌 피부 관리 제품이나 구강 청결제 같은 개인 위생 용품의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겁니다.


존슨앤존슨의 이번 조치는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제재 조치를 한 단계 강화한 것입니다. 존슨앤존슨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에 대한 신규 투자를 유보하고 광고 중단, 신규 임상시험 중단을 선언했습니다. 러시아에서 올린 수익을 우크라이나 지원에 쓰겠다고도 했습니다. 다만 러시아 환자의 생명에 영향을 미치는 의약품 공급은 지속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이번에 의약품 공급 방침은 유지하면서도 의약품이 아닌 제품에 대한 공급을 일부 중단하는 조치를 내린 것입니다.

화이자, 아스트라제네카, 글락소스미스클라인, 머크 같은 글로벌 제약사들도 그동안 존슨앤존슨과 비슷한 수준, 즉 투자를 제한하는 정도의 제재 조치를 시행해왔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의약품을 판매하는 제약사 입장에서는 의약품 공급을 전면 중단할 경우, 전쟁에 책임이 없는 환자들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어 윤리적 딜레마를 고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제약사들도 존슨앤존슨처럼, 러시아에 대한 제재 수위를 일부 제품 공급 중단 단계로 높인다면, 언젠가 의약품 공급이 끊길 거라는 러시아인들의 불안감이 현실화할 수도 있습니다. 러시아는 의약품의 70%를 해외에서 수입하거나 러시아에 있는 서방 기업의 생산에 의존합니다.

러시아의 영문 언론인 모스크바 타임즈는 의약품 부족 사태와 공황 구매가 지속되면 의약품을 거래하는 온라인 암시장이 활성화될 전망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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