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CCTV 삭제한 원장, 처벌 대상 아니다?

입력 2022.04.06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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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자녀에게서 신체적·정서적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됐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핵심 증거인 CCTV를 확보하는게 급선무일 겁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원장이 이 사실을 알고 고의로 CCTV 영상을 삭제했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요?

검찰이 이런 사건에 대해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한 어린이집 원장을 재판에 넘겼는데요.

대법원이 최근 영유아보육법 위반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CCTV 보여달라"…하드디스크 교체한 어린이집 원장

사건의 발단은 2017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울산의 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 A씨는 어느 날, 5살 원생의 학부모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해당 학부모는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공형 어린이집 취소 등을 우려한 A씨는 CCTV 영상을 훼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흘 뒤 CCTV 수리업자를 불러 CCTV 영상이 저장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버리고, 새 걸로 교체했습니다.

이에 관할관청인 울산 동구청은 A씨가 어린이집 CCTV 영상을 60일간 보관하도록 돼 있는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다며 과태료 40만 원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도 영유아보육법 제15조의5 3항과 제54조 4항을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영유아보육법
제15조의5(영상정보의 열람금지 등)
③ 어린이집을 설치ㆍ운영하는 자는 제15조의4 제1항의 영상정보가 분실ㆍ도난ㆍ유출ㆍ변조 또는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내부 관리계획의 수립, 접속기록 보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ㆍ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제54조(벌칙)
③ 제15조의5 제3항에 따른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영상정보를 분실ㆍ도난ㆍ유출ㆍ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훼손당한 자'란 무엇인가? 엇갈린 1,2심

1,2심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쟁점은 처벌조항에 있는 '훼손당한 자'였습니다. 1심은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A씨에게는 처벌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 판결문 일부
"영유아보육법은 주의 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이 사건처럼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반면, 2심은 '훼손당한'의 대상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닌 CCTV 영상이라고 해석해, 무죄를 뒤집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피고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이 녹화·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버리는 등의 방법으로 은닉한 사실이 인정되고…피고인이 저장장치를 은닉하는 행위를 한 결과 피고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CCTV 영상정보가 훼손당했다"

"따라서 피고인은 법 제15조의5 제3항에 따른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였고 이로 인해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점이 충분히 인정되므로,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은 유죄임이 인정된다."

대법 "'훼손한 자'는 처벌 못 해"

대법원은 1심 판단이 옳다고 결론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2심 판단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법조문을 확장 해석한 것이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우선 '당한 자'라는 문언은 스스로 어떠한 행위를 한 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전제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당한 자'라는 문언은 타인이 어떤 행위를 해 위해 등을 입는 것을 뜻하고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한 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폐쇄회로 영상 정보를 직접 훼손한 어린이집 설치·운영자가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

또, 영유아보육법의 취지를 볼 때 처벌 대상에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사람까지 포함한다고 볼 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구 영유아보육법 제54조 제3항에 따라 처벌되는 자는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위반하여 영상정보가 훼손당하는 등으로 결과적으로 원장, 보육교사와 영유아의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을 의무를 위반한 자를 가리킨다. 여기에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자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규정 체계나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영유아보육법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할 경우 처벌토록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영유아보육법은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관리의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제71조와 같이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를 처벌하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영유아보육법의 규정 태도는 ‘영상정보를 스스로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A씨의 영유아법위반 혐의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CCTV 영상을 스스로 훼손할 경우 영유아보육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일종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만큼, 이번 판결은 향후 하급심 재판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 판결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이번 판결이 CCTV 영상을 스스로 훼손할 경우 과태료만 물릴 수 있을 뿐,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현행 영유아보육법의 입법 미비를 에둘러 지적한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한 문제는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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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집 CCTV 삭제한 원장, 처벌 대상 아니다?
    • 입력 2022-04-06 15:04:16
    취재K

만약 어린이집에 다니고 있는 자녀에게서 신체적·정서적 학대가 의심되는 정황이 발견됐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핵심 증거인 CCTV를 확보하는게 급선무일 겁니다. 그런데 어린이집 원장이 이 사실을 알고 고의로 CCTV 영상을 삭제했다면 처벌할 수 있을까요?

검찰이 이런 사건에 대해 영유아보육법 위반 혐의로 한 어린이집 원장을 재판에 넘겼는데요.

대법원이 최근 영유아보육법 위반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 "CCTV 보여달라"…하드디스크 교체한 어린이집 원장

사건의 발단은 2017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울산의 한 어린이집을 운영하던 원장 A씨는 어느 날, 5살 원생의 학부모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해당 학부모는 담임교사가 아이를 방치한 것 같으니 CCTV 영상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공공형 어린이집 취소 등을 우려한 A씨는 CCTV 영상을 훼손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나흘 뒤 CCTV 수리업자를 불러 CCTV 영상이 저장된 컴퓨터의 하드디스크를 버리고, 새 걸로 교체했습니다.

이에 관할관청인 울산 동구청은 A씨가 어린이집 CCTV 영상을 60일간 보관하도록 돼 있는 영유아보육법을 위반했다며 과태료 40만 원 처분을 내렸습니다.

검찰도 영유아보육법 제15조의5 3항과 제54조 4항을 적용해 A씨를 재판에 넘겼습니다.

영유아보육법
제15조의5(영상정보의 열람금지 등)
③ 어린이집을 설치ㆍ운영하는 자는 제15조의4 제1항의 영상정보가 분실ㆍ도난ㆍ유출ㆍ변조 또는 훼손되지 아니하도록 내부 관리계획의 수립, 접속기록 보관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기술적ㆍ관리적 및 물리적 조치를 하여야 한다.

제54조(벌칙)
③ 제15조의5 제3항에 따른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여 영상정보를 분실ㆍ도난ㆍ유출ㆍ변조 또는 훼손당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 '훼손당한 자'란 무엇인가? 엇갈린 1,2심

1,2심의 판단은 엇갈렸습니다. 쟁점은 처벌조항에 있는 '훼손당한 자'였습니다. 1심은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A씨에게는 처벌 규정을 적용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1심 판결문 일부
"영유아보육법은 주의 의무 위반으로 결과적으로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어린이집 운영자를 처벌한다는 취지로 해석해야지, 이 사건처럼 운영자가 스스로 영상 정보를 훼손하거나 분실한 경우에는 적용할 수 없다"

반면, 2심은 '훼손당한'의 대상은 어린이집 운영자가 아닌 CCTV 영상이라고 해석해, 무죄를 뒤집고 벌금 500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2심 판결문 일부
"피고인이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설치된 CCTV의 영상이 녹화·저장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버리는 등의 방법으로 은닉한 사실이 인정되고…피고인이 저장장치를 은닉하는 행위를 한 결과 피고인이 운영하는 어린이집의 CCTV 영상정보가 훼손당했다"

"따라서 피고인은 법 제15조의5 제3항에 따른 안전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아니하였고 이로 인해 영상정보를 훼손당한 점이 충분히 인정되므로, 이 사건 주위적 공소사실은 유죄임이 인정된다."

대법 "'훼손한 자'는 처벌 못 해"

대법원은 1심 판단이 옳다고 결론냈습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최근 2심 판단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법조문을 확장 해석한 것이라며 원심을 깨고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법원은 우선 '당한 자'라는 문언은 스스로 어떠한 행위를 한 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라고 전제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당한 자'라는 문언은 타인이 어떤 행위를 해 위해 등을 입는 것을 뜻하고 스스로 어떤 행위를 한 자를 포함하는 개념이 아니다"라며 "폐쇄회로 영상 정보를 직접 훼손한 어린이집 설치·운영자가 '영상 정보를 훼손당한 자'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는 것은 문언의 가능한 범위를 벗어나는 것으로서 받아들이기 어렵다. "

또, 영유아보육법의 취지를 볼 때 처벌 대상에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사람까지 포함한다고 볼 순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구 영유아보육법 제54조 제3항에 따라 처벌되는 자는 안정성 확보에 필요한 조치를 취할 의무를 위반하여 영상정보가 훼손당하는 등으로 결과적으로 원장, 보육교사와 영유아의 사생활을 노출시키지 않을 의무를 위반한 자를 가리킨다. 여기에 스스로 영상정보를 훼손한 자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것은 규정 체계나 취지에 비추어 보더라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영유아보육법은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할 경우 처벌토록 규정한 개인정보보호법과는 차이가 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대법원 판결문 일부
영유아보육법은 CCTV를 설치하지 않거나 설치․관리의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과태료를 부과하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 개인정보 보호법 제59조, 제71조와 같이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를 처벌하는 명시적인 규정을 두고 있지 않다. 이러한 영유아보육법의 규정 태도는 ‘영상정보를 스스로 훼손․멸실․변경․위조 또는 유출한 자’에 대해서 형사처벌을 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은 이를 토대로 A씨의 영유아법위반 혐의에 대해 죄를 물을 수 없다며 사건을 파기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CCTV 영상을 스스로 훼손할 경우 영유아보육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일종의 판단 기준을 제시한만큼, 이번 판결은 향후 하급심 재판에서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대법원 판결문에 직접적인 표현은 없지만, 이번 판결이 CCTV 영상을 스스로 훼손할 경우 과태료만 물릴 수 있을 뿐,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는 현행 영유아보육법의 입법 미비를 에둘러 지적한 거란 분석도 나옵니다.

한 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로 인한 문제는 입법적으로 해결할 문제"라고 설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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