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골프장 VIP 할인’…경남 공직사회 기강해이 심각

입력 2022.04.0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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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VIP(공무원) 오시니까 실수 없이 잘 모셔야”

경상남도 2급 공무원 A 씨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남 창원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27차례 골프를 쳤습니다.

예약 시간은 대부분 주말 오전 11시와 정오 사이, 황금시간대입니다.

회원들도 예약을 잡기 힘든 시간이었는데, 비회원이었던 A 씨는 이 시간대 집중적으로 골프를 예약했습니다.

A 씨에게는 회원도 누리기 힘든 파격적인 할인 혜택도 주어졌습니다. 카트 사용료를 포함한 이 골프장 이용료는 주중 18만 원, 주말 21만 원 선이었는데, A 씨는 한 차례당 최대 12만 5천 원을 할인받았습니다.

창원 한 골프장의 일부 주주들이 확보한 골프장 이용료 부당 할인 내역창원 한 골프장의 일부 주주들이 확보한 골프장 이용료 부당 할인 내역

골프장 주주 회원과 등록된 비회원에게 주어지는 할인 혜택은 4~5만 원 선. A 씨는 규정에도 없는 ‘특별 할인’을 받은 것입니다.

회원도 아닌 공무원에게 ‘VIP급 혜택’이 주어진 배경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골프장 대표이사가 있었습니다.

골프장의 한 주주 회원은 “VIP(공무원) 오시니까 실수 없이 잘 모셔야 하고, 일정한 금액을 할인해 주라는 대표이사 지시가 있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2년 5개월 동안 A씨가 부당하게 할인받은 금액만 250만 원. 일부 주주들은 장부를 통해 특별할인 사실이 드러나자 자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공무원 골프장 가명 예약…“공직사회 관행”

A 씨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골프장을 예약할 때 가명을 썼기 때문입니다.

주주들은 A 씨가 공무원일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A 씨의 얼굴을 본 사람을 앞세워 경상남도와 창원시의 모든 부서를 돌며 조직도 사진과 대조했습니다. 그러나 수 개월이 지나도록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지 넉 달째. 주주들에게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골프장 예약 문자가 A 씨에게 직접 가지 않고, 제3 자를 한번 거친 뒤 전송됐다는 제보였습니다. 확보한 전화번호를 메신저에 입력했더니, 프로필 사진에 뜬 사람은 경남도청 소속 2급 공무원이었습니다.


A 씨는 KBS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친하게 지낸 골프장 대표가 예약을 잡아줘 27차례 골프를 친 것은 맞지만, 할인이 적용된 사실은 몰랐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가명을 사용한 것은 공직사회 관행이었고, 할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지난달 말 250만 원을 골프장에 냈다”라고 했습니다.

주주들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창원시 5급 공무원 B 씨도 같은 방법으로 19차례에 걸쳐 190여만 원의 이용료를 할인받은 사실을 확인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 권익위 “골프장 이용료 할인도 금품”…직무 관련성이 ‘관건’

A 씨가 예약을 잡아줬다는 골프장 대표이사의 본업은 도로 표지판과 난간 등을 시공하는 도로시설물 시공업체의 대표입니다. 경상남도를 포함해 창원시의 관급공사를 수주한 이력이 있는 업체입니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창원시 5급 공무원이 골프장 이용료를 부당하게 할인받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창원시 5급 공무원이 골프장 이용료를 부당하게 할인받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회원권을 가진 직무 관련자와 골프를 치면서 할인을 받는 것 역시 금품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골프 접대비가 한 회에 100만 원 이하일 경우라도 직무와 관련 있다면 청탁금지법상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일부 주주들은 A 씨와 B 씨의 부당한 골프장 이용료 할인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경찰에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입건 전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들을 불러 할인 골프를 왜 쳤는지, 직무와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경상남도 감사위원회도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습니다.

창원시(왼쪽)와 경상남도(오른쪽) 전경.창원시(왼쪽)와 경상남도(오른쪽) 전경.

■ 경남 자치단체 공무원의 잇따른 골프 비위

최근 경상남도와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의 골프 비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김해시 환경부서와 정수장의 6급 공무원 3명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 관계자 2명과 제주도 골프 여행을 갔다가 적발됐습니다.

골프장 이용료와 숙박비, 식사비용 등 공무원 한 명당 110만 원을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행정안전부 감찰에서 드러났습니다.

김해시는 이들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경상남도에 중징계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8월에는 창원시 간부 공무원 3명이 수의계약 업체들로부터 접대 골프를 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중징계 등 처분을 받았습니다.

자치단체들은 골프 비위가 적발될 때마다 공직기강을 강화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공무원들의 골프 일탈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고위 공무원 골프 부당 할인”…청탁금지법 조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3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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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무원이 ‘골프장 VIP 할인’…경남 공직사회 기강해이 심각
    • 입력 2022-04-07 06:00:28
    취재K

■ “VIP(공무원) 오시니까 실수 없이 잘 모셔야”

경상남도 2급 공무원 A 씨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경남 창원의 한 골프장에서 지인들과 27차례 골프를 쳤습니다.

예약 시간은 대부분 주말 오전 11시와 정오 사이, 황금시간대입니다.

회원들도 예약을 잡기 힘든 시간이었는데, 비회원이었던 A 씨는 이 시간대 집중적으로 골프를 예약했습니다.

A 씨에게는 회원도 누리기 힘든 파격적인 할인 혜택도 주어졌습니다. 카트 사용료를 포함한 이 골프장 이용료는 주중 18만 원, 주말 21만 원 선이었는데, A 씨는 한 차례당 최대 12만 5천 원을 할인받았습니다.

창원 한 골프장의 일부 주주들이 확보한 골프장 이용료 부당 할인 내역
골프장 주주 회원과 등록된 비회원에게 주어지는 할인 혜택은 4~5만 원 선. A 씨는 규정에도 없는 ‘특별 할인’을 받은 것입니다.

회원도 아닌 공무원에게 ‘VIP급 혜택’이 주어진 배경에는 평소 친하게 지내던 골프장 대표이사가 있었습니다.

골프장의 한 주주 회원은 “VIP(공무원) 오시니까 실수 없이 잘 모셔야 하고, 일정한 금액을 할인해 주라는 대표이사 지시가 있었다”라고 털어놨습니다.

최근 2년 5개월 동안 A씨가 부당하게 할인받은 금액만 250만 원. 일부 주주들은 장부를 통해 특별할인 사실이 드러나자 자체 조사에 착수했습니다.

■ 공무원 골프장 가명 예약…“공직사회 관행”

A 씨를 찾는 일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골프장을 예약할 때 가명을 썼기 때문입니다.

주주들은 A 씨가 공무원일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A 씨의 얼굴을 본 사람을 앞세워 경상남도와 창원시의 모든 부서를 돌며 조직도 사진과 대조했습니다. 그러나 수 개월이 지나도록 신분은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조사를 시작한 지 넉 달째. 주주들에게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골프장 예약 문자가 A 씨에게 직접 가지 않고, 제3 자를 한번 거친 뒤 전송됐다는 제보였습니다. 확보한 전화번호를 메신저에 입력했더니, 프로필 사진에 뜬 사람은 경남도청 소속 2급 공무원이었습니다.


A 씨는 KBS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2000년대 초반부터 친하게 지낸 골프장 대표가 예약을 잡아줘 27차례 골프를 친 것은 맞지만, 할인이 적용된 사실은 몰랐다”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가명을 사용한 것은 공직사회 관행이었고, 할인 사실을 뒤늦게 알고 지난달 말 250만 원을 골프장에 냈다”라고 했습니다.

주주들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창원시 5급 공무원 B 씨도 같은 방법으로 19차례에 걸쳐 190여만 원의 이용료를 할인받은 사실을 확인해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

■ 권익위 “골프장 이용료 할인도 금품”…직무 관련성이 ‘관건’

A 씨가 예약을 잡아줬다는 골프장 대표이사의 본업은 도로 표지판과 난간 등을 시공하는 도로시설물 시공업체의 대표입니다. 경상남도를 포함해 창원시의 관급공사를 수주한 이력이 있는 업체입니다.

지난해 11월 국민권익위원회에 창원시 5급 공무원이 골프장 이용료를 부당하게 할인받았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국민권익위원회는 회원권을 가진 직무 관련자와 골프를 치면서 할인을 받는 것 역시 금품에 해당한다는 해석을 내놨습니다. 골프 접대비가 한 회에 100만 원 이하일 경우라도 직무와 관련 있다면 청탁금지법상 과태료 부과 대상입니다.

일부 주주들은 A 씨와 B 씨의 부당한 골프장 이용료 할인에는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보고 경찰에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수사를 요청했습니다.

경찰은 입건 전 조사를 통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조만간 이들을 불러 할인 골프를 왜 쳤는지, 직무와 연관성이 있었는지를 조사할 계획입니다.

경상남도 감사위원회도 사실 관계 파악에 나섰습니다.

창원시(왼쪽)와 경상남도(오른쪽) 전경.
■ 경남 자치단체 공무원의 잇따른 골프 비위

최근 경상남도와 기초자치단체 공무원들의 골프 비위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김해시 환경부서와 정수장의 6급 공무원 3명은 직무 관련성이 있는 업체 관계자 2명과 제주도 골프 여행을 갔다가 적발됐습니다.

골프장 이용료와 숙박비, 식사비용 등 공무원 한 명당 110만 원을 업체로부터 제공받은 것으로 행정안전부 감찰에서 드러났습니다.

김해시는 이들을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경상남도에 중징계를 요청할 계획입니다.

지난해 8월에는 창원시 간부 공무원 3명이 수의계약 업체들로부터 접대 골프를 친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돼 중징계 등 처분을 받았습니다.

자치단체들은 골프 비위가 적발될 때마다 공직기강을 강화하겠다고 외치고 있지만, 공무원들의 골프 일탈은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연관 기사] “고위 공무원 골프 부당 할인”…청탁금지법 조사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5432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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