흉기 품고 거리 나섰던 남성 ‘무죄’…“교도소 가려고 그랬다”

입력 2022.04.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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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집에서 술을 마시다 돌연 흉기 두 자루를 주머니에 넣고 거리로 나선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밤사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경찰서를 찾아가 “살해할 대상을 찾다가 실패했다”며 자수했는데요.

경찰관에게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최근 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흉기 품고 거리 나선 남성, 살해 실패했다며 경찰에 자수

2020년 12월, 대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남성 박 모 씨는 밤 10시쯤, 대전시 동구에 있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에 있던 흉기 두 자루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박 씨는 2시간 반가량을 대전시 동구와 중구의 거리와 공원을 돌아다녔는데요.

그 뒤 인근 경찰서에 가서 자신이 “사람 두 명을 살해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자수하려고 경찰서에 방문했다”고 말하며 흉기 두 자루를 꺼냈습니다.

당시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경찰관들은 박 씨를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 “살해할 마음 더 들기 전에 구속 바란다”...‘살인예비’ 혐의로 기소

경찰 조사에서 박 씨는 “더 돌아다니다간 사람을 살해할 마음이 더 들기 때문에 구속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에 “거리를 걷다 한 여성과 마주치자 양손으로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들었고 이에 여성이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한 남성에게는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보이자 욕을 하면서 도망쳤다”는 등의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박 씨는 살인할 목적을 가지고 준비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살인예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법정에서 주장 바꾼 남성...“생활고 때문에 교도소 가고 싶어 허위 진술”

그런데 법정에 선 박 씨는 자신의 주장을 뒤집었습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교도소에 가고 싶어서 경찰에 허위로 자수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박 씨가 월세로 살고 있던 집주인에 대한 탐문 수사를 벌였는데요.

실제로 박 씨는 10년 전부터 월세 18만 원을 내고 거주하다가 1년 전부터는 월세를 내지 못해 퇴실 요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 “살인예비죄는 실질적인 외적 행위 있어야”...1심 법원 무죄 선고

재판부는 박 씨가 생활고를 겪은 것 말고도 여러 정황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관련 법리를 보면 살인예비죄가 성립하려면 “살인죄를 범할 목적 외에도 살인죄의 실현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먼저 박 씨가 촬영된 현장 CCTV를 확인한 결과 박 씨가 여성과 마주치거나 흉기를 꺼내 드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고 그 당시 주변에서 살해 등의 협박을 받았다는 112신고가 접수되지도 않았습니다.

또 박 씨가 가지고 있던 흉기가 집에서 요리할 때 쓰는 부엌칼이었는데 칼날 부분이 약간 녹이 슬어 있던 점도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여기에 폭력 전과가 없었고 특별히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도 참작돼 최근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 범죄 증명 안 돼”...검찰 법리 오해 등으로 항소 가능성

재판부는 박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것만 가지고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 행위,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실행할 목적으로 외적 행위에까지 나아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는데요.

검찰은 아직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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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흉기 품고 거리 나섰던 남성 ‘무죄’…“교도소 가려고 그랬다”
    • 입력 2022-04-07 08:00:23
    취재K

홀로 집에서 술을 마시다 돌연 흉기 두 자루를 주머니에 넣고 거리로 나선 한 남성이 있었습니다.

이 남성은 밤사이 거리를 돌아다니다가 경찰서를 찾아가 “살해할 대상을 찾다가 실패했다”며 자수했는데요.

경찰관에게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됐지만 최근 법원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흉기 품고 거리 나선 남성, 살해 실패했다며 경찰에 자수

2020년 12월, 대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50대 남성 박 모 씨는 밤 10시쯤, 대전시 동구에 있는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집에 있던 흉기 두 자루를 외투 주머니에 넣고 집을 나섰습니다.

박 씨는 2시간 반가량을 대전시 동구와 중구의 거리와 공원을 돌아다녔는데요.

그 뒤 인근 경찰서에 가서 자신이 “사람 두 명을 살해하려고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자수하려고 경찰서에 방문했다”고 말하며 흉기 두 자루를 꺼냈습니다.

당시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경찰관들은 박 씨를 곧바로 현행범으로 체포했습니다.


■ “살해할 마음 더 들기 전에 구속 바란다”...‘살인예비’ 혐의로 기소

경찰 조사에서 박 씨는 “더 돌아다니다간 사람을 살해할 마음이 더 들기 때문에 구속을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 당시에 “거리를 걷다 한 여성과 마주치자 양손으로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들었고 이에 여성이 소리를 지르면서 도망쳤다”, “한 남성에게는 주머니에서 흉기를 꺼내 보이자 욕을 하면서 도망쳤다”는 등의 구체적인 범행 경위를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박 씨는 살인할 목적을 가지고 준비하는 행위를 했을 때 적용되는 ‘살인예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 법정에서 주장 바꾼 남성...“생활고 때문에 교도소 가고 싶어 허위 진술”

그런데 법정에 선 박 씨는 자신의 주장을 뒤집었습니다.

생활고를 이기지 못하고 교도소에 가고 싶어서 경찰에 허위로 자수했다고 진술했습니다.

경찰이 수사 과정에서 박 씨가 월세로 살고 있던 집주인에 대한 탐문 수사를 벌였는데요.

실제로 박 씨는 10년 전부터 월세 18만 원을 내고 거주하다가 1년 전부터는 월세를 내지 못해 퇴실 요구를 받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 “살인예비죄는 실질적인 외적 행위 있어야”...1심 법원 무죄 선고

재판부는 박 씨가 생활고를 겪은 것 말고도 여러 정황을 근거로 판단했습니다.

관련 법리를 보면 살인예비죄가 성립하려면 “살인죄를 범할 목적 외에도 살인죄의 실현을 위한 준비행위가 있어야 한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살인죄의 실현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외적 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먼저 박 씨가 촬영된 현장 CCTV를 확인한 결과 박 씨가 여성과 마주치거나 흉기를 꺼내 드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고 그 당시 주변에서 살해 등의 협박을 받았다는 112신고가 접수되지도 않았습니다.

또 박 씨가 가지고 있던 흉기가 집에서 요리할 때 쓰는 부엌칼이었는데 칼날 부분이 약간 녹이 슬어 있던 점도 판단 근거가 됐습니다.

여기에 폭력 전과가 없었고 특별히 폭력적인 성향이 있다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볼만한 자료가 없는 점도 참작돼 최근 무죄가 선고됐습니다.


■ “검사 제출 증거만으로 범죄 증명 안 돼”...검찰 법리 오해 등으로 항소 가능성

재판부는 박 씨가 경찰 조사에서 진술한 것만 가지고는 불특정 다수에 대한 살인 행위, 이른바 ‘묻지마 살인’을 실행할 목적으로 외적 행위에까지 나아간 것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습니다.

또 달리 이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결국,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공소 사실이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무죄 선고 이유를 밝혔는데요.

검찰은 아직 항소장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사실 오인과 법리 오해를 이유로 항소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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