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50도 더위에도…화려한 ‘카타르 월드컵’ 뒤 ‘노예 노동’

입력 2022.04.08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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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앰네스티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고서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국제 앰네스티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고서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

중동 최초의 월드컵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이 20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시작 전부터 독특한 외형, 에어컨이 설치된 경기장 등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화려함 뒤에는 현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주노동자들의 증언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

국제앰네스티는 4월 7일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They think that We're Machines)'는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보고서에는 월드컵 관련 건설현장에 관련된 카타르의 민간 보안업체 8곳 출신 노동자 34명의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들의 근로 환경은 착취 수준에 가깝습니다.

34명 가운데 29명이 "매일 12시간씩 주 7일 일했으며 유급휴가도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부는 "하루도 쉬지 않고 3년 동안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인종과 출신국가, 사용 언어에 따른 차별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으니 하루 12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너는 강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카타르의 법정 최대 근로 시간은 초과근무를 포함해 주당 60시간입니다. 또 노동자에게는 매주 유급 휴가 1일이 제공돼야 합니다. 특히 한여름에는 50도에 가까운 더위가 이어지기 때문에 한낮 야외 노동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은 법이 모두 무시됐으며 살인적인 더위에 야외 노동까지 해야 했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이후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는 계속 제기돼왔습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2010년 이후로 카타르 현지에서 이주 노동자 6,500명이 숨졌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가디언은 이들 가운데 인도 출신이 2,700명으로 가장 많았고 네팔과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이 뒤를 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의 외국인 노동자월드컵 경기장의 외국인 노동자

■ '월급 33만원' …화려함 뒤에 가려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싼 노동력

깨끗하고 화려한 중동 국가들의 이면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싼 노동력이 있습니다.

카타르 정부가 지난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최저 임금을 적용하겠다며 밝힌 액수가 한 달에 1,000리얄, 우리 돈으로 33만원 정도 됩니다. 이전보다 25% 높은 액수를 적용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돈을 받고 일해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근로 환경은 참혹합니다. 중동의 기후는 4월부터 30도를 넘는 더위가 시작되고 한여름 한낮에는 최고 50도까지 기온이 치솟습니다. 이같은 더위에는 야외 노동이 금지돼 있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주거 환경도 열악합니다. 월드컵 경기장에도 에어컨을 설치하고 길거리 버스정류장에서도 에어컨이 나올 정도로 중동국가에서는 흔한 에어컨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 형태의 집단 숙소에는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름 한낮에도 이들이 탄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고 달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추방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관리는 엄격하게 적용돼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말 그대로 '즉시 추방' 조치되며 이후 다시는 입국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추방되면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6개국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5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대부분 저개발국가 출신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돈입니다.

■ 카타르 월드컵조직위 "노동법 위반 적발…감시 강화할 것"


이번 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대해 카타르 측도 이례적으로 '가혹 노동' 사례를 인정했습니다.

월드컵을 책임지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조직위 SC(Qatar's Supreme Committee for Delivery and Legacy )는 성명을 내고 "3개 업체가 여러 분야에서 노동 관련 법을 어긴 것으로 조사되었다"며 "이같은 위반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고 앞으로 있을 프로젝트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려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노동부에 보고해 추가 조사와 개선 조치들을 다양하게 시행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카타르 노동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이 진행중이며 모든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다른 어떤 나라도 그렇게 빨리 변화가 오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앰네스티는 FIFA의 적극적인 태도도 촉구했습니다. 스티븐 콕번 국제앰네스티 국장은 "FIFA가 민간 분야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집중해야 한다"며 "카타르가 근로법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아름다운 행사로 남을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잘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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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파원 리포트] 50도 더위에도…화려한 ‘카타르 월드컵’ 뒤 ‘노예 노동’
    • 입력 2022-04-08 10:40:53
    특파원 리포트
국제 앰네스티 홈페이지에 올라온 보고서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
중동 최초의 월드컵으로 주목받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이 20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시작 전부터 독특한 외형, 에어컨이 설치된 경기장 등으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화려함 뒤에는 현지 외국인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 이주노동자들의 증언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

국제앰네스티는 4월 7일 '그들은 우리가 기계라고 생각한다(They think that We're Machines)'는 보고서를 펴냈습니다. 보고서에는 월드컵 관련 건설현장에 관련된 카타르의 민간 보안업체 8곳 출신 노동자 34명의 증언이 담겨 있습니다.

보고서를 살펴보면 이들의 근로 환경은 착취 수준에 가깝습니다.

34명 가운데 29명이 "매일 12시간씩 주 7일 일했으며 유급휴가도 거절당했다"고 밝혔습니다. 일부는 "하루도 쉬지 않고 3년 동안 일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또 이 과정에서 인종과 출신국가, 사용 언어에 따른 차별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일부 아프리카 출신의 노동자들은 "아프리카에서 왔으니 하루 12시간 근무를 할 수 있다. 너는 강하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카타르의 법정 최대 근로 시간은 초과근무를 포함해 주당 60시간입니다. 또 노동자에게는 매주 유급 휴가 1일이 제공돼야 합니다. 특히 한여름에는 50도에 가까운 더위가 이어지기 때문에 한낮 야외 노동은 엄격히 제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월드컵 건설 현장에서는 이같은 법이 모두 무시됐으며 살인적인 더위에 야외 노동까지 해야 했다고 보고서는 전했습니다.

카타르의 월드컵 개최가 확정된 이후 이주 노동자들의 인권 문제는 계속 제기돼왔습니다. 영국 매체 가디언은 2010년 이후로 카타르 현지에서 이주 노동자 6,500명이 숨졌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가디언은 이들 가운데 인도 출신이 2,700명으로 가장 많았고 네팔과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스리랑카 등이 뒤를 이었다고 전했습니다.

월드컵 경기장의 외국인 노동자
■ '월급 33만원' …화려함 뒤에 가려진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의 싼 노동력

깨끗하고 화려한 중동 국가들의 이면에는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그리고 아프리카 출신 이주노동자들의 싼 노동력이 있습니다.

카타르 정부가 지난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최저 임금을 적용하겠다며 밝힌 액수가 한 달에 1,000리얄, 우리 돈으로 33만원 정도 됩니다. 이전보다 25% 높은 액수를 적용했다고 하니 어느 정도의 돈을 받고 일해왔는지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이들의 근로 환경은 참혹합니다. 중동의 기후는 4월부터 30도를 넘는 더위가 시작되고 한여름 한낮에는 최고 50도까지 기온이 치솟습니다. 이같은 더위에는 야외 노동이 금지돼 있지만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법의 보호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주거 환경도 열악합니다. 월드컵 경기장에도 에어컨을 설치하고 길거리 버스정류장에서도 에어컨이 나올 정도로 중동국가에서는 흔한 에어컨이지만, 이주노동자들이 사는 기숙사 형태의 집단 숙소에는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여름 한낮에도 이들이 탄 버스에는 에어컨이 없어 창문을 열고 달리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문제를 제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추방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출입국 관리는 엄격하게 적용돼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말 그대로 '즉시 추방' 조치되며 이후 다시는 입국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추방되면 걸프협력회의(GCC, Gulf Cooperation Council)에 속한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오만, 바레인 6개국 어디에서도 일을 할 수 없습니다. 5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월급이지만 대부분 저개발국가 출신인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돈입니다.

■ 카타르 월드컵조직위 "노동법 위반 적발…감시 강화할 것"


이번 앰네스티의 보고서에 대해 카타르 측도 이례적으로 '가혹 노동' 사례를 인정했습니다.

월드컵을 책임지고 있는 카타르 월드컵조직위 SC(Qatar's Supreme Committee for Delivery and Legacy )는 성명을 내고 "3개 업체가 여러 분야에서 노동 관련 법을 어긴 것으로 조사되었다"며 "이같은 위반 행위는 절대 용납될 수 없고 앞으로 있을 프로젝트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려 배제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또 "노동부에 보고해 추가 조사와 개선 조치들을 다양하게 시행하겠다"고도 덧붙였습니다.

카타르 노동부는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개혁이 진행중이며 모든 기업의 행동을 바꾸는데는 시간이 걸린다"며 "다른 어떤 나라도 그렇게 빨리 변화가 오지 않았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앰네스티는 FIFA의 적극적인 태도도 촉구했습니다. 스티븐 콕번 국제앰네스티 국장은 "FIFA가 민간 분야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집중해야 한다"며 "카타르가 근로법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계인의 축제 '월드컵'이 이주노동자들에게도 아름다운 행사로 남을 수 있을지 국제사회가 잘 지켜봐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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