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엔딩’은 연10억 벚꽃연금?…가격이란 무엇인가

입력 2022.04.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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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벚꽃엔딩’의 정확한 가격은 얼마?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한 가수의 ‘연금’처럼 변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2012년 발표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해마다 봄만 되면 차트를 역주행한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이 노래 저작권 수입이 2015년까지 4년간 46억 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몇 년 뒤 한 방송은 6년간 60억 원이라고도 했다. 대략 연간 10억 원이다.

천안 북일고의 벚꽃을 보며 ‘연애도 못 하는데 벚꽃이 다 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젊은 남자의 마음은 영감으로 변하였고, 그 영감은 다시 얼마간의 노동을 거쳐 노래로 변했고, 이 노래는 훗날 ‘하늘에서 떨어진 핑크 다이아몬드 운석’같은 복덩이로 변했다.

하지만 기왕 할 계산이라면 보다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 벚꽃 잎은 음원 수입으로만 변하고 변신을 멈추었을까. 이 가수는 2014년 4월 어머니와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의 다가구주택을 20억 원에 샀다. 벚꽃 부동산이 됐다. 그리고 이 부동산은 몇 년 뒤 두 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시 부동산!)

20억이 40억이 되었다니, ‘수익률이 100%’라고 생각하면 또 곤란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출 7억 5천, 보증금 4억 5천이다. 그렇다면 실투자금은 8억. 20억을 벌었다면 수익률은 250%다. (이것이 부동산 레버리지의 힘이다.)

만약 2017년까지의 음원 수입으로 알려진 60억을 다 이런 식으로 ‘부동산 투자’에 쏟아부었다면, ‘천안 북일고의 벚꽃잎’이 벌어다 준 화폐수입은 최대 210억이 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연 10억이 아닌 35억 짜리’ 복덩이가 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은 ‘벚꽃엔딩’이라는 노래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게 맞을까?

특정 상품이나 노동의 가격은 무엇을 기준으로 책정되는게 맞을까? 그리고 책정된 가격은 언제나 정당할까? 가격이 정당하냐고 묻는 말은 정당한가? 우리를 울고 웃고 배 아프고 슬프게 하는 이 가격이란 대체 무엇인가?

■ 시장에 휘날리는 저 놀라운 가격표


@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받는 돈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160억 원에 달한다. 광고수입은 별개다. 2019년엔 저 연봉만큼을 광고로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손흥민 축구 실력의 가치는 대략 연간 300억 원 이상일 수 있다.

@ 한 연예인이 십수 년 전 50억 원을 대출받아 백몇십억 원짜리 부동산을 샀고, 그 자리 새로 건물을 지은 뒤 4백몇십억 원에 팔았다고 치자. 사고 팔았을 뿐인데, 이백억 원 안팎의 가치가 생겨났다. 만약 이 매각대금으로 다시 대출 절반 끼고 9백억 원짜리 빌딩을 새로 샀다면, 5~10년 뒤에는 또 얼마만한 가치가 생겨날 것인가.

@ 돈 자랑에 머스크가 빠질 수 없다. 이번 주 포브스가 공개한 2022년 세계 부자 1등 일론 머스크의 자산가치는 266조 원. 1년 전보다 83조 원 늘었다. 지난 1년간 불어난 가치는 83조 원이다. 한 사람이 단 1년 동안 83조 원을 벌었다. 하루에 2,273억 원 꼴이다.

@ 계속 포브스에 따르면, 한국의 8등 부자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송치형 회장이 등장한다. 포브스는 그의 자산이 4조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포브스는 4년 전엔 송 회장의 자산가치를 약 5천억 원 수준이라고 했다. 4년 만에 8배가 된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에 따르면 송 회장은 2012년 4월 두나무를 설립했다. 카카오 증권이 된 ‘증권 플러스’도 개발했지만, 진짜 가치는 이후 만든 암호화폐 거래 중개소 업비트에서 나왔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 때, 국내 제1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든 대가가 ‘한국 8등’ 부자다.

■ ‘가격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오나?

경제학자들은 가격은 가치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애덤 스미스부터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까지... 고전파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노동 가치설’을 말했다. 가치는 ‘내재된 무엇’이고, 그 ‘무엇’은 투입된 노동이다. 따라서 가격은 이 노동을 반영한 가치로 설명된다. 이 경제학의 전설들은 상품의 가격을 생산에 들어간 평균적인 노동력과 노동시간 등이 설명하려 애썼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데이비드 리카도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데이비드 리카도

예를들어, 손흥민이 공을 한 번 찰 때마다 그 킥 Kick의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한다면, ‘류현진이 포수가 앉은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공을 한 번 던지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관계없이) 500만 원을 번다’고 계산한다면 당신은 노동가치설을 믿는 게 된다.

공 한 번에 500만 원? 사이트 하나 만들고 4조 원?’

이 노동가치설은 자연스레 ‘시장이 책정한 가격의 정의로움’을 질문하게 한다.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괴리 때문이다. 가치보다 적거나 많은 가격이 매겨져있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 된다. 자연히, 반체제 세력이나 아나키스트가 되기 십상이다. 위에 열거한 다섯 부자 가운데 그 어떤 사람의 부도 정당화시키기 쉽지 않으니까.


이때 경제학은 대안적 설명을 내놓는다. 중요한 건 교환가치라고 속삭인다. 제본스나 멩거 같은 이름, 좀 더 익숙한 하이에크 같은 이름의 오스트리아 학파, 혹은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한다.

그들은 상품의 내재가치를 말하지 않는다. ‘상품에 들인 노력, 혹은 재료가 있긴 있겠지, 근데 그건 중요한 것이 아냐, 중요한 것은 상품이 교환되는 시장이지.’

중요한 건 시장에서 상품을 소비하는 특정한 개인의 만족도, 마지막 한 단위의 효용이다. 가격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이건 ‘일어나는 일’이지 ‘정당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규범적 가치 말고 시장의 가격만 말하자.

이 논리는 확실히 위 다섯 부자를 설명한다.

더는 벚꽃엔딩의 가치를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투하된 노동량과 시간’으로 설명하려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든 노동의 가치를 홈페이지 제작과 코딩의 수고로움으로, 재벌 총수 노동의 가치를 그가 내린 판단의 횟수와 그 판단까지 이르게 한 사고 시간의 길이로 측정하려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가격에 따를 때 자원은 최적의 상태로 배분된다. 따라서 필요한 일은 시장을 지키는 일, 자유롭게 교환이 일어나게 하는 일, 그 자유 시장경제를 왜곡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 사회는 번영하고, 자유는 증진된다.

■ ‘GPS와 리어카’라는 기사... 폐지 수집 노동의 시장가격은 시급 948원

KBS는 최근 노인 빈곤을 다룬 리어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에 GPS를 달았다. 그 데이터로 폐지 수집 노동을 시각화했다.


이 GPS 데이터로 폐지노동의 단위 시간당 시장가격을 알 수 있게 됐다. 한 노인은 하루 15시간 폐지를 주웠다. 새벽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또 6시부터 11시 50분까지 일했다. 이동 거리는 16,970m, 약 17km.

이 노동은 수집한 폐지 1kg당 100원 혹은 150원으로 환산됐다. 취재진이 측정한 이 노동의 평균 시급은 948원이었다. 하루 15시간 노동이라면 일당은 14,220원이다.

만약 ‘가격에 정당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이라면,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은 ‘가혹한 것’ 일 수는 있어도 ‘잘못된 것’일 수는 없다.

■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대로 결정되었다’는 믿음으로 가격을 맹신하지 마라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하버드 교수 마이클 샌델은 여전히 가격표의 정당성을 논한다.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성공이 근본적으로 우연에 기대고, 정의롭지도 않다고 역설했다.


이런 가정 해보면 어떤가. 마이클 조던이 조선시대 한반도에 태어났어도 농구로 세계를 제패했을까? 혹시, 어떤 성공과 부유함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는 운이 결정한 게 아닐까. 방구석에 앉아서 잡담하는걸 중계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지 10년 전엔 누가 알았을까?

혹은 성공은 부모의 재력 순서일까? 미 대입 수학능력시험 SAT에서 부잣집(연소득 20만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20%). 가난한 집(연 소득 2만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50에 하나다(2%).

좀 더 현실적으로, 금융업에 종사하는 저 여의도 직장인들의 고연봉은 정당한가.

미국의 2008년 기준 기업 이익의 30%는 금융부문에서 나왔다. 금융은 수익성이 높다. 그래서 금융 CEO의 수입은 쉽게 수백억, 수천억에 달한다. 번 만큼 준다는 것인데, 그 보수는 정말 정당성과는 무관한가?

금융이 사회 전체에 생산적인 활동이라면 그렇겠지만, 샌델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파생상품과 주식,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와 그 수익,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수학과 초고속 인터넷망 사이의 수학적 작용일 뿐. 실물경제와는 유리된 활동이란 것이다.

샌델은 영국 금융서비스국 국장을 인용해 “지난 2~30년 동안 부유한 선진국들에서 금융시스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대했는데, 그것이 성장이나 경제 안정에 보탬이 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금융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실물경제에서 지대(부당한 불로소득)를 끌어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 경제에서 ‘금융은 15%만 생산성이 있는 신생 기업으로 투자되고, 나머지는 기존 자산이나 인기 있는 파생상품 등에 투기’된다고 추산한다.

논의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면 어떠한가. 오늘날 미국에선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인구 50%보다 많이 벌고 있다. 중위 소득자는 4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이른바 능력에 따른 시장 배분의 결과다. 우리도 추세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은 정말인가. 또는, ‘시장 가격’은 정당한 것도 불의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하기만 하면 될까.

샌델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접이라는 이 <능력주의> 신화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사회적 불화를 불러온다고 했다. 그 누적된 불만의 결과가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의 등장이라고도 했다.

■ 이제는 AI가 가격을 정하는 시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가격을 AI가 결정한단 얘기를 전해준다. 노동가치도, 교환가치도 아니고, 이제 AI 가치다. AI는 과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기업에 가장 많은 이윤을 가져다줄 가격을 책정’한다. AI는 a,b,c,d.....z 무수히 많은 상품의 가격을 수없이 바꿔 매기는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이윤을 내는 함수를 산출할 뿐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한다.

맥킨지는 ‘판매량 하락 없이 가격 1%를 올릴 수 있으면 기업 이익은 8.7% 증가한다’고 했다. 이제 가격은 소비자 효용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최적화 알고리즘이 정한다.


협상력도 가격을 결정한다. 생산업자보다 슈퍼마켓 업자의 힘이 세면 가격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대형 슈퍼체인의 힘이 강력할 경우 그렇다. 이 경우 가격은 정치적 힘의 작용에 따른다. 이때 가격은 협상가치다.

미국의 의료가격은 왜 비싼가?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가격은 왜 미국보다 저렴한가. 중요한 한가지 원인은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힘(이라고 쓰고 정부의 힘)이 기업이나 의사보다 세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이따금 미국에서 제기되는 ‘오바마케어가 의료시장을 교란한다, 수요 공급 작용을 왜곡한다는 주장’은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일 뿐이다.

■ 가격은 끊임없는 의심의 대상이다

그러니 가격을 의심하라. 정해진 가격을 수용하기 전에 물음표를 붙이라.

대한민국 정부도 그러고 있다. 오죽하면 신용카드 수수료에까지 물음표를 붙일 정도다. 그리고 때마다 그 요율을 깎는다. 자영업자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사실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다. (그렇게 가혹한 대우를 받은 카드회사들은 지난해에도 역대 최고 이익을 거뒀다.)

그뿐인가. 최저임금에도 관여하고, 4대 보험 강제 가입에도 관여한다. 중대 재해 처벌법도 그렇다. 모두 노동의 가격(친기업주의자들은 비용이라고 말한다)을 높인다.

그때마다 분명 시장은 왜곡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일하다 죽을 가능성’, ‘더 많은 사람이 빈곤에 허덕일 가능성’, ‘소득 배분이 더 불평등해질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의는 그렇게 시장의 왜곡 속에서만 달성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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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벚꽃엔딩’은 연10억 벚꽃연금?…가격이란 무엇인가
    • 입력 2022-04-09 09:00:18
    취재K

■ ‘벚꽃엔딩’의 정확한 가격은 얼마?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벚꽃 잎이’ 한 가수의 ‘연금’처럼 변하는 계절이 돌아왔다. 2012년 발표된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 해마다 봄만 되면 차트를 역주행한다. 한 팝 칼럼니스트는 이 노래 저작권 수입이 2015년까지 4년간 46억 원에 달했다고 말했다. 몇 년 뒤 한 방송은 6년간 60억 원이라고도 했다. 대략 연간 10억 원이다.

천안 북일고의 벚꽃을 보며 ‘연애도 못 하는데 벚꽃이 다 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젊은 남자의 마음은 영감으로 변하였고, 그 영감은 다시 얼마간의 노동을 거쳐 노래로 변했고, 이 노래는 훗날 ‘하늘에서 떨어진 핑크 다이아몬드 운석’같은 복덩이로 변했다.

하지만 기왕 할 계산이라면 보다 정확하고 엄밀해야 한다. 벚꽃 잎은 음원 수입으로만 변하고 변신을 멈추었을까. 이 가수는 2014년 4월 어머니와 공동명의로 서울 강남의 다가구주택을 20억 원에 샀다. 벚꽃 부동산이 됐다. 그리고 이 부동산은 몇 년 뒤 두 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역시 부동산!)

20억이 40억이 되었다니, ‘수익률이 100%’라고 생각하면 또 곤란하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대출 7억 5천, 보증금 4억 5천이다. 그렇다면 실투자금은 8억. 20억을 벌었다면 수익률은 250%다. (이것이 부동산 레버리지의 힘이다.)

만약 2017년까지의 음원 수입으로 알려진 60억을 다 이런 식으로 ‘부동산 투자’에 쏟아부었다면, ‘천안 북일고의 벚꽃잎’이 벌어다 준 화폐수입은 최대 210억이 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연 10억이 아닌 35억 짜리’ 복덩이가 된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계산은 ‘벚꽃엔딩’이라는 노래의 가치를 정확히 측정하는 게 맞을까?

특정 상품이나 노동의 가격은 무엇을 기준으로 책정되는게 맞을까? 그리고 책정된 가격은 언제나 정당할까? 가격이 정당하냐고 묻는 말은 정당한가? 우리를 울고 웃고 배 아프고 슬프게 하는 이 가격이란 대체 무엇인가?

■ 시장에 휘날리는 저 놀라운 가격표


@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받는 돈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160억 원에 달한다. 광고수입은 별개다. 2019년엔 저 연봉만큼을 광고로 번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 손흥민 축구 실력의 가치는 대략 연간 300억 원 이상일 수 있다.

@ 한 연예인이 십수 년 전 50억 원을 대출받아 백몇십억 원짜리 부동산을 샀고, 그 자리 새로 건물을 지은 뒤 4백몇십억 원에 팔았다고 치자. 사고 팔았을 뿐인데, 이백억 원 안팎의 가치가 생겨났다. 만약 이 매각대금으로 다시 대출 절반 끼고 9백억 원짜리 빌딩을 새로 샀다면, 5~10년 뒤에는 또 얼마만한 가치가 생겨날 것인가.

@ 돈 자랑에 머스크가 빠질 수 없다. 이번 주 포브스가 공개한 2022년 세계 부자 1등 일론 머스크의 자산가치는 266조 원. 1년 전보다 83조 원 늘었다. 지난 1년간 불어난 가치는 83조 원이다. 한 사람이 단 1년 동안 83조 원을 벌었다. 하루에 2,273억 원 꼴이다.

@ 계속 포브스에 따르면, 한국의 8등 부자로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의 송치형 회장이 등장한다. 포브스는 그의 자산이 4조 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포브스는 4년 전엔 송 회장의 자산가치를 약 5천억 원 수준이라고 했다. 4년 만에 8배가 된 것이다.


‘인사이트코리아’에 따르면 송 회장은 2012년 4월 두나무를 설립했다. 카카오 증권이 된 ‘증권 플러스’도 개발했지만, 진짜 가치는 이후 만든 암호화폐 거래 중개소 업비트에서 나왔다. 가상화폐 열풍이 불 때, 국내 제1의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든 대가가 ‘한국 8등’ 부자다.

■ ‘가격의 정당성’은 어디서 나오나?

경제학자들은 가격은 가치를 반영한다고 믿는다.

애덤 스미스부터 데이비드 리카도,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까지... 고전파 경제학자로 분류되는 이들은 ‘노동 가치설’을 말했다. 가치는 ‘내재된 무엇’이고, 그 ‘무엇’은 투입된 노동이다. 따라서 가격은 이 노동을 반영한 가치로 설명된다. 이 경제학의 전설들은 상품의 가격을 생산에 들어간 평균적인 노동력과 노동시간 등이 설명하려 애썼다.

애덤 스미스, 카를 마르크스, 데이비드 리카도
예를들어, 손흥민이 공을 한 번 찰 때마다 그 킥 Kick의 가치가 얼마인지 계산한다면, ‘류현진이 포수가 앉은 홈플레이트 방향으로 공을 한 번 던지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관계없이) 500만 원을 번다’고 계산한다면 당신은 노동가치설을 믿는 게 된다.

공 한 번에 500만 원? 사이트 하나 만들고 4조 원?’

이 노동가치설은 자연스레 ‘시장이 책정한 가격의 정의로움’을 질문하게 한다. 내재가치와 시장가격의 괴리 때문이다. 가치보다 적거나 많은 가격이 매겨져있다면 정의롭지 않은 것이 된다. 자연히, 반체제 세력이나 아나키스트가 되기 십상이다. 위에 열거한 다섯 부자 가운데 그 어떤 사람의 부도 정당화시키기 쉽지 않으니까.


이때 경제학은 대안적 설명을 내놓는다. 중요한 건 교환가치라고 속삭인다. 제본스나 멩거 같은 이름, 좀 더 익숙한 하이에크 같은 이름의 오스트리아 학파, 혹은 한계효용학파가 등장한다.

그들은 상품의 내재가치를 말하지 않는다. ‘상품에 들인 노력, 혹은 재료가 있긴 있겠지, 근데 그건 중요한 것이 아냐, 중요한 것은 상품이 교환되는 시장이지.’

중요한 건 시장에서 상품을 소비하는 특정한 개인의 만족도, 마지막 한 단위의 효용이다. 가격은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결정된다. 이건 ‘일어나는 일’이지 ‘정당성을 따질 일’이 아니다. 그러니 규범적 가치 말고 시장의 가격만 말하자.

이 논리는 확실히 위 다섯 부자를 설명한다.

더는 벚꽃엔딩의 가치를 ‘노래를 만드는 과정에 투하된 노동량과 시간’으로 설명하려 시도하지 않아도 된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만든 노동의 가치를 홈페이지 제작과 코딩의 수고로움으로, 재벌 총수 노동의 가치를 그가 내린 판단의 횟수와 그 판단까지 이르게 한 사고 시간의 길이로 측정하려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가격에 따를 때 자원은 최적의 상태로 배분된다. 따라서 필요한 일은 시장을 지키는 일, 자유롭게 교환이 일어나게 하는 일, 그 자유 시장경제를 왜곡하지 않는 일이다. 그래야 사회는 번영하고, 자유는 증진된다.

■ ‘GPS와 리어카’라는 기사... 폐지 수집 노동의 시장가격은 시급 948원

KBS는 최근 노인 빈곤을 다룬 리어카>라는 제목의 보도를 했다. 폐지 줍는 노인의 리어카에 GPS를 달았다. 그 데이터로 폐지 수집 노동을 시각화했다.


이 GPS 데이터로 폐지노동의 단위 시간당 시장가격을 알 수 있게 됐다. 한 노인은 하루 15시간 폐지를 주웠다. 새벽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그리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또 6시부터 11시 50분까지 일했다. 이동 거리는 16,970m, 약 17km.

이 노동은 수집한 폐지 1kg당 100원 혹은 150원으로 환산됐다. 취재진이 측정한 이 노동의 평균 시급은 948원이었다. 하루 15시간 노동이라면 일당은 14,220원이다.

만약 ‘가격에 정당성을 물을 수 없는’ 것이라면, 폐지 줍는 노인의 삶은 ‘가혹한 것’ 일 수는 있어도 ‘잘못된 것’일 수는 없다.

■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대로 결정되었다’는 믿음으로 가격을 맹신하지 마라

하지만 <정의란 무엇인가>로 잘 알려진 하버드 교수 마이클 샌델은 여전히 가격표의 정당성을 논한다. 최근 저서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도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성공이 근본적으로 우연에 기대고, 정의롭지도 않다고 역설했다.


이런 가정 해보면 어떤가. 마이클 조던이 조선시대 한반도에 태어났어도 농구로 세계를 제패했을까? 혹시, 어떤 성공과 부유함은 언제 어떻게 태어났느냐 하는 운이 결정한 게 아닐까. 방구석에 앉아서 잡담하는걸 중계해서 부자가 될 수 있을지 10년 전엔 누가 알았을까?

혹은 성공은 부모의 재력 순서일까? 미 대입 수학능력시험 SAT에서 부잣집(연소득 20만달러 이상) 출신으로 1,600점 만점에 1,400점 이상 기록할 가능성은 다섯에 하나다(20%). 가난한 집(연 소득 2만달러 이하) 출신은 그 가능성이 50에 하나다(2%).

좀 더 현실적으로, 금융업에 종사하는 저 여의도 직장인들의 고연봉은 정당한가.

미국의 2008년 기준 기업 이익의 30%는 금융부문에서 나왔다. 금융은 수익성이 높다. 그래서 금융 CEO의 수입은 쉽게 수백억, 수천억에 달한다. 번 만큼 준다는 것인데, 그 보수는 정말 정당성과는 무관한가?

금융이 사회 전체에 생산적인 활동이라면 그렇겠지만, 샌델은 그렇지 않다고 본다. 파생상품과 주식,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와 그 수익,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하는 복잡한 수학과 초고속 인터넷망 사이의 수학적 작용일 뿐. 실물경제와는 유리된 활동이란 것이다.

샌델은 영국 금융서비스국 국장을 인용해 “지난 2~30년 동안 부유한 선진국들에서 금융시스템의 규모와 복잡성이 증대했는데, 그것이 성장이나 경제 안정에 보탬이 되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금융 활동이 경제적 가치를 높이기보다는 실물경제에서 지대(부당한 불로소득)를 끌어내고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 경제에서 ‘금융은 15%만 생산성이 있는 신생 기업으로 투자되고, 나머지는 기존 자산이나 인기 있는 파생상품 등에 투기’된다고 추산한다.

논의를 사회 전체로 확장시키면 어떠한가. 오늘날 미국에선 가장 부유한 1%가 전체 인구 50%보다 많이 벌고 있다. 중위 소득자는 40년간 제자리걸음만 했다. 이른바 능력에 따른 시장 배분의 결과다. 우리도 추세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노력하고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성공한다는 말은 정말인가. 또는, ‘시장 가격’은 정당한 것도 불의한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이면 최선의 결과로 이어진다고 말하기만 하면 될까.

샌델은 능력에 따른 정당한 대접이라는 이 <능력주의> 신화는 승자에게 오만을, 패자에게 굴욕을 퍼뜨릴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사회적 불화를 불러온다고 했다. 그 누적된 불만의 결과가 ‘트럼프’와 같은 포퓰리스트의 등장이라고도 했다.

■ 이제는 AI가 가격을 정하는 시대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최신호에서 가격을 AI가 결정한단 얘기를 전해준다. 노동가치도, 교환가치도 아니고, 이제 AI 가치다. AI는 과거 데이터와 알고리즘을 이용해서 ‘기업에 가장 많은 이윤을 가져다줄 가격을 책정’한다. AI는 a,b,c,d.....z 무수히 많은 상품의 가격을 수없이 바꿔 매기는 테스트를 거쳐 최적의 이윤을 내는 함수를 산출할 뿐이다. 세계적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한다.

맥킨지는 ‘판매량 하락 없이 가격 1%를 올릴 수 있으면 기업 이익은 8.7% 증가한다’고 했다. 이제 가격은 소비자 효용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최적화 알고리즘이 정한다.


협상력도 가격을 결정한다. 생산업자보다 슈퍼마켓 업자의 힘이 세면 가격은 쉽게 오르지 않는다. 대형 슈퍼체인의 힘이 강력할 경우 그렇다. 이 경우 가격은 정치적 힘의 작용에 따른다. 이때 가격은 협상가치다.

미국의 의료가격은 왜 비싼가? 의약품을 생산하는 기업,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노동자의 힘이 세기 때문이다. 한국의 의료 가격은 왜 미국보다 저렴한가. 중요한 한가지 원인은 국민건강보험 공단의 힘(이라고 쓰고 정부의 힘)이 기업이나 의사보다 세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라면 이따금 미국에서 제기되는 ‘오바마케어가 의료시장을 교란한다, 수요 공급 작용을 왜곡한다는 주장’은 한쪽의 이익을 대변하는 목소리일 뿐이다.

■ 가격은 끊임없는 의심의 대상이다

그러니 가격을 의심하라. 정해진 가격을 수용하기 전에 물음표를 붙이라.

대한민국 정부도 그러고 있다. 오죽하면 신용카드 수수료에까지 물음표를 붙일 정도다. 그리고 때마다 그 요율을 깎는다. 자영업자 영업환경 개선을 위해서란 명분으로. 사실 시장경제를 심각하게 왜곡하는 일이다. (그렇게 가혹한 대우를 받은 카드회사들은 지난해에도 역대 최고 이익을 거뒀다.)

그뿐인가. 최저임금에도 관여하고, 4대 보험 강제 가입에도 관여한다. 중대 재해 처벌법도 그렇다. 모두 노동의 가격(친기업주의자들은 비용이라고 말한다)을 높인다.

그때마다 분명 시장은 왜곡된다. 그러나 동시에 그때마다 ‘일하다 죽을 가능성’, ‘더 많은 사람이 빈곤에 허덕일 가능성’, ‘소득 배분이 더 불평등해질 가능성’도 떨어진다는 사실이다.

어떤 정의는 그렇게 시장의 왜곡 속에서만 달성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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