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으로 버틴다”…오리온, 9년째 가격 동결

입력 2022.04.10 (09:00)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마치 눈치 게임 같습니다.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경쟁 업체들도 한두 달 사이에 잇달아 가격을 인상하는 식입니다.

지난달 농심이 새우깡, 꿀 꽈배기 등 과자 가격을 6~7% 올렸고, 롯데제과는 이번 달부터 빼빼로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올렸습니다. 해태제과는 지난해 8월 홈런볼 등 11개 제품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업체들은 "원자재, 물류비, 인건비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버티고 버티다 가격을 올렸다고 하소연합니다.

■ 오리온, 9년째 제품 가격 동결…"비용 절감 위해 포장재 줄이고 인쇄도 흐릿하게"

그 와중에 "더 버텨보겠다"는 기업이 있습니다. 오리온입니다. 벌써 9년째 국내 제품 가격을 동결했습니다.

다른 제과업체와 마찬가지로 비용 부담이 늘었지만, 경영 효율화와 해외 시장에서의 수익 증대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좋은 실적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제 오리온은 지난해 기준 전년보다 매출액 5%, 영업이익은 14%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경영 효율화의 일등공신은 2016년부터 운영해온 '포스(POS·Point of Sales, 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 데이터 경영'이라고 전합니다.

포스 데이터는 매장에서 판매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수집한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통해 급변하는 소비자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판매가 저조한 제품은 바로 생산 물량을 줄입니다. 설사 신제품이라도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재고 관리 강화를 통해 반품률을 0.5%대로 크게 낮췄습니다.

또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였습니다. 광고, 판촉비를 줄이는 대신 제품 개발에 투자해 2020년 35개, 지난해엔 44개의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포장재도 줄이고, 인쇄까지 흐릿하게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맛있는 과자를 저렴하게 즐기는 것이 예쁜 포장재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식품업체 가격 줄줄이 인상…외식물가도 고공행진

벌써 9년째지만 오리온의 가격 동결 발표가 올해 유독 반가운 것은 무섭게 오르는 먹을거리 물가 때문입니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긴 것은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 만입니다.

특히 서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먹을거리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가공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4% 올랐는데, 2012년 4월 이후 가장 많이 오른 수치입니다.

지난해 12월 롯데칠성음료가 칠성사이다 등 주요 음료 가격을 평균 6% 올렸고, 동원F&B는 참치 통조림 가격을 역시 6%가량 인상했습니다.

1월에는 코카콜라와 커피믹스 가격이 올랐고, 2월에는 CJ제일제당이 비비고 용기 죽과 두부, 냉동만두 등의 가격을 최대 10% 올렸습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오비 맥주는 2월과 3월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7% 인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외식 물가도 1년 전보다 6.6% 상승했습니다. 이는 1998년 4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많이 오른 것입니다.

급기야 정부는 치솟는 외식 물가를 잡겠다며 매주 수요일마다 김밥, 치킨, 햄버거 등 주요 외식 품목의 62개 프랜차이즈 업체 가격 동향을 조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공개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고, 음식값 인상도 억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실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개한 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이후 공개 대상 업체 62개 가운데 36개가 음식값을 올렸습니다. 가격 공개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달 음식값을 올린 업체도 13곳이나 됩니다.

■"밀가루값 내려갈 때는 가격 안 내리더니…."

원재룟값, 인건비, 물류비 등등 안 오른 게 없다는 식품 업체들의 항변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코로나 19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던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국제 밀 선물 가격은 톤당 405달러로 1년 전보다 40%가량 급등했습니다. 옥수수와 대두 가격도 비슷하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넓게 보면 밀가루 가격이 항상 오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 3월 국제 밀 가격은 톤당 168달러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당시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세였는데도, 최종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10%가량 상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가감시센터는 그러면서 "제조업체들이 원재룟값 상승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해하나, 원재료 가격 하락 시 기업이 온전히 누렸던 이익을 떠올리며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 성급한 가격 인상은 자제하길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情으로 버틴다”…오리온, 9년째 가격 동결
    • 입력 2022-04-10 09:00:35
    취재K

마치 눈치 게임 같습니다. 한 업체가 가격을 올리면, 경쟁 업체들도 한두 달 사이에 잇달아 가격을 인상하는 식입니다.

지난달 농심이 새우깡, 꿀 꽈배기 등 과자 가격을 6~7% 올렸고, 롯데제과는 이번 달부터 빼빼로 등 주요 제품 가격을 올렸습니다. 해태제과는 지난해 8월 홈런볼 등 11개 제품 가격을 인상했습니다.

업체들은 "원자재, 물류비, 인건비 등 안 오른 게 없다"며 버티고 버티다 가격을 올렸다고 하소연합니다.

■ 오리온, 9년째 제품 가격 동결…"비용 절감 위해 포장재 줄이고 인쇄도 흐릿하게"

그 와중에 "더 버텨보겠다"는 기업이 있습니다. 오리온입니다. 벌써 9년째 국내 제품 가격을 동결했습니다.

다른 제과업체와 마찬가지로 비용 부담이 늘었지만, 경영 효율화와 해외 시장에서의 수익 증대로 가격을 올리지 않고도 좋은 실적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실제 오리온은 지난해 기준 전년보다 매출액 5%, 영업이익은 14%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경영 효율화의 일등공신은 2016년부터 운영해온 '포스(POS·Point of Sales, 판매시점정보관리 시스템) 데이터 경영'이라고 전합니다.

포스 데이터는 매장에서 판매된 상품에 대한 정보를 실시간 수집한 기록입니다. 이 기록을 통해 급변하는 소비자 수요를 빠르게 파악하고, 판매가 저조한 제품은 바로 생산 물량을 줄입니다. 설사 신제품이라도 소비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생산을 중단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재고 관리 강화를 통해 반품률을 0.5%대로 크게 낮췄습니다.

또 줄일 수 있는 비용은 모두 줄였습니다. 광고, 판촉비를 줄이는 대신 제품 개발에 투자해 2020년 35개, 지난해엔 44개의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포장재도 줄이고, 인쇄까지 흐릿하게 하는 방식으로 비용을 절감했습니다. 오리온 관계자는 "소비자들에게 맛있는 과자를 저렴하게 즐기는 것이 예쁜 포장재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전했습니다.

■식품업체 가격 줄줄이 인상…외식물가도 고공행진

벌써 9년째지만 오리온의 가격 동결 발표가 올해 유독 반가운 것은 무섭게 오르는 먹을거리 물가 때문입니다.

지난 5일 통계청이 발표한 '3월 소비자물가 동향'을 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 올랐습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4%를 넘긴 것은 2011년 12월 이후 10년 3개월 만입니다.

특히 서민들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먹을거리 물가가 많이 올랐습니다. 가공식품 물가는 1년 전보다 6.4% 올랐는데, 2012년 4월 이후 가장 많이 오른 수치입니다.

지난해 12월 롯데칠성음료가 칠성사이다 등 주요 음료 가격을 평균 6% 올렸고, 동원F&B는 참치 통조림 가격을 역시 6%가량 인상했습니다.

1월에는 코카콜라와 커피믹스 가격이 올랐고, 2월에는 CJ제일제당이 비비고 용기 죽과 두부, 냉동만두 등의 가격을 최대 10% 올렸습니다.

하이트진로와 롯데칠성음료, 오비 맥주는 2월과 3월 소주와 맥주 출고가를 7% 인상하기도 했습니다.


지난달 외식 물가도 1년 전보다 6.6% 상승했습니다. 이는 1998년 4월 이후 24년 만에 가장 많이 오른 것입니다.

급기야 정부는 치솟는 외식 물가를 잡겠다며 매주 수요일마다 김밥, 치킨, 햄버거 등 주요 외식 품목의 62개 프랜차이즈 업체 가격 동향을 조사해 공개하고 있습니다.

가격을 공개해 소비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 돕고, 음식값 인상도 억제하겠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실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공개한 가격 동향 자료를 보면 지난 10월 이후 공개 대상 업체 62개 가운데 36개가 음식값을 올렸습니다. 가격 공개가 시작된 이후인 지난달 음식값을 올린 업체도 13곳이나 됩니다.

■"밀가루값 내려갈 때는 가격 안 내리더니…."

원재룟값, 인건비, 물류비 등등 안 오른 게 없다는 식품 업체들의 항변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코로나 19 이후 오름세를 이어가던 국제 곡물 가격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더 무섭게 오르고 있습니다.

시카고선물거래소에 따르면 지난달 25일 기준 국제 밀 선물 가격은 톤당 405달러로 1년 전보다 40%가량 급등했습니다. 옥수수와 대두 가격도 비슷하게 올랐습니다.

하지만 시기를 넓게 보면 밀가루 가격이 항상 오르기만 했던 것은 아닙니다. 2019년 3월 국제 밀 가격은 톤당 168달러 수준까지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에 따르면 당시 국제 곡물 가격이 하락세였는데도, 최종 소비자가격은 오히려 10%가량 상승했다고 지적했습니다.

물가감시센터는 그러면서 "제조업체들이 원재룟값 상승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이해하나, 원재료 가격 하락 시 기업이 온전히 누렸던 이익을 떠올리며 모두가 어려운 이 시기 성급한 가격 인상은 자제하길 바란다"고 요청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