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거짓말은 못 하겠더라”…러시아 언론인들이 전한 침공 뒤의 러시아

입력 2022.04.11 (13:56) 수정 2022.04.11 (14:05)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아래 사진은 러시아의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가 자사 텔레그램에 게시한 것입니다.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이자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열차 안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페인트와 아세톤이 섞인 물질로 공격을 당했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페인트를 쏟아부으며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받아라"고 소리쳤다고 무라토프 편집장은 밝혔습니다.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페인트 공격을 당한 뒤 찍은 사진. (출처=‘노바야 가제타’ 텔레그램)‘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페인트 공격을 당한 뒤 찍은 사진. (출처=‘노바야 가제타’ 텔레그램)

'노바야 가제타'는 줄곧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적 논조를 이어오던 언론사였습니다.

비슷한 기조의 러시아 독립언론들이 정부 탄압에 못이겨 하나둘 폐간이나 정간을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보도를 이어온 마지막 언론사이기도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편집장의 대외적 명성에 힘입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월 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인터뷰한 뒤 러시아 정부의 경고를 받았고 결국 운영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서방의 비난과 제재 속에 러시아가 날로 문을 걸어 잠그면서, 러시아의 내부 분위기는 점점 더 알기 어렵게 됐습니다. 전쟁 초기 간간이 들려오던 러시아 내 반전 시위 소식도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직장과 나라를 떠나게 된 두 명의 러시아 언론인들에게 화상 인터뷰로 자세한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한 명은 현재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전 러시아 국영방송 RT(러시아투데이)에서 일하던 마리아 바로노바입니다. 원래 사회활동가였던 바로노바씨는 2019년 자선 프로젝트 매니징 에디터로 RT에 발을 디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기고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그녀는 침공을 이유로 사직한 첫 러시아 국영방송 직원이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이런 걸(우크라이나 침공) 위해 싸운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배신당했고 모든 것이 짓밟혔습니다. 한 주 전 나는 나토의 프로파간다에 대해 적었고, 러시아 공포증에 대해 얘기했습니다만, 결국 그들이 옳았고 내가 틀린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러시아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게 전체주의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거나, 침묵하거나, 정권을 찬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건 내가 우리 나라를 위해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정권은 마침내 우리의 삶을 끝없는 지옥으로 만들 것입니다."


KBS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알렉세이 코발레프 ‘메두자’ 에디터(위)와 마리아 바로노바 RT 전 에디터(아래)KBS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알렉세이 코발레프 ‘메두자’ 에디터(위)와 마리아 바로노바 RT 전 에디터(아래)

다른 한 명은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탐사보도 전문 에디터 알렉세이 코발레프입니다. '메두자'는 침공 이후 러시아 내 인터넷 서비스를 금지당했습니다.

어렵게 보도를 이어가던 그는 지난달 라트비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언제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코발레프 기자는 말합니다. 두 언론인에게 먼저 왜 직장과 나라를 떠났는지부터 물었습니다.

Q. 당신은 왜 직장과 나라를 떠났습니까?

▶ 마리아 바로노바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 이후, 이 정권은 침공에 대한 논의 자체를 아예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모든 친지들과 맞서는 전쟁입니다. 왜냐면 이 정권은 늘 우리는 우크라이나인과 하나라고 했거든요. 자기 나라를 무기의 도움을 받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잖아요. 자국민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알렉세이 코발레프
"(러시아를 떠난 이유는) 나 자신에게 즉각적인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언제든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건 러시아 헌법에 의해 보장되던 언론 자유가 막히는 건 물론, 국경도 닫힐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라트비아로 빠져나온 다음 날, 우리 언론사 '메두자'의 웹사이트가 차단되었고, 러시아 의회는 침공을 전쟁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형사범죄자로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Q. 당신의 동료들은 러시아에 남아 있나요?)
"보안상의 이유로 그들의 현재 위치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수감되거나 체포된 언론인의 사례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코발레프 기자는 많은 사례가 있다면서도, "대다수가 직무를 수행하다 체포됐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언론인들은 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며 "러시아 언론인들은 집 문 앞에 어느 날 스프레이가 칠해지는 등의 위협을 받고 있다. 꽤나 두려운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Q. 현재 러시아의 언론 환경은 어떻습니까?

▶ 알렉세이 코발레프
"러시아의 정부 소유 미디어, 그리고 현재의 모든 러시아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국가 통제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크렘린궁에서 전달받는 '공식 입장'을 그저 전달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러시아인들과 달리 지금 이 상황을 '전쟁'이라 부르는 외국 미디어를 무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말해야만 하고 어떤 민간인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무척 힘든 일입니다. 많은 언론인이 조용히 사직하고 있고,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두는 것을 고려하는 분들도 꽤 됩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마리아 바로노바
"더 이상 저널리즘은 여기 없습니다. 독립형 블로거가 되거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외신과)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전할 수 있지만, 그게 저널리즘은 아니잖아요. 그냥 지금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거죠. 러시아에는 더 이상 저널리즘이 없으며, 언론인도 없습니다. 지금은 반쯤 전체주의 사회 같아요."

일부 러시아인들은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다른 나라의 서버로 영문 매체들을 검색하기도 하지만, 영어에 능하지 않은 대부분 러시아인에겐 어려운 일일거라고 바로노바 전 에디터는 말했습니다. 러시아어로는 진짜 정보를 알기 힘들다는 겁니다.

코발레프 기자는 러시아 정부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트위터 등 서방의 SNS 역시 차단했으며, 러시아에서 가장 빈번히 쓰이는 두 개의 현지 SNS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발레프 씨가 몸담은 '메두자' 역시 러시아 SNS에서 금지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일하게 덜 통제받는 SNS는 '텔레그램'입니다. 코발레프 기자는 침공 전에 50만 명 미만이었던 '메두자'의 텔레그램 채널 구독자가 지금은 110만 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검열이 덜한 정보를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알렉세이 코발레프 기자가 소속된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텔레그램 채널. 11일 현재 110만 명이 가입돼 있다.알렉세이 코발레프 기자가 소속된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텔레그램 채널. 11일 현재 110만 명이 가입돼 있다.

Q. 전쟁에 관한 러시아의 여론은 어떤가요?

▶ 알렉세이 코발레프
"국영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 가까운 러시아인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이뤄지는 조사를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정직하게 대답하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질문이 이렇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부 여론조사기관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 군사 작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말해주세요'. ('전쟁'이 아닌) '특별 군사 작전'만이 러시아에서 합법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어기면 벌금을 물거나, 체포·투옥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론인이나 투표소 직원들과 얘기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덜 검열받은 정보의 출처들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침공이 '군사작전'이 아님을 알게 되고 속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왜 전 세계가 러시아에서 등을 돌리는 지, 왜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지, 왜 넷플릭스가 차단되는지, 왜 더 이상 외국에 나갈 수 없는 건지 알고 싶어 합니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서는 반전 시위가 꽤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여러 대도시에서 일어난 반전 시위는 다른 나라들에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마리아 바로노바 씨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 탓에 이제 시위들도 대부분 무력화됐다고 말했습니다.

Q. 지금도 러시아에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나요?

▶ 마리아 바로노바
"가장 활발하게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죠. 백지만 들고 나가도 벌금을 물거나, 15일에서 30일 동안 투옥이 되는 상황이니까요.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지하철 역에서도 사람이 체포되는 상황이에요. "

"러시아는 상당히 성능 좋은 안면 인식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러시아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라거나 러시아군에 뭔가 안 좋은 일을 했다고 하고 감옥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전히 코로나19 상황인데도, 마스크를 써서는 안 된다고까지 하고 있어요. 마스크를 쓰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러시아 경찰이 반전 시위대에 대한 진압에 나선 모습러시아 경찰이 반전 시위대에 대한 진압에 나선 모습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와 일본, 한국 등이 참여하고 있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영향에 대해 두 언론인은 비교적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러시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러시아 정권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는 겁니다.

Q. 서방의 경제 제재, 러시아는 영향을 받고 있나요?

▶ 마리아 바로노바
"제재 때문에 많은 회사가 러시아를 떠났어요. 우리를 죽이려 하고, 러시아를 끔찍한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아이디어에 온 세계가 뭉쳤죠. 우리는 이제 서방 세계 전체와 맞서야 할 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푸틴을 믿고 있고. 푸틴은 늘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제재할 거라고 말해왔어요. 이제 서방이 진짜 제재를 하고 있죠. 그럼 푸틴이 맞는 말을 한 게 되는 거예요. 아주 논리적인 구멍이죠."

▶ 알렉세이 코발레프
"제재는 분명히 수백만 러시아인들을 가난하고 절망적으로 만들 거예요. 서방세계가 의도했든 아니든 말이죠. 하지만 그게 정권을 약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이나 이란에서 그랬듯이 말이죠."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라를 떠나는 언론인들이 늘어가는 동안, 러시아 매체의 기사는 수많은 해외 언론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위성사진에 이전부터 찍혀있던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시신들을 두고도 "시신의 손이 움직였다. 백미러를 보면 죽은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같은 보도('러시아-1 뉴스' 보도)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내부 여론 단속을 등에 업고 러시아는 이제 다시 우크라이나 동부를 향한 공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특파원 리포트] “거짓말은 못 하겠더라”…러시아 언론인들이 전한 침공 뒤의 러시아
    • 입력 2022-04-11 13:56:57
    • 수정2022-04-11 14:05:44
    특파원 리포트

아래 사진은 러시아의 독립언론 '노바야 가제타'가 자사 텔레그램에 게시한 것입니다. '노바야 가제타'의 편집장이자 지난해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열차 안에서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부터 페인트와 아세톤이 섞인 물질로 공격을 당했다는 겁니다.

가해자는 페인트를 쏟아부으며 "우리 아이들을 위해 받아라"고 소리쳤다고 무라토프 편집장은 밝혔습니다.

‘노바야 가제타’ 편집장 드미트리 무라토프가 페인트 공격을 당한 뒤 찍은 사진. (출처=‘노바야 가제타’ 텔레그램)
'노바야 가제타'는 줄곧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비판적 논조를 이어오던 언론사였습니다.

비슷한 기조의 러시아 독립언론들이 정부 탄압에 못이겨 하나둘 폐간이나 정간을 하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보도를 이어온 마지막 언론사이기도 했습니다. 노벨상 수상자인 편집장의 대외적 명성에 힘입은 측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3월 말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인터뷰한 뒤 러시아 정부의 경고를 받았고 결국 운영을 잠정 중단했습니다.

서방의 비난과 제재 속에 러시아가 날로 문을 걸어 잠그면서, 러시아의 내부 분위기는 점점 더 알기 어렵게 됐습니다. 전쟁 초기 간간이 들려오던 러시아 내 반전 시위 소식도 더는 들리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에 반기를 들고 직장과 나라를 떠나게 된 두 명의 러시아 언론인들에게 화상 인터뷰로 자세한 내막을 들어봤습니다.

한 명은 현재 모스크바에 머물고 있는 전 러시아 국영방송 RT(러시아투데이)에서 일하던 마리아 바로노바입니다. 원래 사회활동가였던 바로노바씨는 2019년 자선 프로젝트 매니징 에디터로 RT에 발을 디뎠습니다.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자, 자신의 SNS에 이런 글을 남기고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그녀는 침공을 이유로 사직한 첫 러시아 국영방송 직원이었습니다.

"우리의 할아버지들이 이런 걸(우크라이나 침공) 위해 싸운 게 아닙니다. 모든 것이 배신당했고 모든 것이 짓밟혔습니다. 한 주 전 나는 나토의 프로파간다에 대해 적었고, 러시아 공포증에 대해 얘기했습니다만, 결국 그들이 옳았고 내가 틀린 걸로 판명되었습니다."

"내가 러시아와 함께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서, 그게 전체주의 시스템을 따라야 한다거나, 침묵하거나, 정권을 찬양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건 내가 우리 나라를 위해 원하는 게 아닙니다. 이 정권은 마침내 우리의 삶을 끝없는 지옥으로 만들 것입니다."


KBS와 화상 인터뷰하고 있는 알렉세이 코발레프 ‘메두자’ 에디터(위)와 마리아 바로노바 RT 전 에디터(아래)
다른 한 명은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탐사보도 전문 에디터 알렉세이 코발레프입니다. '메두자'는 침공 이후 러시아 내 인터넷 서비스를 금지당했습니다.

어렵게 보도를 이어가던 그는 지난달 라트비아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언제 러시아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코발레프 기자는 말합니다. 두 언론인에게 먼저 왜 직장과 나라를 떠났는지부터 물었습니다.

Q. 당신은 왜 직장과 나라를 떠났습니까?

▶ 마리아 바로노바
"(침공이 시작된) 2월 24일 이후, 이 정권은 침공에 대한 논의 자체를 아예 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모든 친지들과 맞서는 전쟁입니다. 왜냐면 이 정권은 늘 우리는 우크라이나인과 하나라고 했거든요. 자기 나라를 무기의 도움을 받아 자유롭게 할 수는 없잖아요. 자국민에게 폭탄을 떨어뜨리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 알렉세이 코발레프
"(러시아를 떠난 이유는) 나 자신에게 즉각적인 위협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에 언제든 계엄이 선포될 수 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건 러시아 헌법에 의해 보장되던 언론 자유가 막히는 건 물론, 국경도 닫힐 수 있다는 의미기도 했습니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빠져나와야 했습니다. 라트비아로 빠져나온 다음 날, 우리 언론사 '메두자'의 웹사이트가 차단되었고, 러시아 의회는 침공을 전쟁이라 부르는 것만으로도 우리를 형사범죄자로 만드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Q. 당신의 동료들은 러시아에 남아 있나요?)
"보안상의 이유로 그들의 현재 위치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수감되거나 체포된 언론인의 사례를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 코발레프 기자는 많은 사례가 있다면서도, "대다수가 직무를 수행하다 체포됐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러시아 언론인들은 늘 최악의 상황을 예상해야 한다며 "러시아 언론인들은 집 문 앞에 어느 날 스프레이가 칠해지는 등의 위협을 받고 있다. 꽤나 두려운 일"이라고 덧붙였습니다.

Q. 현재 러시아의 언론 환경은 어떻습니까?

▶ 알렉세이 코발레프
"러시아의 정부 소유 미디어, 그리고 현재의 모든 러시아 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국가 통제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합니다. 과장하는 게 아닙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크렘린궁에서 전달받는 '공식 입장'을 그저 전달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합니다."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다른 러시아인들과 달리 지금 이 상황을 '전쟁'이라 부르는 외국 미디어를 무한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전쟁을 '특별 군사 작전'이라고 말해야만 하고 어떤 민간인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말해야 합니다. 무척 힘든 일입니다. 많은 언론인이 조용히 사직하고 있고, 이 상황이 정상이 아니라고 생각해 그만두는 것을 고려하는 분들도 꽤 됩니다. 이렇게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 마리아 바로노바
"더 이상 저널리즘은 여기 없습니다. 독립형 블로거가 되거나,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외신과) 인터뷰를 통해 의견을 전할 수 있지만, 그게 저널리즘은 아니잖아요. 그냥 지금 일어나는 일을 설명하는 거죠. 러시아에는 더 이상 저널리즘이 없으며, 언론인도 없습니다. 지금은 반쯤 전체주의 사회 같아요."

일부 러시아인들은 가상사설망(VPN)을 통해 다른 나라의 서버로 영문 매체들을 검색하기도 하지만, 영어에 능하지 않은 대부분 러시아인에겐 어려운 일일거라고 바로노바 전 에디터는 말했습니다. 러시아어로는 진짜 정보를 알기 힘들다는 겁니다.

코발레프 기자는 러시아 정부가 페이스북이나 유튜브, 트위터 등 서방의 SNS 역시 차단했으며, 러시아에서 가장 빈번히 쓰이는 두 개의 현지 SNS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코발레프 씨가 몸담은 '메두자' 역시 러시아 SNS에서 금지당했다고 말했습니다.

유일하게 덜 통제받는 SNS는 '텔레그램'입니다. 코발레프 기자는 침공 전에 50만 명 미만이었던 '메두자'의 텔레그램 채널 구독자가 지금은 110만 명으로 두 배 넘게 늘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검열이 덜한 정보를 찾아 나서고 있다는 겁니다.

알렉세이 코발레프 기자가 소속된 러시아 독립언론 ‘메두자’의 텔레그램 채널. 11일 현재 110만 명이 가입돼 있다.
Q. 전쟁에 관한 러시아의 여론은 어떤가요?

▶ 알렉세이 코발레프
"국영 기관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80% 가까운 러시아인이 전쟁을 지지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독재정권 하에서 이뤄지는 조사를 다 믿을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이 정직하게 대답하면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여론조사 질문이 이렇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부 여론조사기관입니다. 우크라이나에서의 '특별 군사 작전'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말해주세요'. ('전쟁'이 아닌) '특별 군사 작전'만이 러시아에서 합법적인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어기면 벌금을 물거나, 체포·투옥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언론인이나 투표소 직원들과 얘기하는 걸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덜 검열받은 정보의 출처들을 찾아 나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침공이 '군사작전'이 아님을 알게 되고 속지 않게 됩니다. 그들은 왜 전 세계가 러시아에서 등을 돌리는 지, 왜 비자카드와 마스터카드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지, 왜 넷플릭스가 차단되는지, 왜 더 이상 외국에 나갈 수 없는 건지 알고 싶어 합니다."

전쟁 초기 러시아에서는 반전 시위가 꽤 많이 일어났습니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 등 여러 대도시에서 일어난 반전 시위는 다른 나라들에 놀라움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모스크바의 마리아 바로노바 씨는 정부의 강력한 통제 탓에 이제 시위들도 대부분 무력화됐다고 말했습니다.

Q. 지금도 러시아에 반전 시위가 일어나고 있나요?

▶ 마리아 바로노바
"가장 활발하게 시위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감옥에 있죠. 백지만 들고 나가도 벌금을 물거나, 15일에서 30일 동안 투옥이 되는 상황이니까요. 지금 모스크바에서는 지하철 역에서도 사람이 체포되는 상황이에요. "

"러시아는 상당히 성능 좋은 안면 인식 시스템을 갖고 있습니다. 당신이 러시아에 위협이 되는 사람이라거나 러시아군에 뭔가 안 좋은 일을 했다고 하고 감옥에 넣을 수 있습니다. 지금 여전히 코로나19 상황인데도, 마스크를 써서는 안 된다고까지 하고 있어요. 마스크를 쓰면 뭔가를 숨기고 있다는 뜻이 되는 거죠."


러시아 경찰이 반전 시위대에 대한 진압에 나선 모습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 국가와 일본, 한국 등이 참여하고 있는 대러시아 경제 제재의 영향에 대해 두 언론인은 비교적 회의적인 시각을 드러냈습니다. 러시아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겠지만, 러시아 정권에 미칠 영향은 제한적일 거라는 겁니다.

Q. 서방의 경제 제재, 러시아는 영향을 받고 있나요?

▶ 마리아 바로노바
"제재 때문에 많은 회사가 러시아를 떠났어요. 우리를 죽이려 하고, 러시아를 끔찍한 곳으로 만들려고 하는 아이디어에 온 세계가 뭉쳤죠. 우리는 이제 서방 세계 전체와 맞서야 할 판이에요. 그런데 사람들은 푸틴을 믿고 있고. 푸틴은 늘 서방 세계가 러시아를 제재할 거라고 말해왔어요. 이제 서방이 진짜 제재를 하고 있죠. 그럼 푸틴이 맞는 말을 한 게 되는 거예요. 아주 논리적인 구멍이죠."

▶ 알렉세이 코발레프
"제재는 분명히 수백만 러시아인들을 가난하고 절망적으로 만들 거예요. 서방세계가 의도했든 아니든 말이죠. 하지만 그게 정권을 약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작동하지는 않을 거라고 봅니다. 북한이나 이란에서 그랬듯이 말이죠."

전쟁을 전쟁이라고 부르다가 직장을 그만두고 나라를 떠나는 언론인들이 늘어가는 동안, 러시아 매체의 기사는 수많은 해외 언론들이 우크라이나에서 눈으로 확인하고 위성사진에 이전부터 찍혀있던 우크라이나 민간인들의 시신들을 두고도 "시신의 손이 움직였다. 백미러를 보면 죽은 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같은 보도('러시아-1 뉴스' 보도)로 채워지고 있습니다.

강력한 내부 여론 단속을 등에 업고 러시아는 이제 다시 우크라이나 동부를 향한 공세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