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심야심] 젤렌스키 대통령, 텅 빈 좌석 보며 무슨 생각했을까?

입력 2022.04.12 (13:57) 수정 2022.04.12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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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젤렌스키 대통령, 전 세계 24번째로 국회 연설

러시아의 침공을 겪고 있는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어제(11일) 국회에서 우크라이나어로 화상 연설을 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를 상대로 한 연설은 이번이 24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특유의 국방색 상의를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등장해 그동안 한국의 도움에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연설 때마다 그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맞춤형 연설을 해온 것처럼 어제 연설에서는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도 언급했는데, 당시 한국이 전쟁을 이겨낸 건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이었다면서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중 러시아 공격으로 초토화된 마리우폴 시내의 참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연설 내내 유창한 통역을 하던 통역사는 이때만큼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통역사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가족이 우크라이나 현지에 남아 있는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입니다.

■ 원내 지도부 총출동했지만…

우리 국회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의 지도부가 총출동했습니다.

민주당 박홍근, 국민의힘 권성동,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도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금껏 화상 연설과 별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어제 연설을 두고 국회 안팎에서는 조금씩 뒷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300석 규모에 60여 명 참석…나머지 의원들은 어디에?

4월 1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국회 화상 연설 모습4월 1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국회 화상 연설 모습

우선은 화상이라고는 해도 의원들의 참여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어제 화상 연설이 열렸던 장소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입니다. 좌석 수는 300석.

하지만 연설에 참석한 의원들은 6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화면으로 봐도 곳곳이 텅 비어 있어서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영국 하원 연설젤렌스키 대통령, 영국 하원 연설

지난달 상·하원 의원들로 가득 찼던 영국 하원 연설장은 물론,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마다 의원들로 인산인해였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약 17분간의 연설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의원들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 일국 대통령 연설인데…외교적 결례 지적도

현장에는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우크라이나 대사 등 우크라이나 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자국 대통령이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연설하는데 다른 나라와는 달리 텅텅 빈 자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 그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요?

'역지사지'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외교적 결례' 아니냐는 지적 나올만합니다.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던 타국과는 달리 착석한 상태에서 박수만 보낸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미국 의회 연설젤렌스키 대통령 미국 의회 연설

장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회를 상징하는 본회의장이나 의원회관 대회의실도 아닌 굳이 국회도서관 대강당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다만 장소의 문제는 국회 본회의장의 경우 화상 연결 시스템이 없어서,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사전 예약 문제로 불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외교적 수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는 냉정하게 따져야지만, 형식과 말의 외견은 최대한 상대방을 정중히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일겁니다.

텅 빈 좌석을 보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진정성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 러시아에는 선전의 무기로 악용될 수도


우리 국회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제 국회의 모습은 러시아에게는 선전의 무기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 국회의 썰렁한 모습을 인용해 "아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없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은 힘들여 시간을 만들었음에도 실리도, 외교도 모두 놓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까지 23번의 연설과는 사뭇 달랐던 24번째 연설을 마치고도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두 달 가까이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있음에도 무엇이 '외교의 본질'이자 '외교적 언사의 정수'인지를 잘 일깨워 준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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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2 13:57:47
    • 수정2022-04-12 13:58:14
    여심야심

■ 젤렌스키 대통령, 전 세계 24번째로 국회 연설

러시아의 침공을 겪고 있는 볼라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어제(11일) 국회에서 우크라이나어로 화상 연설을 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국가를 상대로 한 연설은 이번이 24번째, 아시아에서는 일본에 이어 두 번째입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특유의 국방색 상의를 입고 수염을 기른 모습으로 등장해 그동안 한국의 도움에 감사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연설 때마다 그 국가의 역사와 문화에 맞춤형 연설을 해온 것처럼 어제 연설에서는 6.25 전쟁이라는 역사적 경험도 언급했는데, 당시 한국이 전쟁을 이겨낸 건 국제사회의 도움 덕분이었다면서 국제 공조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연설 중 러시아 공격으로 초토화된 마리우폴 시내의 참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공개하기도 했는데, 연설 내내 유창한 통역을 하던 통역사는 이때만큼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울먹이기도 했습니다.

통역사는 우크라이나 출신으로 가족이 우크라이나 현지에 남아 있는 올레나 쉐겔 한국외대 교수입니다.

■ 원내 지도부 총출동했지만…

우리 국회에선 민주당과 국민의힘, 정의당의 지도부가 총출동했습니다.

민주당 박홍근, 국민의힘 권성동, 정의당 배진교 원내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전쟁범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위해 대한민국도 함께 노력할 것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젤렌스키 대통령의 지금껏 화상 연설과 별 다를바 없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어제 연설을 두고 국회 안팎에서는 조금씩 뒷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 300석 규모에 60여 명 참석…나머지 의원들은 어디에?

4월 11일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국회 화상 연설 모습
우선은 화상이라고는 해도 의원들의 참여가 너무 부족했습니다. 어제 화상 연설이 열렸던 장소는 국회도서관 대강당입니다. 좌석 수는 300석.

하지만 연설에 참석한 의원들은 6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화면으로 봐도 곳곳이 텅 비어 있어서 썰렁함이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영국 하원 연설
지난달 상·하원 의원들로 가득 찼던 영국 하원 연설장은 물론, 미국과 일본, 이탈리아 등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마다 의원들로 인산인해였던 것과는 대비되는 모습입니다.

심지어 약 17분간의 연설도 참지 못하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는 의원들이 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 일국 대통령 연설인데…외교적 결례 지적도

현장에는 드미트로 포노마렌코 우크라이나 대사 등 우크라이나 관계자들도 여럿 참석했습니다.

전쟁을 치르는 자국 대통령이 어렵사리 시간을 내서 연설하는데 다른 나라와는 달리 텅텅 빈 자리가 확연히 드러나는 모습이 그들 눈에 어떻게 보였을까요?

'역지사지'라는 말을 굳이 꺼내지 않아도 '외교적 결례' 아니냐는 지적 나올만합니다.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를 보냈던 타국과는 달리 착석한 상태에서 박수만 보낸 것도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습니다.

젤렌스키 대통령 미국 의회 연설
장소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국회를 상징하는 본회의장이나 의원회관 대회의실도 아닌 굳이 국회도서관 대강당을 택한 이유가 뭐냐는 겁니다.

다만 장소의 문제는 국회 본회의장의 경우 화상 연결 시스템이 없어서, 의원회관 대회의실은 사전 예약 문제로 불가능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외교적 수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외교에 있어서는 실리는 냉정하게 따져야지만, 형식과 말의 외견은 최대한 상대방을 정중히 배려해야 한다는 의미일겁니다.

텅 빈 좌석을 보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한국의 관심이 진정성이 있는지 고민하게 되지 않았을까요?

■ 러시아에는 선전의 무기로 악용될 수도


우리 국회는 전혀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제 국회의 모습은 러시아에게는 선전의 무기로도 작용하고 있습니다.

러시아 극동대학의 한 교수는 우리 국회의 썰렁한 모습을 인용해 "아시아가 우크라이나에 관심이 없는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젤렌스키 대통령 연설은 힘들여 시간을 만들었음에도 실리도, 외교도 모두 놓친 경우가 아닐까 합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지금까지 23번의 연설과는 사뭇 달랐던 24번째 연설을 마치고도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두 달 가까이 전쟁의 참혹함을 겪고 있음에도 무엇이 '외교의 본질'이자 '외교적 언사의 정수'인지를 잘 일깨워 준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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