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돋보기] 영리병원과 제주국제자유도시

입력 2022.04.12 (20:35) 수정 2022.04.12 (21:07)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앵커]

제주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제주 돋보기', 김익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녹지국제병원 허가에 대해 재취소 의결을 했죠.

지난 주엔 법원 판결도 나오면서 영리병원 이슈가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기자]

네, 한 시간 전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의결했습니다.

제주도가 이 의결 내용을 토대로 녹지국제병원 측의 소명을 듣는 청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할텐데, 허가 재취소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주엔 제주지방법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한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 결정을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녹지 측에서 소송을 낸 지 3년만에 나온 1심 판단입니다.

[앵커]

1심 판결이 매우 늦어졌네요.

왜 이렇게 재판이 지연된 겁니까?

[기자]

그 이유를 알려면 녹지병원 허가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2018년 12월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는 공론화위원회의 개설 불허 권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라는 조건을 걸고 허가를 내줬죠.

녹지 측은 반발하며 이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1차 소송을 냈고 병원 개원도 미뤘습니다.

이에 제주도는 2019년 4월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고, 녹지는 이 허가 취소 처분도 취소해달라며 2차 소송을 냈습니다.

이 2차 소송은 올해 1월 대법원까지 가면서 녹지가 이겼죠.

오늘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재취소를 의결한 것은 이 2차 소송 결과에 따라 유효해진 허가를 다시 취소하라고 제주도에 요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1차 소송 재판부는 2차 소송 결과를 봐야 한다며 재판을 미루다가 지난 주에 1심 판결을 낸 겁니다.

[앵커]

물론 다시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만, 어쨌든 제주도가 불리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1심 판결의 논리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영리병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간 공론화나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법원은 법 조문에 근거해 판단하죠.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심 재판부 역시 내국인 제한이라는 조건에 대해 법령에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앵커]

현행 제주특별법령에 내국인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다는 건가요?

[기자]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만 제주특별법의 제정, 개정 과정을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제주특별법상의 의료기관 특례조항은 2004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에 처음 담겼습니다.

이 당시엔 의료기관이나 약국 모두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원희룡 전 지사가 녹지병원에 허가를 내주면서 조건을 걸었던 바로 그 내용, 내국인은 안되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조항은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탈바꿈한 2006년에 바뀝니다.

의료기관, 즉 병원인 경우엔 외국인전용이라는 제한을 삭제한 반면, 약국인 경우에만 그 제한을 그대로 둔 겁니다.

1심 법원은 이런 입법 역사에 주목했습니다.

현행 제주특별법은 내국인 진료 허용을 전제로 외국의료기관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한 겁니다.

[앵커]

원희룡 전 지사도 검사출신의 법조인 아닙니까.

당시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신의 한수'라는 자평까지 했는데,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있지 않을까요?

[기자]

당시 제주도는 영리병원 허가를 도지사의 재량행위로 봤습니다.

따라서 조건을 다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영리병원 허가라는 행정행위가 행정기관의 재량행위냐 기속행위냐는 이번 1심 판단에서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사업자 측에서 요건을 갖춰 허가 신청을 했을 경우 행정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허가를 내줘야 하는가, 아니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조건을 걸거나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도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이 판단의 자율성 정도에 따라 행정행위를 기속행위, 기속재량행위, 재량행위, 자유재량행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영리병원 허가에 관해 기속행위에 가까운 기속재량행위로 판단했습니다.

요건을 갖췄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를 해야하고, 법적 근거 없이 조건을 걸 수도 없다는 거죠.

[앵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해야 한다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허가를 안 내줄 수도 있다는 뜻이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래서 이번 행정행위의 법적 성격에 대해 100% 기속행위는 아니고 행정기관에 판단 여지를 일부 남겨둔 기속재량 행위로 본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중대한 공익을 이유로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았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았다는 얘기네요?

[기자]

1심 판결문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공론조사가 숙의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의사결정 방식 가운데 하나라는 점, 또, 당시 논란이 됐던 몇가지 쟁점, 국내자본의 우회 투자라든가 사업계획의 부족 등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까지 위배하며 조건부허가를 내준 원희룡 전 지사가 정치인으로서 분명히 책임져야할 부분입니다.

특히 국토부장관에 임명됐을 경우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해법을 내놓아야 할 중요한 현안이 됐습니다.

다만 당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논란은 해결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쉽지는 않습니다.

원 전 지사가 2018년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한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원희룡/당시 제주도지사/2018년 12월 5일 : "(불허 시) 전적으로 제주도의 재정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문제가 있었고,) 투자에 대한 신뢰, 나아가서는 한국과 중국 간의 FTA라든가 국가 투자자 소송 이런 문제들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앵커]

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경우, 국제소송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네요?

[기자]

네, 이젠 많은 분들이 용어를 들어보셨을텐데.

ISDS라고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이 확산되면서 외국인의 투자 보호를 위해 만든 자본 중심의 국제제도죠.

중재뿐만 아니라 협상, 조정, 소송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제주에서도 예래휴양단지 투자자인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이 JDC와 제주도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3천억 원 대 손해배상소송과 함께, 한국 정부에 대해 4조 원 대 ISDS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예래휴양단지 분쟁에선 투자자가 1,250억 원을 받고 소송을 취하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는 국내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으로 마무리 된 적이 있습니다.

[앵커]

천250억 원,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안 오네요.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참 안타깝습니다.

다시 녹지국제병원으로 돌아오죠.

ISDS를 이유로 민주주의 원칙까지 훼손하며 조건부 허가를 내줬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녹지 측은 재판 과정에서 ISDS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대해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죠.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녹지 측에 물어봤는데, 병원 문을 여는 게 당면 과제라고만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손해배상 소송이나 ISDS로 갈 가능성은 높다고 점쳐집니다.

[앵커]

영리병원도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의 전철을 밟을 거라는 얘기네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기자]

중요한 질문입니다.

영리병원 정책이 제주에서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만, 실은 경제자유구역법이 먼저 길을 열기는 했습니다.

외국인전용 의료기관 개설 조항이나 외국의료기관 특례 조항은 제주특별법에 담기기 각각 1년 전에, 경제자유구역법에서 먼저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화된 것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유일합니다.

국내 의료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보니 제주가 실험장소로 사용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만 이런 뜨거운 논란거리를 안고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겁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사람과 상품,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기업 활동에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비전으로 시작했죠.

그렇다면 제주에 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용 의료기관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외국인도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고, 의사 아닌 일반인도 병원에 투자할 수 있도록 주식회사 방식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실제 이런 방향으로 제주특별법은 개정됐고, 마지막 요구만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반대 속에 백지화됐습니다.

어쨌든 제주도와 JDC는 국제자유도시 목표에 따라 영리병원 설립을 위해 외국자본 유치에 주력해 왔죠.

외국자본 입장에서 보면 투자해달라는 건 언제고 이제와서 허가에 조건을 걸거나 허가를 취소한다면 어떻게 한국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신뢰보호의 문제가 나오게 되는 거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걸까요?

[기자]

지금까지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되, 앞으로는 논란만 일으키고 있는 영리병원 개설 근거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대안이 나왔죠.

위성곤 국회의원은 지난해 외국의료기관 관련 조항을 모두 삭제하고 대신 의료공공성 강화를 담은 조항을 추가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영리병원에 신중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오고 있어 개정안을 수용하겠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주도가 외국인전용의료기관만이라도 허용하는 수준에서 관련 조문을 남겨놓자는 주장을 하면서 8개월째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앵커]

외국인 전용의료기관 조항이라면 앞서 언급했던 2004년 제주특별법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주도는 어렵게 인정 받은 영리병원 특례를 전면 삭제하기보다 내국인 진료만 제한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안을 올해 하반기 쯤, 8단계 특별법 제도개선 과제에 포함해 추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앵커]

올해 하반기라면 새 정부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요?

[기자]

그렇죠.

아직 윤석열 정부의 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간 추진했던 국제자유도시 비전에 대한 당선인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2021년 10월 13일 : "자본과 사람과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과 규제 혁신을 위한 자유도시 조성 문제도 신속하게 더 속도감 있게 추진을 해서, 제가 볼 때는 법만 제대로 지켜주면 제주가 많이 변할 것 같습니다."]

국제자유도시 비전과 영리병원 정책이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발언인데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입증했듯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는 아주 높아졌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차기 제주도정이 이 간극을 어떻게 메꿔가면서 문제를 풀어갈 지 주목됩니다.

[앵커]

2공항과 함께 영리병원 문제도 이제 곧 제주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네요.

오늘 돋보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제주 돋보기] 영리병원과 제주국제자유도시
    • 입력 2022-04-12 20:35:53
    • 수정2022-04-12 21:07:56
    뉴스7(제주)
[앵커]

제주 사회 현안을 심층적으로 살펴보는 '제주 돋보기', 김익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녹지국제병원 허가에 대해 재취소 의결을 했죠.

지난 주엔 법원 판결도 나오면서 영리병원 이슈가 다시 뜨거워졌습니다.

[기자]

네, 한 시간 전쯤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의결했습니다.

제주도가 이 의결 내용을 토대로 녹지국제병원 측의 소명을 듣는 청문을 거쳐 최종적으로 허가 취소 여부를 결정할텐데, 허가 재취소 가능성은 높아졌습니다.

이에 앞서 지난 주엔 제주지방법원이 국내 첫 영리병원으로 추진한 녹지국제병원에 대해 내국인 진료를 제한한 제주도 결정을 위법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녹지 측에서 소송을 낸 지 3년만에 나온 1심 판단입니다.

[앵커]

1심 판결이 매우 늦어졌네요.

왜 이렇게 재판이 지연된 겁니까?

[기자]

그 이유를 알려면 녹지병원 허가 과정을 살펴봐야 합니다.

2018년 12월 원희룡 당시 제주도지사는 공론화위원회의 개설 불허 권고에도 불구하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병원을 운영하라는 조건을 걸고 허가를 내줬죠.

녹지 측은 반발하며 이 조건을 취소해달라는 1차 소송을 냈고 병원 개원도 미뤘습니다.

이에 제주도는 2019년 4월 병원 개설 허가를 취소했고, 녹지는 이 허가 취소 처분도 취소해달라며 2차 소송을 냈습니다.

이 2차 소송은 올해 1월 대법원까지 가면서 녹지가 이겼죠.

오늘 제주도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가 재취소를 의결한 것은 이 2차 소송 결과에 따라 유효해진 허가를 다시 취소하라고 제주도에 요구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어쨌든 1차 소송 재판부는 2차 소송 결과를 봐야 한다며 재판을 미루다가 지난 주에 1심 판결을 낸 겁니다.

[앵커]

물론 다시 대법원 판결까지 나오려면 시간이 걸리겠습니다만, 어쨌든 제주도가 불리한 상황인 것만은 분명해 보이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이번 1심 판결의 논리 때문입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선 영리병원에 대해 부정적인 여론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간 공론화나 여론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법원은 법 조문에 근거해 판단하죠.

보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1심 재판부 역시 내국인 제한이라는 조건에 대해 법령에 근거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앵커]

현행 제주특별법령에 내국인을 제한할 수 있는 근거규정이 없다는 건가요?

[기자]

재판부는 그렇게 판단했습니다.

판결문에 명시했습니다만 제주특별법의 제정, 개정 과정을 보면 그렇다는 겁니다.

제주특별법상의 의료기관 특례조항은 2004년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일부개정 법률에 처음 담겼습니다.

이 당시엔 의료기관이나 약국 모두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원희룡 전 지사가 녹지병원에 허가를 내주면서 조건을 걸었던 바로 그 내용, 내국인은 안되고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한다는 거죠.

그런데 이 조항은 국제자유도시특별법이 특별자치도특별법으로 탈바꿈한 2006년에 바뀝니다.

의료기관, 즉 병원인 경우엔 외국인전용이라는 제한을 삭제한 반면, 약국인 경우에만 그 제한을 그대로 둔 겁니다.

1심 법원은 이런 입법 역사에 주목했습니다.

현행 제주특별법은 내국인 진료 허용을 전제로 외국의료기관 제도를 규정하고 있다고 해석한 겁니다.

[앵커]

원희룡 전 지사도 검사출신의 법조인 아닙니까.

당시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신의 한수'라는 자평까지 했는데,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있지 않을까요?

[기자]

당시 제주도는 영리병원 허가를 도지사의 재량행위로 봤습니다.

따라서 조건을 다는 것 역시 정당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영리병원 허가라는 행정행위가 행정기관의 재량행위냐 기속행위냐는 이번 1심 판단에서 중요한 쟁점 가운데 하나였는데요.

쉽게 말씀드리면 사업자 측에서 요건을 갖춰 허가 신청을 했을 경우 행정기관에서 의무적으로 허가를 내줘야 하는가, 아니면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조건을 걸거나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을 수도 있는가 하는 문제인데요.

이 판단의 자율성 정도에 따라 행정행위를 기속행위, 기속재량행위, 재량행위, 자유재량행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1심 재판부는 영리병원 허가에 관해 기속행위에 가까운 기속재량행위로 판단했습니다.

요건을 갖췄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를 해야하고, 법적 근거 없이 조건을 걸 수도 없다는 거죠.

[앵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허가해야 한다면,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엔 허가를 안 내줄 수도 있다는 뜻이겠네요?

[기자]

그렇습니다.

1심 재판부는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 예외적으로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요.

그래서 이번 행정행위의 법적 성격에 대해 100% 기속행위는 아니고 행정기관에 판단 여지를 일부 남겨둔 기속재량 행위로 본 겁니다.

[앵커]

그렇다면 중대한 공익을 이유로 아예 허가를 내주지 않았아야 한다는 주장이 옳았다는 얘기네요?

[기자]

1심 판결문만 보면 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공론조사가 숙의민주주의의 대표적인 의사결정 방식 가운데 하나라는 점, 또, 당시 논란이 됐던 몇가지 쟁점, 국내자본의 우회 투자라든가 사업계획의 부족 등 여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때문에 민주주의 원칙까지 위배하며 조건부허가를 내준 원희룡 전 지사가 정치인으로서 분명히 책임져야할 부분입니다.

특히 국토부장관에 임명됐을 경우 국무위원의 한 사람으로서 해법을 내놓아야 할 중요한 현안이 됐습니다.

다만 당시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면 논란은 해결됐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쉽지는 않습니다.

원 전 지사가 2018년 조건부 허가를 내주면서 한 말을 직접 들어보시죠.

[원희룡/당시 제주도지사/2018년 12월 5일 : "(불허 시) 전적으로 제주도의 재정으로 책임을 져야한다는 (문제가 있었고,) 투자에 대한 신뢰, 나아가서는 한국과 중국 간의 FTA라든가 국가 투자자 소송 이런 문제들도 갈 수 있기 때문에."]

[앵커]

허가를 내주지 않았을 경우, 국제소송으로 번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네요?

[기자]

네, 이젠 많은 분들이 용어를 들어보셨을텐데.

ISDS라고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라는 게 있습니다.

자유무역협정이 확산되면서 외국인의 투자 보호를 위해 만든 자본 중심의 국제제도죠.

중재뿐만 아니라 협상, 조정, 소송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진행됩니다.

제주에서도 예래휴양단지 투자자인 말레이시아 버자야그룹이 JDC와 제주도를 상대로 국내 법원에 낸 3천억 원 대 손해배상소송과 함께, 한국 정부에 대해 4조 원 대 ISDS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예래휴양단지 분쟁에선 투자자가 1,250억 원을 받고 소송을 취하하고 사업에서 손을 떼는 국내법원의 강제조정 결정으로 마무리 된 적이 있습니다.

[앵커]

천250억 원, 이게 얼마나 큰 돈인지 감이 안 오네요.

이런 상황까지 왔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참 안타깝습니다.

다시 녹지국제병원으로 돌아오죠.

ISDS를 이유로 민주주의 원칙까지 훼손하며 조건부 허가를 내줬는데, 지금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녹지 측은 재판 과정에서 ISDS를 할 생각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대해 "사유에 해당한다"고 밝힌 바 있죠.

지금은 어떤 입장인지 녹지 측에 물어봤는데, 병원 문을 여는 게 당면 과제라고만 말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손해배상 소송이나 ISDS로 갈 가능성은 높다고 점쳐집니다.

[앵커]

영리병원도 예래휴양형주거단지 사업의 전철을 밟을 거라는 얘기네요?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까요?

[기자]

중요한 질문입니다.

영리병원 정책이 제주에서 처음 시행된 것으로 알고 계신 분도 많습니다만, 실은 경제자유구역법이 먼저 길을 열기는 했습니다.

외국인전용 의료기관 개설 조항이나 외국의료기관 특례 조항은 제주특별법에 담기기 각각 1년 전에, 경제자유구역법에서 먼저 시행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실화된 것은 제주 녹지국제병원이 유일합니다.

국내 의료체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보니 제주가 실험장소로 사용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제주에서만 이런 뜨거운 논란거리를 안고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에 제가 드릴 수 있는 답은 국제자유도시라는 비전이 빚어낸 필연적 결과라는 겁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는 사람과 상품, 자본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고 기업 활동에 편의를 보장하기 위한 비전으로 시작했죠.

그렇다면 제주에 온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전용 의료기관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외국인도 의료기관을 설립할 수 있도록 해줘야하고, 의사 아닌 일반인도 병원에 투자할 수 있도록 주식회사 방식도 허용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다는 겁니다.

실제 이런 방향으로 제주특별법은 개정됐고, 마지막 요구만 2010년과 2011년 사이에 의료계와 시민사회의 반대 속에 백지화됐습니다.

어쨌든 제주도와 JDC는 국제자유도시 목표에 따라 영리병원 설립을 위해 외국자본 유치에 주력해 왔죠.

외국자본 입장에서 보면 투자해달라는 건 언제고 이제와서 허가에 조건을 걸거나 허가를 취소한다면 어떻게 한국정부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볼멘 소리를 하고 있는 겁니다.

[앵커]

신뢰보호의 문제가 나오게 되는 거군요.

그렇다면 어떻게 이 난국을 돌파해야 하는 걸까요?

[기자]

지금까지 잘못된 부분은 바로잡되, 앞으로는 논란만 일으키고 있는 영리병원 개설 근거를 아예 없애버리자는 대안이 나왔죠.

위성곤 국회의원은 지난해 외국의료기관 관련 조항을 모두 삭제하고 대신 의료공공성 강화를 담은 조항을 추가한 제주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습니다.

보건복지부 역시 "영리병원에 신중한 입장을 지속적으로 견지해 오고 있어 개정안을 수용하겠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런데 정작 제주도가 외국인전용의료기관만이라도 허용하는 수준에서 관련 조문을 남겨놓자는 주장을 하면서 8개월째 상임위원회에 계류돼 있습니다.

[앵커]

외국인 전용의료기관 조항이라면 앞서 언급했던 2004년 제주특별법 수준으로 돌아가자는 뜻이군요?

[기자]

그렇습니다.

제주도는 어렵게 인정 받은 영리병원 특례를 전면 삭제하기보다 내국인 진료만 제한하는 쪽으로 법률 개정안을 올해 하반기 쯤, 8단계 특별법 제도개선 과제에 포함해 추진하겠다는 구상입니다.

[앵커]

올해 하반기라면 새 정부에 기대를 걸어보겠다는 뜻으로 읽히는데요?

[기자]

그렇죠.

아직 윤석열 정부의 영리병원에 대한 입장은 명확하게 나와있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그간 추진했던 국제자유도시 비전에 대한 당선인의 평가는 매우 긍정적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2021년 10월 13일 : "자본과 사람과 물류의 자유로운 이동과 규제 혁신을 위한 자유도시 조성 문제도 신속하게 더 속도감 있게 추진을 해서, 제가 볼 때는 법만 제대로 지켜주면 제주가 많이 변할 것 같습니다."]

국제자유도시 비전과 영리병원 정책이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한 발언인데요.

하지만 코로나19 사태가 입증했듯이 공공의료를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목소리는 아주 높아졌습니다.

윤석열 정부와 차기 제주도정이 이 간극을 어떻게 메꿔가면서 문제를 풀어갈 지 주목됩니다.

[앵커]

2공항과 함께 영리병원 문제도 이제 곧 제주사회의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네요.

오늘 돋보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제주-주요뉴스

더보기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