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채석장 붕괴’ 추적해보니

입력 2022.04.13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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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29일, 설 연휴 첫날 오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삼표산업 채석장이 무너졌다. 노동자 3명이 순식간에 매몰됐고, 결국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

수사 초기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취재는 뜸해졌고 보도는 줄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재해원인 조사는 두 달여 이어졌고, 최근 잠정 결론이 나왔다.

KBS는 조사 결과를 다각적으로 확인했다.

1. 기울기 64°, 결국 못 견뎠다

채석장의 화강암에서 자갈이나 모래 등을 채취하고 나면, 일종의 찌꺼기가 다량으로 나온다. 이 폐기용 흙을 '슬러지'라고 한다. 채석이 계속되면 슬러지는 늘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쌓이면 치워주는 게 상식일텐데, 삼표산업은 이걸 제때 안 했다. 길게는 20년 가까이 슬러지를 쌓아뒀다고 한다. 고용부 조사 결과, 슬러지의 높이만 무려 60 미터가 넘었다.

단순히 쌓아만 뒀다면 일이 안 벌어졌을 수 있다. 문제는 기울기였다.

슬러지는 상대적으로 물을 많이 머금은 흙이다. 붕괴를 막으려면 기울기를 완만히 유지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은 아무리 가팔라도 기울기가 45도는 넘지 않게 하라고 정하고 있다.

양주 채석장의 슬러지 기울기는 점점 커졌다. 붕괴 이틀 전엔 64도까지 가팔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아래 그림과 같이 차량이 다닐 위쪽 통로를 확보하려 바깥쪽만 깎아나갔던 것으로 보인다고 고용부는 잠정 결론 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취약한 지질의 슬러지가 엄청나게 쌓인 상태에서, 아랫부분의 암반을 가파르게 깎아 들어갔으니…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2. 붕괴 징후, 나흘 전부터

재난 대부분은 예고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사고 나흘 전 붕괴가 일부 시작됐다. 양주 채석장의 안전담당자는 이를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담당자가 발견한 붕괴 징후는 안전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 회사 측의 고의였거나 최소한 무거운 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경위는 수사 대상이다.

붕괴 현장에서는 균열과 매몰 위험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2021년 6월 삼표산업 본사는 양주 채석장에 대해 장마철 안전점검을 했고, 균열이 생겼으니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2020년 8월에는 대한산업안전협회도 문제를 확인했다. 잘린 땅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라며, 매몰사고 발생 가능성을 양주 채석장의 유해·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정리하면, 현장 직원도/본사도/외부기관도 붕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쳤다.

이에 대해 삼표산업은 "정부 부처, 산업안전 전문기관에서 사고 원인을 정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결과를 예단하는 보도에는 신중하게 접근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3. 사고 당일 대표이사의 전화

삼표산업 이종신 대표이사는 본인이 양주 채석장에서 오래 근무했다. 현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였다.

사고 직후, 이 대표는 현장소장과 통화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이 대표는 사고 수습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상당 시간을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대해 뭐라고 답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데 할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KBS가 파악한 이 대표의 지시 내용은 '붕괴 원인을 슬러지가 아닌 날씨 탓으로 돌리자' '다른 직원들에게도 진술 방향을 그렇게 교육하자' 등이었다.

그러나 다수 언론이 '슬러지'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이번에는 '슬러지가 아닌 다른 제품용 토사를 쌓아뒀다고 진술하자' '쌓아둔 기간도 절반으로 줄여 말하자'고 방향을 잡았다.

대규모 슬러지를 고의로 버려뒀다면 회사의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회사의 책임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진술 전략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


4. 이번에도, 아이폰의 위력

이런 조사 결과를 삼표 측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사에 앞서 입 맞추기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삼표산업은 "조사 과정에서 사실 그대로를 진술하고 있고, 허위 사실을 강요하거나 유도한 사실은 없습니다. 수사 대상자의 정당한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 볼 대상은 이 대표의 휴대전화다. 통화 기록과 메시지 등을 확인하면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용부는 두 달 전 이 대표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잠금을 못 풀고 있다. 이 대표가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휴대전화도 아이폰이었다.

5. 수사에 성실히 협조한다?

사고 당일, 삼표산업은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며 최대한 엎드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삼표 측은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 법원이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현장소장 최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최 씨의 신병이 확보되면, 고용부는 이 대표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고경영자 '만' 처벌하는 법이다. 수사의 칼끝은 이 대표를 향할 수밖에 없다.

6. 수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한 처벌을 양산할 것이라 거듭 우려하고 있다. 삼표산업에 대한 수사 결과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삼표산업 수사는 경영계의 우려가 일리 있었다고 말할까, 아니면 과잉 공포에 불과했다고 말할까. 수사 과정을 추적하고 수사 결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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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채석장 붕괴’ 추적해보니
    • 입력 2022-04-13 07:00:13
    취재K

1월 29일, 설 연휴 첫날 오전. 경기도 양주에 있는 삼표산업 채석장이 무너졌다. 노동자 3명이 순식간에 매몰됐고, 결국 숨졌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틀 만에 일어난 사고였다.

수사 초기 집중 조명을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취재는 뜸해졌고 보도는 줄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재해원인 조사는 두 달여 이어졌고, 최근 잠정 결론이 나왔다.

KBS는 조사 결과를 다각적으로 확인했다.

1. 기울기 64°, 결국 못 견뎠다

채석장의 화강암에서 자갈이나 모래 등을 채취하고 나면, 일종의 찌꺼기가 다량으로 나온다. 이 폐기용 흙을 '슬러지'라고 한다. 채석이 계속되면 슬러지는 늘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쌓이면 치워주는 게 상식일텐데, 삼표산업은 이걸 제때 안 했다. 길게는 20년 가까이 슬러지를 쌓아뒀다고 한다. 고용부 조사 결과, 슬러지의 높이만 무려 60 미터가 넘었다.

단순히 쌓아만 뒀다면 일이 안 벌어졌을 수 있다. 문제는 기울기였다.

슬러지는 상대적으로 물을 많이 머금은 흙이다. 붕괴를 막으려면 기울기를 완만히 유지해야 한다. 「산업안전보건기준」은 아무리 가팔라도 기울기가 45도는 넘지 않게 하라고 정하고 있다.

양주 채석장의 슬러지 기울기는 점점 커졌다. 붕괴 이틀 전엔 64도까지 가팔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아래 그림과 같이 차량이 다닐 위쪽 통로를 확보하려 바깥쪽만 깎아나갔던 것으로 보인다고 고용부는 잠정 결론 내렸다.


물기를 머금은 취약한 지질의 슬러지가 엄청나게 쌓인 상태에서, 아랫부분의 암반을 가파르게 깎아 들어갔으니…붕괴는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 지도 모른다.

2. 붕괴 징후, 나흘 전부터

재난 대부분은 예고 없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번에도 비슷했다. 사고 나흘 전 붕괴가 일부 시작됐다. 양주 채석장의 안전담당자는 이를 발견하고, 휴대전화로 촬영까지 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담당자가 발견한 붕괴 징후는 안전 조치로 이어지지 않았다. 회사 측의 고의였거나 최소한 무거운 과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경위는 수사 대상이다.

붕괴 현장에서는 균열과 매몰 위험이 반복적으로 지적됐다. 2021년 6월 삼표산업 본사는 양주 채석장에 대해 장마철 안전점검을 했고, 균열이 생겼으니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2020년 8월에는 대한산업안전협회도 문제를 확인했다. 잘린 땅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상태라며, 매몰사고 발생 가능성을 양주 채석장의 유해·위험요인으로 지목했다.

정리하면, 현장 직원도/본사도/외부기관도 붕괴 사고를 예견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기회를 놓쳤다.

이에 대해 삼표산업은 "정부 부처, 산업안전 전문기관에서 사고 원인을 정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결과를 예단하는 보도에는 신중하게 접근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3. 사고 당일 대표이사의 전화

삼표산업 이종신 대표이사는 본인이 양주 채석장에서 오래 근무했다. 현장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전문가였다.

사고 직후, 이 대표는 현장소장과 통화했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이 대표는 사고 수습을 지시하기도 했지만, 상당 시간을 고용노동부의 조사에 대해 뭐라고 답할지 방향을 잡아주는 데 할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KBS가 파악한 이 대표의 지시 내용은 '붕괴 원인을 슬러지가 아닌 날씨 탓으로 돌리자' '다른 직원들에게도 진술 방향을 그렇게 교육하자' 등이었다.

그러나 다수 언론이 '슬러지'를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러자 이 대표는 이번에는 '슬러지가 아닌 다른 제품용 토사를 쌓아뒀다고 진술하자' '쌓아둔 기간도 절반으로 줄여 말하자'고 방향을 잡았다.

대규모 슬러지를 고의로 버려뒀다면 회사의 책임이 커지기 때문에, 회사의 책임을 최대한 줄이는 쪽으로 진술 전략을 짰던 것으로 보인다.


4. 이번에도, 아이폰의 위력

이런 조사 결과를 삼표 측은 전면 부인하고 있다. 조사에 앞서 입 맞추기는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삼표산업은 "조사 과정에서 사실 그대로를 진술하고 있고, 허위 사실을 강요하거나 유도한 사실은 없습니다. 수사 대상자의 정당한 방어권은 충분히 보장되어야 할 것입니다." 라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 볼 대상은 이 대표의 휴대전화다. 통화 기록과 메시지 등을 확인하면 사실 여부를 가릴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용부는 두 달 전 이 대표의 휴대전화를 압수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잠금을 못 풀고 있다. 이 대표가 비밀번호 제공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의 휴대전화도 아이폰이었다.

5. 수사에 성실히 협조한다?

사고 당일, 삼표산업은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냈다.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재발 방지에 힘쓰겠다며 최대한 엎드리는 모양새를 취했다.


삼표 측은 이 약속을 잘 지키고 있을까. 법원이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조만간 현장소장 최 모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최 씨의 신병이 확보되면, 고용부는 이 대표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최고경영자 '만' 처벌하는 법이다. 수사의 칼끝은 이 대표를 향할 수밖에 없다.

6. 수사결과에 주목하는 이유

경영계는 중대재해처벌법이 과도한 처벌을 양산할 것이라 거듭 우려하고 있다. 삼표산업에 대한 수사 결과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 논의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삼표산업 수사는 경영계의 우려가 일리 있었다고 말할까, 아니면 과잉 공포에 불과했다고 말할까. 수사 과정을 추적하고 수사 결과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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