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홍콩 기자협회 해산 고려…‘공안통’ 행정장관 앞둔 고육책?

입력 2022.04.15 (08:01) 수정 2022.04.15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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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슨 챈 홍콩기자협회장(당시 입장신문 부국장)이 지난 해 12월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 챈 협회장은 4월 23일 긴급 총회에서 해산을 포함한 향후 협회 진로를 논의한다고 말했다.론슨 챈 홍콩기자협회장(당시 입장신문 부국장)이 지난 해 12월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 챈 협회장은 4월 23일 긴급 총회에서 해산을 포함한 향후 협회 진로를 논의한다고 말했다.

홍콩 최대의 언론인 협회, 홍콩기자협회(HKJA)가 4월 23일 긴급 화상 총회를 엽니다. 협회 측은 '급변하는 사회·정치 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논의한다고 밝혔습니다. 론슨 챈 기자협회장은 협회 해산도 논의한다 말했다고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했습니다.

■ 홍콩 기자협회 긴급총회 열어 해산 등 논의

54년 역사, 500명 넘는 회원을 가진 홍콩기자협회가 해산을 고민하게된 직접적인 계기는 협회의 구체적 운영 내용을 공개하라는 홍콩 당국의 압박입니다. 앞서 크리스 탕 홍콩 보안장관은 협회 회원 명단과 자금 출처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부자들의 성향을 보겠다는 취지입니다. 홍콩 노동부도 기자협회에 재정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4월 11일에는 또 한명의 홍콩 언론인이 체포됐습니다. TVB, HKRH 등 홍콩 매체에서 일했고, 소셜 미디어 등에 정치적 견해를 적극 개진해왔던 베테랑 언론인 앨런 아우입니다.

홍콩의 언론인 앨런 아우가 과거 ‘입장신문’에 쓴 글과 관련해 체포됐다는 내용의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 기사. (글로벌타임스 홈페이지)홍콩의 언론인 앨런 아우가 과거 ‘입장신문’에 쓴 글과 관련해 체포됐다는 내용의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 기사. (글로벌타임스 홈페이지)

홍콩 공안 당국은 '선동적인 자료를 인쇄 또는 배포하는 음모'에 대한 식민지 시대의 법을 아우에게 적용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아우가 지금은 사라진 온라인 매체 '입장 신문(Stand News)'에 썼던 글들이 정부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아우는 일단 풀려났지만 수사는 진행 중이어서 다시 체포될 수 있습니다.

■ 홍콩 공안 당국, '정부 비판' 과거 글 문제 삼아 언론인 체포

아우는 입장신문과 관련해 홍콩 공안당국에 체포된 8번째 인물입니다. 입장뉴스는 지난해 12월 소위 선동적 기사를 게재한 혐의 등으로 관계자 7명이 체포되자 문을 닫았습니다. 체포된 인물 중에는 전현직 편집진은 물론 이사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홍콩 경찰에 체포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국장 대행. (사진/연합뉴스)지난해 12월 29일 홍콩 경찰에 체포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국장 대행. (사진/연합뉴스)

입장신문은 앞서 지난해 6월 칼럼을 온라인에서 잇달아 내렸습니다. 과거의 글조차 홍콩보안법에 저촉될까 우려해 자진 삭제했습니다. 당시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옥(文字獄)이 왔다"는 상징적 말을 남겼습니다. 권력에 의한 지식인 박해의 시기가 왔다는 말입니다.

당시 홍콩 당국 관계자는 "글을 내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 실제로 입장신문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됐고 그같은 수난은 아우의 사례를 보듯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24일 반중 매체 빈과일보 직원이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인쇄본을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빈과일보 폐간 전 회사 압수수색과 관계자 체포가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지난해 6월 24일 반중 매체 빈과일보 직원이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인쇄본을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빈과일보 폐간 전 회사 압수수색과 관계자 체포가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입장신문 폐간 사흘 전엔 빈과일보가 자진 폐간했습니다. 자산 동결, 편집국장을 비롯한 직원 체포 뒤의 일입니다. 외세 결탁 혐의를 받았습니다. 폐간 뒤에도 출국하던 논설위원이 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홍콩 언론 자유 위축의 배경에는 중국이 제정한 홍콩 보안법이 있습니다. 2020년 홍콩 보안법 시행 뒤 홍콩에서는 언론사 폐간은 물론 범민주 인사 체포가 잇달았습니다. 야당이 자진 해산을 하기도 했습니다.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내걸고 선거 제도를 바꾼 결과 친중파가 홍콩 의회 선거를 석권했습니다.

■ 차기 홍콩 행정장관에 비판 언론 폐간 앞장 선 '공안통' 유력

이같은 분위기는 5월 8일 열리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 출신, 친중 강경파 존 리(리쟈차오) 전 정무부총리가 선거위원의 거의 과반의 지지를 이미 확보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은 연임을 포기했습니다.

차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유력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왼쪽)는 경찰 출신으로 홍콩 보안법 시행 책임자였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오른쪽)은 연임을 포기했다. (사진/연합뉴스)차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유력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왼쪽)는 경찰 출신으로 홍콩 보안법 시행 책임자였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오른쪽)은 연임을 포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존 리는 보안장관으로서 2019년 반정부 시위 진압과 반중 언론 압박을 이끌었습니다. 그런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로 승진했습니다. 가뜩이나 질식 상태인 홍콩 비판 언론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악재입니다.

실제 존 리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12일 밝혔습니다.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과 별개로 홍콩 스스로도 유사한 법제를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에 담긴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외세 결탁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은 물론 사회 질서 유지 조항을 촘촘하게 신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홍콩 정부는 2003년 자체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해 법안을 취소했습니다.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의 현황에 대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4월 14일 기사.  빈과일보 사주였던 지미 라우(왼쪽)는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고  이른바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은 수감 생활 뒤 또다른 사건으로 심문 받는다는 내용.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의 현황에 대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4월 14일 기사. 빈과일보 사주였던 지미 라우(왼쪽)는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고 이른바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은 수감 생활 뒤 또다른 사건으로 심문 받는다는 내용.

회칙 개정은 물론 해산까지 고민한다는 홍콩 기자협회의 입장은 '공안통' 신임 행정장관의 이같은 '보안법 드라이브'를 앞두고 내놓은 고육책일지도 모릅니다.

■ 차기 홍콩 행정장관 유력 후보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최우선 과제"

코로나19 방역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한때 마거릿 챈 전 WHO 사무총장이 홍콩 차기 행정장관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의 선택은 결국 공안 전문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홍콩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정책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확인하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에 대한 홍콩인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홍콩 명보가 4월 1일 관련 여론조사를 보도했습니다.

홍콩 민의연구소가 홍콩 거주민 1,004명을 조사한 결과, 언론 자유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습니다. '불만족' 51%였습니다. 홍콩 언론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기를 꺼린다는 대답이 63%, 홍콩 당국을 비판하기를 꺼린다는 응답은 5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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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2-04-15 08:01:08
    • 수정2022-04-15 09:49:00
    특파원 리포트
론슨 챈 홍콩기자협회장(당시 입장신문 부국장)이 지난 해 12월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난 뒤 기자들 질문에 답하는 모습. 챈 협회장은 4월 23일 긴급 총회에서 해산을 포함한 향후 협회 진로를 논의한다고 말했다.
홍콩 최대의 언론인 협회, 홍콩기자협회(HKJA)가 4월 23일 긴급 화상 총회를 엽니다. 협회 측은 '급변하는 사회·정치 환경'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논의한다고 밝혔습니다. 론슨 챈 기자협회장은 협회 해산도 논의한다 말했다고 홍콩 일간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보도했습니다.

■ 홍콩 기자협회 긴급총회 열어 해산 등 논의

54년 역사, 500명 넘는 회원을 가진 홍콩기자협회가 해산을 고민하게된 직접적인 계기는 협회의 구체적 운영 내용을 공개하라는 홍콩 당국의 압박입니다. 앞서 크리스 탕 홍콩 보안장관은 협회 회원 명단과 자금 출처 등을 공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기부자들의 성향을 보겠다는 취지입니다. 홍콩 노동부도 기자협회에 재정 자료를 요구했습니다.

4월 11일에는 또 한명의 홍콩 언론인이 체포됐습니다. TVB, HKRH 등 홍콩 매체에서 일했고, 소셜 미디어 등에 정치적 견해를 적극 개진해왔던 베테랑 언론인 앨런 아우입니다.

홍콩의 언론인 앨런 아우가 과거 ‘입장신문’에 쓴 글과 관련해 체포됐다는 내용의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 기사. (글로벌타임스 홈페이지)
홍콩 공안 당국은 '선동적인 자료를 인쇄 또는 배포하는 음모'에 대한 식민지 시대의 법을 아우에게 적용했습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아우가 지금은 사라진 온라인 매체 '입장 신문(Stand News)'에 썼던 글들이 정부에 대한 증오심을 부추겼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경찰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습니다. 아우는 일단 풀려났지만 수사는 진행 중이어서 다시 체포될 수 있습니다.

■ 홍콩 공안 당국, '정부 비판' 과거 글 문제 삼아 언론인 체포

아우는 입장신문과 관련해 홍콩 공안당국에 체포된 8번째 인물입니다. 입장뉴스는 지난해 12월 소위 선동적 기사를 게재한 혐의 등으로 관계자 7명이 체포되자 문을 닫았습니다. 체포된 인물 중에는 전현직 편집진은 물론 이사진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지난해 12월 29일 홍콩 경찰에 체포되는 패트릭 람 입장신문 편집국장 대행. (사진/연합뉴스)
입장신문은 앞서 지난해 6월 칼럼을 온라인에서 잇달아 내렸습니다. 과거의 글조차 홍콩보안법에 저촉될까 우려해 자진 삭제했습니다. 당시 입장신문은 홍콩에 "문자옥(文字獄)이 왔다"는 상징적 말을 남겼습니다. 권력에 의한 지식인 박해의 시기가 왔다는 말입니다.

당시 홍콩 당국 관계자는 "글을 내린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습니다. 이후 실제로 입장신문 관계자들이 무더기로 체포됐고 그같은 수난은 아우의 사례를 보듯 올해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난해 6월 24일 반중 매체 빈과일보 직원이 폐간을 앞두고 마지막 인쇄본을 취재진과 지지자들에게 들어보이고 있다. 빈과일보 폐간 전 회사 압수수색과 관계자 체포가 이어졌다.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6월 입장신문 폐간 사흘 전엔 빈과일보가 자진 폐간했습니다. 자산 동결, 편집국장을 비롯한 직원 체포 뒤의 일입니다. 외세 결탁 혐의를 받았습니다. 폐간 뒤에도 출국하던 논설위원이 공항에서 체포됐습니다.

홍콩 언론 자유 위축의 배경에는 중국이 제정한 홍콩 보안법이 있습니다. 2020년 홍콩 보안법 시행 뒤 홍콩에서는 언론사 폐간은 물론 범민주 인사 체포가 잇달았습니다. 야당이 자진 해산을 하기도 했습니다. '애국자가 다스리는 홍콩'을 내걸고 선거 제도를 바꾼 결과 친중파가 홍콩 의회 선거를 석권했습니다.

■ 차기 홍콩 행정장관에 비판 언론 폐간 앞장 선 '공안통' 유력

이같은 분위기는 5월 8일 열리는 홍콩 행정장관 선거에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경찰 출신, 친중 강경파 존 리(리쟈차오) 전 정무부총리가 선거위원의 거의 과반의 지지를 이미 확보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은 연임을 포기했습니다.

차기 홍콩 행정장관으로 유력한 존 리 전 정무부총리(왼쪽)는 경찰 출신으로 홍콩 보안법 시행 책임자였다. 캐리 람 현 행정장관(오른쪽)은 연임을 포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존 리는 보안장관으로서 2019년 반정부 시위 진압과 반중 언론 압박을 이끌었습니다. 그런 실적을 인정받아 지난해 홍콩 정부 2인자인 정무부총리로 승진했습니다. 가뜩이나 질식 상태인 홍콩 비판 언론 입장에서는 또 하나의 악재입니다.

실제 존 리는 홍콩판 국가보안법 추진을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12일 밝혔습니다. 중국이 제정한 홍콩 국가보안법과 별개로 홍콩 스스로도 유사한 법제를 갖추겠다는 것입니다.

중국의 홍콩 보안법에 담긴 국가 분열과 국가 정권 전복, 외세 결탁 등에 대한 처벌 조항은 물론 사회 질서 유지 조항을 촘촘하게 신설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앞서 홍콩 정부는 2003년 자체 보안법 제정을 추진하다 대규모 반대 시위에 직면해 법안을 취소했습니다.

홍콩 민주 진영 인사들의 현황에 대한 중국 관영매체 환구시보의 4월 14일 기사.  빈과일보 사주였던 지미 라우(왼쪽)는 징역 20개월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고  이른바 우산혁명을 이끌었던 조슈아 웡은 수감 생활 뒤 또다른 사건으로 심문 받는다는 내용.
회칙 개정은 물론 해산까지 고민한다는 홍콩 기자협회의 입장은 '공안통' 신임 행정장관의 이같은 '보안법 드라이브'를 앞두고 내놓은 고육책일지도 모릅니다.

■ 차기 홍콩 행정장관 유력 후보 "홍콩판 국가보안법이 최우선 과제"

코로나19 방역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면서 한때 마거릿 챈 전 WHO 사무총장이 홍콩 차기 행정장관 후보로 부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베이징의 선택은 결국 공안 전문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홍콩 행정장관 선거는 홍콩에 대한 중국 지도부의 정책 방점이 어디에 찍혀있는지 확인하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에 대한 홍콩인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홍콩 명보가 4월 1일 관련 여론조사를 보도했습니다.

홍콩 민의연구소가 홍콩 거주민 1,004명을 조사한 결과, 언론 자유에 '만족한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습니다. '불만족' 51%였습니다. 홍콩 언론이 중국 정부를 비판하기를 꺼린다는 대답이 63%, 홍콩 당국을 비판하기를 꺼린다는 응답은 51%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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