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달러 패권의 황혼기일까

입력 2022.04.17 (09:00) 수정 2022.04.17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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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 이 기사는 달러가 부상하고, 패권을 차지하고,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옛날 얘기 하려는 목적의 기사는 아니다. 지금 의미있는 두가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

▣우선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 사실, 달러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기와도 같아서 우리는 '달러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영국 파운드화가 저물던 장면을 보면, 통화 패권이란게 영원하지 않고 달러도 예외가 아니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을 얻게 된다.

▣또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도 담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2022년, 달러가 '패권을 위협하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 이 도전, 처음이 아니다. 달러 패권의 역사를 살피면 달러는 과거에도 이런 위기를 맞았고, 본질에서 같은 위기였으며, 또 극복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지금이 달러의 황혼기인지'를 판단할 더 나은 근거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 패권의 조짐 : 1902~1916 : '거친 나라'에서 '거대한 생산력'의 나라로

1916년, 구대륙이 1차 세계대전의 포연에 휩싸였을 때, 신대륙에는 패권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해 미국 경제의 전체 생산량이 대영제국 전체를 처음 넘어섰다. (사후 추정치다. 당시에는 국민소득-지금의 GDP- 개념이나 통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생산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었고, 이 생산력을 바탕으로 월스트리트(미 금융자본)는 참전국들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다.

뉴욕 거리에는 자동차가 가득했다. 당시를 상징하던 차는 최초의 대중적 자동차이자 '미국 자동차의 시대'를 연 포드의 모델T. 모델T의 1916년 가격은 360달러, 가격이 최초 출시 때(800달러 이상)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수요는 폭발했다. 효율적 대량생산과 대규모 내수 수요가 결합된 미국의 시대가 뉴욕에는 이미 찾아와 있었다.

1916년 뉴욕 거리1916년 뉴욕 거리

불과 14년 전인 1902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전을 치르고 대통령이 암살 당한게 1865년이었다. 이후 성장하는 나라이긴 했지만, 동시에 거친 나라기도 했다. 뉴욕 거리에는 자동차가 아닌 마차가 가득했고, 밤은 안전하지 않았다. 외부의 사람들은 당시 미국을 '부패와 관리 부실, 탐욕적 정치'로 기억했다.

-1902년, 미국의 이미지는 모호했다. 미국은 성장과 생산, 이윤의 본보기였던 만큼이나 부패와 관리 부실, 탐욕 정치의 본보기이기도 했다. 현대 정부의 모델을 찾아 미국의 전문가들이 독일제국의 도시들을 순례했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1915년 이래로 월스트리트(미 금융자본)는 협상국의 돈줄이었다.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민간 자본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형의 금융 경제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다. 협상국이 독일에 대해 결정적인 우세를 차지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미국 공적 자금의 직접적인 투입이었다. 돈이 다른 모든 문제를 결정했다."

-[대격변, Deluge] 아담 투즈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미국 대통령 윌슨은 이런 미국의 힘을 자각했다. 전쟁 뒤 그는 "나는 지금 미국을 힘과 정의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100년을 내다보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갑자기, 거친 나라에서 엄청난 생산력의 나라로 부상했다.

1916년, 야구경기에서 시구하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1916년, 야구경기에서 시구하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 팽창 : 패권을 향해 가는 전간기

패권국가 영국은 빚이 많은 나라, 채무국이 됐다. 전쟁 동안 미국은 채권국이,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됐다. 빚더미에 앉은 영국은 파운드의 금 태환(교환) 중단을 선언(1931)했다. 금으로 환산한 부가 영국을 다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대영제국을 다 합친 것보다 큰 단일 대륙국가로 말이다.

“영국은 미국에서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 나라는 영국보다 스물다섯 배가 크며 다섯 배 더 부유하고 인구는 세 배가 더 많으며 갑절로 더 야심적이고 거의 난공불락이며 번영과 활력, 기술적인 능력, 산업 지식에서 아무리 못해도 우리와 대등하다. 이 나라는 영국이 전쟁 중에 초인적인 노력을 쏟은 결과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고 엄청난 채무로 시달리며 실업의 재난으로 절룩거릴 때 현재의 발전 상태로 올라섰다.” 같은 책

하지만 미국 패권은 아직이었다. 단적으로 군사력. 미국도 전쟁에 참여는 했으나 주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1918년에는 프랑스군이 미국 무기를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 미군이 프랑스 무기를 갖고 싸웠다. 미 육군 항공대가 날린 항공기의 4분의 3은 프랑스가 만든 것이었다."

1922년 워싱턴 회담 당시에도 패권국가의 위상을 관찰하기는 힘들다. 당시 군축 합의로 미국과 영국과 일본이 1만 톤급 이상의 주력 군함 비율을 5 : 5 : 3으로 고정했다. 이제 영국과 대등해지거나, 조금 앞서나갈 뿐이었다.

아직은 경제력에서만 영국을 두렵게 하는 나라였다.

■ 패권 :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2차 대전은 모든 걸 바꾸었다. 영국은 더 천문학적 빚더미에 파묻혔다. 뉴욕의 돈 없이는 유지 불가능한 제국이 됐다.

미국은 이번엔 군사 대국으로도 떠올랐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거대한 공장, 막대한 월가 자본과 정부 지출을 전시 체제로 전환하자 압도적 화력을 가지게 됐다. 축적된 경제력은 정치 군사적 힘으로 전환 가능했다.

통계는 그 전환 속도가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빨랐음을 알려준다. 1939년에서 43년까지, 단 4년 만에 항공기 연간 생산량은 28배가 됐다. 대전 기간 전투기 9만6000대, 폭격기 9만8000대를 포함해 총 30만대의 군용기를 생산해, 연합국 항공기 생산을 사실상 전담했다.

같은 기간 군함 생산력은 18배 폭증했는데, 2차대전 승패를 갈라버린 항공모함의 경우 43년에 접어들면 일주일에 한 대 꼴로 진수했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때 일본과 비슷하던 미국의 해군력은 전쟁이 끝날 때 스무 배 수준에 근접했다.


이렇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 확실해진 1944년, 미국은 영국의 J. M. 케인스를 미국의 스키 휴양도시에 불러다가 '달러 본위의 세계 경제'를 창조한다. 케인스는 처음엔 '달러 말고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들자고 했지만, 미국은 힘으로 '달러 중심 체계'를 관철시킨다. 금 1온스를 35달러로 하는 달러 패권의 시대가 시작된다. 브레턴우즈 체제다.

■ 1970년대 : 달러의 위기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는 70년대 위기를 맞는다. 베트남 전쟁은 그 시작이다. 미국은 이기지도 못한 이 전쟁에 '두 세계대전 당시 영국'처럼 너무 많은 돈을 썼다. 달러를 찍어다가 군비를 충당하는 미국에 불안해진 세계는 달러를 내놓고 금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당시 대통령 닉슨은 71년, '금 태환 중단' 선언으로 내몰린다. 1931년 금 태환을 중단한 영국 파운드는 13년 뒤 패권을 잃었었다. 달러도 똑같은 전철을 밟으리라는 불안감이 커졌다. '닉슨 쇼크'다. 신뢰의 위기에 약한 달러의 시대가 왔다. 중동의 석유 무기화(73년)에 따른 물가 상승과 이 달러 약세가 결합되어, 70년대 내내 '오일쇼크'의 악순환에 사로잡힌다.

고용과 물가 사이 관계(필립스 곡선)마저 사라져, 정책마저 갈피를 잃는 '진정한 달러의 위기'가 등장한다. (인플레이션, 하노벡)

게티이미지게티이미지

위기의 극복 : 페트로 달러와 플라자 합의

달러가 이 최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의미인지, 현 위기 극복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단초가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첫 단추는 ① '페트로 달러'다. 74년 사우디와 비공식 협약을 맺고 '석유 결제는 달러로만 하는 질서'를 창조해낸다. 달러는 유일한 에너지 결제 통화로 자리매김한다. 에너지 수입국가는 반드시 보유해야하는 통화가 됐단 뜻이다. 강한 달러의 초석이다.

그래도 불황 중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자 ②고통스런 긴축(금리 인상)에 들어갔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사람이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이다. 기준금리(연방기금 실효환율)를 1981년 19%대까지 끌어올린다. 긴축으로 일단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

③경쟁자는 힘으로 굴복시켰다. 떠오르는 산업 강국 일본의 핵심 산업을 미일 반도체 협정(1986)으로 견제하고, 엔화는 플라자합의(1985)로 절상시켰다. 반도체 패권이 돌아오진 않았지만(동해 건너 한국으로 왔다.), 일본은 가라앉혔다.

당시 일본은 커진 국력에 맞는 책임감의 차원에서 플라자 호텔에서 그 합의를 했다. '대국이 됐다'는 자신감으로, 강한 엔화를 받아들이고 수출에서 내수 부양으로 경제 운용 방향을 선회했다. (달러의 부활, 폴 볼커·교텐 토요오)

결과는 30년 불황이다. 거품을 키우고 말았고, 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붕괴한 뒤 '추락만 하는 경제'가 됐다.

■ 2022년은 달러 패권의 황혼기?

2022년 골드만삭스는 달러가 다시 도전받고 있다고 했다. 달러 패권 위기설은 사실 골드만삭스의 단골 소재다. 2020년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또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 얘기가 불거질 때도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기사에 담겨있다.)

‘달러패권 위기’라는 골드만삭스 경고, 어디까지 믿나? 2022.04.14.
https://www.youtube.com/watch?v=c_jfBcrM4oA&t=188s



본질은 똑같다. ' 미국은 빚(대외채무)이 너무 많다. 이렇게 빨리 늘면 해외 투자자가 달러 버릴 수 있다. 영국 파운드가 그렇게 달러에 자리를 내줬다'는 이야기다.

2022년은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도 더했다. 러시아 제재에 달러를 무기로 썼다. 이걸 본 나라 가운데 일부는 달러가 아닌 대체제를 찾게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학습효과가 클 것이다.

왕정국가 사우디도 페트로달러 체제를 위협한다. 반체제 언론인 살해 배후로 왕세자 빈 살만이 지목당한 뒤 사우디는 '페트로 달러 체제'라는 '강한 달러'의 핵심 조건을 툭툭 건드린다. 최대 고객인 중국을 위해 '위안화 결제'를 받아줄지를 고민한다.

■ 당장 달러 패권이 무너질 리는 없지만…

통화 패권은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각국 외환보유고에 얼마나 쌓인 통화인지, 외화채권 발행 때는 얼마나 표시되는 통화인지, 무역 결제에는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다 봐야 한다.


이 세 조건만 보면 달러는 건재하다. 달러는 여전히 압도적인 패권 통화다.


게다가 도전자도 없다. 통화 패권은 단순히 달러가 약해졌다고 해서 붕괴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도전자가 있어야 한다. '파운드'에게 '달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중국 위안화를 그 후보로 꼽는 사람도 있다. 2022년 중국은 1900년대 초반 미국처럼 '거칠고, 부패'했고, 정치는 저발전 상태에 있지만, 경제만큼은 성장과 생산, 이윤의 측면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거대한 생산력의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위안화는 도전자가 될만한 지위에 있지 않다.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지위가 높아지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순조로운 패권 전환도 기대하기 어렵다. 1944년 영국은 브레턴우즈에서 달러로의 교체에 순응했지만, 지금의 미국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처음엔 무역 분쟁을 벌였고, 지금은 글로벌 무역 질서를 분할해서라도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리쇼어링을 유도해 국내 산업도 다시 부흥시키려 한다.

REUTERS, ⓒJason LeeREUTERS, ⓒJason Lee

골드만삭스는 '달러의 위기'를 염려하면서도, 아직은 '달러의 지위'가 미국 하기에 달려있다고 결론짓는다. '지속 불가능한 대규모 대외채무와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에 이르게 한 잘못된 정책들을 반성하고 상황을 반전시킨다면, 달러의 시대는 지속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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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금은 달러 패권의 황혼기일까
    • 입력 2022-04-17 09:00:04
    • 수정2022-04-17 16:23:05
    취재K
□ 이 기사는 달러가 부상하고, 패권을 차지하고, 위기를 극복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옛날 얘기 하려는 목적의 기사는 아니다. 지금 의미있는 두가지 이야기를 전달하고자 한다.<br /><br /><strong>▣우선은 '영원한 것은 없다'는 이야기다.</strong> 사실, 달러는 지금 우리 사회에는 공기와도 같아서 우리는 '달러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영국 파운드화가 저물던 장면을 보면, 통화 패권이란게 영원하지 않고 달러도 예외가 아니라는 자연스러운 결론을 얻게 된다.<br /><br /><strong>▣또 '역사는 반복된다'는 이야기도 담고 있다. </strong>골드만삭스는 2022년, 달러가 '패권을 위협하는 도전'에 직면했다고 보고 있다. 이 도전, 처음이 아니다. 달러 패권의 역사를 살피면 달러는 과거에도 이런 위기를 맞았고, 본질에서 같은 위기였으며, 또 극복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br /><br />□그리하여 이 이야기가 '지금이 달러의 황혼기인지'를 판단할 더 나은 근거 자료가 되기를 희망한다.


■ 패권의 조짐 : 1902~1916 : '거친 나라'에서 '거대한 생산력'의 나라로

1916년, 구대륙이 1차 세계대전의 포연에 휩싸였을 때, 신대륙에는 패권의 조짐이 나타났다. 이 해 미국 경제의 전체 생산량이 대영제국 전체를 처음 넘어섰다. (사후 추정치다. 당시에는 국민소득-지금의 GDP- 개념이나 통계가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의 생산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었고, 이 생산력을 바탕으로 월스트리트(미 금융자본)는 참전국들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다.

뉴욕 거리에는 자동차가 가득했다. 당시를 상징하던 차는 최초의 대중적 자동차이자 '미국 자동차의 시대'를 연 포드의 모델T. 모델T의 1916년 가격은 360달러, 가격이 최초 출시 때(800달러 이상)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자 수요는 폭발했다. 효율적 대량생산과 대규모 내수 수요가 결합된 미국의 시대가 뉴욕에는 이미 찾아와 있었다.

1916년 뉴욕 거리
불과 14년 전인 1902년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내전을 치르고 대통령이 암살 당한게 1865년이었다. 이후 성장하는 나라이긴 했지만, 동시에 거친 나라기도 했다. 뉴욕 거리에는 자동차가 아닌 마차가 가득했고, 밤은 안전하지 않았다. 외부의 사람들은 당시 미국을 '부패와 관리 부실, 탐욕적 정치'로 기억했다.

-1902년, 미국의 이미지는 모호했다. 미국은 성장과 생산, 이윤의 본보기였던 만큼이나 부패와 관리 부실, 탐욕 정치의 본보기이기도 했다. 현대 정부의 모델을 찾아 미국의 전문가들이 독일제국의 도시들을 순례했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1915년 이래로 월스트리트(미 금융자본)는 협상국의 돈줄이었다. 부유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민간 자본시장의 한계를 뛰어넘어 이를 근본적으로 새로운 지형의 금융 경제력으로 대체함으로써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에 막대한 차관을 제공했다. 협상국이 독일에 대해 결정적인 우세를 차지하는 데 도움을 준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미국 공적 자금의 직접적인 투입이었다. 돈이 다른 모든 문제를 결정했다."

-[대격변, Deluge] 아담 투즈

1차 대전이 끝난 1918년에 미국 대통령 윌슨은 이런 미국의 힘을 자각했다. 전쟁 뒤 그는 "나는 지금 미국을 힘과 정의의 반석 위에 올려놓는 것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100년을 내다보고 움직인다"고 말했다.

미국은 갑자기, 거친 나라에서 엄청난 생산력의 나라로 부상했다.

1916년, 야구경기에서 시구하는 우드로 윌슨 대통령
■ 팽창 : 패권을 향해 가는 전간기

패권국가 영국은 빚이 많은 나라, 채무국이 됐다. 전쟁 동안 미국은 채권국이, 월스트리트는 세계 금융의 중심이 됐다. 빚더미에 앉은 영국은 파운드의 금 태환(교환) 중단을 선언(1931)했다. 금으로 환산한 부가 영국을 다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대영제국을 다 합친 것보다 큰 단일 대륙국가로 말이다.

“영국은 미국에서 현대사에 유례가 없는 현상을 보고 있다. 이 나라는 영국보다 스물다섯 배가 크며 다섯 배 더 부유하고 인구는 세 배가 더 많으며 갑절로 더 야심적이고 거의 난공불락이며 번영과 활력, 기술적인 능력, 산업 지식에서 아무리 못해도 우리와 대등하다. 이 나라는 영국이 전쟁 중에 초인적인 노력을 쏟은 결과로 여전히 비틀거리고 있고 엄청난 채무로 시달리며 실업의 재난으로 절룩거릴 때 현재의 발전 상태로 올라섰다.” 같은 책

하지만 미국 패권은 아직이었다. 단적으로 군사력. 미국도 전쟁에 참여는 했으나 주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이를테면 "1918년에는 프랑스군이 미국 무기를 가지고 싸운 것이 아니라 미군이 프랑스 무기를 갖고 싸웠다. 미 육군 항공대가 날린 항공기의 4분의 3은 프랑스가 만든 것이었다."

1922년 워싱턴 회담 당시에도 패권국가의 위상을 관찰하기는 힘들다. 당시 군축 합의로 미국과 영국과 일본이 1만 톤급 이상의 주력 군함 비율을 5 : 5 : 3으로 고정했다. 이제 영국과 대등해지거나, 조금 앞서나갈 뿐이었다.

아직은 경제력에서만 영국을 두렵게 하는 나라였다.

■ 패권 : 1944년 브레턴우즈 체제

2차 대전은 모든 걸 바꾸었다. 영국은 더 천문학적 빚더미에 파묻혔다. 뉴욕의 돈 없이는 유지 불가능한 제국이 됐다.

미국은 이번엔 군사 대국으로도 떠올랐다. 수십만 명의 노동자와 거대한 공장, 막대한 월가 자본과 정부 지출을 전시 체제로 전환하자 압도적 화력을 가지게 됐다. 축적된 경제력은 정치 군사적 힘으로 전환 가능했다.

통계는 그 전환 속도가 '눈을 의심할 정도'로 빨랐음을 알려준다. 1939년에서 43년까지, 단 4년 만에 항공기 연간 생산량은 28배가 됐다. 대전 기간 전투기 9만6000대, 폭격기 9만8000대를 포함해 총 30만대의 군용기를 생산해, 연합국 항공기 생산을 사실상 전담했다.

같은 기간 군함 생산력은 18배 폭증했는데, 2차대전 승패를 갈라버린 항공모함의 경우 43년에 접어들면 일주일에 한 대 꼴로 진수했다. 태평양 전쟁을 시작할 때 일본과 비슷하던 미국의 해군력은 전쟁이 끝날 때 스무 배 수준에 근접했다.


이렇게 전쟁을 승리로 이끌 것이 확실해진 1944년, 미국은 영국의 J. M. 케인스를 미국의 스키 휴양도시에 불러다가 '달러 본위의 세계 경제'를 창조한다. 케인스는 처음엔 '달러 말고 새로운 국제통화'를 만들자고 했지만, 미국은 힘으로 '달러 중심 체계'를 관철시킨다. 금 1온스를 35달러로 하는 달러 패권의 시대가 시작된다. 브레턴우즈 체제다.

■ 1970년대 : 달러의 위기

달러 중심의 세계 경제는 70년대 위기를 맞는다. 베트남 전쟁은 그 시작이다. 미국은 이기지도 못한 이 전쟁에 '두 세계대전 당시 영국'처럼 너무 많은 돈을 썼다. 달러를 찍어다가 군비를 충당하는 미국에 불안해진 세계는 달러를 내놓고 금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당시 대통령 닉슨은 71년, '금 태환 중단' 선언으로 내몰린다. 1931년 금 태환을 중단한 영국 파운드는 13년 뒤 패권을 잃었었다. 달러도 똑같은 전철을 밟으리라는 불안감이 커졌다. '닉슨 쇼크'다. 신뢰의 위기에 약한 달러의 시대가 왔다. 중동의 석유 무기화(73년)에 따른 물가 상승과 이 달러 약세가 결합되어, 70년대 내내 '오일쇼크'의 악순환에 사로잡힌다.

고용과 물가 사이 관계(필립스 곡선)마저 사라져, 정책마저 갈피를 잃는 '진정한 달러의 위기'가 등장한다. (인플레이션, 하노벡)

게티이미지
위기의 극복 : 페트로 달러와 플라자 합의

달러가 이 최대 위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중요하다. 지금의 위기가 어떤 의미인지, 현 위기 극복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단초가 모두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첫 단추는 ① '페트로 달러'다. 74년 사우디와 비공식 협약을 맺고 '석유 결제는 달러로만 하는 질서'를 창조해낸다. 달러는 유일한 에너지 결제 통화로 자리매김한다. 에너지 수입국가는 반드시 보유해야하는 통화가 됐단 뜻이다. 강한 달러의 초석이다.

그래도 불황 중 물가가 상승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잡을 수 없자 ②고통스런 긴축(금리 인상)에 들어갔다. 이 시대를 상징하는 사람이 폴 볼커, 미 연준 의장이다. 기준금리(연방기금 실효환율)를 1981년 19%대까지 끌어올린다. 긴축으로 일단 인플레이션을 잡았다.

달러 거품을 담뱃불로 꺼트리려는 폴 볼커 전 연준 의장 (FT, ⓒJames Ferguson)
③경쟁자는 힘으로 굴복시켰다. 떠오르는 산업 강국 일본의 핵심 산업을 미일 반도체 협정(1986)으로 견제하고, 엔화는 플라자합의(1985)로 절상시켰다. 반도체 패권이 돌아오진 않았지만(동해 건너 한국으로 왔다.), 일본은 가라앉혔다.

당시 일본은 커진 국력에 맞는 책임감의 차원에서 플라자 호텔에서 그 합의를 했다. '대국이 됐다'는 자신감으로, 강한 엔화를 받아들이고 수출에서 내수 부양으로 경제 운용 방향을 선회했다. (달러의 부활, 폴 볼커·교텐 토요오)

결과는 30년 불황이다. 거품을 키우고 말았고, 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이 붕괴한 뒤 '추락만 하는 경제'가 됐다.

■ 2022년은 달러 패권의 황혼기?

2022년 골드만삭스는 달러가 다시 도전받고 있다고 했다. 달러 패권 위기설은 사실 골드만삭스의 단골 소재다. 2020년에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또 쌍둥이 적자(재정적자와 무역수지 적자) 얘기가 불거질 때도 언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 기사에 담겨있다.)

‘달러패권 위기’라는 골드만삭스 경고, 어디까지 믿나? 2022.04.14.
https://www.youtube.com/watch?v=c_jfBcrM4oA&t=188s



본질은 똑같다. ' 미국은 빚(대외채무)이 너무 많다. 이렇게 빨리 늘면 해외 투자자가 달러 버릴 수 있다. 영국 파운드가 그렇게 달러에 자리를 내줬다'는 이야기다.

2022년은 여기에 지정학적 위험도 더했다. 러시아 제재에 달러를 무기로 썼다. 이걸 본 나라 가운데 일부는 달러가 아닌 대체제를 찾게 될 것이다. 특히 중국의 학습효과가 클 것이다.

왕정국가 사우디도 페트로달러 체제를 위협한다. 반체제 언론인 살해 배후로 왕세자 빈 살만이 지목당한 뒤 사우디는 '페트로 달러 체제'라는 '강한 달러'의 핵심 조건을 툭툭 건드린다. 최대 고객인 중국을 위해 '위안화 결제'를 받아줄지를 고민한다.

■ 당장 달러 패권이 무너질 리는 없지만…

통화 패권은 최소한 세 가지 측면에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각국 외환보유고에 얼마나 쌓인 통화인지, 외화채권 발행 때는 얼마나 표시되는 통화인지, 무역 결제에는 얼마나 사용되는지를 다 봐야 한다.


이 세 조건만 보면 달러는 건재하다. 달러는 여전히 압도적인 패권 통화다.


게다가 도전자도 없다. 통화 패권은 단순히 달러가 약해졌다고 해서 붕괴하지는 않는다. 강력한 도전자가 있어야 한다. '파운드'에게 '달러'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중국 위안화를 그 후보로 꼽는 사람도 있다. 2022년 중국은 1900년대 초반 미국처럼 '거칠고, 부패'했고, 정치는 저발전 상태에 있지만, 경제만큼은 성장과 생산, 이윤의 측면에서 미국을 위협하고 있다. '거대한 생산력의 나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 위안화는 도전자가 될만한 지위에 있지 않다. 위 그래프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 지위가 높아지고 있지도 않다.

게다가 순조로운 패권 전환도 기대하기 어렵다. 1944년 영국은 브레턴우즈에서 달러로의 교체에 순응했지만, 지금의 미국은 전혀 그럴 마음이 없다. 처음엔 무역 분쟁을 벌였고, 지금은 글로벌 무역 질서를 분할해서라도 중국을 배제하겠다는 전략을 세우고 있다. 리쇼어링을 유도해 국내 산업도 다시 부흥시키려 한다.

REUTERS, ⓒJason Lee
골드만삭스는 '달러의 위기'를 염려하면서도, 아직은 '달러의 지위'가 미국 하기에 달려있다고 결론짓는다. '지속 불가능한 대규모 대외채무와 너무 높은 인플레이션에 이르게 한 잘못된 정책들을 반성하고 상황을 반전시킨다면, 달러의 시대는 지속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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