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적(敵)과 싸우는 전문의”…응급의학과 곽경훈 인터뷰

입력 2022.04.17 (10:11)

읽어주기 기능은 크롬기반의
브라우저에서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언뜻 보면 권투선수 같은 외모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곽경훈. 그는 1978년 겨울,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여행을 좋아해 소설가와 종군 기자를 꿈꿨지만, 고민 끝에 의대에 입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현재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수도권 한 병원에서 레지던트 8명과 근무를 하는데, 근무가 없는 날에는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의 일종인 '주짓수'를 배우고 틈틈이 글을 쓴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물이 의료계에서도 화제가 된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의사가 뭐라고', '반항하는 의사들'입니다.

존경받는 인물은 못 되더라도, 전문직에 수반하는 최소한 자존심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흰 의사 가운'을 입는다는 그를 만나 코로나19 상황의 응급실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선 좋은 점은 '감염관리'의 향상인데 사실 과거에는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영진이 비용문제로 난색을 표명하기도 하고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귀찮게 왜 이러느냐?'며 가끔은 항의했지요. 당시에는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였습니다.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겪으면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던 '응급실의 감염관리'가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폭 개선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응급실에는 대부분 격리실이 생겼고 보호구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도 '전염병과 인류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 만큼 이렇게 개선된 감염관리는 지속해야할 듯합니다."

개선된 점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언급하고 싶다면서, 그는 코로나19환자가 아닌 중환자의 치료에 문제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곽경훈 전문의는 "코로나19가 아니라도 발열을 동반하는 중증질환은 매우 많아서 심지어 뇌졸중과 간질 발작, 심근경색 같은 질환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발열이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 이런 경우,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통해서 '코로나19가 아니다'고 판정할 때까지 격리실에서 진료해야 하는데 격리실의 숫자가 한정적이라 치료가 지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출처=원더박스 출판사출처=원더박스 출판사

그의 글들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매우 도발적입니다. 응급실로 대표되는 공간에서 의료계의 아픈 부분을 매우 날카롭게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제 책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의 시간적 배경은 2007년부터 2011년입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과거라 오늘날에는 응급실에도 많은 발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의 대형병원과 대학병원, 지방에서도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는 응급실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서 묘사하는 부조리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다만 점수로 몇 점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경험이 폭넓지 못하고 시선도 객관적이지 않은 듯합니다."

목차만 봐도 '1년 차 그들만의 의사 놀이' '4년 차 의국장이 되었지만' 등 의료계 내부 고발에 가까운 내용 들인데 반발이나 불이익은 없었을까?

그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불이익을 겪지 않았는데, 책의 판매량이 '베스트셀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직업적 특징 덕분인 것 같다"며 "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실이란 특수한 공간에서 일하는 의사여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막상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원더박스 출판사출처=원더박스 출판사

또 그의 책 중에 무능한 교수의 대표사례로 등장하는 '미니무스 교수의 아침 회진' 등에 등장한 인물은 아직도 현직에 있는데, 뭔가 바뀐 점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반성하거나 사과할 사람이라면 제가 굳이 '악역으로 등장시킬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의 반성격인 제 책을 아예 못 보게 하는 거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책을 낸 이후에 큰 비난 혹은 심각한 불이익을 겪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며 '너는 얼마나 잘났냐?'고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은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동시에 이런 수준의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의사 사회가 폐쇄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제 책들은 내부자의 '자기반성'에 가깝습니다. 그런 '자기반성'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의사'란 직업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도 많습니다만 그런 수준의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올해 출판될 책부터는 단순한 내부고발에서 벗어나 의학과 인간에 대해 한층 깊고 진지한 내용을 다루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의료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의료 사고 입증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부족한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의료진에게 '나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결백을 증명하라'는 논리는 자칫 의료진에게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중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료를 진행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례마다 의료진에게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면 결국에는 아무도 중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그는 최근에는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칼럼도 쓰고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미국과 영국 선진국들의 사례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의료제도는 어쩌다 보니 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만들었습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문의료인이면서 다양한 책의 저술가인 곽경훈은 "요즘처럼 고령화가 진행되어 의료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사례 같은 '의도하지 않은 균형'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의료 현장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기록을 꾸준히 책으로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 제보하기
▷ 카카오톡 : 'KBS제보' 검색, 채널 추가
▷ 전화 : 02-781-1234, 4444
▷ 이메일 : kbs1234@kbs.co.kr
▷ 유튜브, 네이버, 카카오에서도 KBS뉴스를 구독해주세요!


  • “내부 적(敵)과 싸우는 전문의”…응급의학과 곽경훈 인터뷰
    • 입력 2022-04-17 10:11:36
    취재K

언뜻 보면 권투선수 같은 외모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곽경훈. 그는 1978년 겨울, 대구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독서와 여행을 좋아해 소설가와 종군 기자를 꿈꿨지만, 고민 끝에 의대에 입학했다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현재는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어 수도권 한 병원에서 레지던트 8명과 근무를 하는데, 근무가 없는 날에는 체육관에서 이종격투기의 일종인 '주짓수'를 배우고 틈틈이 글을 쓴다고 밝혔습니다.

그 결과물이 의료계에서도 화제가 된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 '의사가 뭐라고', '반항하는 의사들'입니다.

존경받는 인물은 못 되더라도, 전문직에 수반하는 최소한 자존심은 포기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흰 의사 가운'을 입는다는 그를 만나 코로나19 상황의 응급실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그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모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우선 좋은 점은 '감염관리'의 향상인데 사실 과거에는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경영진이 비용문제로 난색을 표명하기도 하고 응급실을 방문하는 환자와 보호자도 '귀찮게 왜 이러느냐?'며 가끔은 항의했지요. 당시에는 의사와 간호사를 포함한 의료진도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분위기였습니다.

신종플루와 메르스를 겪으면서도 크게 나아지지 않던 '응급실의 감염관리'가 코로나19를 겪으며 대폭 개선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응급실에는 대부분 격리실이 생겼고 보호구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대유행이 끝나도 '전염병과 인류의 투쟁'은 끝나지 않는 만큼 이렇게 개선된 감염관리는 지속해야할 듯합니다."

개선된 점도 많지만, 부정적인 면도 언급하고 싶다면서, 그는 코로나19환자가 아닌 중환자의 치료에 문제 부분을 지적했습니다.

곽경훈 전문의는 "코로나19가 아니라도 발열을 동반하는 중증질환은 매우 많아서 심지어 뇌졸중과 간질 발작, 심근경색 같은 질환에서도 대수롭지 않은 발열이 발생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며 " 이런 경우, PCR(유전자 증폭) 검사를 통해서 '코로나19가 아니다'고 판정할 때까지 격리실에서 진료해야 하는데 격리실의 숫자가 한정적이라 치료가 지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출처=원더박스 출판사
그의 글들은 코로나19와 무관하게 매우 도발적입니다. 응급실로 대표되는 공간에서 의료계의 아픈 부분을 매우 날카롭게 짚어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

"제 책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의 시간적 배경은 2007년부터 2011년입니다. 10년이 훌쩍 지난 과거라 오늘날에는 응급실에도 많은 발전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도권의 대형병원과 대학병원, 지방에서도 시스템이 잘 갖추어진 곳에서는 응급실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의료서비스'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거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응급의학과 곽경훈입니다'에서 묘사하는 부조리가 적지 않은 듯합니다. 다만 점수로 몇 점이라고 말하기에는 제 경험이 폭넓지 못하고 시선도 객관적이지 않은 듯합니다."

목차만 봐도 '1년 차 그들만의 의사 놀이' '4년 차 의국장이 되었지만' 등 의료계 내부 고발에 가까운 내용 들인데 반발이나 불이익은 없었을까?

그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불이익을 겪지 않았는데, 책의 판매량이 '베스트셀러'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고, 직업적 특징 덕분인 것 같다"며 " 응급의학과 의사는 응급실이란 특수한 공간에서 일하는 의사여서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큰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면 막상 불이익을 주기 어렵다"고 설명했습니다.

출처=원더박스 출판사
또 그의 책 중에 무능한 교수의 대표사례로 등장하는 '미니무스 교수의 아침 회진' 등에 등장한 인물은 아직도 현직에 있는데, 뭔가 바뀐 점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는 이에 대해서도 "반성하거나 사과할 사람이라면 제가 굳이 '악역으로 등장시킬 이유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면서 일부 병원에서는 의사의 반성격인 제 책을 아예 못 보게 하는 거로 알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제가 책을 낸 이후에 큰 비난 혹은 심각한 불이익을 겪으리라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며 '너는 얼마나 잘났냐?'고 아니꼽게 바라보는 시선은 많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동시에 이런 수준의 비판도 받아들이지 못할 만큼 의사 사회가 폐쇄적이거나 비합리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엄밀히 따지면 제 책들은 내부자의 '자기반성'에 가깝습니다. 그런 '자기반성'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집단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의사'란 직업에 대해 좋지 않은 평가도 많습니다만 그런 수준의 집단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는 올해 출판될 책부터는 단순한 내부고발에서 벗어나 의학과 인간에 대해 한층 깊고 진지한 내용을 다루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또 의료계에서 자주 거론되는 '의료 사고 입증 책임 문제'에 대해서는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전문적인 의학지식이 부족한 환자와 보호자가 의료진의 과실을 밝히는 것은 당연히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의료진에게 '나의 과실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에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진에게 과실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결백을 증명하라'는 논리는 자칫 의료진에게만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하지 않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 내원하는 중환자 가운데 상당수는 의료진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서 매우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료를 진행해도 죽음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런 사례마다 의료진에게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면 결국에는 아무도 중환자를 치료하는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


그는 최근에는 의료체계 개선을 위한 칼럼도 쓰고 있는데, 코로나19 상황에서 공공병원의 역할에 대해서도 미국과 영국 선진국들의 사례를 통해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면서, 한국의 의료제도는 어쩌다 보니 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만들었습니다고 평가했습니다.


전문의료인이면서 다양한 책의 저술가인 곽경훈은 "요즘처럼 고령화가 진행되어 의료수요가 늘어나는 상황에서는 한국의 사례 같은 '의도하지 않은 균형'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의료 현장에 대한 자기반성적인 기록을 꾸준히 책으로 내겠다고 밝혔습니다.

이 기사가 좋으셨다면

오늘의 핫 클릭

실시간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뉴스

이 기사에 대한 의견을 남겨주세요.

수신료 수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