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유물의 묵은 때를 벗겨냈더니…

입력 2022.04.18 (11:25) 수정 2022.04.18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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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는 미술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죠.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입니다. 해마다 봄과 가을 전시회가 열리면 관람객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미술관 밖으로 수백 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죠. 벌써 7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2014년 가을 전시를 끝으로 간송미술관은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넓은 전시장은 몰라보게 달라진 관람 환경을 제공했죠. 그리고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찾아왔습니다.

봄이 오고 때마침 코로나 유행도 꺾이자, 간송미술관이 다시 봄 전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7년 반만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좁디좁은 전시장에 많은 유물을 꺼내놓진 못했더군요. 게다가 2층 전시실은 낡은 진열장과 함께 텅 비웠습니다. 이번 봄 전시를 끝으로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간송미술관의 옛 모습을 마지막으로 추억할 수 있게 배려한 겁니다.

■ 지정문화재에 버금가는 명품들을 복원하다

그림 주제별로, 또 화가별로, 시기별로 작품을 보여줬던 그동안의 전시와 달리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기준으로 유물이 선별됐습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귀한 유물 8건, 32점이 나왔습니다.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그동안 제대로 돌봄을 못 받은 유물들을 치료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이른바 '문화재 다량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이란 걸 하고 있는데요. 전시에 나온 유물들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 사업을 통해 보존 처리된 간송 유물 150건 가운데 대표작을 추린 겁니다.

보존 처리의 첫 단계는 유물의 '낡은 옷'을 벗겨내는 과정입니다. 상처가 어느 정도 깊은지 확인하려면 열어서 속을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수백 년 된 유물의 접착 부위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날카롭고도 정밀한 눈으로 티끌 하나 놓칠세라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표지를 열고, 그림을 떼어내 보니 놀랍게도 그 안에 글씨가 적혀 있더란 겁니다. 그야말로 오랜 수수께끼의 단서를 푸는 획기적인 단서가 유물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었던 거죠.


① 그림 뒷면의 보호색지에 적힌 글씨

17세기 화가 한시각(韓時覺, 1621~?)의 <포대화상(布袋和尙)>이란 작품입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승려 포대(布袋)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까지 일찍이 그 명성을 떨친 바, 이름처럼 커다란 포대를 메고 배가 불룩 나온 후덕한 모습으로 많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해서 도화서 화원이었던 한시각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포대도를 꽤 많이 그려준 것 같습니다.

지금 실물이 확인되는 한시각의 포대도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조선의 화가들이 일본에 가서 그림 요구에 수도 없이 시달렸다는 얘기는 대단히 많죠.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그려준 그림 가운데 일부는 근대기에 역으로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경우도 많았다는군요. 이 그림도 그렇게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했을 겁니다.

분리된 보호색지에 적힌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분리된 보호색지에 적힌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동안 이 그림은 한시각이 1655년 을미사행 당시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만 해왔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에 보존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림 뒷면에 붙어 있던 보호색지에서 먹으로 쓴 글씨, 즉 묵서(墨書)가 발견됐습니다. 내용인즉슨 한시각이라는 조선 화가가 1655년에 일본에 와서 포대 그림을 그렸다는 겁니다.

金雪灘朝鮮畵家名視覺字子裕
김설탄은 조선의 화가로 이름은 시각, 자는 자유다
明曆元年來聘使隨官トツテ來朝
메이레키 원년(1655)에 내빙사 수행관원으로 왔다.
雪灘布袋之圖黃檗住山伯珣敬之贊
설탄의 포대 그림에 황벽의 주지 백순이 삼가 쓰다
黃檗山二十歲照浩伯珣歸化僧
황벽산 20세 주지 조호 백순 귀화승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위에서 보듯 당시 일본의 불교 종파 가운데 하나인 황벽종 사찰의 20대 주지를 지낸 조호백순(照浩伯珣, 1695~1776)이란 중국 귀화승입니다. 비록 한시각의 성(性)을 김(金)으로 잘못 적긴 했지만, 화가의 호(號)와 자(字), 일본에 간 해와 신분을 정확하게 밝혀놓았죠.

이 기록 덕분에 그동안의 추정은 명확한 사실이 됐습니다. 미술사의 기록을 바꾸는 내용이죠. 보존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런 비밀을 확인하는 순간, 연구자는 얼마나 짜릿한 기분을 느꼈을까요. 자고로 그림은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뒤도 잘 봐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운미난첩운미난첩

② 이중으로 된 표지를 뜯어보니 또 글씨가…

난초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흔히 '조선의 마지막 묵죽화가'로 불립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난초 그림을 그의 호를 따서 운미란(雲楣蘭)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 가운데 민영익의 <운미난첩(雲楣蘭帖)>은 단연 주목에 값합니다. 이 화첩에 실린 민영익의 난초 그림만 무려 72점이랍니다. 전시장이 워낙 좁아서 이번 전시에는 몇 점 나오지 못했지만, 단일 화가의 그림이 이렇게나 많이 묶여 있는 화첩이 또 있을까 싶네요.

게다가 보통 화첩은 가로로,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넘겨가며 볼 수 있게 꾸며진 것이 대부분인데, 이 화첩은 특이하게도 세로로, 그러니까 위로 넘겨보게 돼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화첩을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게다가 더 특이한 것은 원래 표지 위에 또 다른 종이를 가장자리에만 풀칠을 해서 덧붙여 표지가 이중으로 돼 있었다는 점인데요. 표지에 붙은 얇은 종이를 떼어내 보니 역시나 아래와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閔氏千尋竹主人
민씨 천심죽재(민영익의 당호)가 난을 그리다
雲楣自題
운미가 직접 쓰다

《운미난첩》 표지에 붙어 있던 종이에서 발견된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운미난첩》 표지에 붙어 있던 종이에서 발견된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마찬가지로 이 기록 역시 추정으로 남아 있던 빈칸을 사실로 채워 줍니다. 표지의 내용은 "1896년 가을 9월 15일, 천심죽재가 난을 배웠습니다. 운미가 직접 써서 드립니다. 금래 사촌 형님께서 살펴 주십시오."입니다. 두 가지를 종합하면, 민영익이 중국 상하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1896년에 상하이에서 지내던 별서인 '천심죽재'에서 꾸며 사촌 형인 민영소에게 증정한 화첩임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겁니다.

해동명화집해동명화집

③ 벌레 먹은 자국이 거짓말처럼 일치하다니

조선 후기에 아주 유명한 서화 수집가로 석농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당대에 수집한 귀한 그림과 글씨를 묶어서 꾸민 화첩을 여럿 남겼는데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동명화집(海東名畵集)>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에 보이는 것처럼 오른쪽에 그림을 붙이고 왼쪽에 간단한 소개 글과 감상평을 적었습니다. 안견, 심사임당, 심사정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 28점을 모아놓았죠.

그런데 김광국이 쓴 발문(跋文)은 그림보다 2점이 많은 30점입니다. 아니, 그림은 28점인데 발문이 30점이라니. 그럼 발문 2점에 해당하는 그림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떨어져 나갔나.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죠. 아무튼, 이곳저곳 상처를 입은 화첩을 조심스럽게 떼어낸 뒤 현미경으로 촬영해 정밀 분석해 봤더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해동명화첩》에 수록된 겸재 정선의 〈송림한선〉 보존처리 전후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해동명화첩》에 수록된 겸재 정선의 〈송림한선〉 보존처리 전후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벌레 먹은 자국이 간송미술관에 낱장으로 전하던 다른 그림 두 점과 포갠 것처럼 정확하게 일치하더란 겁니다. 족자 형태로 전해온 조맹부의 <엽기도>와 낱장으로 전해오던 조영석의 <노승헐각> 두 점입니다. 그림 내용도 화첩의 발문 내용에 부합했다고 합니다. 보존 처리 덕분에 집 나간 그림 두 점이 다시 원래 화첩으로 돌아온 보기 드문 사건! 우리 미술사에서 손에 꼽을 이산가족 상봉 사례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 블랙박스를 열고 타임머신을 타다

간송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대표적으로 제시한 세 가지 사례입니다.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겠죠. 보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면 언제까지고 꼭꼭 숨어 있었을, 아니면 혹시라도 훼손이 더 심해져 아예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더라면 영영 알아내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이런 뜻밖의 성과들은 유물의 보존 처리가 얼마나 시급하고도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학자와 연구자들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돼서 좋고, 관람객들은 유물에 담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니 좋죠. 일석이조, 일석삼조인 셈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상처 입은 유물이 후손들의 정성스런 치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유물 안에 꼭꼭 숨은 기록들이 마치 '블랙박스'처럼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의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타임머신을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죠?

● 전시정보
제목: 보화수보(寶華修補) -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기간: 6월 5일까지
장소: 서울시 성북구 간송미술관
유물: 8건 3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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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낡은 유물의 묵은 때를 벗겨냈더니…
    • 입력 2022-04-18 11:25:47
    • 수정2022-04-18 11:28:29
    취재K

'줄 서는 미술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있죠.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에 있는 간송미술관입니다. 해마다 봄과 가을 전시회가 열리면 관람객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미술관 밖으로 수백 미터씩 줄을 서는 진풍경이 펼쳐졌죠. 벌써 7년도 넘은 이야기입니다.

2014년 가을 전시를 끝으로 간송미술관은 변화를 모색했습니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넓은 전시장은 몰라보게 달라진 관람 환경을 제공했죠. 그리고 2020년 1월 코로나19가 찾아왔습니다.

봄이 오고 때마침 코로나 유행도 꺾이자, 간송미술관이 다시 봄 전시 소식을 알려왔습니다. 7년 반만입니다. 이번에도 역시나 좁디좁은 전시장에 많은 유물을 꺼내놓진 못했더군요. 게다가 2층 전시실은 낡은 진열장과 함께 텅 비웠습니다. 이번 봄 전시를 끝으로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가는 간송미술관의 옛 모습을 마지막으로 추억할 수 있게 배려한 겁니다.

■ 지정문화재에 버금가는 명품들을 복원하다

그림 주제별로, 또 화가별로, 시기별로 작품을 보여줬던 그동안의 전시와 달리 이번에는 조금 특별한 기준으로 유물이 선별됐습니다. 국보나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지만, 그에 버금갈 정도로 귀한 유물 8건, 32점이 나왔습니다.

지정문화재가 아니어서 그동안 제대로 돌봄을 못 받은 유물들을 치료하기 위해 문화재청이 이른바 '문화재 다량소장처 보존관리 지원사업'이란 걸 하고 있는데요. 전시에 나온 유물들은 2020년부터 지금까지 이 사업을 통해 보존 처리된 간송 유물 150건 가운데 대표작을 추린 겁니다.

보존 처리의 첫 단계는 유물의 '낡은 옷'을 벗겨내는 과정입니다. 상처가 어느 정도 깊은지 확인하려면 열어서 속을 들여다봐야 하니까요. 수백 년 된 유물의 접착 부위를 조심스럽게 떼어내고 날카롭고도 정밀한 눈으로 티끌 하나 놓칠세라 세심하게 관찰합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놀라운 장면을 목격합니다. 표지를 열고, 그림을 떼어내 보니 놀랍게도 그 안에 글씨가 적혀 있더란 겁니다. 그야말로 오랜 수수께끼의 단서를 푸는 획기적인 단서가 유물 깊은 곳에 꼭꼭 숨어 있었던 거죠.


① 그림 뒷면의 보호색지에 적힌 글씨

17세기 화가 한시각(韓時覺, 1621~?)의 <포대화상(布袋和尙)>이란 작품입니다. 중국의 전설적인 승려 포대(布袋)는 중국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에까지 일찍이 그 명성을 떨친 바, 이름처럼 커다란 포대를 메고 배가 불룩 나온 후덕한 모습으로 많은 화가에 의해 그려졌습니다. 특히 일본인들이 좋아해서 도화서 화원이었던 한시각은 통신사를 따라 일본에 가서 포대도를 꽤 많이 그려준 것 같습니다.

지금 실물이 확인되는 한시각의 포대도 가운데 유일하게 국내에 있는 것이 바로 이 작품입니다. 조선의 화가들이 일본에 가서 그림 요구에 수도 없이 시달렸다는 얘기는 대단히 많죠. 그렇게 일본인들에게 그려준 그림 가운데 일부는 근대기에 역으로 일본에서 국내로 들어온 경우도 많았다는군요. 이 그림도 그렇게 간송 전형필 선생이 수집했을 겁니다.

분리된 보호색지에 적힌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그동안 이 그림은 한시각이 1655년 을미사행 당시 통신사 수행화원으로 일본에 갔을 때 그린 것으로 추정만 해왔습니다. 정확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번에 보존 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그림 뒷면에 붙어 있던 보호색지에서 먹으로 쓴 글씨, 즉 묵서(墨書)가 발견됐습니다. 내용인즉슨 한시각이라는 조선 화가가 1655년에 일본에 와서 포대 그림을 그렸다는 겁니다.

金雪灘朝鮮畵家名視覺字子裕
김설탄은 조선의 화가로 이름은 시각, 자는 자유다
明曆元年來聘使隨官トツテ來朝
메이레키 원년(1655)에 내빙사 수행관원으로 왔다.
雪灘布袋之圖黃檗住山伯珣敬之贊
설탄의 포대 그림에 황벽의 주지 백순이 삼가 쓰다
黃檗山二十歲照浩伯珣歸化僧
황벽산 20세 주지 조호 백순 귀화승

이 기록을 남긴 사람은 위에서 보듯 당시 일본의 불교 종파 가운데 하나인 황벽종 사찰의 20대 주지를 지낸 조호백순(照浩伯珣, 1695~1776)이란 중국 귀화승입니다. 비록 한시각의 성(性)을 김(金)으로 잘못 적긴 했지만, 화가의 호(號)와 자(字), 일본에 간 해와 신분을 정확하게 밝혀놓았죠.

이 기록 덕분에 그동안의 추정은 명확한 사실이 됐습니다. 미술사의 기록을 바꾸는 내용이죠. 보존 처리를 하지 않았다면 몰랐을 이런 비밀을 확인하는 순간, 연구자는 얼마나 짜릿한 기분을 느꼈을까요. 자고로 그림은 앞만 볼 것이 아니라 뒤도 잘 봐야 하는 법인가 봅니다.

운미난첩
② 이중으로 된 표지를 뜯어보니 또 글씨가…

난초 그림으로 일가를 이룬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은 흔히 '조선의 마지막 묵죽화가'로 불립니다. 한 시대를 풍미한 난초 그림을 그의 호를 따서 운미란(雲楣蘭)이라고 불렀을 정도니까요.

이번 전시에 나온 유물 가운데 민영익의 <운미난첩(雲楣蘭帖)>은 단연 주목에 값합니다. 이 화첩에 실린 민영익의 난초 그림만 무려 72점이랍니다. 전시장이 워낙 좁아서 이번 전시에는 몇 점 나오지 못했지만, 단일 화가의 그림이 이렇게나 많이 묶여 있는 화첩이 또 있을까 싶네요.

게다가 보통 화첩은 가로로, 그러니까 오른쪽으로 넘겨가며 볼 수 있게 꾸며진 것이 대부분인데, 이 화첩은 특이하게도 세로로, 그러니까 위로 넘겨보게 돼 있습니다. 이런 형태의 화첩을 보는 것도 처음입니다. 게다가 더 특이한 것은 원래 표지 위에 또 다른 종이를 가장자리에만 풀칠을 해서 덧붙여 표지가 이중으로 돼 있었다는 점인데요. 표지에 붙은 얇은 종이를 떼어내 보니 역시나 아래와 같은 글씨가 적혀 있었습니다.

閔氏千尋竹主人
민씨 천심죽재(민영익의 당호)가 난을 그리다
雲楣自題
운미가 직접 쓰다

《운미난첩》 표지에 붙어 있던 종이에서 발견된 글씨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마찬가지로 이 기록 역시 추정으로 남아 있던 빈칸을 사실로 채워 줍니다. 표지의 내용은 "1896년 가을 9월 15일, 천심죽재가 난을 배웠습니다. 운미가 직접 써서 드립니다. 금래 사촌 형님께서 살펴 주십시오."입니다. 두 가지를 종합하면, 민영익이 중국 상하이에서 망명 생활을 하던 1896년에 상하이에서 지내던 별서인 '천심죽재'에서 꾸며 사촌 형인 민영소에게 증정한 화첩임을 알아낼 수 있었던 겁니다.

해동명화집
③ 벌레 먹은 자국이 거짓말처럼 일치하다니

조선 후기에 아주 유명한 서화 수집가로 석농 김광국(金光國, 1727~1797)이란 인물이 있습니다. 당대에 수집한 귀한 그림과 글씨를 묶어서 꾸민 화첩을 여럿 남겼는데요. 간송미술관에 소장된 <해동명화집(海東名畵集)>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위에 보이는 것처럼 오른쪽에 그림을 붙이고 왼쪽에 간단한 소개 글과 감상평을 적었습니다. 안견, 심사임당, 심사정 등 내로라하는 쟁쟁한 화가들의 그림 28점을 모아놓았죠.

그런데 김광국이 쓴 발문(跋文)은 그림보다 2점이 많은 30점입니다. 아니, 그림은 28점인데 발문이 30점이라니. 그럼 발문 2점에 해당하는 그림이 없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느 시기에 누군가에 의해 떨어져 나갔나. 충분히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죠. 아무튼, 이곳저곳 상처를 입은 화첩을 조심스럽게 떼어낸 뒤 현미경으로 촬영해 정밀 분석해 봤더니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해동명화첩》에 수록된 겸재 정선의 〈송림한선〉 보존처리 전후 (출처: 간송미술문화재단)
벌레 먹은 자국이 간송미술관에 낱장으로 전하던 다른 그림 두 점과 포갠 것처럼 정확하게 일치하더란 겁니다. 족자 형태로 전해온 조맹부의 <엽기도>와 낱장으로 전해오던 조영석의 <노승헐각> 두 점입니다. 그림 내용도 화첩의 발문 내용에 부합했다고 합니다. 보존 처리 덕분에 집 나간 그림 두 점이 다시 원래 화첩으로 돌아온 보기 드문 사건! 우리 미술사에서 손에 꼽을 이산가족 상봉 사례라 해도 손색이 없습니다.

■ 블랙박스를 열고 타임머신을 타다

간송미술관이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대표적으로 제시한 세 가지 사례입니다. 물론 이것뿐만이 아니겠죠. 보존 처리를 하지 않았으면 언제까지고 꼭꼭 숨어 있었을, 아니면 혹시라도 훼손이 더 심해져 아예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더라면 영영 알아내지 못했을 지도 모를 이런 뜻밖의 성과들은 유물의 보존 처리가 얼마나 시급하고도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학자와 연구자들은 새로운 역사적 사실을 알게 돼서 좋고, 관람객들은 유물에 담긴 더 풍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으니 좋죠. 일석이조, 일석삼조인 셈입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상처 입은 유물이 후손들의 정성스런 치유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유물 안에 꼭꼭 숨은 기록들이 마치 '블랙박스'처럼 새로운 사실들을 통해 우리를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의 그 시절로 데려다주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니 타임머신을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겠죠?

● 전시정보
제목: 보화수보(寶華修補) - 간송의 보물 다시 만나다
기간: 6월 5일까지
장소: 서울시 성북구 간송미술관
유물: 8건 32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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