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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기록 찾아 40여 년…정수만 전 유족회장 ‘산 자의 기록’
입력 2022.04.18 (14:56) 취재K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두어 평 남짓.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의 방은 비좁았다. 꼭 가보고 싶은 방이었다. 5.18을 취재하는 기자라면 누구나 가져봤을 욕심이다. 40년 넘게 5.18 기록을 좇아온 사람. 단언컨데 5.18 기록을 그보다 많이 가진 사람은 없다. 이제 그를 기록할 차례, 인터뷰를 위한 방문이었다.

■ “억울함 규명하고 싶었다. 기록이 필요했다”

“기록에 왜 이렇게 천착하십니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저는 동생도 죽었지만 너무 억울해요. 이렇게 처참하게 당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억울하게 여러 가지를 당한 거예요. 죽고 다치고 이걸 다 봤잖아요. 이런 억울한 것들은 꼭 우리가 규명해야 한다.” 5.18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정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1980년 5월 20일 실종돼, 7일 뒤 군부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수만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5.18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정수만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5.18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진실규명에 필요한 게 기록이었다. “말로 해가지고는 어떤 것이든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요? 신뢰할 수 없으니까 기록을 찾자. 특히 자기들이 만들어냈던 기록.” 홀로 외로이 진실의 조각을 맞춰온 시간이 이제 40년을 넘었다.

■ 5.18 자료 수집 40여 년...“어디든 달려가 누구든 만났다”

정 전 회장의 자료는 어떤 것들이며, 얼마나 될까. 자료는 컴퓨터 안에 쌓여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자료는 (원자료를) 내가 전부 (옮겨) 쳐서 (파일로) 만든 자료가 많아요.” 일부를 보여줬다. ‘미스김’. 정 전 회장이 쓰는 프로그램 이름이다. 2000년대 초반 즈음 뿌려졌을 것으로 보이는 연락처 관리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인물, 사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었다.

정수만 전 회장의 방엔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등 자료를 모은 기기가 가득하다.정수만 전 회장의 방엔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등 자료를 모은 기기가 가득하다.

자료를 모은 과정을 물었다. 정 전 회장은 책장 서랍에서 여러 대의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카세트 테이프를 꺼냈다. 시대별 기기 변천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기기와 장치는 긴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자료가 있는 곳이면 국내든, 해외든 어디든 달려가 누구든 만났다고 했다. 정보 가치가 있으면 자기가 가진 정보와 맞바꾸기도 했다. 서류를 파일화하기 위해 집에 1,300만 원짜리 스캐너를 들여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록물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한 300기가 넘는가?” 본인도 정확히 몰랐다. 1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30여만 쪽, 300쪽 분량 책 1,000권’이라 했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은 분명했다.

■ 자료 공유? ... “살아있을 때 주고싶은 사람 없다”

‘조심스럽지만, 기록물 공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에 앞서 며칠 전 건넨 질문지 내용이다. “뭘 공유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80년대부터 계속 이런 작업을 해왔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관에서 용역을 맡으면 나한테 와요. 그것 좀 해달라. 주라. 처음에는 다 줬어요. 줬는데 가만히 보면 엄청난 돈을 받았는데, 내 거 기록을 거의 70~80% 쓴 거예요. 그리고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자리도 안 해요. 이러다 보니 내가 왜 줘야 하나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에요.” 정 전 회장의 자료를 받아다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낸 다른 이의 보고서와 책이 여럿이라고 나중에 동료 기자에게 들었다. 정 전 회장의 말에서 서운함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정수만 전 회장이 본인이 모은 자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정수만 전 회장이 본인이 모은 자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얘기가 이어졌다. “5.18을 이렇게 왜곡시킨 주역이 누군지 알아요? 서주석이라고... 그 사람이 5.18을 왜곡시켰는데, 그 사람이 청와대에 앉았어요. 근데 그 사람을 밀었던 사람이 지금 5.18 조사위에 다 가 있어요.” “이 자료를 이용해서 5.18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진실을 규명하고 하는 데에 진심인 사람은 별로 없더라.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을 때는 주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이었던 서주석씨는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국방부가 비밀리에 만든 대응 조직인 ‘511연구위원회’에 참여했다. 각종 군 기록을 검토해 5.18을 왜곡, 조작한 활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다. 서주석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냈다.

정 전 회장은 줄곧 서주석씨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보호했던 인사들이 참여한 5.18 진상규명 조사위에서 자료를 요구해왔다. ‘희생과 노력에 대한 시대의 배반’, 정 전 회장의 감정이 아닐까.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의 자택 서재. 책과 자료가 빼곡하다.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의 자택 서재. 책과 자료가 빼곡하다.

■ “30대부터 5.18을 빼곤 얘기할 게 없다”... 1981년 1주기 추모제부터 본격 활동

처음부터 자료 모으기에 나선 건 아니다. 활동의 시작은 추모제였다. 학살 뒤 1년, 억울함을 삼키며 모두가 숨죽였던 때. 집행위원장을 맡아 추모제를 지냈다. “내가 1주기를 안 지냈으면 5.18 1주기는 제사도 없이 끝났을 거예요. ... (망월동으로) 버스 타고 들어오지를 못하니까 담양 쪽에서 전부 산으로 넘어오더라고요. 재야에서 오고, 5.18 구속됐던 가족들이 오고, 학생들이 오고, 한 5백 명 정도가 왔어요.”

1980년대 초반 구 망월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다.1980년대 초반 구 망월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다.

그리고는 학살의 현장, 금남로 가두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됐다. “80년 이후로 시위대가 금남로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26명 잡혔는데, 주범으로 혼자 구속됐죠.” 집시법 위반에 국가보안법 위반이 추가됐다. 모진 고문과 징역살이. 정 전 회장은 부러진 갈비뼈를 제때 치료 못 한 채 그대로 굳어 튀어나온 가슴팍을 보여줬다.

그는 10개월의 수감 생활을 하고 나와 2주기, 3주기 추모제를 이어갔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추모제라는데 무슨 놈의 제사상도 없는 추모제가 있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2주기부터 제사상이 만들어졌어요.”

1947년생, 호적이 1년 늦게 올랐다니 실제 나이로 77살. 인쇄업을 하다가 5.18을 만나 인생이 뒤바뀐 사람. “저는 30대부터 지금까지 5.18로 같이 살아온 거죠. 5.18을 떼고는 이야기할 것이 없게 된 거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5.18로 인해서 모든 일어난 일의 중심에 내가 있었으니까.

■ 마지막 숙제는 사망자들의 기록... ”기록 왜곡 바로잡기, 산 자들의 몫“

후회는 없냐고 물었다. ”저는 5.18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뭐 더 이상 한은 없어요. 후회도 없고요. 이렇게 해 나왔는데 지금 와서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끝에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덧붙였다. ”애기 엄마(아내)가 안 도와줬으면, 나한테 계속 돈 안 번다고 뭐라고 그랬으면, 내가 일을 못 하죠. 그런 불평 하나 없이 어쨌든 이 일을 하도록 묵인해줬으니까...“

정수만 전 회장이 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정수만 전 회장이 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도 숙제가 있을까? ”내가 해야 될 일은 5.18 당시 사망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완전하게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건 내가 꼭 할 거예요.

우리 사회에도 숙제를 던졌다. “(기록들이) 전부 왜곡됐거든요. 이걸 올바로 잡아줘야 돼요. 근데, 왜곡이 됐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아쉽다는 거죠. 후대에서 이 기록을 볼 때 어떻게 평가를 하겠느냐. 우리가 고쳐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 않는가 이런 아쉬움. 나는 능력이 별로 없어요. 나는 그걸 수집해서 보고, 그걸 전부 전산화 하다 보니까 전반적인 내용을 다 알지만, 정작 그걸 논리적으로 풀어서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야 될 사람은 일을 하나도 안 하더라는 거죠.”

1년에 한 번 아내와 가까운 해외에 여행을 가는 게 최근 몇 년간 본인에게 주는 선물이라는데, 그의 여행은 코로나로 막혔다. 그 선물 같은 여행이 하루 빨리 이어지길. …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의 건강을 빈다.
  • 5·18 기록 찾아 40여 년…정수만 전 유족회장 ‘산 자의 기록’
    • 입력 2022-04-18 14:56:24
    취재K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이 자택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두어 평 남짓.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의 방은 비좁았다. 꼭 가보고 싶은 방이었다. 5.18을 취재하는 기자라면 누구나 가져봤을 욕심이다. 40년 넘게 5.18 기록을 좇아온 사람. 단언컨데 5.18 기록을 그보다 많이 가진 사람은 없다. 이제 그를 기록할 차례, 인터뷰를 위한 방문이었다.

■ “억울함 규명하고 싶었다. 기록이 필요했다”

“기록에 왜 이렇게 천착하십니까?”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저는 동생도 죽었지만 너무 억울해요. 이렇게 처참하게 당할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억울하게 여러 가지를 당한 거예요. 죽고 다치고 이걸 다 봤잖아요. 이런 억울한 것들은 꼭 우리가 규명해야 한다.” 5.18 당시 시위에 참가했던 정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1980년 5월 20일 실종돼, 7일 뒤 군부대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정수만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5.18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정수만 전 회장의 둘째 동생은 5.18 당시 시위에 나섰다가 주검으로 발견됐다.

진실규명에 필요한 게 기록이었다. “말로 해가지고는 어떤 것이든지 신뢰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아요? 신뢰할 수 없으니까 기록을 찾자. 특히 자기들이 만들어냈던 기록.” 홀로 외로이 진실의 조각을 맞춰온 시간이 이제 40년을 넘었다.

■ 5.18 자료 수집 40여 년...“어디든 달려가 누구든 만났다”

정 전 회장의 자료는 어떤 것들이며, 얼마나 될까. 자료는 컴퓨터 안에 쌓여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자료는 (원자료를) 내가 전부 (옮겨) 쳐서 (파일로) 만든 자료가 많아요.” 일부를 보여줬다. ‘미스김’. 정 전 회장이 쓰는 프로그램 이름이다. 2000년대 초반 즈음 뿌려졌을 것으로 보이는 연락처 관리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인물, 사건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었다.

정수만 전 회장의 방엔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등 자료를 모은 기기가 가득하다.정수만 전 회장의 방엔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등 자료를 모은 기기가 가득하다.

자료를 모은 과정을 물었다. 정 전 회장은 책장 서랍에서 여러 대의 노트북과 녹음기, 플로피 디스크, 카세트 테이프를 꺼냈다. 시대별 기기 변천사가 한눈에 들어왔다. 기기와 장치는 긴 시간을 말하고 있었다. 자료가 있는 곳이면 국내든, 해외든 어디든 달려가 누구든 만났다고 했다. 정보 가치가 있으면 자기가 가진 정보와 맞바꾸기도 했다. 서류를 파일화하기 위해 집에 1,300만 원짜리 스캐너를 들여놓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기록물의 양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었다. “한 300기가 넘는가?” 본인도 정확히 몰랐다. 12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30여만 쪽, 300쪽 분량 책 1,000권’이라 했던 범위에서 한참 벗어나 있음은 분명했다.

■ 자료 공유? ... “살아있을 때 주고싶은 사람 없다”

‘조심스럽지만, 기록물 공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터뷰에 앞서 며칠 전 건넨 질문지 내용이다. “뭘 공유하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답 대신 질문이 돌아왔다. “나는 80년대부터 계속 이런 작업을 해왔는데, 어느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관에서 용역을 맡으면 나한테 와요. 그것 좀 해달라. 주라. 처음에는 다 줬어요. 줬는데 가만히 보면 엄청난 돈을 받았는데, 내 거 기록을 거의 70~80% 쓴 거예요. 그리고 나한테는 고맙다는 말 한자리도 안 해요. 이러다 보니 내가 왜 줘야 하나 하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에요.” 정 전 회장의 자료를 받아다 출처도 밝히지 않은 채 낸 다른 이의 보고서와 책이 여럿이라고 나중에 동료 기자에게 들었다. 정 전 회장의 말에서 서운함과 아쉬움이 묻어났다.

정수만 전 회장이 본인이 모은 자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정수만 전 회장이 본인이 모은 자료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얘기가 이어졌다. “5.18을 이렇게 왜곡시킨 주역이 누군지 알아요? 서주석이라고... 그 사람이 5.18을 왜곡시켰는데, 그 사람이 청와대에 앉았어요. 근데 그 사람을 밀었던 사람이 지금 5.18 조사위에 다 가 있어요.” “이 자료를 이용해서 5.18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진실을 규명하고 하는 데에 진심인 사람은 별로 없더라. 그런 사람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있을 때는 주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원이었던 서주석씨는 1988년 국회 청문회를 앞두고 국방부가 비밀리에 만든 대응 조직인 ‘511연구위원회’에 참여했다. 각종 군 기록을 검토해 5.18을 왜곡, 조작한 활동에 가담한 전력이 있다. 서주석씨는 문재인 정부에서 국방부 차관과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을 지냈다.

정 전 회장은 줄곧 서주석씨의 사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를 보호했던 인사들이 참여한 5.18 진상규명 조사위에서 자료를 요구해왔다. ‘희생과 노력에 대한 시대의 배반’, 정 전 회장의 감정이 아닐까.

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의 자택 서재. 책과 자료가 빼곡하다.정수만 전 5.18유족회장의 자택 서재. 책과 자료가 빼곡하다.

■ “30대부터 5.18을 빼곤 얘기할 게 없다”... 1981년 1주기 추모제부터 본격 활동

처음부터 자료 모으기에 나선 건 아니다. 활동의 시작은 추모제였다. 학살 뒤 1년, 억울함을 삼키며 모두가 숨죽였던 때. 집행위원장을 맡아 추모제를 지냈다. “내가 1주기를 안 지냈으면 5.18 1주기는 제사도 없이 끝났을 거예요. ... (망월동으로) 버스 타고 들어오지를 못하니까 담양 쪽에서 전부 산으로 넘어오더라고요. 재야에서 오고, 5.18 구속됐던 가족들이 오고, 학생들이 오고, 한 5백 명 정도가 왔어요.”

1980년대 초반 구 망월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다.1980년대 초반 구 망월묘역에서 5.18 추모제가 거행되고 있다.

그리고는 학살의 현장, 금남로 가두 시위에 나섰다가 체포됐다. “80년 이후로 시위대가 금남로 나온 건 처음이었어요. 26명 잡혔는데, 주범으로 혼자 구속됐죠.” 집시법 위반에 국가보안법 위반이 추가됐다. 모진 고문과 징역살이. 정 전 회장은 부러진 갈비뼈를 제때 치료 못 한 채 그대로 굳어 튀어나온 가슴팍을 보여줬다.

그는 10개월의 수감 생활을 하고 나와 2주기, 3주기 추모제를 이어갔다. “누가 그러더라고요. 추모제라는데 무슨 놈의 제사상도 없는 추모제가 있어? 이러는 거예요. 그래서 2주기부터 제사상이 만들어졌어요.”

1947년생, 호적이 1년 늦게 올랐다니 실제 나이로 77살. 인쇄업을 하다가 5.18을 만나 인생이 뒤바뀐 사람. “저는 30대부터 지금까지 5.18로 같이 살아온 거죠. 5.18을 떼고는 이야기할 것이 없게 된 거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5.18로 인해서 모든 일어난 일의 중심에 내가 있었으니까.

■ 마지막 숙제는 사망자들의 기록... ”기록 왜곡 바로잡기, 산 자들의 몫“

후회는 없냐고 물었다. ”저는 5.18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라고 생각을 해요.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뭐 더 이상 한은 없어요. 후회도 없고요. 이렇게 해 나왔는데 지금 와서 무슨 후회가 있겠습니까.“ 끝에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덧붙였다. ”애기 엄마(아내)가 안 도와줬으면, 나한테 계속 돈 안 번다고 뭐라고 그랬으면, 내가 일을 못 하죠. 그런 불평 하나 없이 어쨌든 이 일을 하도록 묵인해줬으니까...“

정수만 전 회장이 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정수만 전 회장이 기록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도 숙제가 있을까? ”내가 해야 될 일은 5.18 당시 사망했던 사람들의 기록을 완전하게 하나 만드는 것이다. 이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건 내가 꼭 할 거예요.

우리 사회에도 숙제를 던졌다. “(기록들이) 전부 왜곡됐거든요. 이걸 올바로 잡아줘야 돼요. 근데, 왜곡이 됐는지도 모른다는 사실이에요. 그게 아쉽다는 거죠. 후대에서 이 기록을 볼 때 어떻게 평가를 하겠느냐. 우리가 고쳐 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의 몫이지 않는가 이런 아쉬움. 나는 능력이 별로 없어요. 나는 그걸 수집해서 보고, 그걸 전부 전산화 하다 보니까 전반적인 내용을 다 알지만, 정작 그걸 논리적으로 풀어서 제대로 기록으로 남겨야 될 사람은 일을 하나도 안 하더라는 거죠.”

1년에 한 번 아내와 가까운 해외에 여행을 가는 게 최근 몇 년간 본인에게 주는 선물이라는데, 그의 여행은 코로나로 막혔다. 그 선물 같은 여행이 하루 빨리 이어지길. … 정수만 전 5.18 유족회장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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